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옹생원의 손이 송장에 딱들어붙는 대목부터 끝대목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3i6mFTtpjDU

박동진 명창은 마지막 대목 끝에다 명창 광대론, 오장에서 우러나는 소리의 애원성, 이백과 두보를 비롯하여 당송팔대가 사설까지 추가했다.

  5.

말버슴새(말조, 口氣) 씨는(쓰는) 경조(京調)

원터도 못다 가고 금강(錦江) 이쪽 어투였다.

  "여보시오, 이 마누라,

댁 송장이 접사(接死)하여 쳐낼 사람 없다 하니,

내 수단에 쳐내면 나하고 둘이 살겠소."

  여인이 대답하되,

  "무슨 재조(才操) 지니셨소."

  "예, 나는 소리 명창(名唱) 가객(歌客)이오."

  여인이 또 물어,

  "송선달 아시오."

  "예, 그게 내 제자요."

  "신선달 아시오."

  "예, 둘째 제자지요."

 

  "세상 사람 하는 말이

목단(牧丹)은 화중왕(花中王),

송선달은 가중왕(歌中王),

다시 윗수 없다는데 그 사람들 선생 되면

당신의 목 재조는 가중의 천자(天子)인가 보오."

  "남들이 그렇다고 수군수군한답디다."

 

  그 뒤에 퉁소쟁이 빡빡 얽은 전벽소경 통솟대 손에 쥐고,

강경장(江景場) 넉마 큰 옷 뻣뻣하게 풀을 먹여 초록 실띠 눌러 띠고,

지팡 막대 잡은 아이 열댓 살 거의 된 놈 굵은 무명 홑고의(袴衣) 길목 신고,

모시행전(行纏), 홍일광단(紅日光緞) 도리줌치,

갈매 창옷, 송화색(松花色) 동정,

쇠털 같은 노랑머리 밀기름칠 이마 재여 공단(貢緞) 댕기 벗게 땋고,

검무(劒舞) 출 칼 가졌으며,

 

가얏고 타는 사람 빳빳 마른 중늙은이 피골(皮骨)이 상련(相連)한데,

토질(土疾) 먹은 기침 소리 광쇠 치는 소리 같고,

긴 손톱 검은 때와 빈대코 코거웃이 입술을 모두 덮고,

떡메모자 대갓끈에 가얏고를 메었으되,

경상도 경주(慶州) 도읍(都邑) 그 시절에 난 것이라

복판이 좀이 먹고 도막난 열 두 줄을 망건(網巾)당줄 이어 매고,

쥐똥나무 괘(괘)를 고여 주석 고리 끈을 달아 왼어깨에 둘러메고

 

북 치는 놈 맵시 보소.

엄지러기 총각놈이 여드름과 개기름이 용천뱅이 초 잡은듯

짧은 머리 길게 땋고,

외손질로 늙은 놈이 체바퀴 열 두 도막 도막도막 주워 이어,

노구녹피(老狗鹿皮) 북을 매어 쐐기 제겨 끈을 달아,

양어깨에 둘러메고, 거들거려 들어오며 장담들을 서로 한다.

 

  "송장이 어디 있소.

그 같은 것 쳐 내기는 똥누기는 발허리나 시제."

  여인이 이른 말이,

  "그렇게 장담하다 실없이 죽은 사람 몇이 된 줄 모르겠소."

 

  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염려는 마시오.

내 노래 한 곡조는 읍귀신(泣鬼神)하는 터요,

가얏고 의논하면

진국미인(秦國美人) 허청금(許聽琴)에 형장사(荊壯士)도 잡았으며,

왕소군(王昭君) 출새곡(出塞曲)은 호인(胡人)도 낙루(落淚)하고,

옹문금(雍門琴) 슬픈 소리 맹상군(孟嘗君)도 울었으니,

내 또한 상심곡(傷心曲)을 처량(凄凉)히 타고 나면

멋있는 저 송장이 날 괄세(恝視)할 수 없제."

 

  통소장이 하는 말이,

  "내 통소(洞蕭) 부는 법은 여읍여소(如泣如訴) 슬픈 소리,

계명산(鷄鳴山) 추야월(秋夜月)에 장자방(張子房)의 곡조로다.

팔천 제자 흩어질 때

우미인(虞美人)은 목 찌르고 항장사(項壯士)도 울었거든,

제까짓 송장이야 동지 섣달 불강아지."

 

  북치는 놈 내달으며,

  "이 내 솜씨 북을 치면 전단(田單)이 되놈 칠 때,

시석지소(矢石之所) 우뚝 서서 원포고지(援포鼓之)하던 소리,

장익덕(張益德) 고성현(古城縣)에 관공(關公)님의 용맹 보자

삼통고(三通鼓) 치던 소리,

제아무리 험한 송장 아니 쓰러질 수 있나."

 

  검무 추는 아이 놈이 양손에 칼을 들고

연풍대(燕風臺) 좌우 사위 번듯번듯 둘러메고,

  "여보시오, 기탄(忌憚) 마오.

소년 십오(十五) 이십시(二十時)에 일검증당백만사(一劍曾當百萬死)라

홍문연(鴻門宴) 큰 모임에 항장(項莊)의 날랜 칼이 날 당할 수가 없고,

양소유(陽少游) 대진중(大陣中)에 심오연(沈오烟)의 추던 춤이

내게 비하지 못할 테니

 송장 치기 두말 있나. 송장 방이 어디 있소."

 

  각기 재조 자랑하니, 여인이 생각한즉 식구가 여럿이요,

재주가 저만하니 송장 서넛 쳐내기는 염려가 없겠거든,

  "여보시오, 저 손님네,

송장 먼저 보아서는 아마 기가 막힐 테니

시체 방문 닫은 채로 툇마루에 늘어앉아 각색 풍류 하였으면,

맛있는 송장이니 감동하여 눕거든

묶어내기 쉬울 테니 그리하면 어떠하오."

  "그 말이 장히 좋소."

 

  굿하는 집에 공인뽄으로 마루에 늘어앉고

검무장이 일어서서 여민락(與民樂) 심방곡(心方曲)을 재미있게 한참 노니,

방에서 찬바람이 스르르 일어나며 쌍창문이 절로 열려

온몸이 으슥하며 독한 내가 코 찌르니,

눈뜬 식구들은 송장을 먼저 보고 제 맛으로 다 죽는다.

가객의 거동 보소. 초한가(楚漢歌)를 한참할 때,

  "일후(日後) 영웅 장사들아, 초한 승부 들어보소.

절인지력(絶人之力) 부질없고, 순민심(順民心)이 으뜸일레.

한 패공(沛公) 십만대병(十萬大兵)

구리산하(九里山下) 십사면에 대진을 둘러 치고,

초 패왕(覇王)을 잡으려 할 때 거리거리 마병이요,

마루마루 복병(伏兵)이라."

 

  부채를 쫙 펼치며 숨이 딸각.

  가얏고 놀던 사람 짝타령을 타노라고,

  "황성(荒城)에 허조벽산월(荒城 虛照碧山月)이요,

고목(古木)은 진입창오운(盡入倉梧雲)이라 하던

이태백(李太白)으로 한 짝.

삼년적리관산월(三年笛裡關山月)이요,

만국병전초목풍(萬國兵前草木風)이라 하던

두자미(杜子美)로 한 짝. 둥덩덩 지둥덩둥."

 

  그만 식고.

  북치던 늙은 총각 다시 치는 소리 없고,

칼춤 추던 어린아이 오도가도 아니하고

선자리에 꽉 서 있고,

통소 불던 얽은 봉사 송장 낯을 못 본 고로

죽음 차례 모르고서 먼눈을 번득이며 봉장추를 한창 불 때,

무서운 기운이 왈칵 들고, 독한 내가 콱 지르니

내미는 힘이 점점 줄어 그만 자진(自盡)하였구나.

 

  여인이 기가 막혀서 울음도 울 수 없고,

사지(四脂)가 나른하여, 애겨 이를 어찌 할꼬.

이것들 앉은 대로 여기다 두어서는

아무 사람 와 보아도 우선 놀라 갈 테니,

방안에다 감추자고 하나씩 고이 안아

동서편 두 벽 밑에 차례로 앉혀 놓으니,

앉은 것은 명부전(冥府殿)에 시왕뽄,

집 이름은 초상(初喪) 상자(喪字),

팔상전(八喪殿) 시방문(尸房門) 닫고서

대문간에 비껴 서서 대로변을 바라보니

 

어떠한 사람 하나

맛있는 연비정(燕飛程)을 권생원 비슷하게 냅다 떠는데,

  "이봐, 벗님네야. 이때는 어느 땐고,

하사월(夏四月) 초파일(初八日)에

연자(燕子)는 남으로 펄펄 날아들고,

석양산로에 어디로 가자느냐.

천지로 장막(帳幕) 삼고, 일월로 등촉(燈燭) 삼고,

남의 집 내 집 삼고, 가는 길 노자(路資)되고,

멍석자리 등돗삼아 두고 꿰질러 다니다가

달은 밝고 바람 찬 밤에 광충다리 홀로 우뚝 서서

이내 신세를 솜솜 생각하니,

팔만장안(八萬長安) 억만가구(億萬家口)

방방곡곡(方方曲曲) 가가호호(家家戶戶)

귀돌적간을 꿰질러 다니며 보아도

이런 벌건 목두기의 아들 놈 팔자 또 어디 있을꼬.

애고애고 설운지고."

 

  으스러지게 부르면서 문전으로 들어오는데,

산쇠털 벙거지 넓은 끈 졸라매고

마가목채 등덜미에 꽂고 때묻은 고의 적삼

육승포(六升布) 온골전대 허리를 잡아매고

발감기 곱게 하여 짚신을 들멨는데,

키는 장승 같고, 낯은 징짝 같고,

눈은 화등잔(火燈盞)만, 코는 메주덩이,

입은 싸전 장되, 발은 동작(銅雀)이 거루선만,

초라니 탈 아니 써도 천생 말뚝이 뽄이거든,

여인을 썩 보더니 경조로 세치를 내갈기는데,

  "이런 제어미를,

그리하여서 마누라가 낭군의 송장 쳐 주면

둘이 살자고 하는 마누라요?"

  여인이 애긍히 대답하여,

  "그러하오."

 

  "그 제어미를 할 송장이 어떻게 죽었단 말이오."

  불끈 일어서서 두 주먹 불끈 쥐고 이 놈이 연해 희색하여,

  "누구를 콱 치려고 두 다리 벋디디고,

누구를 탁 차려고 두눈을 딱 부릅떴소.

에게, 그것이 용병이어든 그도 그렇겠지.

그도 가수제.

집에 갈퀴 있소."

  "예, 있소."

 

  "그 놈의 눈구멍을 내가 아니 보려 하니

고개를 숙이고서 그 놈 눈 웃시울을 긁어서 덮을 테니

마누라는 밖에 서서 갈퀴가 웃시울에 닿거든 닿았다 하오."

  이 놈이 갈퀴 들고 시체방에 들어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갈퀴 들어 송장눈에 대면서,

  "웃시울에 닿았소."

  여인이 뒤에 서서,

  "조금 올리시오."

  "닿았소."

  "조금 내리시오."

  "닿았소."

 

  딱 잡아 긁은 것이 손이 조금 미끄러져 아랫시울 긁어 놓으니

눈이 툭 불거져서 앙하고 호랑이 재조를 하는구나.

가만히 쳐다보더니 이 놈이 깜짝 놀라

갈퀴를 내버리고 바로 뛰여 도망할 때 그물의 내 맡은 숭어 뛰듯,

선불 맞은 호랑이 닫듯, 곧 들고 째는구나.

 

  여인이 대경하여 급히 급히 쫓아가며,

  "여보시오, 저 손님네, 말씀이나 하고 가오."

  저 놈이 손 헤치며,

  "그런 소리하지 마오. 나 돌아가오, 나 돌아가오.

위방(危邦)은 불입(不入)이라, 나 돌아가오."

  여인이 연해 불러,

  "송장 치라 아니 하니 말만 잠깐 듣고 가오."

 

  꽃 같은 저 미인이 옥 같은 말소리로 따라오며 간청하니,

오입한 사람이라 어찌 할 수가 있나. 돌아서며 대답하되,

  "무슨 말씀 하시려오."

  여인이 하는 말이,

  "노변(路邊)에서 괴이하니

내 집으로 둘이 가서 딴방에서 잠을 자고

내가 이리 고적(孤寂)하니 말벗이나 하옵시다."

  저 놈이 흠득(欽得)하여,

  "그리 합시다."

 

  허락하고 여인의 손목 잡고 정담하며 도로 올 때,

여인이 자세(仔細) 물어,

  "어디서 사옵시며 존호(尊號)는 누구신데

어디로 가시다가 내 집을 어찌 알고 수고로이 오시니까."

  저 놈이 대답하되,

  "예, 나는 서울 사는 뎁득이 김서방 재상댁(宰相宅) 마종(馬從)으로

경상도 황산역(黃山驛)에 좋은 말이 있다기에 그리로 가다가

마누라 일색으로 가군이 험사하여

치상하여 주는 사람 작배(作配)하여 살자는 말이 삼남 천지에 떠들썩하여

사람마다 전하기에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왔소."

 

  여인이 또 물어,

  "서울 사시고 신수 저리 건장한데

그만 송장 염려하여 버리고 가시기에는

내 얼굴이 누추(陋醜)하여 당신 눈에 아니 드오."

  뎁득이 이 말 듣고 여인의 등을 치며,

  "미인 보면 정 있다가 송장 보면 정 떨어지오."

 

  언사(言辭) 좋은 저 여인이 속을 연해 질러 보아,

  "사제갈(死諸葛)이 주생중달(走生仲達) 옛글로만 들었더니

저러한 호풍신(好風身)에 송장에게 쫓긴단 말 어디 행세할 수 있소.

불쌍한 이내 신세 버리고 가신다면

고통 자진할 터이니 그 아니 불쌍한가.

날 살리쇼, 날 살리쇼. 한양 낭군 날 살리쇼.

자네 만일 가려 하면 나를 먼저 죽여 주소."

 

  허리를 질끈 안고 온가지 어린 냥에 백만 교태(嬌態) 다 부리니,

서울 사나이라 뒤가 탁 풀이는데 허리에 띤 전대로 눈물을 씻기면서,

  "울지 마오, 울지 마오. 아니 감세, 아니 감세.

죽으면 내가 죽지 자네 죽게 하겠는가."

 

  집으로 들어오며 의사를 새로 내어,

  "자네 집에 떡메 있나."

  "떡메는 무엇하게."

  "영투지(寧鬪智) 불투력(不鬪力)을 먼저 생각 못 하였네."

  떡메를 내어 주니, 뎁득이 둘러메고 집 뒤로 돌아가서

주해(朱亥)의 진비(晉鄙) 치듯, 경포(경布)의 함관(函關) 치듯,

뒷벽을 쾅쾅 치니

송장이 벽에 치어 덜퍽 뒤쳐지는구나.

 

  뎁득이가 좋아라고 땀씻으며 장담하여,

  "제깟놈이 어디라고."

  여인은 더위한다 부채질하며 송장 묶어 내려 할 때

아무리 장사기로 송장 여덟 질 수 있나.

근처 마을 찾아 가서 삯군을 얻쟀더니,

 

마침 각설이패 셋이 달려드는데

온 머리를 다 둥치고 옆에 약간(若干) 남은 털을

감이상투 엇게 하여 이마에 붙이고서

영남의 돌림이라 영남장(嶺南場)만 헤 가겠다.

 

  "떠르르 돌아왔소, 각설이라 멱설이라

동설이를 짊어지고 뚤뚤 몰아 장타령(場打令)

안경(眼鏡) 주관(柱管) 경주장(慶州場)

최복(최服) 입은 상주장(尙州場),

이 술 잡수 진주장(晋州場),

관민분의(官民分義) 성주장(星州場),

이랴 채쳐 마산장(馬山場),

펄쩍 뛰여 노리골장,

명태(明太) 옆에 대구장(大邱場),

순시(巡視) 앞에 청도장(淸道場)."

 

  한 놈은 옆에 서서 입장고 낑낑 치고,

한 놈은 옆에 서서 살만 남은 헌 부채로 뒤꼭지를 탁탁 치며

두 다리를 빗디디고 허리짓 고개짓.

  "잘한다, 잘한다. 초당 짓고 한 공부(工夫)냐,

실수가 없이 잘한다. 동삼 먹고 한 공부냐,

기운차게 잘한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훤하게도 잘한다. 뱃가죽도 두껍다,

일망무제(一望無除) 나온다.

네가 저리 잘할 때에 네 선생은 할 말 있나.

네 선생이 나로구나. 잘한다,

잘한다. 대목장에 목 쉴라.

잘한다, 잘한다. 너 못하면 내가 하마."

 

  여인이 묻는 말이,

  "목소리는 명창이나

우리집에 송장 많아 지금 묶어 내려 하니

함께 묶어 지고 가면 삯을 후이 줄 테니

소견이 어떠한가."

 

  저 놈들 하는 말이,

  "송장을 쳐 내이면 여인하고 산다기에

짚신짝 떼 붙이고 애써 애써 예 왔더니

남의 손에 떼였으니 송장이나 지고 갈께

송장 하나 닷 냥 삯에, 술, 밥, 고기 잘 먹이오."

 

  여인이 허락하니 네 놈이 송장 칠 때

한 등짐에 두 마리씩 공석으로 곱게 싸서

세 죽마다 태줄로 단단히 얽은 후에

짚으로 밖을 싸서 새끼로 자주 묶어

새벽달 못 떨어져 네 놈이 짊어지고,

여인은 뒤를 따라 북망산(北邙山)을 찾아갈 때

어화성 목 어울러 행색이 처량하다.

 

  "어이 가리, 너허 너허.

연반군(延반軍)은 어디 가고 담뱃불만 밝았으며,

행자곡비(行者哭婢) 어디 가고 두견이는 슬피 우노.

 어허 너허.

명정(銘旌), 공포(功布) 어디 가고 작대기만 짚었으며,

앙장(仰帳) 휘장(揮帳) 어디 가고 헌 공석을 덮었는고.

어허 너허.

장강(長강)틀은 어디 가고 지게송장 되었으며,

상제(喪制) 복인(服人) 어디 가고 일미인만 따라오는고.

어허 너허.

 

북망산이 어떻기에 만고영웅 다 가시노.

진 시황의 여산 무덤, 한 무제(武帝)의 무릉(茂陵)이며,

초 패왕의 곡성(穀城) 무덤, 위 태조의 장수총(將帥塚)이

다 모두 북망이니 생각하면 가소롭다.

어허 너허.

 

너 죽어도 이 길이요, 나 죽어도 이 길이라.

북망산천 돌아들 때 어욱새 더욱새, 떡갈나무 가랑잎,

잔 빗방울, 큰 빗방울, 소소리바람 뒤섞이어

으르렁 시르렁 슬피 불 때 어느 벗님 찾아오리.

어허 너허.

주부도(酒不到) 유령(劉伶) 분상토(墳上土)요,

금인(今人)이 경종(耕種) 신릉(信陵)

분상전(墳上田)에 번화 부귀 죽어지면 어디 있나.

어허 너허.

지고 가는 여덟 분이 다 모두 호걸이라

기주탐색(嗜酒耽色) 풍류가금(風流歌琴) 청누화방(靑樓花房)

어찌 잊고 황천북망 돌아가노.

어허 너허."

 

  한참을 지고 가니 무겁기도 하거니와

길가에 있는 언덕 쉴 자리 매우 좋아,

네 놈이 함께 쉬어 짐머리 서로 대어

일자(一字)로 부리고 어깨를 빼려 하니

그만 땅하고 송장하고 짐꾼하고 삼물조합(三物調合) 꽉 되어서

다시 변통(變通) 없었구나.

 

네 놈이 할 수 없어 서로 보며 통곡한다.

  "애고애고 어찌 할꼬.

천개지벽(天地開闢)한 연후에 이런 변괴 또 있을까.

한 번을 앉은 후에 다시 일 수 없었으니

그림의 사람인가, 법당에 부처인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청하는 데 별로 없이 갈 데 많은 사람이라,

 

뎁득이 자네 신세 고향을 언제 가고,

각설이 우리 사정 대목장을 어찌 할꼬.

애고애고 설운지고.

여보시오 저 여인네, 이게 다 뉘 탓이오.

죄는 내가 지었으니 벼락은 네 맞아라

굿만 보고 앉았으니 그런 인심 있겠는가.

주인 송장, 손님 송장 여인 말은 들을 테니

빌기나 하여 보소."

 

  여인이 비는구나.

  "여보소 변낭군아, 이것이 웬일인가.

험악하게 죽은 송장 방안에서 썩을 것을

이 네 사람 공덕으로 염습(殮襲) 담부(擔負) 나왔으니,

가만히 누웠으면 명당을 깊이 파고 신체를 묻을 것을,

아이 밸 때 덧궂으면 날 때도 덪궂다고,

갈수록 이 변괸가. 사람 어디 살겠는가.

 

집에서 하던 변은 우리끼리 보았더니

이러한 대로변에 이 우세를 어찌할꼬.

날이 점점 밝아 오니 어서 급히 떨어지소.

안장(安葬)을 한 연후에 수절시묘(守節侍墓)하여 줌세."

 

  뎁득이가 중맹(重盟)을 연해 지어,

  "여인의 치마귀나 만졌으면 벗긴 쇠아들이오.

상인이 없었으니 발상(發喪)이라도 하오리다."

  여인이 연해 빌어,

  "대사(大師), 촐보, 풍각(風角)님네

다 각기 맛에 겨워 이 지경이 되었으니,

수원수구(誰怨誰咎)하자 하고 이 우세를 시키는가.

청산에 안장할 때 하관시(下棺時)가 늦어가니 어서 급히 떨어지소."

 

  아무리 애걸(哀乞)하되 꼼짝 아니 하는구나.

날이 훤히 새어 놓으니 뎁득이가 하는 말이,

  "배고파 살 수 없네.

여인은 바가지 들고 동내로 다니면서

밥을 많이 얻어다가 우리들이 먹게 하되

 짚 두어 묶음 얻어 오쇼."

  "짚은 무엇하게."

  "몇 해가 지나든지 목숨 끊기 전까지는 이 자리에 있을 테니,

비 오면 상투 덮게 주저리나 틀어 두게."

 

  여인을 보낸 후에 각기 설움 의논할 때,

이것들 앉은 데가 원두(園頭)밭 머리로서 참외 한참 산영하니,

막은 아직 아니 짓고 밭 임자 움생원(生員)

집에서 잠을 자고 밭 보려 일찍 올 때,

먼지 낀 묵은 관을 돛 단 듯이 높이 쓰고,

진동 좁고 된짓 달아 소매 좁은 소창의와

굽 다 닳은 나막신에 진 담뱃대 중동 쥐고,

살보 짚고 오다가서 밭머리 사람 보고 된 목으로 악써 물어,

  "네, 저것들 웬 놈이냐."

  뎁득이 대답하되,

  "담배 장사요."

  "그 담배 맛 좋으냐."

  "십상 좋은 상관초(上關草)요."

  "한 대 떼어 맛 좀 보자."

  "와서 떼어 잡수시오."

 

  마음 곧은 움생원이 담배 욕심 잔뜩 나서 달려들어 손을 쑥 넣으니

독한 내가 코 쑤시고, 손이 딱 붙는구나. 움생원이 호령하여,

  "이놈, 이게 웬일인고."

  뎁득이 경판으로 물어,

  "왜, 어찌 하셨소."

  "괘씸한 놈 버릇이라 점잖은 양반 손을 어찌 쥐고 아니 놓노."

  뎁득이와 각설이가 손뼉치며 대소하여,

  "누가 손을 붙들었소."

  "이것이 무엇이냐."

  "바로 하제. 송장 짐이오."

  "네 이놈, 송장짐을 외밭머리 놓았느냐."

  "새벽길 가는 사람 외밭인지 콩밭인지 아는 제어미할 놈 있소."

  움생원이 달래여,

  "그렇든지 저렇든지 손이나 떼다고."

  네 놈이 각문자(各文字)로 대답하되,

  "아궁불열(我窮不閱)이오,"

  "오비(吾鼻)도 삼척(三尺)이오."

  "동병상련(同病相憐)이오."

  "아가사창(我歌査唱)이오."

  움생원이 문자속은 익어,

  "너희도 붙었느냐."

  "아는 말이오."

  "할 장사가 푹 쌓였는데 송장장사 어찌 하며,

송장이 어디 있어 저리 많이 받아 지고 어느 장을 가려 하며,

송장 중에 붙는 송장 생전 처음 보았으니,

내력이나 조금 알게 자상(仔詳)히 말하여라."

 

  뎁득이 하는 말이,

  "지리산중 예쁜 여인 가장이 악사하여

치상을 해주면 함께 살자 한다기에

그 집을 찾아간즉 송장이 여덟이라

간신히 치상하여 각설이 세 사람과 둘씩 지고 예 왔더니,

나도 붙고 게도 붙어 오도가도 못할 터니 그 내력을 알 수 있소."

 

  움생원이 의사(意思) 내어,

  "그리하면 좋은 수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는 대로 후려들여 무수히 붙였으면

소일(消日)도 될 것이요,

뗄 의사도 날 것이니 그 밖에 수가 없다."

 

  "기소불욕(己所不欲)을 물시어인(勿施於人)이라니

일은 아니 되었으되,

궁무소불위(窮無所不爲)라니 재조대로 하여 보오."

 

  이 때에 하동(河東) 목골, 창평(昌平) 고살메,

 함열(咸悅) 성불암(成佛庵),

담양(潭陽), 옥천(沃川), 함평(咸平) 월앙산(月仰山) 가리내패

창원(昌原), 마산포(馬山浦), 밀양(密陽), 삼랑(三浪),

그 근방들 가느라고 그 앞으로 지나다가

움생원의 관을 보고, 걸사(乞士)들이 절을 하여,

  "소사(小士) 문안이오, 소사 문안이오."

  그 뒤에 아기네들이 낭자도 곱게 하고 고방머리 엇게 하고,

다리 아파 잘쑥잘쑥 지팡막대 짚었으며,

두 줄에 다리 넣고 걸사 등에 업혔으며,

수건으로 머리 동여 긴담뱃대 물었으며,

하하 대소 웃으면서,

낭낭옥어(琅琅玉語) 말도 하고 무수히 오는구나.

움생원이 불러,

  "이애 사당(寺黨)들아,

너의 장기대로 한 마디씩 잘만 하면

맛 좋은 상관 담배 두 구부씩 줄 것이니 쉬어 가면 어떠하냐."

  이것들이 담배라면 밥보다 더 좋거든,

  "그리 하옵시다."

 

  판놀음 차린 듯이 가는 길 건너편에 일자로 늘어앉아,

걸사들은 소고(小鼓) 치며,

사당은 제차(第次)대로 연계사당 먼저 나서 발림을 곱게 하고,

  "산천초목이 다 성림(盛林)한데 구경가기 즐겁도다. 이야어.

장송(長松)은 낙낙(落落), 기럭이 펄펄,

낙낙장송이 다 떨어졌다. 이야어.

성황당(城隍堂) 궁벅궁새야 이리 가며 궁벅궁

저 산으로 가며 궁벅궁 아무래도 네로구나."

 

  움생원이 추어,

  "잘한다, 내 옆에 와 앉거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초월(初月)이오."

  또 하나 나서며,

  "녹양방초(綠楊芳草) 저문 날에 해는 어이 더디 가고,

오동야우(梧桐夜雨) 성긴 비에 밤은 어이 길었는고.

 얼싸절싸 말 들어 보아라,

해당화 그늘 속에 비 맞은 제비같이

이리 흐늘 저리 흐늘, 흐늘흐늘 넘논다.

이리 보아도 일색이요, 저리 보아도 일색이요,

아무래도 네로구나."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구강선(具江仙)이오."

  한 년은 또 나서며,

  "오돌또기 춘향(春香) 춘향 유월의 달은 밝으며 명랑한데,

여기 저기 연저 버리고 말이 못된 경이로다.

만첩청산(萬疊靑山)을 쑥쑥 들어가서

늘어진 버드나무 들입다 덤뻑 휘여잡고

손으로 줄르르 훑어다가 물에다 둥둥 띄워 두고

둥덩둥실 둥덩둥실

여기 저기 연저 버리고 말이 못된 경이로다."

  "어,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일점홍(一點紅)이오."

 

  또 한년 나서며,

  "갈까보다 갈까보다, 임을 따라 갈까보다.

잦힌 밥을 못 다 먹고 임을 따라 갈까보다.

경방산성(傾方山城) 빗두리길로

알배기 처자(處子) 앙금살살 게게 돌아간다."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설중매(雪中梅)요."

 

  한 년이 나서며 방아타령을 하여,

  "사신(使臣) 행차(行次) 바쁜 길에 마중참(站)이 중화(中和),

산도 첩첩 물도 중중(重重) 기자왕성(箕子王城)이 평양,

모닥불에 묻은 콩이 튀어나니 태천(太川),

청천(靑天)에 뜬 까마귀 울고 가니 곽산(郭山),

차던 칼을 빼어 내니 하릴없는 용천 (龍川),

청총마(靑聰馬)를 둘러 타고 돌아보니 의주(義州)."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월하선(月下仙)이오."

 

  한 년은 자진방아 타령을 하여,

  "누각(樓閣)골 처녀는 쌈지장사 처녀, 어라뒤야 방아로다.

왕십리 처자는 미나리장사 처자,

순담양 처자는 바구니장사 처자,

영암(靈岩) 처자는 참빗 장사 처자."

  "어,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금옥(金玉)이오."

 

  한참 이리 농탕(弄蕩)칠 때,

이 때에 시임(時任) 향소(鄕所) 옹좌수(雍座首)가

수유(受由)하고 집이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포 입고 안장말에 향청(鄕廳) 하인(下人) 후배(後陪)하여

달래달래 돌아가니

움생원이 불러,

  "여보소, 옹좌수.

자네가 아관(亞官)으로 기구가 좋다하여 출패(出牌)나 무서워 하지,

나 같은 빈천지교(貧賤之交) 시약불견(視若不見) 지나가니

부귀자교인(富貴者驕人) 말이 자네 두고 한 말일쎄."

 

  좌수가 할 수 있나, 말에서 내려 걸어오니 움생원이 제 옆에 앉혔구나.

좌수가 물어,

  "노형의 평생행세 내가 대강 짐작하니

이러한 큰 길가에서 협창행락(挾娼行樂) 의외로세."

 

  움생원이 연해 웃어,

  "꿈 같은 우리 인생 육십이 가까우니 남은 날이 며칠인가

파탈(擺脫)하고 놀아 주세.

얘, 옥천집, 좌수님 들으시게 시조(時調)나 하나 하여라."

 

  그렁저렁 장난 후에 좌수가 하직(下直)하여,

  "향청(鄕廳)에 일 많아서 총총히 돌아가니

노형(老兄)은 사당하고 행락을 하게 하소."

  움생원이 웃어,

 

  "자네 소견대로."

  좌수 불끈 일어서니 밑구멍이 안 떨어져,

  "애겨, 이게 웬일인고."

  움생원은 좋아라고 곧장 웃어 두었구나.

  "허허, 내 말 들어 보소.

노형은 내게 비하면 식자(識字)도 들었고,

경락(京洛)도 출입하고,

읍내 가 오래 있어 관장(官長)도 모셔 보고,

지사(知事)하는 아전(衙前) 친구 응당히 많을 테니,

송장이 붙는 말을 자네 혹 들었는가."

 

  좌수 귀가 매우 밝아 깜짝 놀라 급히 물어,

  "이것이 송장인가."

  남은 급히 서두는데 움생원은 훨씬 늘여,

  "그것은 무엇이든지 장차 수작(酬酌)하려니와,

송장이 붙는다는 말 사기(史記)에나 경서(經書)에나 혹 어디서 보았는가."

  옆에 있던 사당들이 깜짝 놀라 일어서니 모두 다 붙었구나.

요망(妖妄)한 이것들이 각색으로 재변(才辯) 떨 때 애고애고 우는 년,

먼산보고 기막힌 년, 움생원 바라보며 더럭더럭 욕하는 년,

제 화에 제 머리를 으등으등 찧는 년,

살풍경(殺風景) 일어나니 좌수는 어이없어

암말도 못 하고서 굿 보는 사람나서 우두커니 앉았다가,

  "여보소, 저 짐이 다 모두 송장인가."

 

  움생원 변구(辯口)하여,

  "하나씩이면 좋게."

  "둘씩이란 말인가."

  "방사(倣似)한 말이로세."

  "어느 고을 올 시절이 송장 풍년 그리 들어

몰똑하게 지고 왔소."

 

  뎁득이 하던 말을 움생원이 송전(誦傳)하니,

좌수와 사당들이 서로 보고 걱정한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굿 보느라고 아니 가고,

먼 데 마을, 근처 마을 구경하자 모여드니,

그리 저리 모인 사람 전주장(全州場)이 푼푼하다.

 

 구경꾼 모인 데는 호도(胡桃)엿장수가 먼저 아는 법이었다.

갈삿갓 쓰고 엿판 메고 가위 치며 외고 온다.

  "호도엿 사오, 호도엿 사오.

계피(桂皮) 건강(乾薑)에 호도엿 사오.

가락이 굵고 제 몸이 유하고 양념 맛으로 댓 푼.

콩엿을 사려우, 깨엿을 사려우.

늙은이 해소에 수수엿 사오."

  여러 사람들이 호도엿 사먹으며 하는 말이,

  "이것이 원혼이라,

삼현(三弦)을 걸게 치고 넋두리를 하였으면

귀신이 감동하여 응당 떨어질 듯하다."

 

  목 좋은 계대(繼隊)네를 급급히 청해다가

좌수가 자당(自當)하여 굿상을 차려 놓고

멋있는 고인들이 굿거리를 걸게 치고,

목 좋은 제대네가 넋두리춤을 추며,

 

  "어라 만수(萬壽) 저라 만수.

넋수야 넋이로다. 백양청산(白楊靑山) 넋이로다.

옛 사람 누구 누구 만고원혼(萬古寃魂) 되었는고.

공산야월(空山夜月) 불여귀(不如歸)는 촉 망제(望帝)의 넋일런가.

무관춘풍(武關春風) 우는 새는 초 회왕(懷王)의 넋이로다.

어라 만수. 청청향초나군색(靑靑向楚羅裙色)은 우미인의 넋일런가.

환패공귀월야혼(環패空歸月夜魂)은 왕소군(王昭軍)의 넋이로다.

어라 만수 저라 대신.

 

넋일랑은 넋반에 담고, 신첼랑은 화단(花壇)에 뫼셔

밥전(廛), 넋전(廛), 인물전(廛)과 온필 무명,

오색 번(번)에 넋을 불러 청좌(請座)하자.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열 대왕님 부리는 사자(使者)

일직사자(日直使者) 월직사자(月直使者)

금강야차(金剛夜叉) 강림도령(降臨道令),

이 생 망제 잡아갈 때 뉘가 감히 거역할까.

어라 만수 저라 대신.

 

만승천자(萬乘天子), 삼공 육경(六卿) 기구로도 할 수 없고,

천석(千石) 노적(露積) 만금부자 값을 주고 면켔는가.

멀고 먼 황천길을 가자 하면 따라가네.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지장보살(地藏菩薩) 장한 공덕, 보도중생(普度衆生)하려 하고

지옥문(地獄門) 닫아 놓고, 서양길을 가르칠새

불쌍한 여덟 목숨 비명에 죽었으니,

어느 대왕께 매였으며, 어느 사자 따라갈까.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지하에 맨 데 없고, 인간에 주인 없어

원통히 죽은 혼이 신체 지켜 있는 것을

무지한 인생들이 경대(敬待)할 줄 모르고서

손으로 만져 보고 걸터앉기 괘씸쿠나.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옹좌수 자넬랑은 일읍(一邑)의 아관(亞官)이요,

움생원 자넬랑은 양반의 도리로서

경이원지(敬而遠之) 귀신대접 어이 그리 모르던가.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사당, 걸사, 명창, 가객, 오입장이 너의 행세 취실(取實)할 수 왜 있으리.

 비옵니다, 여덟 혼령 무지한 저 인생들 허물도 과도 말고,

갖은 배반(杯盤) 진사면(陳謝免)에 제대춤에 놀고 가세.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우두커니 짐꾼 넷만 남겨 놓고

위에 붙은 사람들은 모두 다 떨어져서, 제대에게 치하(致賀)하고

뎁득이 각설이에게 각각 하직하는구나.

  이것들이 식구 많이 있을 때는 소일하기 좋았더니

비 오는 날 파장같이 경각간(頃刻間)에 흩어지니

심심하여 살 수 있나.

 

뎁득이가 그래도 서울 손이라 애긍히 사정으로

 송장에게 비는 목이 의지하여 듣겠거든,

  "천고에 의기남자 원통히 죽은 혼이

지기지우(知己之友) 못 만나면 위로할 이 뉘 있으리.

역수상(易水上) 찬 바람에 연태자(燕太子)를 하직하고

함양에서 죽었으니 협객 형경(荊卿) 불쌍하고,

계명산(鷄鳴山) 밝은 달에 우미인을 이별하고,

오강(烏江)에 자문(自刎)하니 패왕 항적(項籍) 가련하다.

 

이 세상에 변서방은 협기 있는 남자로서

술먹기에 접장(接長)이요 화방에 패두(牌頭)시니,

간 데마다 이름 있고 사람마다 무서워한다.

꽃 같은 저 미인과 백년을 살쟀더니

이슬 같은 이 목숨이 일조(一朝)에 돌아가니

원통하고 분한 마음 눈을 감을 수가 없어,

 

뻣뻣 선 장승 송장. 주 동지 자네 신세

부처님의 제자로서 선공부(禪工夫) 경문(經文) 외어 계행을 닦았으면

흰 구름 푸른 뫼에 간 데마다 도방이요,

비단 가사(袈裟) 연화탑(蓮花塔)에 열반(涅槃)하면 부처될새

잠시 음욕 못 금하여 비명횡사(非命橫死) 거적 송장.

 

촐첨지(僉知) 자네 정경 동냥 고사 천업(賤業)이라,

낯에는 탈을 쓰고, 목에는 장고 메고,

돈푼 쌀줌 얻자 하고 이집 저집 다닐 적에

따른 것이 아이들과 짖는 것이 개 소리라,

탄 분복(分福)이 이러한데 가량(可量) 없는 미인 생각

제 명대로 못 다 살고 남의 집에 붙음송장.

 

풍객(風客) 한량(閑良) 다섯 분은 오입 맛이 한통속.

왕별목장 춘향가 가객이 앞을 서고,

가얏고 심방곡(心方曲) 통소 소리 봉장취 연풍대(燕風臺) 칼춤이며,

서서 치는 북 장단에 주막(酒幕)거리 장판이며,

큰 동내 파시평에 동무 지어 다니면서 풍류로 먹고 사니

눈치도 환할 테요, 경계(經界)도 알 터인데

송장을 쳐 낸대도 계집은 하나 뿐,

누구 혼자 좋은 꼴 보이려 한꺼번에 달려들어

한날 한시 뭇태 송장 여덟 송장 각기 설움 다 원통한 송장이라.

 

살았을 때 집이 없고 죽은 후에 자식 없어

높은 뫼 깊은 구렁 이리 저리 구는 뼈를 묻어줄 이 뉘 있으며,

슬픈 바람 지는 달에 애고애고 우는 혼을 조상할 이 뉘 있으리.

생각하면 허사로다, 심사 부려 쓸 데 있나.

 

이 생 원통 다 버리고 지부명왕(地府明王) 찾아가서

절절이 원정하여 후생의 복을 타서,

부귀가에 다시 생겨 평생행락하게 하면

당신네 신체들은 청산에 터를 잡아 각각 후장(厚葬)한 연후에

년년기일 돌아오면 내가 봉사(奉祀)할 것이니 제발 덕분 떨어지오."

애긍히 빈 연후에 네 놈 불끈 일어서니 모두 다 떨어졌다.

 

  북망산 급히 가서 송장짐을 부리니 석 짐은 다 부리고

 뎁득이 진 송장은 강쇠와 초라니라 등에 붙어 뗄 수 없다.

 

각설이 세 동무는 여섯 송장 묻어 주고 하직하고 간 연후에

뎁득이 분을 내어 사면을 둘러보니

곳곳 큰 소나무 나란히 두주 서서

한 가운데 빈틈으로 사람 하나 가겠거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울고울 달음박질

소나무 틈으로 쑥 나가니

짊어진 송장짐이 우두둑 삼동 나서

위 아래 두 도막은 땅에 절퍽 떨어지고

가운데 한 도막은 북통같이 등에 붙어 암만해도 뗄 수 없다.

 

요간폭포괘장천(遙看瀑布掛長天)

좋은 절벽 찾아가서 등을 갈기로 드는데

갈이질 사설이 들을 만하여,

  "어기여라 갈이질.

광산(匡山)에 쇠방앗고 문장공부 갈이질.

십년을 마일검(磨一劍) 협객의 갈이질.

어기여라 갈이질.

 

춘풍에 저 나비가 향내만 찾아가다 거미줄을 몰랐으며,

산양에 저 장끼가 소리만 찾아가다 포수 우레 몰랐구나.

어기여라 가리질.

 

먼저 죽은 여덟 송장 전감(前鑑)이 밝았는데,

철모르는 이 인생이 복철(覆轍)을 밟았구나. 어기여라 갈이질.

네번째 죽은 목숨 간신히 살았으니 좋을씨고

공세상(空世上)에 오입 참고 사람되세. 어기여라 갈이질."

 

  훨씬 갈아 버린 후에 여인에게 하직하여,

  "풍류남자 가려서 백년해로하게 하오.

나는 고향 돌아가서 동아부자(同我婦子) 지낼 테오."

 

  떨뜨리고 돌아가니 개과천선(改過遷善) 이 아닌가.

월나라 망한 후에 서시가 소식 없고,

동탁(董卓)이 죽은 후에 초선이 간 데 없다.

이 세상 오입객이 미혼진(迷魂津)을 모르고서

야용회음(冶容誨淫) 분대굴(粉黛窟)에

기인도차오평생(幾人到此誤平生)고.

 

이 사설 들었으면 징계가 될 듯하니

좌상에 모인 손님 노인은 백년향수,

소년은 청춘불로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에

성세태평하옵소서.

덩지 덩지.』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8634?category=824071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음악 > 판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창 김소희의 판소리  (0) 2018.06.24
김소희 - 춘향가 / 안숙선 - 춘향가 外  (0) 2018.06.23
박동진, 가루지기타령 4  (0) 2018.06.17
박동진, 가루지기타령 3  (0) 2018.06.15
박동진, 가루지기타령 2  (0) 2018.06.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