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LD-NmCD9x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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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燕山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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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편집]

1498년(연산군 4년) 음력 7월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김일손이 사초(사관이 기록한 역사 기록)에 수록한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세조의 계유정난을 비난한 것이라는 이극돈유자광의 참소에 따라 김일손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처형하거나 유배하고 이미 사망한 김종직은 부관참시하였다(→무오사화). 이후 이극돈유자광윤필상 등 훈구파 고관들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통해 사림파를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운다. 국문장에서 김일손을 국문하자 김일손은 자신은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하며 스승과 스승의 동료 문하생들을 모두 발설했다.

연산군은 이미 죽은 김종직의 관을 파헤쳐 그 시체의 목을 베는 부관참시형을 집행했다. 또한 김일손·권오복(權五福)·권경유(權景裕)·이목(李穆)·허반(許盤) 등은 간악한 파당을 이루어 선왕(先王)을 무록(誣錄)하였다는 죄를 씌워 처형하고, 강겸(姜謙)·표연말(表沿沫)·홍한(洪澣)·정여창(鄭汝昌)·강경서·이수공(李守恭)·정승조(鄭承祖) 등은 난(亂)을 고하지 않았다는 죄로 유배보냈으며, 이종준(李宗準)·최부(崔溥)·이원·이주(李胄)·김굉필(金宏弼)·박한주(朴漢柱)·임희재(任熙載)·강백진(姜伯珍)·이계맹(李繼孟)·강혼(姜渾)·남곤(南袞)· 등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붕당을 이루어 『조의제문』 삽입을 방조했다는 죄로 역시 유배보냈다.

생모 추숭 시도와 좌절[편집]

즉위 초부터 그는 생모인 폐비 윤씨의 복권과 추숭에 대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성균관과 양사에 포진한 사림파 인사들은 사후 백 년간 언급하지 말라는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연산군의 생모추숭 시도를 반대한다. 강하게 반발하던 사림의 태도에 연산군은 이들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 정계와 연산군과의 사이에는 감정적 갈등이 일어났다. 그는 사림파 관료들의 직간(直諫)을 귀찮고 번거롭게 여겨 경연과 사헌부를 축소하는 한편 사간원홍문관예문관 등을 없애버리고, 정언 등의 언관직도 혁파 또는 감원을 했다.

또한 기타 온갖 상소와 상언·격고 등 여론과 관련되는 제도들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시켰다. 또한 성균관·원각사 등을 주색장으로 만들고, 불교 선종(禪宗)의 본산인 흥천사(興天寺) 등 한성부의 일부 사찰은 연회장과 마굿간으로 바꾸어버렸다. 이에 본래부터 사림파 인사들을 싫어하거나 기피하던 연산군의 성품을 본 이극돈(李克墩), 임사홍 등 훈구파 재상들은 이를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들의 세력 확장 및 정쟁에 이용하려 한다.

갑자사화[편집]

연산군은 재위 10년(1504년 음력 10월에 훈구파 내에서 궁중파와 부중파 간의 분란이 발생하자 이를 이용하여 어머니의 한을 풀고자 했다. 폐비 윤씨 사태를 주도했던 성종의 두 후궁(귀인 엄씨귀인 정씨)을 비롯하여 당시의 관련자인 훈구파·사림파 대신들을 살아 있으면 처형하고 이미 사망했으면 부관참시했다. 이 일련의 사건이 갑자사화다.

당시 사림파 일부는 성종의 유지를 주장해 폐비 복위를 반대했고, 임사홍 등 궁중파는 갑자사화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사림파를 비롯한 반대파에게 대대적인 타격을 가했다. 연산군은 이들을 이용하여 사림파를 숙청한 뒤, 폐비 문제와 직결된 이극균윤필상성준김굉필 등 부중파 역시 숙청한다. 이미 죽은 한명회(韓明澮), 정창손정여창(鄭汝昌) 등은 부관참시되었다.

또 폐비 윤씨의 폐비 사태를 주도했던 두 후궁은 정씨 소생인 안양군과 봉안군을 시켜 때려 죽이고, 그 시신으로 젓갈을 담그어 산야에 버리고 아무에게도 매장하지 말라고 명하기도 했다. 또 안양군과 봉안군은 유배를 보냈다가 이듬해 죽였고, 정씨 소생의 정혜옹주와 엄씨 소생의 공신옹주는 폐서인하고 유배했다(두 사람은 중종 즉위 후 복권되었다).

당시 연산군은 인수대비(仁粹大妃)와도 크게 다투었고, 훗날 폐비 윤씨를 복위하는 문제로 재차 다투다가 당시 병으로 누워 있던 인수대비를 강하게 밀쳤고(들이받았다고도 한다), 그 후유증으로 인수대비는 사망했다. 연산군은 인수대비의 초상 때에도 이일역월제(以日易月制, 또는 역월지제(易月之制), 하루를 한 달로 계산하여 삼년상 대신 25일상을 치름)라는 단상제(短喪制)를 단행하여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음란 행위[편집]

채청사와 채홍사를 파견하여 사헌부 홍문관 성균관 등을 기생들이 있는 집단으로 바꾸었다고 전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 기생들은 고려 시대 때부터 가무악단이며 연산군과 교감을 나눈 여인은 광한선과 월하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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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제왕의 금기사항 어기다

• 연산군, 제왕의 금기사항 어기다 • -사초(史草) 보기 [은자주] 조선왕조실록에는 시호를 받지 못한 왕이 두 분이시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왕자의 칭호를 유지한 채 그들의 사적마저도 "실록"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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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군, 제왕의 금기사항 어기다

• 사초(史草) 보기

[은자주] 조선왕조실록에는 시호를 받지 못한 왕이 두 분이시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왕자의 칭호를 유지한 채 그들의 사적마저도 "실록"이 아닌 일기였다. 연산군일기, 광해군일기.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에는 불행히도 두 편의 일기가 삽입되었다. 명분에 엄격한 한자문화권의 객관적 기술에 혀가 내둘러진다. 제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사초를 절취(截取)해 올린 실록청 당상들의 현실적 타협안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연산 030 04/07/11(을사) / 김일손의 사초를 들여올 것을 명하니 이극돈 등이 일부를 절취하여 올리다

○乙巳 /傳曰: “ 金馹孫 史草皆入內。”
전교하기를,
“김일손(金馹孫)의 사초(史草)를 모두 대내(大內)로 들여오라.”하매,

實錄廳堂上 李克墩 、 柳洵 、 尹孝孫 、 安琛 啓:
실록청 당상(實錄廳堂上) 이극돈(李克墩)·유순(柳洵)·윤효손(尹孝孫)·안침(安琛)이 아뢰기를,

“自古史草人主不自見之。 人主若見史, 則後世無直筆也。”
“예로부터 사초(史草)는 임금이 스스로 보지 않습니다. 임금이 만약 사초를 보면 후세에 직필(直筆)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니,

傳曰: “即無遺入內。”
전교하기를,
“즉시 빠짐 없이 대내로 들이라.”하였다.
克墩 等更啓:

극돈 등이 다시 아뢰기를,

“諸史官所納史草, 臣等無不見之,
“여러 사관(史官)들이 드린 사초를 신 등이 보지 않는 것이 없고,

而 馹孫 所書, 亦皆知矣。

일손(馹孫)의 초한 것 역시 모두 알고 있사옵니다.

臣等年齒已老, 筮仕以後, 祖宗朝事, 無不知矣。

신 등이 나이가 이미 늙었으므로 벼슬한 이후의 조종조(祖宗朝) 일은 알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馹孫 史草, 果有犯於祖宗朝事, 而有非臣等所聞者也。

일손의 사초가 과연 조종조의 일에 범하여 그른 점이 있다는 것은 신들도 들어 아는 바이므로,

臣等以其妄, 未敢載 《實錄》 。 但今命納, 臣等不知其考何事也,

신들이 망령되게 여겨 감히 《실록》에 싣지 않았는데, 지금 들이라고 명령하시니 신 등은 무슨 일을 상고하려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然自古人主不得自見其史,

그러나 옛부터 임금은 스스로 사초를 보지 못하지만,

然事若有關宗社, 不可不考

일이 만일 종묘 사직에 관계가 있으면 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則臣等當斷取其可考處以入,

신 등이 그 상고할 만한 곳을 절취하여 올리겠습니다.

事得以考閱, 而亦合於人主不見史草之義。”

그러면 일을 고열(考閱)할 수 있고 또한 임금은 사초를 보지 않는다는 의(義)에도 합당합니다.”하니,
傳曰: “可。”

‘가하다.’고 전교를 내렸다.

克墩 等斷取 馹孫 史草六條而封入,

극돈 등이 일손의 사초에서 6조목을 절취하여 봉해 올리니,

傳曰: “其書宗室等事亦入。”

전교하기를,
“그 종실(宗室) 등에 관해서 쓴 것도 또한 들이라.” 하였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7917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FHW6kxPWho4

 

https://www.youtube.com/watch?v=uRPSnb0xuGc

 

https://www.youtube.com/watch?v=srdOGk36okU

 

https://www.youtube.com/watch?v=OtVdTqWsAME

 

 

https://www.youtube.com/watch?v=5NZJ9Bk50Io

 

 

https://www.youtube.com/watch?v=Dww1Gt9ZRSQ

 

 

https://www.youtube.com/watch?v=W5aWgbIBmxQ

 

 

https://www.youtube.com/watch?v=Q2R2p01VVkU

 

 

https://www.youtube.com/watch?v=_o5DXRbtJL4

 

 

https://www.youtube.com/watch?v=u-5KQ0Au_5A

 

 

https://www.youtube.com/watch?v=npXaoOA2yS0

 

https://www.youtube.com/watch?v=QMjkrcmo21Y

 

 

https://www.youtube.com/watch?v=HscWr4H4jZI

 

https://www.youtube.com/watch?v=XTYwPfh-mog

 

https://www.youtube.com/watch?v=Ib0fftmC_3s

 

https://www.youtube.com/watch?v=FI5lxSrfo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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