鍾北小選自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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鍾北小選自序(종북소선자서)/ 박지원

鍾北小選自序 아아! 포희씨礈犧氏가 죽으매 그 문장文章이 흩어진지 오래로다. 그러나 벌레의 더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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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포희씨礈犧氏가 죽으매 그 문장文章이 흩어진지 오래로다. 그러나 벌레의 더듬이와 꽃술, 돌의 초록빛과 새깃의 비취빛 등 그 문심文心은 변치 않았다. 솥의 발과 호리병의 허리, 해의 둘레, 달의 활 모양은 자체字體가 아직도 온전하다. 그 바람과 구름, 우레와 번개 및 비와 눈, 서리와 이슬, 그리고 새와 물고기와 짐승과 벌레와, 웃고 울고 소리내고 울부짖는 것들의 성색정경聲色情境은 지금도 그대로이다.

그런 까닭에 《역易》을 읽지 않고는 그림을 알지 못하고, 그림을 알지 못하면 글을 알지 못한다. 왜 그런가? 포희씨礈犧氏가 《역》을 지음은 우러러 관찰하고 굽어 살펴보아 홀수와 짝수를 더하고 갑절로 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이와 같이하여 그림이 되었다. 창힐씨蒼綖氏가 글자를 만든 것 또한 정情을 곡진히 하고 형形을 다하여 전주轉注하고 가차假借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와 같이하여 글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글에 소리[聲]가 있는가? 말하기를, 이윤伊尹의 대신大臣 노릇 할 때와 주공周公이 숙부叔父 역할을 할 때 내가 그 말소리는 듣지 못하였어도 그 소리를 상상해 본다면 정성스러울 따름이었으리라. 고아孤兒인 백기伯奇와 기량杞梁의 과부寡婦를 내가 그 모습은 못보았지만, 그 소리를 떠올려 보면 간절할 뿐이었으리라.

글에 빛깔[色]이 있는가? 말하기를, 《시경詩經》에 잘 나와 있다. "비단옷에 홑옷 덧입고, 비단 치마에 홑치마 덧입었네. 衣錦啷衣, 裳錦啷裳"라고 하였고, "검은 머리 구름 같으니 트레머리 얹을 필요가 없네. 珒髮如雲, 不屑痂也"라고 하였다.무엇을 일러 정情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새가 울고 꽃이 피며, 물은 초록이요 산이 푸르른 것이다.무엇을 일러 경境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먼데 있는 물에는 물결이 없고, 먼데 있는 산에는 나무가 없으며, 먼데 있는 사람은 눈이 없다. 그 말하는 것은 가리키는 데 있고, 듣는 것은 손을 맞잡는데 있다.

그런 까닭에 늙은 신하가 어린 임금께 고하는 것과 고아와 과부의 사모함을 알지 못하는 자와는 더불어 소리를 논할 수가 없다. 글을 짓더라도 《시경》의 생각이 없으면 더불어 국풍國風의 빛깔을 알 수가 없다. 사람이 이별해보지 못하고, 그림에 먼 뜻이 없다면 더불어 문장의 정경情境을 논할 수가 없다. 벌레의 더듬이와 꽃술을 좋아하지 않는 자는 모두 문심文心이 없는 것이다. 솥과 그릇의 형상을 음미하지 못하는 자는 비록 한 글자도 모른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중에서

[출처] 鍾北小選自序(종북소선자서)/ 박지원 |작성자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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