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변강쇠 죽은 대목부터

풍각쟁이 한패가 부채를 부치면서 들어오는 대목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qVEXSNNsqL4

  여인이 겁이 나서 울 생각도 없지마는

저놈 성기(性氣) 짐작하고 임종(臨終) 유언(遺言) 있었으니

전례곡(傳例哭)은 해야 겠거든

비녀 빼어 낭자 풀고 주먹 쥐어 방을 치며,

 

  "애고애고(哀苦哀苦) 설운지고, 애고애고 어찌 살꼬.

여보소, 변서방아 날 버리고 어디가나.

나도 가세 나도 가세. 임을 따라 나도 가세.

청석관 만날 적에 백년해로 하자더니

황천객 혼자 가니 일장춘몽(一場春夢) 허망하다.

적막산중(寂寞山中) 텅빈 집에 강근지친(强近之親) 고사하고

동네 사람 없으니 낭군 치상(致喪) 어찌 하고

이내 신세 어찌 살꼬.

 

웬년의 팔자로서 상부복을 그리 타서

송장 많이 보았지만 보던 중에 처음이네.

애고애고 설운지고.

나를 만일 못 잊어서 눈을 감지 못한다면

날 잡아가, 날 잡아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한참 통곡한 연후에 사자(死者)밥 지어 놓고,

옷깃 잡아 초혼(招魂)하고 혼잣말로 자탄(自嘆)하여,

  "무인지경(無人之境) 이 산중에 나 혼자 울어서는

낭군 치상할 수 없어 시충출호(屍蟲出戶)될 터이니,

대로변에 앉아 울어 오입남자 만난다면

치상을 할 듯하니 그 수가 옳다."

하고 상부에 이력 있어 소복(素服)은 많겠다,

 

생서양포(生西洋布) 깃저고리, 종성내의(鍾城內衣), 생베 치마,

외씨 같은 고운 발씨 삼승보선 엄신 신고

구름같이 푸른 머리 흐트러지게 집어 얹고

도화색(桃花色) 두 뺨 가에 눈물 흔적 더 예쁘다.

 

  아장아장 고이 걸어 대로변을 건너가서

유록도홍(柳綠桃紅) 시냇가에 뵐듯 말듯 펄석 앉아

본래 관서 여인이라 목소리는 좋아서

쓰러져가는 듯이 앵도를 따는데

이것이 묵은 서방 생각이 아니라

새서방 후리는 목이니 오죽 맛이 있겠느냐.

 

사설(詞說)은 망부사(望夫詞) 비슷하게

염장(斂章)은 연해 애고 애고로 막겠다.

 

  "애고애고 설운지고. 이 내 신세 가긍하다.

일신이 고단(孤單)키로 이십이 발옷 넘어

삼남을 찾아오니 사고무친(四顧無親) 객지(客地)로다.

오행궁합 좋다기에 육례 (六禮)없이 얻은 낭군

칠차(七次) 상부 또 당하니 팔자 그리 험굿던가.

구곡간장(九曲肝腸) 이 원통을 시왕전에 아뢰고저.

애고애고 설운지고.

 

여심상비(余心傷悲) 남물흥사(男勿興事) 보는 것이 설움이라.

류상(柳上)에 우는 황조(黃鳥) 벗을 오라 한다마는

황천 가신 우리 낭군 네 어이 불러오며

화간(花間)에 우는 두견 불여귀(不如歸)라 한다마는

가장 치상 못한 내가 어디로 가자느냐.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에 내 신세를 어찌하며

춘초년년(春草年年) 푸르른데 낭군 어이 귀불귀(歸不歸)오.

애고애고 설운지고.

 

염라국(閻羅國)이 어디 있어 우리 낭군 가 계신고.

북해상(北海上)에 있으며는 안족서(雁足書)나 부칠 테오.

농산(롱山)이 가까우면 앵무소식(鸚鵡消息) 오련마는

주야(晝夜) 동포(同抱)하던 정리(情理) 영이별(永離別) 되단 말인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애원한 목소리가 화주성(華周城)이 무너질 듯 시냇물이 목메인다.

 

  이 때에 화림(花林) 속으로 산나비 하나 날아 오는데

매우 덤벙거려 붉은 칠 실양갓에 주황사(朱黃絲) 나비 수염,

은구영자(銀鉤纓子) 공단(貢緞) 끈을 두 귀에 덮어매고

총감투 소년당상(少年堂上) 외꽃 같은 은관자(銀貫子)를 양편에 떡 붙이고,

서양포(西洋布) 대쪽누비 상하 통같이 입고,

한산세저(韓山細苧) 잇물 장삼(長衫), 진홍(眞紅) 분합(分合) 눌러 띠고,

흰 총박이 사날 초혜(草鞋), 고운 새김 버선목을 행전(行纏) 위에 덮어 신고,

좋은 은으로 꾸민 화류승도(花柳僧刀) 것고름에 늦게 차고,

오십시 진상칠선(進上漆扇) 기름 결어 손에 쥐고,

동구(洞口) 색주가(色酒家)에 곡차(曲茶)를 반취(半醉)하여

용두(龍頭) 새긴 육환장(六環杖)을 이리로 철철 저리로 철철,

 

청산 석경(石逕) 구비길로 흐늘거려 내려오다

울음 소리 잠깐 듣고 사면을 둘러보며 무한이 주저터니

여인을 얼른 보고 가만가만 들어가니

재치있는 저 여인이 중 오는 줄 먼저 알고

온갖 태를 다 부린다.

옥안(玉顔)을 번듯 들어 먼산도 바라보고

치마자락 돌려다가 눈물도 씻어 보고

옥수를 잠깐 들어 턱도 받쳐 보고,

설움을 못 이겨 머리도 뜯어보고

가도록 섧게 운다.

 

  "신세를 생각하면 해당화(海棠花) 저 가지에 결항치사(結項致死)할 테로되

설부화용(雪膚花容) 이내 태도 아직 청춘 멀었으니

적막공산(寂寞空山) 무주고혼(無主孤魂) 그 아니 원통한가.

광대한 천지간에 풍류호사(風流豪士) 의기남자 응당 많이 있건마는

내 속에 먹은 마음 그 뉘라 알 수 있나.

애고애고 섧운지고."

 

  중놈이 그 얼굴 태도를 보고, 정신을 반이나 놓았더니

이 우는 말을 들으니 죽을 밖에 수 없구나.

참다 참다 못 견디여 제가 독을 쓰며 죽자하고 쑥 나서며,

 

  "소승(小僧) 문안(問安)드리오."

  여인이 힐끗 보고 못 들은 체 연해 울어,

  "오동에 봉 없으니 오작이 지저귀고

녹수에 원 없으니 오리가 날아든다.

에고애고 설운지고."

 

  중놈이 이 말을 들으니 저를 업신여기는 말이거든

죽고살기로 바짝바짝 달여들며,

  "소승 문안이오, 소승 문안이오."

 

  여인이 울음을 그치고 점잖히 꾸짖으며,

  "중이라 하는 것이 부처님의 제자이니 계행(戒行)이 다를 텐데

적막산중(寂寞山中) 숲 속에서 전후불견(前後不見) 여인에게

체모(體貌) 없이 달려드니 버릇이 괘씸하다.

문안은 그만하고 갈 길이나 어서 가제."

 

  저 중이 대답하되,

  "부처님의 제자기로 자비심이 많삽더니

시주(施主)님 저 청춘에 애원이 우는 소리

뼈 저려 못 갈 테니 우는 내력 아사이다."

 

  여인이 대답하되,

  "단부처 산중 살아 강근지친 없삽더니

신수가 불행하여 가군 초상 만났는데

송장조차 험악하여 치상할 수 없삽기로

여기 와서 우는 뜻은

담기(膽氣) 있는 남자 만나 가군 치상한 연후에,

청춘 수절(守節)할 수 없어 그 사람과 부부되어 백년해로 하자 하니

대사의 말씀대로 자비심이 있다면 근처로 다니시며

혈기남자(血氣男子) 만나거든 지시하여 보내시오."

 

  저 중이 또 물어,

  "우리절 중 중에도 자원(自願)할 이 있으며는 가르쳐 보내리까."

  "치상만 한다면 그 사람과 살 터이니 승속(僧俗)을 가리겠소."

  저 중이 크게 기뻐하여,

  "그리하면 쉬운 일 있소. 그 송장 내가 치고 나와 살면 어떻겠소."

  "아까 다 한 말이니 다시 물어 쓸 데 있소."

 

  저 중이 좋아라고 양갓 감투 벗어 찢고

공단갓끈 금관자(金貫子)는 주머니에 떼어 넣고

장삼 벗어 띠로 묶어 어깨에 들어 메고

여인은 앞을 서고 대사는 뒤에 서서

강쇠집을 찾아 올 때

중놈이 좋아라고 장난이 비상하다.

여인의 등덜미에 손도 씩 넣어보고

젖도 불끈 쥐여 보고 허리 질끈 안아보고

손목 꽉 잡아보며,

  "암만해도 못 참겠네, 우선 한번 하고 가세."

 

  여인이 책망(責望)하여,

  "바삐 먹으면 목이 메고, 급히 더우면 쉬 식나니

여러 해 주린 색심(色心) 아무리 그러하나,

죽은 가장 방에 두고 새 낭군 그 노릇이 내 인사 되겠는가.

다 되어 가는 일을 마음 조금 진정하소."

 

  중놈이 대답하되,

  "일인즉 그러하네."

  수박 같은 대가리를 짜웃짜웃 흔들면서,

  "십년 공부 아마타불 참 부처는 될 수 없어

삼생가약(三生佳約) 우리 미인 가부처(假夫妻)나 되어 보세."

 

  강쇠 문 앞에 당도하여,

  "시체 방이 어디 있노."

  여인이 가리키며,

  "저 방에 있소마는 시체가 불끈 서서 형용이 험악하니

단단히 마음 먹어 놀래지 말게 하오."

  이놈이 여인에게 협기(俠氣)를 보이느라고 장담(壯談)을 벗석하여,

  "우리는 겁이 없어 칠야 삼경 깊어 가며 궂은 비 흣뿌릴 때,

적적(寂寂)한 천왕각(天王閣) 혼자 자는 사람이라

그처럼 섰는 송장 조금도 염려(念慮)없제."

  속으로 진언치며 방문 열고 들어서서 송장을 얼른 보고

고개를 푹 숙이며 중의 버릇하느라고 두 손을 합장(合掌)하고,

문안(問安) 죽음으로 요만하고 열반했제.

 

  강쇠 여편네가 매장포(埋葬布), 백지(白紙) 등물(等物) 수습(收拾)하여

가지고서 뒤쫓아 들어가니 허망하구나.

중놈이 벌써 이 꼴 되었구나.

깜짝 놀라 발구르며,

  "애고 이것 웬일인가.

송장 하나 치려다가 송장 하나 또 생겼네."

 

  방문을 닫고서 뜰 가운데 홀로 앉아

송장에게 정설하며 자탄 신세 우는구나.

  "여보소, 변서방아, 어찌 그리 무정한가.

청석관에 만난 후에 각 포구로 다니면서

간신(艱辛)히 모은 전량(錢兩) 잡기로 다 없애고 산중살이 하쟀더니,

장승 어이 패여 때여 목신 동증 소년 죽음 모두 자네 자취(自取)로세.

사십구일 구병(救病)할 때 내 간장이 다 녹았네.

 

험악한 저 신세를 할 수 없어 대로변 가는 중을 간신히 홀렸더니

허신(許身)도 한 일 없이 강짜를 하느라고

송장치러 간 사람을 저 죽음 시켰으니

이 소문(所聞) 나거드면 송장 칠 놈 있겠는가.

송장만 쳐낸 후에

자네의 유언대로 수절(守節)을 할 터이니 다시는 강짜마소.

애고애고 내 신세야. 치상을 뉘가 할꼬."

 

  애긍히 우노라니 천만의외 솔대밋(초라니) 친구 하나 달여들어, 퉤,

  "예. 돌아왔소. 구름 같은 집에 신선 같은 나그네 왔소.

옥 같은 입에 구슬 같은 말이 쑥쑥 나오. 퉤,

 

[주석]

솔대밋솟대쟁이패 

초라니패:

나자(, 민가와궁중에서 음력 섣달 그믐날에 묵은해의 마귀와 사신을 쫒아내려고 베풀던 의식을 거행하는 사람)의 하나로 기괴한 여자 모양의 탈을 쓰고, 붉은 저고리에 푸른 치마를 입고 대가 긴 깃발을 가지고 떼를 지어 다니며 노는 무리.

 

초라니-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2009&cid=58721&categoryId=58724

조선 후기에는 남사당패·사당패·대광대패·솟대쟁이패·초라니패·풍각쟁이패·광대패·걸립패·중매구·굿중패 등 다양한 명칭의 유랑예인집단들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사당패와 남사당패는 마을과 장터·파시를 찾아 떠돌아다녔고, 대광대패와 솟대쟁이패는 주로 장터를 찾아 떠돌아다녔다. 다른 연희집단들은 주로 마을을 찾아 떠돌아다녔다.

초라니패는 본래 잡귀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의식에서 가면을 쓰고 놀음을 벌이던 놀이패였다.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들러 장구도 치고 고사소리를 부르며 동냥을 하는 놀이패로 변했다. 나중에는 고사소리 외에 여러 가지 잡희를 벌이는 놀이패로 바뀌었다가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사라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초라니패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국립민속박물관)

 

이 개야, 짓지 마라. 낯은 왜 안 씻어 눈꼽이 다닥다닥,

나를 보고 짖느니 네 할애비를 보고 짖어라, 퉤."

  이런 야단 없구나.

 

여인이 살펴보니

구슬상모(象毛), 담벙거지,

바특이 맨 통장구에 적 없는 누비저고리,

때 묻은 붉은 전대(纏帶) 제멋으로 어깨 띠고,

조개장단 주머니에 주황사 벌매듭,

초록 낭릉(浪綾) 쌈지 차고, 청

 삼승 허리띠에 버선코를 길게 빼어

오메장 짚신에 푸른 헝겊 들메고 오십살 늘어진 부채,

송화색(松花色) 수건 달아 덜미에 엇게 꽂고,

앞뒤꼭지 뚝 내민 놈 앞살 없는 헌 망건에

자개관자 굵게 달아 당줄에 짓눌러 쓰고,

굵은 무명 벌통 한삼(汗衫) 무릎 아래 축 처지고,

몸집은 짚동 같고, 배통은 물항 같고, 도리도리 두 눈구멍,

흰 고리테 두르고 납작한 콧마루에 주석(朱錫) 대갈 총총 박고,

꼿꼿한 센 수염이 양편으로 펄렁펄렁,

반백(半白)이 넘은 놈이 목소리는 새된 것이

비지땀을 베씻으며, 헛기침 버썩 뱉으면서,

 

  "예, 오노라 가노라 하노라니

우리집 마누라가 아씨마님 전에 문안 아홉 꼬장이,

평안 아홉 꼬장이, 이구십팔 열여덟 꼬장이

낱낱이 전하라 하옵디다.

당 동 당. 페."

 

  여인이 기가 막혀 초라니를 나무라며,

  "아무리 초라닌들 어찌 그리 경망한고.

가군의 상사 만나 치상도 못한 집에

장고소리 부당(不當)하네."

 

  "예, 초상이 낫사오면 중복(重服)막이,

오귀(惡鬼)물림 잡귀(雜鬼) 잡신(雜神)을

내 솜씨로 소멸(消滅)하자. 페. 당 동 당.

 

정월 이월 드는 액(厄)은 삼월 삼일 막아내고,

사월 오월 드는 액은 유월 유두(流頭) 막아내고,

칠월 팔월 드는 액은 구월 구일 막아내고,

시월 동지(冬至) 드는 액은 납월(臘月) 납일(臘日) 막아내고,

매월 매일 드는 액은 초라니 장고(長鼓)로 막아내세.

페.당 동 당.

 

통영칠(統營漆) 도리판에 쌀이나 되어 놓고 명실과 명전(命錢)이며,

귀가진 저고리를 아끼지 마옵시고 어서어서 내어 놓오."

  "여보시오. 이 초라니,

가가(家家) 문전(門前) 들어가면 오라는 데 어디 있소."

  "뒤꼭지 지르면서 핀잔 악담 하는 것을 꿀로 알고 다니오니

난장(亂杖) 쳐도 못 가겠소. 박살(撲殺)해도 못 가겠소."

 

  억지를 마구 쓰니 여인이 대답하되,

  "중복(重複)막이 오귀물림 호강의 말이로세.

서서 죽은 송장이라 쳐 낼 사람 없어 시각(時刻)이 민망(憫망)하네."

  초라니가 좋아라고 장고를 두드리며 방정을 떠는구나.

  "사망이다, 사망이다. 발뿌리가 사망이다.

불리었다 불리었다 좋은 바람 불리었다.

페. 둥 동 당.

 

재수 있네 재수 있네, 흰 고리눈 재수 있네.

복이 있네 복이 있네, 주석코가 복이 있네.

페. 둥 동 당.

 

어제 저녁꿈 좋기에 이상히 알았더니

이 댁 문전 찾아와서 소장 사망 터졌구나.

페. 당 동 당.

 

신사년(辛巳年) 괴질(怪疾)통에 험악하게 죽은 송장 내 손으로 다 쳤으니,

그 같은 선 송장은 외손의 아들이니 삯을 먼저 결단하오.

페. 당 동 당."

 

  여인이 게으른 강쇠에게 간장이 다 녹다가

이 손의 거동(擧動)보니 부지런하기가 위에 없어

짐대 끝에 앉아서도 정녕 아니 굶겠구나.

애긍히 대답하되,

  "가난한 내 형세에 돈 없고 곡식 없어,

치상을 한 연후에 부부되어 살 터이오."

 

  초라니가 또 덩벙여,

  "얼씨구나 멋있구나, 절씨구나 좋을씨고.

페. 당 동 당.

 

맛속 있는 오입장이 일색미인(一色美人) 만났구나.

시체 방문 어서 여오, 내 솜씨로 쳐서 낼께.

페, 동 당."

 

  여인이 방문 여니 초라니 거동보소.

시방(屍房) 문전 당도터니

몸 단속(團束) 매우 하며 장고 끈 졸라 매고,

채손에 힘을 주어 험악한 저 송장을

제 고사(告祀)로 눕히려로 부지런히 서두는데,

 

  "여보소 저 송장아, 이내 고사 들어 보소.

페, 당 동 당.

 

오행 정기 생긴 사람 노소간에 죽어지면

혼령은 귀신되고 신체는 송장이되,

무슨 원통 속에 있어 혼령은 안 헤치고, 송장은 뻣뻣 섰노.

페, 당 동 당.

 

이내 고사 들어 보면 자네 원통 다 풀리리.

살았을 때 이승이요, 죽어지면 저승이라.

만사 부운(浮雲) 되었으니 처자 어찌 따라갈까.

훼파은수(毁破恩讐) 자세(仔細) 보니 옛 사람의 탄식일세.

페, 당 동 당."

 

  부드럽던 장고채가 뒤마치만 소리하여

  "꽁꽁꽁."

  풀입 같은 새된 목이 고비 넘길 수가 없고,

날쌔게 놀던 몸집 삼동에 뒤틀이고,

한출첨배(汗出沾背) 가뿐 숨이 어깨춤에 턱을 채여,

한 다리는 오금 죽여 턱 밑에 장고 얹고,

망종(亡終) 쓰는 한 마디 목 하염없이 구성이라.

뒤마치 꽁치며 고사 죽음 돌아가니,

 

여인이 깜짝 놀라 손바닥을 딱딱 치며,

  "또 죽었네, 또 죽었네.

방정맞은 저 초라니 자발없이 덤벙이다 허망히도 돌아간다.

고단한 내 한 몸이 세 송장을 어찌 할꼬."

 

  담배를 피워 물고 먼산 보고 앉았더니

대목 미처 파장(罷場)인가,

어 농(漁農) 풍년 시평인가.

오색(五色)발가리 친구들이 지껄이며 들어온다.

풍각(風角)장이 한 패 오는데,

그 중에 앞선 가객(歌客) 다 떨어진 통량갓에 벌이줄 매어 쓰고,

소매 없는 배중치막 권생원(權生員)께 얻어 입고,

세목(細木)동옷 때 묻은 놈 모동지(毛同知)께 얻어 입고,

안만 남은 누비저고리 신선달(申先達)께 얻어 입고,

다 떨어진 전등거리 송선달(宋先達)께 얻어 입고,

부채를 부치되 뒤에 놈만 시원하게 부치면서 들어와서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8634?category=824071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음악 > 판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소희 - 춘향가 / 안숙선 - 춘향가 外  (0) 2018.06.23
박동진, 가루지기타령 5  (0) 2018.06.18
박동진, 가루지기타령 3  (0) 2018.06.15
박동진, 가루지기타령 2  (0) 2018.06.12
박동진, 가루지기타령 1  (0) 2018.06.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