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3WPnqeB_c
https://www.youtube.com/watch?v=ScT7DcBAp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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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outube.com/watch?v=sd3soczgH7g
원시불교의 사상[편집]
원시불교 또는 근본불교에서 초점이 되는 것은 고타마 붓다의 근본사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다음은 이러한 관점에서의 원시불교의 사상에 대한 서술이다. 고타마 붓다는 당시의 인도 사상계에 있어서 논의되고 있던 갖가지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한 논쟁, 예컨대 "세계는 영원(永遠)한가? 세계는 영원하지 않은가? 세계는 유한(有限)한가? 세계는 무한(無限)한가? 영혼과 육체는 같은가? 영혼과 육체는 다른가? 여래(如來)는 사후(死後)에 존재하는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와 같은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이러한 문제는 아무리 따져보아도 결코 해결을 얻을 수 없는 무익한 의론(議論)으로 끝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12]
고타마 붓다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얽매이기 보다는 내심(內心)의 적정(寂靜)의 경지("열반" 또는 "평화")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고타마 붓다가 당면하여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인생고(人生苦)의 문제였다. 고타마 붓다는 깨달음을 성취하여 내심(內心)의 적정(寂靜)의 경지("열반" 또는 "평화")에 도달한 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의를 가르쳤다.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무상") 거기에는 고정적인 실체라는 것이 없는데("무아"), 거기에 무엇인가 상주불변(常住不變)의 실체("我 · 아")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집착하기 때문에 번뇌(煩惱)가 생겨서 고통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그리고 그 번뇌(煩惱)는 무명(無明: 진리에 대한 무지)과 갈애(渴愛: 집착)에 입각한 것이므로("십이연기설"), 바른 수행("팔정도")에 의해 지혜를 완성하여 진리에 눈을 뜨게 되면 마침내 갈애를 끊고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해탈") 이상의 경지("열반" 또는 "평화")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고타마 붓다는 이와 같은 것을 항상 제자나 신자들에게 설교하였으며 이것을 정리한 것이 사성제(四聖諦)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C%84%B1%EC%A0%9C
"우주 시간은 영원하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도 남이 있고 늙음이 있으며 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슬픔 · 울음 · 근심 · 괴로움 · 번민이 있으니, 이리하여 이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생긴다. 이와 같이 "우주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우주 공간은 유한하다. 우주 공간은 무한하다. 자아와 육체는 같다. 자아와 육체는 다르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도 있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여기 없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없는 것도 아니고 없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도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 슬픔 · 울음 · 근심 · 괴로움 · 번민이 있으니, 이리하여 이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생긴다.
"세상 시간은 영원하다"는 말을 나는 언제나 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로 언제나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이치(義)에 맞지 않고 법(法)에 맞지 않으며 또한 범행(梵行) 근본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혜(智)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며 깨달음(覺)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며 열반(涅槃)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우주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우주 공간은 유한하다. 우주 공간은 무한하다. 자아와 육체는 같다. 자아와 육체는 다르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도 있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없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 여래는 육체가 죽은 뒤에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느 따위 말을 나는 언제나 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언제나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치(義)에 맞지 않고 법(法)에 맞지 않으며 범행(梵行) 근본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혜(智)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며 깨달음(覺)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며 열반(涅槃)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어떤 법을 언제나 말하는가? 나는 다음과 같은 이치(義)를 언제나 말하는데, 그 이치란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원인(苦習)과 괴로움의 소멸(苦滅)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跡)이다(사성제). 나는 언제나 이것들(사성제)을 말한다. 무슨 이유로 나는 언제나 이것들(사성제)을 말하는가? 이것들(사성제)을 말하는 것은, 이것들(사성제)은 이치(義)에 합당하고 법(法)에 합당하며 범행(梵行)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지혜(智)로 나아가게 하고 깨달음(覺)으로 나아가게 하며 열반(涅槃)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이것들(사성제)만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이 바로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은 말하지 않고 말하여야 할 것은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러한 태도를 가짐으로써, 이와 같이 진정 가져야 할 것을 가지고 진정 배워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D%8C%94%EC%A0%95%EB%8F%84
8정도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4성제 중 마지막 도제(道諦)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설명된 것이다.
고집멸도의 4성제는 집과 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 도와 멸이라는 연기(緣起)하는 항목을 합하여 구성되어 있다.[4] 여기에서 집은 고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 도는 멸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
고집멸도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 또는 갈애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1]
정견(正見, 산스크리트어: samyag-drsti, 팔리어: sammā-ditthi)은 바른 견해라는 뜻이며, 엄밀한 뜻으로는, 인과의 도리,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 즉 연기법을 바르게 아는 지혜를 뜻한다. 이러한 뜻의 정견은 8사행 가운데 사견(邪見)의 반대이며, 또한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 견취 · 계금취의 5견(五見) 가운데 사견의 반대이며, 10악(十惡) 가운데 사견의 반대이다. 이 경우, 정견은 수행이라는 측면에서는 12연기 · 4성제 · 3학 · 6바라밀로 대표되는 인과의 법칙 즉 연기법이라는 이치 또는 진리를 체득하는 것을 의미한다.[1][9][10][11] 한편, 모든 선법(善法)을 세간법과 출세간법으로 나눌 때, 12연기 · 4성제 · 3학 · 6바라밀은 출세간법에 속한다.[12][13][14] 즉 무루의 선법, 달리 말하면, 성인의 선법 즉 성인이 수행하는 선법 또는 완전한 성인 즉 부처가 되게 하는 선법에 속한다.
정사유(正思惟) 또는 정사(正思)는 올바른 사고방식 또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즉, 항상 올바른 지혜에 의해서 바르게 사유(思惟)하고 나 자신의 본분은 무엇인가, 나 자신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1]
정어(正語)는 올바른 언어적 행위를 가리킨다. 올바른 견해나 올바른 사고방식에 입각한 말은 올바른 말이 되며, 구체적으로는 행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거짓말(妄言 · 망언), 욕설(惡口 · 악구), 중상(兩舌 · 양설), 쓸데없는 말(綺語 · 기어)의 4가지를 행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으며, 행해야 할 것으로는 성실하고 정다운 말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들 수 있다.[1]
정업(正業)은 올바른 신체적 행위를 가리킨다. 살생(殺生) · 도둑질(偸盜) · 불륜(不倫) 등 잘못된 행위를 떠나 선행(善行)을 쌓는 것이다.[1]
정명(正命)은 올바른 생활을 가리킨다. 신(身: 몸) · 구(口: 입) · 의(意: 마음)의 3업을 바르게 하여, 사성제 · 연기의 법칙 · 인과의 법칙 등의 이치와 진리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1] 정명의 반대를 사명(邪命) 또는 사활명(邪活命)이라 한다.
정정진(正精進) 또는 정근(正勤)은 올바른 노력 또는 올바른 용기를 가리킨다. 용기와 노력을 가지고 길을 나아감으로써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1]
정념(正念, 산스크리트어: samyak-smṛti, 팔리어: sammāsati) 즉 바른 기억은 세심한 염(念, 산스크리트어: smṛti, 팔리어: sati, 영어: mindfulness, awareness, 깨어 있음) 즉 주의력을 가지고 수행에 임하며, 또한 생활에서는 자신과 주변의 입장에 대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려 깊은 태도로 일에 임한다는 것을 뜻한다.[1]
정정(正定)은 올바른 선정(禪定)을 가리킨다. 선정을 통해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해짐에 따라 이에 의해 사물을 정확하게 보는 정견(正見), 즉 올바른 견해 또는 지혜가 발현되며 이에 따라 정업(正業) · 정명(正命) 등의 올바른 행동과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1] 대승불교의 교의에 따르면 선정 바라밀은 지혜 바라밀이 발현되게 하는 직접적인 수단 또는 원인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B%B6%88%EA%B5%90
불교의 주요개념[편집]
- 니르바나 Nirvana -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나 해탈한 경지. 열반(涅槃)이라고 음사한다.
- 디아나 Dhyana - 명상. 갈수록 정신을 청정하게 해나가는 여덟 단계가 흔히 거론된다. 선나(禪那)라고 음사하고, 줄여서 선(禪)이라고도 한다.
- 보디사트바 Bodhisattva - 보리살타(菩提薩埵)라고 음사(音寫)하고, 그것을 줄여서 보통 ‘보살’(菩薩)이라고 한다. 수행을 쌓아 언제라도 부처가 될수 있는 경지이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마지막 해탈을 스스로 뒤로 미루고 있는 존재. 가장 널리 알려진 보살로 아발로키테슈바라 Avalokitesvara, 즉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꼽을수 있다.
- 붓다 Buddha - 진리를 깨달은 이. 불타(佛陀)라고 음사하였고, 줄여서 불(佛)이라고 한다.
- 삼사라 Samsara - 나고 죽음을 끝없이 거듭하는 끝없는 과정으로 존재의 실상이 그렇다고 한다. 윤회(輪廻)라고 번역한다.
- 상하 Sangha - 부처가 세운 출가 수행자들의 공동체. 승가(僧伽)라고 음사한다.
- 수냐타 Sunyata - 공(空). 모든 사물과 현상은 자성(自性), 즉 고유하고 항구적인 실체가 없고 상대적이라는 의미에서 공이라 한다.
- 쉴라 Sila - 윤리적 미덕, 또는 그것을 장려하는 계율.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율로 오계(五戒)가 있다. 계(戒), 계율(戒律)이라 번역한다.
- 스투파 Stupa - 유해를 보관하는 탑.
- 탄트라 Tantra - 밀교(密敎). 불교 중에서도 이른바 바즈라야나(Vajrayana)의 의례집이나 신통력을 얻기 위한 비의적(秘儀的)인 방법을 가리키는 말로, 대개는 구루(guru)의 가르침을 통해 전승된다. 바즈라야나는 지금의 주로 티베트에서 신봉하며, 금강승(金剛乘)이라고 번역한다.
- 프라즈냐 Prajna - 진리를 깨달은 지혜. 반야(般若)라고 음사한다.
- 프라티티아사뭇파다 Pratityasamutpada - 모든 현상과 사물은 서로 의존적으로 생겨난다는 법칙으로, 이로 인하여 윤회하는 세상 속의 모든 일이 서로 연관된다는 것. 연기(緣起)라고 번역한다.[9]
국가별 불교의 특징[편집]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EC%9D%98_%EC%A1%B0%EA%B0%81
https://www.youtube.com/watch?v=Bi9AwY_BY20
https://www.youtube.com/watch?v=bE7aIhuUb08&t=1060s
https://www.youtube.com/watch?v=fXfNptoaWIM
https://www.youtube.com/watch?v=YGXFS0cMZtU
https://www.youtube.com/watch?v=4A7ps9NCi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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