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T6taKr6FZ8w
장중정은 중화민국총통 장개석(蔣介石)의 본명이다
국가를 위해 독립을 추구하고, 민족을 위해 자유를 쟁취했으니 위대하도다.
이 사람은 망하는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민족혼을 계승하여 정의를 쟁취하여 仁함을 이룩했으니
국가 존망의 위기에 큰 절개[독립운동]를 실천하여 천추에 정기를 빛냈도다. (운영자 초역)
중화민국총통 장중정(蔣中正)
장개석의 찬사에 걸맞게 박정희 대통령도 우리말로 백범의 자주독립정신을 기렸다.
ko.wikipedia.org/wiki/%EA%B9%80%EA%B5%AC
김구(金九, 1876년 8월 29일 (음력 7월 11일) ~ 1949년 6월 26일)는 대한제국의 승려, 교사,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인, 남북통일 활동가였다. 항일비밀결사인 한인애국단을 이끌었고 한국 광복군을 조직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을 역임하였다.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다.
ko.wikipedia.org/wiki/%EC%9E%A5%EC%A0%9C%EC%8A%A4
1932년 이봉창 의거와 윤봉길 의거를 계기로 장제스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수시로 지원금을 보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키던 김구와 조선민족혁명당 김규식·김원봉 등을 설득하여 연합전선 구축을 권고하기도 했다.
카이로 회담 전에 김구 등 임시 정부 요인들을 만난 장개석은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고 이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영국의 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장개석은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한국을 적절한 시기에 독립시킬 것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낸다.
ko.wikipedia.org/wiki/%EC%9D%B4%EC%8B%9C%EC%98%81_(1868%EB%85%84)
이시영(李始榮, 1868년 12월 3일 한성부 ~ 1953년 4월 17일)은 조선,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경주로, 자(字)는 성흡(城翕), 성옹(聖翁)[1], 호는 성재(省齋)·시림산인(始林山人), 본명은 성흡(聖翕)이다. 총리대신을 지낸 김홍집의 사위이다.[1] 1885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1891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부승지, 우승지(右承旨)에 올라 내의원 부제조, 상의원 부제조 등을 지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독립 운동에 투신, 일가족 40인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고, 1919년 9월 통합 임정 수립 이후 김구, 이동녕 등과 함께 임시 정부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광복 이후 귀국,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임정 요인이 단정론과 단정반대론으로 나뉘었을 때는 단정론에 참여하였다. 1948년 7월 24일부터 1951년 5월 9일까지 대한민국의 제1대 부통령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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