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바하
https://www.youtube.com/watch?v=0ntn3Q28BD4&t=158s
신흥사 통일대불과 외설악 릉선
https://www.youtube.com/watch?v=MwC84nAJ85c
외설악의 릉선
https://www.youtube.com/watch?v=rw3TZtVSLlo
조계선풍시원도량설악산문[편액]
아래의 선종 구산(禪宗九山)조에는
"가지산문(迦智山門)
설악산에서 도의(道義: d. 825)의 법을 배운 제자 체징(體澄: 804-890)이 장흥의 가지산(迦智山)에서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하고 도의의 종풍을 떨쳤다."고 했으니 편액의 '시원도량'이란 이를 근거로 한 표현이다.
가지산문(迦智山門)
설악산에서 도의(道義: d. 825)의 법을 배운 제자 체징(體澄: 804-890)이 837년에 당에 건너갔으나 실망하고 840년에 신라로 돌아와서 장흥의 가지산(迦智山)에서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하고 도의의 종풍을 떨쳤다. 이로써 선종 9산의 일파로 가지산문이 최초로 성립되었다.
조계종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A%B3%84%EC%A2%85
조계종(曹溪宗)은 한국 불교의 한 종파이다. "조계"라는 낱말은 중국 선종 6조인 혜능(慧能)의 별호에서 유래하였다.[1]
조계종이라는 종파 이름이 한국 불교의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고려 때이다. 즉 신라 때부터 내려온 9산 선문(九山禪門)을 고려 때 합친 것으로,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수립한 천태종이 종세(宗勢)를 확장해가자 이에 당시의 선종(禪宗)의 제 분파들이 자극을 받아 합쳐져서 성립된 것이 조계종이다.[1]
조계종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고려 시대이지만 선법(禪法)의 전승이라는 관점에서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성립된 9산 선문 중 최초로 성립된 산문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의 개조인 도의(道義: fl. 821)국사를 조계종의 초조(初祖), 즉 종조(宗祖)로 여긴다.[2][3][4][5]
대각국사 의천에 의한 천태종의 성립의 영향을 받아 조계종이 성립된 후,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 · 백운(白雲) · 태고국사 보우(普愚: 1301-1382)가 조계종의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1]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보조국사 지눌을 조계종의 중천조(中闡祖: 분명하게 밝힌 조사)로 여기며,[6] 태고국사 보우를 중흥조(中興祖: 중흥시킨 조사)로 여긴다.[7]
이후에는 선종(禪宗)의 여러 교파 중 조계종만이 그 법맥(法脈)을 오래 유지하여 오다가 조선 태종 7년(1407년)에 천태종과 총남종(摠南宗)을 조계종과 통합하여 "선종(禪宗)"이라 이름을 고쳤다.[1]
그 후 1941년에 또다시 "선종(禪宗)"에 교종(敎宗)을 합하여 단일종(單一宗)으로 만들었다.[1] 이때 혜능선사가 있었던 조계산이라는 이름을 빌려다 조계종이라 명명하고, 태고국사 보우(普愚: 1301-1382)를 종조(宗祖)[1] 또는 중흥조(中興祖)[7]로 삼아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종 구산(禪宗九山)
https://ko.wikipedia.org/wiki/%EA%B5%AC%EC%82%B0%EB%AC%B8
선종 구산(禪宗九山 · Nine Mountain Monasteries[1])은 남북국 시대의 신라 때부터 시작되어 고려 태조 때 완성된 불교 선종(禪宗)의 구산문(九山門)을 가리킨다.[2]
중국에서 성행한 달마(達摩)의 선법(禪法)을 이어받아 한국 선종의 종풍(宗風)을 일으킨 아홉 산문을 가리키는 것으로,[2] 가지산문 · 동리산문 · 봉림산문 · 사굴산문 · 사자산문 · 성주산문 · 수미산문 · 실상산문 · 희양산문이다.[2][3]
이후 이들 9산문은 선적종(禪寂宗)에 속하게 되며 의천(義天)이 만든 선종 천태종(天台宗)에 대립하였다가 조계종(曹溪宗)으로 개칭되어 선종 2종파 중의 하나가 되었다.[2]
- 가지산문(迦智山門)
설악산에서 도의(道義: d. 825)의 법을 배운 제자 체징(體澄: 804-890)이 837년에 당에 건너갔으나 실망하고 840년에 신라로 돌아와서 장흥의 가지산(迦智山)에서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하고 도의의 종풍을 떨쳤다. 이로써 선종 9산의 일파로 가지산문이 최초로 성립되었다. - 실상산문(實相山門)
홍척(洪陟: fl. 830)이 당의 지장(智藏: 735-814)에게서 배워와(826) 남원의 지리산 실상사(實相寺)에서 실상산문을 열었다. - 희양산문(曦陽山門)
도헌(道憲: 824-882)은 준범(遵範) · 혜은(慧隱)의 법맥을 받아와 문경의 봉암사(鳳岩寺)에서 희양산문을 열었다. - 봉림산문(鳳林山門)
현욱(玄昱: 787-868) · 심희(審希: fl. 9세기) 등에 의해 창원의 봉림사(鳳林寺)에서 봉림산문이 형성되었다. - 동리산문(桐裡山門)
혜철(惠哲: 785-861)에 의해 곡성의 태안사(泰安寺)에서 동리산문이 형성되었다. - 성주산문(聖住山門)
무염(無染: 800-888)에 의해 보령의 성주사(聖住寺)에서 성주산문이 형성되었다. - 사자산문(獅子山門)
도윤(道允: 798-868) · 절중(折中)에 의해 영월의 흥령사(興寧寺)에서 사자산문이 형성되었다. - 사굴산문(闍崛山門)
범일(梵日: 810-889)에 의해 강릉의 굴산사(崛山寺)에서 사굴산문이 형성되었다. 사굴산문은 도굴산문이라고도 한다. 이로써 신라말에 8산이 형성되었다. - 수미산문(須彌山門)
이엄(利嚴: 869-936)에 의해 고려초에 해주의 광조사(廣照寺)에서 수미산문이 열려서 9산 선문이 정립되었다.
*사찰 내부 사진은 2019년 5월말경 참배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설악산 神興寺
https://kydong77.tistory.com/18308?category=488153
심우도/ 신흥사 극락보전
https://kydong77.tistory.com/18309?category=48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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