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2B3Yb7AmTUg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토말 :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 억양을 부드럽게 했을 때
한국말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영 어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해 석 :
가라. 가라.
피안으로 건너가라.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라.
깨달음에 뿌리를 내려라.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295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www.dapsa.kr/blog/?p=28202
법주사 석연지(국보 64호). 통일신라 전성기에 조성된 것으로 다른 사찰에서 없는 특이한 형태의 유물이다.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을 띄어 두어 극락세계를 표한하고 있다. 연지는 팔각형 받침돌 위에 버섯모양의 사잇돌이 몸돌을 받치고 있다. 몸돌은 큼직만한 연꽃모양을 하고 있으며, 표면에는 연꽃잎을 새겨 장식하고 있다.
처음 부제에 썼던 '돌물독'이란 실상 바로 위 사진인 '석연지'이다. 해설의 '석조희견보살입상' 이란 생뚱맞은 제목이 주는 전문가들의 비전문성이 또한 우스꽝스럽다.
그토록 장엄한 '미륵대불'을 조성하고서도 전문가라면서 미륵보살과 관련된 조각임을 눈치채지 못하다니. 적당한 연못을 못찾아 돌로 상징적 연못을 만든 그들의 천재성에 그저 감탄만 연발할 뿐이다. 더욱 폭소를 자아내는 것은 해설판의 '喜見'이다. 유물 용어에 주관적 느낌을 삽입하는 경우는 난생 처음 본다. 이글 부제에 처음엔 "돌물독을 인 여인"으로 썼던 것은 의미 전달을 위한 작명일 뿐, 학술용어로는 "석련지를 인 보살"이 적합할 것 같다. 의미 전달이 부족하면 '인'을 '머리에 인'으로 하면 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6%8D%EB%A6%AC%EC%82%B0
속리산의 등줄기를 문장대부터 훓어보면 아래와 같다.
문장대ㅡ 문수봉ㅡ 청법대ㅡ신선대ㅡ 立石대 ㅡ비로봉 -천황봉 -관음봉
뻑적지근한 그 이름만 들어도 속리산은 선경이다. 어느 해 가을엔가, 반려자와 함께 그 등줄기를 문장대에서 출발하여 사진도 찍어가며 3시간 가까이 걸은 적도 있었다. 젊은 시절 얘기다.
산에서 경치 좋은 곳을 찾으려면 절간을 찾으면 된다. 설악이야 주지하는 바이지만 도봉산 망월사(望月寺) 뒤의 산등성이도 그 버금가는 선경이다.
문장대는 상주군 화북면에서도 오르는 코스도 있다.
11/20(수) 속리산 법주사에 가다
운영자는 1976년 한글날 인생의 반려자와 속리산을 찾은 이후 여러 차례 속리산을 찾았다. 속리산은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번 참배 때는, 속리란 세속의 명리를 떠난다는 의미여서 한자어순으로는 당연히 '리속'이어야 하는데 우리말 어순으로 '속리'라 이름한 것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호서제1가람'이라 쓴 한자 현판에 담긴 의미도 확연해졌다. 백제 불교의 미륵 사상을 상징적 조각으로 구체화 시킨 것이 더욱 돋보였다. 산스크리트어를 독학한 재야학자 강상원님에 의하면 천산산맥을 넘어온 불교가 직수입된 곳이 호남지역이어서 이 지역 말은 산스크리트어와 유사한 말이 많다고 한다. 나주라씨는 大道 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노자의 후예라고 주창한 동영상도 있다. 발음상으로 중국어 老는 한국어 羅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첨언하면, 고달픈 세상살이에 미래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더구나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들을 구원할 미래불인 미륵보살님이 계심에랴! 그런 측면에서 불교는 미신이 아니라 희망의 종교라 단언할 수 있다. 문제는 기도만 하고, 불타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데 있다.
自利利他의 종교로 알려진 불교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모든 악을 짓지 않고, 중생의 善(公共의 이익)을 봉행하고, 자기 마음을 스스로 깨끗이 한다.
이것이 여러 부처님들의 가르침이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522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s://kydong77.tistory.com/18522
속리산 문장대, 신선대
https://www.youtube.com/watch?v=5cvsVvF6Sp0
문장대는 본래 구름 속에 감춰져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라고 하였으나 조선왕조 제7대 임금인 세조 임금이 요양을 위해 속리산을 찾아왔을 때 어느날 밤 꿈속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 일러 주었고, 다음 날 이 곳에 올라와서 정상에 올라 오륜삼강(五倫三綱)을 명시한 책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
생애 후반 그는 악몽과 피부질환에 시달림당했다. 1468년 9월 22일(음력 9월 7일)에 예종(睿宗)에게 전위(傳位)하고, 9월 23일에 수강궁(壽康宮)의 정전(正殿)에서 나병으로 승하하였다. 정2품송만 남긴 채.
참고로 속리산 산줄기 너머 있는, 행정구역이 표시된 상주군 지도를 싣는다. 문장대로 오르는 길이 있는 화북은 지도상으로도 산촌이다. 운영자는 명주의 주산지였던 함창면 교촌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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