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에게서 少年에게
ㅡ 최남선(崔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
* 18세作
1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泰山(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추르릉, 콱.
2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어,
陸上(육상)에서, 아무런 힘과 權(권)을 부리던 者(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추르릉, 콱.
3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只今(지금)까지 업거든*1) 통기*2) 하고 나서 보아라.
秦始皇(진시황), 나팔륜*3)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亦是(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ㄹ썩, 처······ㄹ썩, 척, 추르릉, 콱.
4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그만 山(산)모*4) 를 依支(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者(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추르릉, 콱.
5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적은 是非(시비), 적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따위 世上(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추르릉, 콱.
6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世上(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中(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膽(담) 크고 純精(순정)한*5) 少年輩(소년배)들이,
才弄(재롱)처럼 貴(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少年輩(소년배) 입 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추르릉, 콱.
각주
*1) 업거든 : ‘있거든’으로 바로잡는 것이 자연스럽다.
*2) 통기 : 기별을 보내어 알게 함. 통지.
*3) 나팔륜 : 나폴레옹
*4)산모 : 산모퉁이
*5)순정한 : ‘純情’으로 바로잡는 것이 자연스럽다.
* 최남선 : 서울 출생(1890), 일본 동경부립 제일 중학 입학, 2개월 만에 귀국(1904), 와세다 대학 고등사범 지리역사학과 입학(1906), 종합 월간지 『소년』 창간(1908), 종합 월간지 『청춘』 창간(1914), 3·1 운동시 「독립 선언서」 기초. 체포되어 다음해 출옥(1919), 『동명』 발간(1922), 만주 신경에서 『만몽일보사』 고문 역임(1938), 해방 후 친일 반민족 행위로 기소. 수감되었다가 병으로 보석 출감(1949), 사망(1957)
(『소년』 창간호, 1908. 11.)
*최남선 18세 作
출처: https://skyclear247.tistory.com/104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B%82%A8%EC%84%A0
최남선(崔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이며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반면, 이광수와 함께 거론되는 변절한 친일파이다. 아명은 창흥(昌興), 자는 공륙(公六), 아호는 육당(六堂)이며, 본관은 동주.
한성부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강원도 철원을 거쳐 경상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중퇴와 복학을 되풀이하다가 1907년 와세다 대학 재학 중 동맹 휴학 사건으로 인하여 퇴학 처분되어 귀국했다. 1908년 이광수와 함께 소년지를 창간했으나 한일 합방 후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되었고, 1912년 이광수의 도움으로 《붉은 저고리》, 1913년 《아이들 보이》, 《새별》등의 잡지를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신문지법' 명령으로 모두 강제 폐간되었다. 1914년에는 잡지 《청춘》을 발간했으나 1918년 일본의 압력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3.1 운동을 사주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투옥, 1921년에 석방되었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1924년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과 총독부의 압력 등으로 폐간,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27년 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성향으로 전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적극적인 친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1950년대에 장준하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1]
1957년 10월 10일 뇌일혈로 별세한 그는 일제 강점기 시대 동안에 이광수,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EbAfIkGQo8&list=RDkEbAfIkGQo8&start_radio=1
https://www.youtube.com/watch?v=xP019X7iowQ
https://www.youtube.com/watch?v=zTfNqe1MUh4
https://www.youtube.com/watch?v=Y24Zr-ob2dM
https://www.youtube.com/watch?v=VWlQmM3V3OE
[참고]
https://kydong77.tistory.com/18185
https://www.youtube.com/watch?v=0yeWwbnCGs0
[정동진 해안]
https://www.youtube.com/watch?v=yw_8ZEFwmvk
https://www.youtube.com/watch?v=wOBYEIdaUmA
[보너스]
정동진 썬크루즈 호텔 & 리조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vjGY8msB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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