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18화 - 그물 주머니째 잃다 (失網)
서울에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건망증이 너무 심해 금방 놓은 물건도 잊어버려 챙기지 못했다.
이 젊은이는 여러 번 과거를 보아 낙방을 했는데,
그 때마다 붓이며 벼루들을 잊어버리고 맨몸으로 돌아와
그 부친이 크게 걱정을 했다.
마침 과거가 있다는 방이 붙어 이 젊은이도 시험을 보러 가려고 하자,
그 부친이 무슨 장치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가는 노끈으로 커다란 그물 주머니를 하나 엮었다.
그리고는 과거장으로 들어가는 아들에게 이것을 주면서 당부했다.
"과거를 보고 나올 때는 붓이며 벼루 같은 도구를
모두 이 그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나오너라."
아들은 그렇게 하겠다면서 과거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험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니 부친이 물었다.
"얘야, 붓 주머니는 어디에 있느냐?"
"예, 아버님 말씀대로 그물주머니에 담았습니다."
"응, 잘했구나. 그러면 운책(韻冊)은 어디에 있느냐?"
"예, 아버님. 그 운책도 주머니에 담았습니다."
"그랬다면 됐구나. 그러면 사집(私集)과 벼루는 어디 있느냐?"
"아버님, 그것도 모두 넣었습니다."
"그러면 됐다. 한대 그 모든 것을 담은 그물주머니는 왜 보이지 않느냐?
그건 어디에 두었느냐?"
이에 아들은 한참 동안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아버님! 그 주머니는 잊고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부친은 아들의 건망증을 고칠 수 없다면서 더 이상 챙기지 않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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