• 고금소총 제330화 - 지은 시로 기생에게 수모를 당하다 (羞妓賦詩)
영남 사람으로 여씨(呂氏)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독서에 열중한 결과
명경과(明徑科) 과거에 당당히 급제한 뒤,
관직을 얻어
호서 지방의 아사(亞使)로
부임해 갔다.
때는 마침 온갖 꽃들이 피고
잎이 돋아나는 봄철이었으니,
어느 날 하루 봄 경치를 구경하려고
부여 백마강으로 나갔다.
이곳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는데,
여씨 또한 여러 기생들과 함께
뱃놀이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배가 강 중류에 이르니,
봄볕이 따뜻하고 화사한 바람이
품속을 파고들어 시원했으며,
강 언덕의 경치는
사람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가 있었다.
이에 그는 기생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정말 아름다운 경치로다.
강산은 이리도 좋아
진정 동방 제일가는 승지(勝地)인데,
어쩌자고 저 언덕의 바위 이름은
꽃이 떨어진 바위라는 뜻의
낙화암(落花岩)이란 말인가?"
이 말에 기생들은
그저 농담인 줄로만 여기다가,
가만히 살피니
여씨가 정말 낙화암의 내력을
모르는 것 같기에
한 기생이 앞으로 나서서 설명했다.
"소녀가 일찍이 듣기로는,
옛날 백제 의자왕이 날마다
궁녀들을 데리고 방탕하게 놀다가
마침 당나라 대군들이 쳐들어와 포위하니,
궁녀들이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모두 저 바위로 올라가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하옵니다.
그래서 낙화암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하온데,
아사 어른께서는 그것을 모르셨는지요?"
그러자 여씨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변명했다.
"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꿰뚫어 외우고
사략(史略)과 통감(通鑑)을
모두 다 섭렵해 알고 있지만,
동사(東史)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지 못했노라."
이 때 다른 한 기생이 나서며 말했다.
"일찍이 소녀 여기서
많은 별성(別星) 어른들을 모시고
뱃놀이를 하였사온데,
그 때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역사적 사실과 결부하여
회고의 시를 읊었사옵니다.
하오니 오늘 어른께서도
시가 없어서야 되겠사옵니까?"
이에 여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경서(經書)를 외우는 데만 열중하여
명경과에 급제를 하다 보니,
시 공부를 하지 못해
제대로 지을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생들로부터
수모는 당하기 싫으니,
방금 전 기생에게서 들은
백제 의자왕 때의 일을 가지고
한번 지어 보기로 마음먹고,
반나절이나 고심한 끝에
겨우 이렇게 읊었다.
憶昔曾遊地 옛날을 더듬어 보니 여기 유람지에서
(억석증유지)
淫佚國雖亡 음탕하고 즐겁게 노느라 나라 비록 망했지만
(음일국수망)
江山如此好 강산이 이토록 아름다우니
(강산여차호)
無罪義慈王 의자왕에게는 죄가 없도다.
(무죄의자왕)
대체로 이 시는 옛날 백제 의자왕이 놀았던
이 지역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음일(淫佚)로 인해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으나,
강산 경치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좋으니
의자왕이 방탕하게 논 것은 죄가 없고,
굳이 허물을 한다면
이렇게 좋은 경치에
잘못이 있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었다.
백마강에서 여씨가
이런 시를 지었다는 소문이 퍼지니,
듣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유치하다면서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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