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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경판 -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ABC_IT_K0549_T_011 URL복사 통합뷰어 014_0597_a_01L대지도론 제11권 014_0597_a_01L大智度論釋初品中舍利弗因緣第十六卷第十一 통합뷰어 용수 지음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014_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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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智度論釋初品中檀波羅蜜義第十七

17. 초품 중 단바라밀(檀波羅蜜)의 뜻을 풀이함

【經】佛告舍利弗。菩薩摩訶薩以不住法住般若波羅蜜中。以無所捨法具足檀波羅蜜。施者受者及財物不可得故。

  [經]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써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고 버릴 바 없는 법으로써 단바라밀을 구족하니, 베푸는 이와 받는 이와 베푸는 물건을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論】問曰。般若波羅蜜是何等法。

  [論] [문] 반야바라밀이란 어떤 법인가?

答曰。有人言。無漏慧根。是般若波羅蜜相。何以故。一切慧中第一慧。是名般若波羅蜜。無漏慧根是第一。以是故無漏慧根。名般若波羅蜜。

  [답]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렇게 말한다. 

  “무루지혜[無漏慧]의 뿌리가 반야바라밀의 모습이다. 왜냐하면 일체의 지혜 가운데 으뜸가는 지혜를 반야바라밀이라 하는데, 무루지혜의 뿌리가 곧 으뜸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무루지혜의 뿌리를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問曰。若菩薩未斷結。云何得行無漏慧。

  [문] 보살이 아직 번뇌[結]를 끊지 못했다면 어떻게 무루의 지혜를 행할 수 있겠는가?

答曰。菩薩雖未斷結。行相似無漏般若波羅蜜。是故得名行無漏般若波羅蜜。譬如聲聞人。行暖法頂法忍法世間第一法。先行相似無漏法。後易得生苦法智忍。復有人言菩薩有二種。有斷結使淸淨。有未斷結使不淸淨。斷結使淸淨。菩薩能行無漏般若波羅蜜。

  [답] 보살이 비록 번뇌를 끊지 못했으나 행하는 모습[行相]은 무루의 반야바라밀을 닮아 있다. 그러므로 ‘무루의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한다. 

  비유하건대 성문의 사람이 난법(煖法)27)?정법(頂法)?인법(忍法)?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을 행함에도 먼저 비슷한 무루의 법을 행하면 나중에 고법지인(苦法智忍)28)이 생기기 쉬운 것과 같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번뇌[結使]를 끊어 청정해진 이와 아직 번뇌를 끊지 못해 청정치 못한 이이다. 번뇌를 끊어 청정해진 보살은 능히 무루의 반야바라밀을 행한다.”

問曰。若菩薩斷結淸淨。復何以行般若波羅蜜。

  [문] 만일 보살이 번뇌를 끊어 청정하다면 어찌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가?

答曰。雖斷結使。十地未滿未莊嚴佛土未敎化衆生。是故行般若波羅蜜。

  [답] 비록 번뇌를 다 끊었으나 10지(地)가 아직 완전하지 못하고, 아직 불국토를 장엄하지 못했으며, 아직 중생을 교화하지 못했기에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復次斷結有二種。一者斷三毒。心不著人天中五欲。二者雖不著人天中五欲。於菩薩功德果報五欲。未能捨離。如是菩薩應行般若波羅蜜。譬如長老阿泥盧豆。在林中坐禪時。淨愛天女等。以淨妙之身來試阿泥盧豆。阿泥盧豆言。諸姊作靑色來不用雜色。欲觀不淨不能得觀。黃赤白色亦復如是。時阿泥盧豆。閉目不視。語言。諸姊遠去。

  또한 번뇌를 끊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3독을 끊어 그 마음이 인간과 하늘의 5욕(欲)에 집착되지 않음이요, 둘째는 비록 인간이나 하늘의 오욕에 집착되지는 않으나 보살의 공덕과 과보에 대하여는 아직 5욕을 버리지 못함이니, 이런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비유하건대 장로 아니로두(阿泥盧豆)가 숲 속에서 좌선할 때 정애천녀(淨愛天女) 등이 맑고 묘한 몸으로 찾아와서는 아니로두를 시험하려 했다. 이에 아니로두는 말하기를 “아가씨들아, 푸른빛으로 오너라. 뒤섞인 빛은 필요 없다”라고 하고는 부정(不淨)을 관하려 하였으나 관을 이루지 못했다. 황색ㆍ적색ㆍ백색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是時天女卽滅不現。天福報形猶尙如是。何況菩薩無量功德果報五欲。又如甄陀羅王。與八萬四千甄陀羅。來到佛所彈琴歌頌以供養佛。爾時須彌山王及諸山樹木。人民禽獸一切皆舞。佛邊大衆乃至大迦葉。皆於座上不能自安。是時天須菩薩。問長老大迦葉。耆年舊宿行十二頭陀法之第一。何以在座不能自安。大迦葉言。三界五欲不能動我。是菩薩神通功德果報力故。令我如是。非我有心不能自安也。譬如須彌山四邊風起不能令動。至大劫盡時毘藍風起如吹爛草。以是事故知。二種結中一種未斷。如是菩薩等應行般若波羅蜜。是阿毘曇中。如是說。復有人言。般若波羅蜜是有漏慧。何以故。菩薩至道樹下乃斷結。先雖有大智慧有無量功德。而諸煩惱未斷。是故言菩薩般若波羅蜜是有漏智慧。復有人言。從初發意乃至道樹下。於其中間所有智慧。是名般若波羅蜜。成佛時是般若波羅蜜。轉名薩婆若。復有人言。菩薩有漏無漏智慧。總名般若波羅蜜。何以故。菩薩觀涅槃行佛道。以是事故。菩薩智慧應是無漏。以未斷結使事未成辦故。應名有漏。復有人言。菩薩般若波羅蜜。無漏無爲不可見無對。復有人言。是般若波羅蜜不可得相。若有若無若常若無常若空若實。是般若波羅蜜。非陰界入所攝。非有爲非無爲非法非非法。無取無捨不生不滅。出有無四句。適無所著。譬如火焰四邊不可觸以燒手故。般若波羅蜜相亦如是。不可觸以邪見火燒故。

  이때 아니로두는 눈을 감은 채 쳐다보지 않으면서 말했다. 

“아가씨들아, 멀리 물러가라.” 

  이에 즉시 천녀들이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의 복덕으로 나타난 형상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보살의 한량없는 공덕의 과보로 닦는 5욕겠는가.

  또한 견다라(甄陀羅) 왕이 8만 4천의 견다라들과 함께 부처님께 와서 거문고를 튀기고 노래를 불러 부처님께 공양했다. 이때 수미산왕과 산과 나무와 인간과 금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춤을 추었으며, 부처님 곁의 대중들과 큰 가섭까지도 모두가 자리에서 안정을 찾지 못했다.

  이때 천수(天須)보살이 큰 가섭에게 물었다. 

  “나이 많은 구숙(舊宿)께서는 12두타(頭陀)의 법을 행하심에 으뜸이거늘 어찌하여 자리에서 스스로 안정을 찾지 못하십니까?”

  큰 가섭이 대답했다.

  “삼계의 5욕이 나를 요동시킬 수 없지만, 이는 보살의 신통한 공덕과 과보의 힘인 까닭에 나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하는 것이다. 내게 마음이 있어서 스스로 안정치 못한 것이 아니다. 비유하건대 수미산은 사방에서 바람을 일으켜도 움직일 수 없으나 대겁이 다할 때에 이르러 비람풍(毘藍風)이 일어나면 마치 마른 풀이 날리듯 요동치는 것과 같다.”

  이런 일로 인하여 두 가지 번뇌 가운데 한 가지를 아직 끊지 못했다면 이러한 보살들은 응당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아비담(阿毘曇)29)에서의 주장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반야바라밀은 유루의 지혜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보살이 보리수[道樹] 밑에 이르러서야 번뇌를 끊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비록 큰 지혜와 한량없는 공덕이 있었으나 모든 번뇌를 아직 끊지 못했나니, 그러므로 보살의 반야바라밀을 유루의 지혜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 발심할 때로부터 보리수하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의 지혜를 반야바라밀이라 하고 마지막 성불할 때의 반야바라밀은 다시 살바야(薩婆若)30)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의 유루ㆍ무루의 지혜를 모두 합해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왜냐하면 보살은 열반을 관찰하고 불도를 행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로 인하여 보살의 지혜는 응당 무루일테지만, 아직 번뇌를 끊지 못했고 일을 다 끝내지 못했으므로 유루라 해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의 반야바라밀은 무루이고, 무위이고, 볼 수 없고[不可見], 대할 수 없다[無對].”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반야바라밀은 얻을 수 없는 모습이니, 혹은 있는 듯, 혹은 없는 듯, 혹은 항상한 듯, 혹은 무상한 듯, 혹은 공한 듯, 혹은 실한 듯하다. 이 반야바라밀은 음(陰)?계(界)?입(入)에 속하지 않는다.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니며,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며,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곧 유무(有無)의 사구(四句)를 벗어나 실로 집착할 바가 없다. 비유하건대 마치 불꽃이 사방 어디에서도 손을 댈 수 없는 것과 같다. 손을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의 모습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만질 수 없으니, 삿된 소견의 불이 태우기 때문이다.”

 

問曰。上種種人說般若波羅蜜。何者爲實。

  [문] 앞에서 갖가지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말했는데 무엇이 옳은가?

答曰。有人言各各有理皆是實。如經說。五百比丘各各說二邊及中道義。佛言。皆有道理。有人言。末後答者爲實。所以者何。不可破不可壞故。若有法如毫氂許有者。皆有過失可破。若言無亦可破。此般若中有亦無無亦無非有非無亦無。如是言說亦無。是名寂滅無量無戲論法。是故不可破不可壞。是名眞實般若波羅蜜。最勝無過者。如轉輪聖王降伏諸敵而不自高。般若波羅蜜亦如是。能破一切語言戲論。亦不有所破。復次從此已後品品中種種義門。說般若波羅蜜。皆是實相。以不住法住般若波羅蜜中。能具足六波羅蜜。

  [답]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각각 이치가 있으니, 모두가 진실이다” 했다. 마치 경의 말씀과 같다. 곧 5백 비구가 각자 두 가[二邊]와 중도(中道)의 이치를 말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두 도리가 있다” 하셨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대답한 것이 진실이다. 왜냐하면 깨뜨릴 수 없고,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법이 털끝만치라도 틈이 있다면 모두가 허물이 있으면 가히 깨뜨릴 수 있고, 설사 없다고 할지라도 또한 깨뜨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반야에는 유()도 없고 무()도 없고 비유비무(非有非無)도 없다. 나아가 이러한 말조차 없으니, 이것을 적멸하고 한량없고 희론 없는 법이라 한다. 그러므로 깨뜨릴 수 없고 무너뜨릴 수 없다. 이것을 참된 반야바라밀이라 하니, 가장 뛰어나 지날 이가 없다. 마치 전륜성왕이 모든 적을 항복시키고도 스스로 교만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반야바라밀도 이와 같아서 온갖 말과 희론을 깨뜨렸으나 깨뜨린 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 뒤로 품마다 갖가지 의문(義門)으로 반야바라밀을 설명하나 모두가 진실한 모습이다.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6바라밀을 구족한다’를 풀이하리라.

 

問曰。云何名不住法住般若波羅蜜中能具足六波羅蜜。

  [문] 어떻게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능히 육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하는가?

答曰。如是菩薩觀一切法非常非無常。非苦非樂非空非實。非我非無我。非生滅非不生滅。如是住甚深般若波羅蜜中。於般若波羅蜜相亦不取。是名不住法住。若取般若波羅蜜相。是爲住法住。

  [답] 이와 같이 보살은 온갖 법은 항상함이 아니요 무상함도 아니며, 괴로움이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며, 공도 아니요 실도 아니며, 나도 아니요 나 없음도 아니며, 생멸도 아니요 생멸치 않음도 아닌 줄로 관찰하며 이처럼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되 반야바라밀의 모습에 집착되지도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머무른다’고 한다. 만일 반야바라밀의 모습을 취한다면 이는 머무는 법으로 머무는 것이 된다.

問曰。若不取般若波羅蜜相。心無所著。如佛所言一切諸法欲爲其本。若不取者。云何得具足六波羅蜜。

  [문] 만일 반야바라밀의 모습을 취하지 않아서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모든 법은 탐욕이 근본이 된다’ 하셨는데 만일 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6바라밀을 갖출 수 있겠는가?

答曰。菩薩憐愍衆生故。先立誓願我必當度脫一切衆生。以精進波羅蜜力故。雖知諸法不生不滅如涅槃相。復行諸功德。具足六波羅蜜。所以者何。以不住法住般若波羅蜜中故。是名不住法住般若波羅蜜中。

  [답] 보살은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먼저 서원을 세우기를 “내가 반드시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 한다. 정진의 힘 때문에 비록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서 열반의 모습 같은 줄 알지만 다시 모든 공덕을 행하여 6바라밀을 구족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써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일컬어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반야바라밀에 머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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