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병을 잘 고친다고 이름난 의원이 있었는데,
평소에 웃는 일이 없는 것으로도 소문이 나 있었다.
그래서 같은 마을에 사는 짓궂은 총각들이 모여 의논했다.
"그 의원이 평소에 어떤 일에도 웃지 않으니,
우리들 중에서 누구든지 그 의원을 웃기는 사람에게는
모두 돈을 모아 한턱 크게 내기로 하자."
이 말에 일제히 좋다고 동의하니 한 총각이 나서면서,
"너희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 의원을 웃겨 보겠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에 모두들 거짓말이 아니라고 하면서 약속하니,
이 총각은 반드시 의원을 웃기겠다고 장담했다.
그리하여 집으로 돌아간 총각은 막대기로 손바닥을 계속 문질러 물집이 생기게 한 뒤,
그 손바닥을 고운 천으로 감아 아픈 척하면서 그 의원을 찾아갔다.
이에 의원은 꼿꼿하게 앉아서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젊은이는 어디가 아파서 이렇게 찾아왔는고?"
"예, 근래 속병이 매우 심해져서 견디기 어려워 왔습니다."
"속병이라니? 어떤 증세로 속이 아픈지 자세히 말해 보게."
"말로는 뭐라 설명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속병이 제 몸 겉으로 나서 몹시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속병이 몸 밖으로 나다니 알아듣기가 어렵네. 무슨 장난 같구먼."
"의원님, 아니옵니다. 한번 보소서."
총각은 왼손 손바닥을 감았던 천을 풀어 그 물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의원은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워 다시 물었다.
"아니, 이건 손바닥이 부르터서 물집이 생긴 게 아닌가?
그런데 무슨 속병이라고 하나?"
"의원님, 들어 보십시오. 저의 집이 가난해 아직 장가를 못 가니,
이 왼손 손바닥으로 항시 제 양근을 문질러서
끓어오르는 정감을 발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나쳐 이렇게 물집이 생겨서
그 행위를 못해 가슴 아파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속병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주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폭소를 터뜨리니,
의원도 따라서 크게 웃는 것이었다.
이러고 돌아와 여러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니 그들도 역시 크게 웃고는,
함께 돈을 모아 이 총각에게 큰 상을 차려 주었더라 한다.
'고전문학 > 국역고금소총' 카테고리의 다른 글
615화. 신이 붙은 송이버섯 (松茸接神) (0) | 2019.08.13 |
---|---|
614화. 영험 있는 소경의 점괘(神卜奇驗) (0) | 2019.08.13 |
612화. 수달 가죽 팔기 (獺耳還賣) (0) | 2019.08.13 |
611화. 재빨리 둘러대 속이다 (急智善變) (0) | 2019.08.13 |
610화. 장인을 조롱하는 사위 (壻嘲婦翁) (0) | 2019.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