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03~221) 중 기원전 260년의 전국 칠웅:
연(燕) · 위(魏) · 제(齊) · 조(趙) · 진(秦) · 초(楚) · 한(韓)
제자백가(諸子百家, 영어: Hundred Schools of Thought) 또는 현상적 표현인 백가쟁명(百家爭鳴, 영어: Contention of a Hundred Schools of Thought)은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의 여러 사상가와 그 학파를 말한다.
구류십가(九流十家)
- 유가(儒家) - 공자 · 맹자 · 순자
- 도가(道家) - 노자 · 열자 · 장자
- 음양가(陰陽家) - 추연 · 추석
- 법가(法家) - 관중 · 상앙 · 신불해 · 한비자
- 명가(名家) - 등석 · 혜시 · 공손룡
- 묵가(墨家) - 묵자 · 별묵
- 종횡가(縱橫家) - 귀곡자 · 소진 · 장의
- 잡가(雜家) - 여불위 · 유안
- 농가(農家) - 허행
- 소설가(小說家) - 육자 · 청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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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학파의 사상
제자백가들은 모두 춘추전국시대의 위기를 구하려는 의도와 목적 아래서 일어난 것이며, 철학사상에 특히 기여한 것은 유가 · 도가 · 묵가 · 법가 · 명가이다.
이 밖에는, 강병책(强兵策)을 편 손무(孫武)와 오기(吳起)가 걸출하였고 손빈과 범려도 유명하였는데 이들은 병가에 속한다.
유가
이 부분의 본문은 유교입니다.
유가는 유교 · 유학 · 공교(孔敎)라고도 불린다. 유가는 공자(孔子)를 시조로 중국의 전통적인 정교일치(政敎一致) 사상을 받들고, 인(仁)의 도덕을 최고 이념으로 하여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를 목적으로 하는 윤리학 · 정치학으로서, 동양 철학사상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공자의 인(仁)은 인간심정에 고유한 자애(慈愛)의 마음을 확충하는 것, 즉 극기복례(克己復禮)로 완전한 인격을 이룬 경지이다. 인(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 · 애인)으로, 그 발단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인 자애(慈愛)로부터 시작하며, 나아가서는 형제 · 가정 · 사회 · 국가 · 인류에게까지 미치는 인도(人道: 사람의 길)이며, 이것은 사람의 본성에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라 한다. 공자는 인도(人道)를 닦아서 천도(天道)에까지 이르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를 강조하였다.
공자의 인(仁)은 부처의 자비(慈悲)나 예수의 박애(博愛)와 비슷한 내용을 갖고 있는 덕(德)이지만, 어디까지나 윤리로서의 인도(人道)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공자는 종교인과는 달리 현생(現生)의 삶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공자와 자사(子思)를 이은 맹자(孟子)는 공자의 도를 근본으로 하여 그 의의를 재서술하고 보충하였다. 그는 성선설(性善說)에 의한 4덕(四德)과 4단(四端)을 강조하였다. 즉, 그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인 · 의 · 예 · 지(仁義禮智)의 고유한 덕이 있다고 하였다. 또 선천적 양지양능설(良知良能說)을 주장하고, 또 인의의 정치 즉 왕도(王道)로써 치국 · 평천하를 이룰 것을 강조하였다.
전국시대 말기에는 순자(荀子)가 나와 역시 공자를 이었으며, 그는 특히 예(禮)로써 혼란한 천하를 질서있게 바로잡으려 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맹자와 순자는 도덕뿐만 아니라 경세사상을 부르짖음으로써 왕도정치에 있어 인민의 경제적 생활기반을 마련해 줄 것을 주장하였다.
유가의 경전(經傳)으로 《대학(大學)》·《중용(中庸)》·《논어(論語)》·《맹자(孟子)》의 4서와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예기(禮記)》·《춘추(春秋)》의 5경이 있다.
도가
전설에 따르면 노자는 물소를 타고 주나라를 떠났다[2]
장자의 나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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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는 황로학(黃老學) 또는 노장학(老莊學)이라고도 한다. 도가의 시조인 노자(老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함으로써 유가의 예악(禮樂: 예법과 음악), 형정(刑政: 정치와 형벌, 정치와 행정)의 형식주의를 반대하고 어린 아이의 천진성으로 복귀하여 무위자연의 사회를 이룰 것을 주장했다.
노자의 이른바 도덕(道德)은 보통 말하는 도덕(Virtue)이 아니고, 유가의 이른바 인의(仁義)라는 도덕의 상위개념으로서 도(道, Tao)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의 도는 형이상학적 본체임과 동시에 인성론(人性論)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뒤이어 전국시대에서는 장자(莊子)가 나와 도가철학의 인식론적 이론을 전개함으로써 만물제관(萬物齊觀) · 시비양행론(是非兩行論)을 주창하고 가치의 전환을 부르짖음으로써 평등 · 자유 · 무욕을 강조했다.
열자(列子)는 노자를 이어 형이상학적으로 기화(氣化)를 상세히 논하고, 허무청정(虛無淸淨) · 전성보전(全性保眞)을 주장함으로써 신비적 · 은둔주의적 철학 사상으로 기울어졌으며, 이 계통에 있는 양주(楊朱)는 위아설(爲我說)을 주장하여 이기쾌락주의(利己快樂主義)적인 독선에 빠졌다.
유가가 중국 고래의 전통적인 적극적인 면을 계승하여 형성된 것과 반대로 도가는 그 소극적인 면을 이어 무위자연의 사상체계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후세의 도교(道敎, Taoism)는 후한(後漢) 때 노자를 천존(天尊)으로 받들어 조직한 종교이지만, 도가 자체는 종교가 아니다.
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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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가는 묵자(墨子)를 시조로 하며, 겸애(兼愛)를 주장하여 유가의 형식주의와 계급제도를 타파하고, 하늘(天)이 만민을 겸애(兼愛: 박애의 뜻)하는 것과 같이 사람들도 서로 겸애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리사욕을 타파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절검(節儉)과 근로(勤勞)를 내세웠다.
묵가는 천귀사상(天鬼思想)을 중심으로 종교적 색채를 띠었으며, 또 삼표(三表)의 논리로써 경험을 중시하는 실증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이 경향은 후세 별묵(別墨)이라 불리며, 논리학파인 사공파(事功派)로 분파되었고, 사공파는 다시 전도파(傳道派) · 실행파(實行派) 및 기타로 나뉘었다. 실행파는 묵자의 역행주의(力行主義)를 이어 허행(許行) · 진상(陳相) 등의 철저한 무정부주의 · 사회주의 · 무위자연의 사상으로 흘렀다.
법가
상앙(商鞅)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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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가는 관자(管子)를 시조로 하는 학파로, 신불해(申不害)와 상앙(商鞅)을 거쳐 한비자(韓非子)에 이르러 집대성되었다. 법가는 정치철학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부국강병을 이루어 천하통일을 도모하려는 학파였다.
천하를 다스리는 원리에 대해, 법가는 엄격한 법치주의가 근본이라고 주장하였다.[3] 법가는 천하를 다스리는 원리는 법(法)과 술(術)이라고 주장하였다.[3] 법가에서 말하는 법(法)은 군주가 정하는 규범을 뜻하며 술(術)은 법을 행하는 수단을 뜻한다.[3]
관자는 공리(功利)와 법치(法治)를 겸한 사상가이며 또 실행가였다. 신불해는 패도(覇道)의 술(術)에 밝고, 상앙(商鞅)은 패도의 법(法)에 뛰어났으며, 이 술(術)과 법(法)은 한비자(韓非子)에 이르러 종합되어 형명법술(刑名法術)의 학으로 완성되었다. 한비자의 학은 유가 · 도가 · 법가의 사상을 종합으로써 이루어졌다.
명가
이 부분의 본문은 명가 (제자백가)입니다.
명가는 논리학파이며, 주요 사상가로는 등석(鄧析) · 혜시(惠施) · 공손룡 · 윤문(尹文) · 별묵(別墨) 등이 있다.
명가는 명(名)과 실(實), 즉 개념과 대상의 불일치를 교정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다.
등석은 양가지설(兩可之說), 즉 이율배반율(二律背反律)과 무궁의 사(無窮之辭)로써 유명하며, 혜시는 변설(辯說)로써 만물평등을 주장했으며, 공손룡은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으로 유명하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9361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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