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kr.buddhism.org/%eb%b2%bd%ec%95%94%eb%a1%9d/?mod=document&pageid=1&uid=79 

 

벽암록(2) 11칙 ~ 20칙

벽암록 제11칙 황벽화상과 술 찌꺼기나 먹은 놈(酒糟漢) “수행자 흉내낸다고 깨달음 얻어지지 않는다” {벽암록} 제11칙에는 황벽 화상이 당나라에는 많은 선승이 있지만, 모두 선사인체하면서

kr.buddhism.org


[第011則]噇酒糟漢
〈垂示〉垂示云。佛祖大機。全歸掌握。人天命脈。悉受指呼。等閑一句一言。驚群動衆。一機一境。打鎖敲枷。接向上機。提向上事。且道什麽人曾恁麽來。還有知落處麽。試擧看。
〈本則〉擧。黃檗示衆云。汝等諸人。盡是噇[口+童]酒糟漢。恁麽行脚。何處有今日。還知大唐國裏無禪師麽。時有僧出云。只如諸方匡徒領衆。又作麽生。檗云。不道無禪。只是無師。
〈頌〉凜凜孤風不自誇。端居寰海定龍蛇。大中天子曾輕觸。三度親遭弄爪牙。

벽암록 제11칙 황벽화상과 술 찌꺼기나 먹은 놈(酒糟漢)

“수행자 흉내낸다고 깨달음 얻어지지 않는다”

{벽암록} 제11칙에는 황벽 화상이 당나라에는 많은 선승이 있지만, 모두 선사인체하면서 진정한 선을 지도할 선사가 없다고 비판한 법문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황벽 화상이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그대들은 모두가 술찌꺼기나 먹고 진짜 술을 마시고 취한 듯이 흉내 내는 녀석들이다.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이 언제 불법을 체득할 수가 있겠는가? 위대한 당(唐)나라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때 어떤 스님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전국 여러 총림에서 대중을 지도하고 거느린 선승들은 무엇입니까?”

황벽 화상이 말했다.
“선(禪)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선사(禪師)가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擧. 黃檗示衆云, 汝等諸人, 盡是酒糟漢, 恁行脚, 何處有今日. 還知大唐國裏無禪師. 時有僧, 出云, 只如諸方匡徒領衆, 又作生, 檗云, 不道無禪, 只是無師.



“선은 있지만 선사가 없다”는 지적
공부 게으른 사람 귀담아 들어야

황벽 선사의 법문은 〈전등록〉제9권에 진정한 수행자가 되도록 간절하게 설하고 있다.

{벽암록}에서 원오는 “황벽(?~850) 선사는 7척의 큰 키에다 이마에는 둥근 구슬이 있었고, 천성적으로 선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또, 체구도 당당한 천성의 선승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특히 황벽의 문하에 임제의현이라는 걸출한 선승이 배출되어 당대 선불교의 사상을 극대화한 사실은 어록의 왕이라고 불리는 {임제어록}에 유감없이 잘 전하고 있다.

그런 황벽 선사가 수행자들에게 “그대들은 모두가 술찌꺼기나 먹고 진짜 술을 마시고 취한 듯이 흉내 내는 녀석들이다.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이 언제 불법을 체득할 수가 있겠는가? 위대한 당(唐)나라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라고 충격적인 말을 하고 있다.

당주조한(酒糟漢)이라는 말은 월주(越州) 지방의 사람들이 술 찌꺼기를 좋아해 잘 먹었기 때문에 월주 사람들을 욕하는 말로 사용했었는데, 뒤에 유행되어 사람을 욕하는 말이 되었다. 진짜 술을 마시지도 않고 술찌꺼기나 조금 먹은 주제에 술에 취한 행세를 하는 사람을 욕하는 말이다.

선에서는 특히 언어 문자에 집착하여 불법의 대의를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선승을 매도하는 말로 사용하며, 어록에 “옛 사람의 술 찌꺼기나 빨아먹는 놈”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이다. 선수행을 하면서 제대로 불법의 대의를 철저하게 체득하지 못한 선승이 선승들의 어록을 몇 마디 이해한 분별심에 만족한 사람이 진짜 대단한 선승처럼 행세하는 사이비 선승들을 매도하는 말이다.

엉터리 선수행자들은 선수행자 행세를 하면서 천하를 이리 저리 왔다 갔다 세월만 보내고 신발(짚신)만 소비시킨다. 시주들의 은혜를 소화시키지도 못하고 빚 덩이로 짊어지고 다니는 한심한 놈들이다. 이러한 수행자가 어느 세월에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여 정법의 안목을 밝히고 중생을 구제할 수가 있겠는가?

황벽 선사는 또 “이렇게 큰 당나라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라고 충격적인 말을 하고 있다. 술 찌꺼기나 먹고 술에 취한 사람처럼, 선수행자가 진정한 수행을 하지 않고 있는 수행자들에게 정신 차려 진정한 수행자가 되도록 경책하는 법문을 하고 있다. 원오는 수시에 이러한 황벽선사의 법문은 대중을 놀라게 하고 수행자의 마음을 움직인 법문이었다고 말한다.

그 때에 어떤 스님이 앞으로 나와서 황벽 선사에게 말했다. “전국 여러 총림에서 대중을 지도하고 거느린 선승들은 무엇입니까? 선사는 당나라에 전국에 선사가 한명도 없다고 말했는데, 황벽산을 비롯하여 천하의 선원에 훌륭한 선사들이 많은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생각 합니까?”라고 반문한 것이다. 이 스님은 제법 선승의 기개가 있는 말을 한 것이다.

황벽 선사는 이러한 선승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선(禪)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선사(禪師)가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가 이 공안의 안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선이 없다(無禪)는 것이 아니라, 선법을 체득하여 분명히 수행자들을 지도하며 선을 깨닫게 하는 진정한 선사가 없다고 주장한 말이다. 황벽의 말은 선의 궁극적인 정신을 확실하고 완전하게 제시하고 있다. 선은 근원적인 본래심(불심)으로 지금 여기서 자기 자신의 일을 지혜롭게 전개하는 불성의 지혜작용 그 자체인 것이다.

선의 수행으로 불법을 체득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선사의 가르침과 지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본인이 자각하는 일 뿐이기 때문이다. 선에서는 물이 차고 따뜻한지 본인이 물을 마시고 자각해야 한다는 의미로 냉난자지(冷暖自知)라는 말을 강조한다.

선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과 함께 온 우주에 가득히 충만 되어 전개되고 있다. 일체의 모든 존재가 인연법에 따라서 여법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시절 인연에 맞추어 자신과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선은 각자의 불심으로 자각하여 체득되는 것이며, 불심의 지혜가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본래심의 지혜작용(선)은 그대로 숨김없이 전개되는 것이다.

선은 다른 사람이나 스승으로부터 선의 깨달음을 직접 전해 받거나 남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불심(본래심)의 지혜작용 그 자체이기 때문에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보고 듣게 하는 상대적인 어떤 물건이 아니다.

황벽 선사가 당나라에 선사가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한 것은 지극히 올바른 안목으로 설한 법문이다. 온 우주에도 선사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디에 유명한 선사가 있다고 찾아가고, 운수 행각한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동서로 왔다 갔다 세월만 보내고 있다. 이런 놈은 술 찌꺼기를 먹고 술에 취한 행세를 하는 놈이니 언제 불법을 깨닫고 선을 체득할 날이 있을까? 황벽의 법문은 수행자들에게 진정한 자비심을 베푼 위대한 선승의 모습이다.

설두는 이 공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늠름한 기상을 자랑하지 말라. 단엄하게 세상에 머물며 용과 뱀을 구분하네. 대중천자(大中天子)가 일찍이 가볍게 건드렸다가 발톱과 어금니에 세 차례나 할퀴었네.”

먼저 “늠름한 기상을 자랑하지 말라. 단엄하게 세상에 머물며 용과 뱀을 구분하네.”라는 두 구절은 황벽 선사의 위풍당당한 풍모를 칭찬한 것이다. “당나라에 선사가 없다”라고 말한 황벽의 선법은 천하에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독자적인 안목이라고 할 수 있다.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에 머물며 용과 뱀을 구분할 수 있는 진정한 불법의 안목을 구족한 선승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술 찌꺼기나 먹는 수행자와 올바른 선승을 판단하는 지혜의 안목을 구족한 황벽선사를 지혜작용(大機大用)을 칭찬하는 말이다.

황벽이 용과 뱀을 확정한 지혜작용(大機大用)을 “대중천자가 일찍이 가볍게 건드렸다가 발톱과 어금니에 세 차례나 할퀴었네.”라는 게송으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대중천자는 당 선종(宣宗) 황제로서 13살 때에 왕실에서 추방되어 잠시 출가하여 제안(齊安)선사의 문하에 서기로 일할 때, 당시 황벽은 수좌로 함께 있었다. 어느 날 황벽이 부처님께 예불하는 모습을 보고, 대중천자는 “예배를 해서 무엇 하려는가?”질문하자 황벽이 갑자기 뺨을 후려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설두는 이것을 게송으로 읊고 있다.

뒤에 선종은 황벽 선사에게 거친 사문이라고 호를 내렸는데, 배휴가 건의하여 ‘단제선사’라는 법호를 내렸다고 전한다. 원오는 평창에 “설두의 이 게송은 참으로 황벽 화상의 본래면목(眞贊)과 똑같이 닮았는데, 사람들은 본래면목(眞贊)인지 잘 모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第012則]麻三斤
〈垂示〉垂示云。殺人刀活人劍。乃上古之風規。亦今時之樞要。若論殺也。不傷一毫。若論活也。喪身失命。所以道。向上一路。千聖不傳。學者勞形。如猿捉影。且道。旣是不傳。爲什麽。卻有許多葛藤公案。具眼者。試說看。
〈本則〉擧。僧問洞山。如何是佛。山云。麻三斤。
〈頌〉金烏急玉免速。善應何曾有輕觸。展事投機見洞山。跛鱉盲龜入空谷。花簇簇錦簇簇。南地竹兮北地木。因思長慶陸大夫。解道合笑不合哭。咦。

벽암록 제12칙 동산화상의 삼 세근(麻三斤)

“세근 짜리 삼베가사 입은 그대가 부처라네”

{벽암록}제12칙에는 유명한 동산수초(洞山守初: 910~990) 화상의 삼베 세근에 대한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어떤 스님이 동산수초화상에게 질문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동산 화상이 말했다. “삼 세근(麻三斤)이다.”

擧. 僧問洞山, 如何是佛. 山云, 麻三斤.


‘삼세근’은 가사걸친 수행자 상징
부처를 다른 데서 찾지 말라는 뜻

동산은 두 사람이 유명한데, 당대 조동종의 개창자인 동산양개 화상과 동산수초(洞山守初(910~990) 화상이 있다. 여기는 운문문언의 제자인 동산수초 선사이다. 이 공안은 {무문관} 18칙에도 제시하고 있는데, {전등록}23권 명교대사전과 {오등회원}15권 동산전 등에 수록하고 있다. 동산 화상이 처음 운문 화상을 참문하고 깨달음을 체득한 이야기는 ‘평창’에 자세히 싣고 있으며 {무문관}15칙에도 제시하고 있다.

어떤 스님이 동산 화상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질문하였다. 스님이 질문한 부처는 어떤 부처를 말하고 있는가? 부처의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삼신(三身) 가운데 어떤 부처인가? 화신인 석가불인가. 보신인 아미타불인가. 법신인 비로자나불인가? 도대체 부처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면 부처를 체득할 수가 없다.

여기서 질문하는 스님은 부처란 고귀하고 위대하고 존엄한 청정하신 부처의 이미지를 가지고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질문하고 있다. 부처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산은 곧장 “삼 세근(麻三斤)”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무문관〉21칙에 어떤 스님이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질문하니, 운문은 “똥 젓는 막대(乾屎)”라고 대답한바 있다.

{벽암록} 제7칙에는 혜초가 법안 선사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라는 질문에 법안은 “그대는 바로 혜초이다.”라는 선문답과 똑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산 화상이 대답한 ‘삼 세근(麻三斤)’은 어떤 것인가. 먼저 이 말의 의미부터 이해해야 한다. [통전(通典)] 제6권에 의하면 당나라에는 세근(三斤)의 마사(麻絲)가 하나의 단위로서 한 뭉치 마사(麻絲)의 무게가 세 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삼 세근의 실은 가사 한 벌(승복)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이다. 당시에는 삼베(麻布)로 가사나 승복을 만들었다. 동산의 스승인 운문문언의 〈비문〉에도 “兩斤麻 一段布” 혹은 “三斤麻 一匹布”라는 문답이 있다.

{전등록} 10권 ‘조주’장에 어떤 스님이 질문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조주 선사가 말했다. “노승이 청주에 있을 때 한 벌의 승복을 만들었는데 마포의 무게가 7근이나 되었지.”라고 전하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 공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씹기 어려워 입에 갖다 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담박하여 맛이 없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부처에 대한 질문에 많은 대답을 하였다. 어떤 사람은 ‘대웅전 안에 계신 분’이라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32상(三十二相)을 갖춘 분’ 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장림산 밑에 있는 지팡이’라고 했다. 그러나 동산스님은 ‘삼 세근(麻三斤)’ 이라고 했으니 참으로 옛 사람의 혀를 꼼짝 달싹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 저런 말을 둘러대어, ‘동산스님이 그 때 창고에서 마포(麻)를 저울질하고 있었는데, 어떤 스님이 부처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기 때문에 ‘삼세근(麻三斤)이라고 대답한 것이다’라고 하고, 또는 ‘동문서답(東問西答)을 하였다’ 고 한다. 또는 ‘그대가 부처인데 다시 부처를 물었기 때문에 동산스님은 우회해서 대답한 것이다’ 라고도 말하고 있다. 더욱이 안목 없는 녀석들은 한결같이 ‘삼세근(麻三斤)이 바로 부처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전혀 맞지 않는 소리다. 너희들은 만약 이처럼 동산스님의 말을 더듬거렸다가는 미륵부처가 하생(下生)할 때까지 참구해도 불법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즉 “부처란 무엇인가?”라는 스님의 질문에 동산 화상이 “마 세근”이라고 대답한 것은 “세근(三斤)의 마사(麻絲)로 만든 가사(승복)를 걸친 스님이 바로 부처이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질문하고 있는 그대가 바로 부처일세!’라는 의미이다.

법안 화상이 “그대가 바로 혜초일세!”라고 대답한 것처럼, ‘혜초 그대가 바로 부처다’라고 단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부처를 밖에서 찾아도 찾을 수가 없고 얻을 수도 없다. 또한 부처란 어떤 형체가 있는 존재도 아니다. 결국 부처란 자기 자신이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선에서 말하는 부처는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여 지금 여기서 자신의 일에 번뇌 망념이 없는 불성의 지혜작용을 전개하는 자기의 본래면목을 말한다. 본래 면목이란 자기의 참된 모습과 지혜의 안목을 구족한 자기 자신이 지금 여기서 지혜로운 삶을 전개하는 것을 말한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삼신(三身)은 지금 여기서 불성의 지혜로운 삶으로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보살의 원력과 서원을 지금 여기 자신의 일을 통해서 실현하는 것이 보신이요, 시절인연에 맞추어 다양하게 변화한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화신이고, 자신의 원력과 지금 여기서 시절인연의 일을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불성의 지혜작용이 법신인 것이다.

{금강경}에서 “모든 모양을 모양이 아닌 것으로 파악해서 볼 수 있는 반야의 지혜를 구족한다면 곧바로 여래를 친견할 수 있다(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라고 설한다. 여기서 말하는 여래도 외부에 존재하는 여래가 아니라 각자 자기 자신의 깨달음의 당체인 법신 여래를 말한다. {금강경}에서 음성으로나 모양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설하고 있는 말씀도 잘 사유하고 음미해야 한다.

설두 화상의 게송을 통해서 설두의 견해를 살펴보자.

처음 “해(金烏)는 급하고, 달(玉兎)은 빠르다. 멋지게 근기에 응수 했으니 어찌 경솔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은 “무엇이 부처입니까?”라는 스님의 질문에 동산은 신속하고도 적절하게 “삼 세근”이라고 대답한 것을 읊은 것이다. 해와 달이 급히 지나가는 것처럼, 스님의 질문에 시간을 맞추고 학인의 근기에 대응하여 적절하게 잘 대답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삼 세근(麻三斤)이라는 말로서 학인을 상대했다고 동산의 안목(견해)을 파악하려 한다면, 절름발이 자라와 눈먼 거북이 빈 골짜기로 들어가는 꼴이다.”는 말은 부처나 삼 세근(麻三斤)이라는 말로 대답했다고 부처나 삼 세근(麻三斤)이라는 말에 집착한다면 동산 화상의 진면목을 볼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또 “꽃도 수북수북, 비단도 수북수북, 남쪽에는 대나무, 북쪽에는 나무.”라고 읊은 말은 고사가 있지만 생략하고, ‘봄이면 살쾡이가 천지에 만발하고, 가을이면 온 산에 비단의 단풍이 가득하며, 남쪽지방에는 대나무가 많고, 북쪽 지방에는 나무가 많은 산의 모습이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세계가 아닌가?’라는 의미로 읊고 있다.

마지막에 “그래서 장경 화상과 육긍 대부를 생각하니 웃어야지, 통곡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줄 알았네. 아이쿠()!”라고 읊고 있다. 이 역시 고사 있는 말인데, 생략하자. 말하자면 설두는 동산이 “삼 세근”이라고 대답한 것은 세간의 인정(人情)과 분별적인 상식으로는 깨달을 수가 없으니, 수행자들은 이 공안을 잘 사유하여 참구해야 한다는 주의를 하고 있다.



[第013則]銀椀盛雪
〈垂示〉垂示云。雲凝大野。遍界不藏。雪覆蘆花。難分朕跡。冷處冷如冰雪。細處細如米末。深深處佛眼難窺。密密處魔外莫測。擧一明三卽且止。坐斷天下人舌頭。作麽生道。且道是什麽人分上事。試擧看。
〈本則〉擧。僧問巴陵。如何是提婆宗。巴陵云。銀碗裏盛雪。
〈頌〉老新開端的別。解道銀碗裏盛雪。九十六箇應自知。不知卻問天邊月。提婆宗提婆宗。赤旛之下起淸風。

벽암록 제13칙에는 파릉(巴陵) 화상에게 제바종(提婆宗)의 종지를 밝힘

“교종과 선종은 방법 달라도 목적지는 같아”>

{벽암록} 제13칙에는 파릉(巴陵) 화상에게 제바종(提婆宗)의 종지를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다.

어떤 스님이 파릉 화상에게 질문했다. “무엇이 제바(提婆)의 종지 입니까?” 파릉 화상이 대답했다. “은쟁반에 흰눈을 가득 담았다.”

擧. 僧問巴陵, 如何是提婆宗. 巴陵云, 銀椀裏盛雪.


은쟁반과 흰눈은 같지만 다른 것
선교우열 따지면 ‘분별’에 떨어져

본칙의 공안은 〈연등회요〉 26권과 〈선문염송〉 27권 등에 전하고 있다. 파릉 화상은 운문문언 선사의 법을 이은 뛰어난 걸승으로 법명은 호감(顥鑑)이라고 하며, 호남의 파릉 신개원(新開院)에서 교화를 펼친 선승이다. 그에 대한 생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평창’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특히 호감 화상은 독특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잘 지도하였기 때문에 ‘감다구(鑒多口)’라는 별칭이 있었다.

사실 운문종은 운문 화상이 한 글자로 불법의 종지를 제시하는 일자관(一字關)의 법문을 비롯하여 동산수초의 ‘마삼근(麻三斤)’처럼 불법의 근본을 짧은 한 두 마디의 언구로 제시하는 독창적인 종풍이 있는데 파릉 화상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스님이 “제바종의 종지는 어떤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자, 파릉 화상은 “은쟁반위에 흰 눈을 가득 담은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조정사원〉과 〈인천안목〉 제2권 등에 전하고 있는 것처럼, 이 공안은 파릉 화상이 스승 운문 선사에게 올린 ‘세 마디 깨달음을 체득하는 말(三轉語)’ 가운데 하나이다. 파릉 화상의 유명한 취모검(吹毛劍)은 벽암록 100칙에 수록하고 있다.

제바종에 대해서 평창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서천 15대 제바(迦那提婆) 존자는 처음 외도의 한 사람이었다. 제14대 용수 존자를 친견하고 바늘을 발우 속에 던지자 용수 존자는 그를 큰 그릇으로 여기고 불법의 심종을 전수하여 15대 조사로 삼았다. 〈능가경〉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마음(佛語心)을 근본(宗)으로 삼고 고정된 문이 없는 무문(無門)을 법문으로 삼는다”라고 하고, 마조스님은 “대개 언구(言句)가 있으면 제바의 종지이다. 제바종은 언어 문자를 주요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용수의 제자 제바 존자는 〈백론(百論)〉의 저자로서 불법의 논의에 뛰어난 변론가였다. 그는 당시 96종의 외도를 논쟁으로 항복받고 불교인으로 전향시킨 인물이다. 따라서 여기서 ‘제바종’이란 제바 존자의 종지를 중심으로 한 대승 반야사상의 불교교단을 말한다. 마조가 “대개 언구(言句)가 있으면 제바종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제바 존자가 날카로운 논법으로 많은 외도들을 논파한 것에서 언구에 의거하여 불법의 대의를 교시한 입장을 말한다.

마조의 말은 〈마조어록〉에는 보이지 않고 〈운문광록〉에 보이며, 운문 화상은 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마조 대사는 좋은 말을 했지만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어떤 스님이 다시 “어떤 것이 제바의 종지 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운문 화상은 “96종의 외도 가운데 그대가 최하의 한 종류이다”라고 대답하여, 질문자의 논쟁을 타파하고 있다. 운문어록에 제바종에 대한 대화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운문종의 교단에서는 언어 문자로서 불법의 종지를 설하는 제바종과 불립문자와 교외별전을 주장하는 선종의 입장에 대하여 선승들의 안목을 점검하는 선문답이 자주 거론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평창에서 원오는 〈능가경〉에 “불어심(佛語心)을 근본으로 삼고 무문(無門)을 법문으로 한다”는 일절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불어심(佛語心)이란 부처님이 불법을 언어 문자로 말씀한 그 마음으로 경전으로 전한 불어종(佛語宗: 교종)의 입장을 말한다. 그러나 선종은 세존이 49년간 한 글자도 설하지 않은 일자불설(一字不說)의 입장에서 정법안장, 열반묘심을 가섭에게 교외별전과 이심전심으로 전한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불교의 경전에서 주장하는 불법의 가르침이나, 선종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불법의 수행 목적은 번뇌 망념이 없는 본래 청정한 부처의 마음[佛心]을 깨닫도록 하는 점에서 똑같은 목적지에 귀착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인 부처의 말씀[佛語]이나 경전의 언어 문자는 결국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방편의 도구에 불과하다. 방편의 도구 없이 불법의 진실을 체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부처의 말씀[佛語]을 무시하고 부처의 마음[佛心]은 체득될 수 없고, 부처의 마음을 여의고 부처의 말씀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스님이 파릉 화상에게 “선사는 제바의 종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제바종과 선종의 입장에 대한 선사의 견해는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파릉 화상은 곧바로 “은쟁반 위에 흰 눈을 가득 담은 것”이라고 대답하여 천하의 수행자들의 혀를 차단시키고 있다. 이 말은 동산(洞山)의 〈보경삼매가〉에 “은쟁반 위에 흰 눈을 담고(銀椀盛雪), 밝은 달빛아래 백로를 감춘다(明月鷺藏)”라고 읊고 있는 노래에서 인용한 것이다. 하얀 은쟁반과 흰눈, 가을 밝은 달빛아래 서있는 백로의 모습은 똑같은 흰색으로 구분 할 수 없지만, 은쟁반과 눈은 각기 다른 사물로서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

이 말은 두 사물이 흰색이라는 점은 같지만, 그러나 사물이 동일한 것은 아니며, 섞여 있으면서도 각각 독특한 사물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불일 불이관(不一不二觀)의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은쟁반과 눈은 흰 색깔로 동일성과 평등성을 나타내지만, 사물의 다른 특성은 차별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평등즉차별, 차별즉평등의 입장으로 상즉원융(相卽圓融)의 이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선에서 말하는 주관적인 자아와 객관적인 사물과 불법의 근본에서 일체로 하는 천지동근 만물일체(天地同根 萬物一體)와 만법일여(萬法一如)의 경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체의 상대적인 차별심을 초월한 절대(一切皆空)의 공관(空觀)에서 무아무심이 되어 객관적인 만물과 주관적인 자기가 하나가 되어 일체가 되고 일여(一如)가 된 경지에서 자신의 일에 몰입한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다.

파릉 화상의 대답은 언어 문자로 불법을 설하는 제바의 종지나 불심을 깨닫게 하는 선종의 입장은 수행체계나 교화방법은 다를지라도 모두 불법의 근본의 입장에서 볼 때 반야바라밀의 실천으로 깨달음의 지혜를 체득하여 견성성불의 경지를 이루는 불법의 대의는 같다는 주장이다. 사실 선종과 교종의 입장을 나누고 구별하며 우열을 논하는 것은 중생의 분별과 차별심인 것이다.

원오의 착어에도 “흰 말이 흰 갈대 꽃밭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하고, 수시에도 “흰눈이 갈대 꽃밭 속에 내리니 흔적을 구분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또, 파릉 화상의 대답에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이론을 제시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의미로 “천하 사람들의 혀를 차단하고 있다”고 코멘트 하고 있다. 또 원오는 “일곱 조각 여덟 조각으로 깨졌다(七分八裂)”고 착어하고 있는데, 이 말은 파릉 화상의 한마디로 제바종에 대한 많은 논쟁이 완전히 분쇄되고 말았다는 의미이다.

설두 화상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파릉 화상의 안목을 칭찬하고 있다. “신개원에서 교화를 펼친 늙은이의 안목은 뚜렷하게도 남다르다. 은쟁반위에 흰눈을 담았다고 말 할 수가 있었다. 96종의 외도들도 “은쟁반위에 흰눈을 담았다”는 말의 의미를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다시 하늘 저편의 달에게 물어봐야 하리라. 제바의 종지여 제바의 종지여! 붉은 깃발아래 맑은 바람을 일으키네.”

파릉 화상이 제시한 제바의 종지는 천하의 외도나 제불조사도 모두 붉은 깃발을 세운 곳으로 모여 귀결되도록 제시한 가르침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第014則]對一說
〈本則〉擧。僧問雲門。如何是一代時敎。雲門云。對一說。
〈頌〉對一說太孤絶。無孔鐵鎚重下楔。閻浮樹下笑呵呵。昨夜驪龍拗角折。別別。韻陽老人得一橛。

벽암록 제14칙 운문화상의 대일설(對一說)

“설법은 환자따른 처방…언구에 매이지 말아야”

{벽암록} 제14칙은 운문 화상이 부처님이 한평생 설법한 내용의 의미에 대한 선문답을 다음과 같은 짧은 한마디로 대답한 내용을 싣고 있다.

어떤 스님이 운문 화상에게 질문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한 평생 설하신 법문의 가르침(一代時敎)은 무엇입니까?” 운문 화상이 대답했다. “질문에 알맞은 일대일(一對一)의 설법을 한 것이다(對一說)”.

擧. 僧問雲門, 如何一代時敎. 雲門云, 對一說.


일대시교는 근기에 따른 방편일 뿐
교학불교의 번쇄한 교판 경계해야

선어록에는 교학의 전문가인 강사[座主]들이 선사들에게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나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를 제시하여 선승들이 주장하는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을 비판하면서 부처님이 한 평생 중생을 위해서 설하신 불법의 가르침에 대한 선승들의 견해를 시험하는 질문을 많이 하고 있다. ‘일대시교(一代時敎)’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한평생 설하신 불법의 가르침을 말하는데, 천태나 화엄교학에서 제시한 교상판석(敎相判釋)의 용어이다.

즉 천태종에서는 부처님의 일대 교설을 오시(五時) 팔교(八敎)로 분류하여 불법을 통합하고 있다. ‘오시’란 첫째로 화엄시(華嚴時)로서 세존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정각을 이루고 21일간 대승 무상의 법문인 {화엄경}을 설한 시기이다. 두 번째는 아함시(阿含時)로 화엄의 교리는 깊고 미묘하여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심자들을 위하여 12년간 녹야원에서 소승의 아함경을 설한 시기이다. 세 번째는 방등시(方等時)인데, 소승에서 대승을 향한 8년간 대소승의 불교를 설한 시기로 {유마경}과 {능가경}, {금광명경} 등이다. 네 번째는 반야시(般若時)로 22년간 {대반야경}을 설하여 제법의 참된 진실과 이치를 설한 시기이다. 다섯 번째는 법화시(法華時)로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한 시기로 석가세존이 출세하여 중생을 구제한 실다운 대승의 법문을 설한 최후의 8년간을 말한다.

천태의 교판에서 주장하는 ‘팔교’는 교리상의 분류로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라는 네 가지의 교화법으로 분류하고, 또 중생의 근기에 맞는 석가세존의 설법을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不定敎) 등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 화엄종에서는 일체의 불교를 오교(五敎)로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소승교(小乘敎)로 {아함경} 등 소승불교를 설한 시기이다. 두 번째는 대승시교(大乘始敎)로 대승의 법문이지만 대승의 극치에 이르지 못한 최초의 가르침을 설한 시기로 {해심밀교}이나 {유식론}과 같은 법상(法相)의 시교와, {반야경}과 {중관론}과 같은 설법을 공시교(空始敎) 라고 한다. 모두 진여의 본성을 설하고 있지만 화엄에서 주장하는 이사원융(理事圓融)의 묘한 이치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 번째는 대승종교(大乘終敎)로 {능가경}과 {기신론}과 같이 대승의 참된 정신을 밝히고 이사(理事)가 원융함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수행의 단계가 남아 있기에 곧바로 부처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승시교와 더불어 점교라고 하고 분류하고 있다. 네 번째는 돈교(頓敎)로서 점교처럼 단계와 방편을 두지 않고 곧바로 진리에 계합하는 법문으로 {유마경}의 불이법문(不二法門) 등의 가르침이다. 다섯 번째는 원교(圓敎)인데, 원교 가운데 {법화경}은 삼승(三乘)의 근기에 맞는 일승(一乘)의 묘한 이치를 설하기 때문에 동교(同敎)의 일승(一乘)이라고 하고, {화엄경}은 보현보살의 큰 근기에 대한 설법이기 때문에 별교일승(別敎 一乘)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여기 부처님의 일대 시교(時敎)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화엄이나 천태교학에서 제시한 교판(敎判)을 전제로 한 점으로 볼 때 교학의 전문가인 강사로 보인다. 그런데 운문선사는 선불교 입장에서 한마디로 대답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일단의 대화는 선과 교의 입장을 단적으로 분명히 제시한 선문답이다.

교학승려들은 선에서 주장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나 교외별전(敎外別傳)에 대하여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비난하고 있다. 선종에서는 부처님이 49년 동안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부처님이 한평생 중생교화를 하면서 펼친 법문[一代時敎]에 대하여 선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라는 날카로운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운문 선사는 ‘부처님은 질문자와 일대일(一對一)의 설법을 한 것일 뿐’이라는 의미로 ‘대일설(對一說)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운문의 ‘대일설’은 석가모니 부처님은 언제나 질문자와 일대일로 만나서 질문자의 근기와 질문 내용은 물론, 당시 질문자와 마주하고 있는 시절인연과 여러 상황에 가장 적합한 대답을 하여 중생을 구제한 설법을 한 것이었다.

부처님은 언제나 개별적으로 일기일회(一期一會)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설법을 한 것이며, 5040여 권의 8만4000의 법문도 그러한 대화를 종합한 것이다. 천태나 화엄에서 주장한 5시 8교의 교학체계를 계산한 설법이 아니다. 부처님의 입장에서 볼 때 5시 8교도 ,교외별전도 없었다. 오직 시절인연에 응하여 일대일의 대화에 최선을 다한 중생교화의 법문이었다. 부처님의 일대 시교란 항상 눈앞에 있는 중생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을 뿐이다.

즉 질문자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의 질문에 꼭 맞은 법문을 설하여 불법의 지혜를 체득하도록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는 중생의 근기에 가장 적합하게 설하는 부처님의 설법을 수기설법(隨機說法) 혹은 근기설법(根機說法)이라고 한다. 또한 질문자와 부처님이 만난 시간과 장소와 중생의 근기에 적합한 설법이라는 의미로 수의소설(隨宜所說)이라고도 한다.

{유마경}에서는 부처님은 훌륭한 의사와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부처님은 중생의 병(心病)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는 지혜를 구족하고 있다. 때문에 부처님의 설법을 중생의 병에 알맞은 약을 처방하여 제시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한다.

운문이 ‘질문자의 질문에 알맞은 설법을 한 것’이라는 ‘대일설(對一說)은 중국의 교학불교에서 제시한 부처님의 일대교설에 대한 시간적인 분류와 교설에 대한 논리적인 교판의 입장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부처님의 설법정신을 단적으로 제시한 선종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실 선불교의 선문답도 부처님이 중생교화의 대화와 같이 대화를 통하여 불법의 참된 정신을 지금 여기서 직접 번뇌 망념이 없는 본래 청정한 불성을 체득하도록 하는 견성성불과 직지인심(直指人心)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선불교는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선문답이라는 대화로 새롭게 전개했다. 선문답의 일대일의 대화는 때와 장소와 사람을 전제로 한다. 사제간의 일대일 대화는 불성을 체득하여 견성성불을 이루도록 하는 직지인심의 법문이다.

설두는 “운문 화상이 질문에 알맞은 일대일의 설법은 너무나 뛰어났네.”라고 극찬하고 있다. 그리고 “구멍 없는 철추로 거듭 쐐기를 박았다. 염부제 나무아래서 껄껄대고 웃으니, 어젯밤 검은 용의 뿔이 요절났네. 별나고 별났네. 운문노인이 용의 뿔을 하나 꺾었도다.”

그것은 마치 세존이 ‘5시8교’를 설하고도 49년간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처럼, 운문도 ‘일대일의 설법’이라는 한마디로 구멍 없는 철추로 거듭 쐐기를 박고 있다. 인간의 세계인 염부제의 모든 사람이 운문의 ‘일대일의 설법’이라는 철추로 5048권이나 되는 석존의 일대시교를 모두 분쇄해버렸기 때문에 언어문자의 경전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되었다. 검은 용의 소중한 뿔에 비유되는 일대시교를 꺾어버린 것은 일체 경전의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한 것인데, 마음의 경전인 본래면목을 체득하면 언어문자의 경전에 속박될 필요가 없다는 운문의 법문을 게송으로 읊고 있는 것이다.



[第015則]倒一說
〈垂示〉垂示云。殺人刀活人劍。乃上古之風規。是今時之樞要。且道。如今那箇是。殺人刀活人劍。試擧看。
〈本則〉擧。僧問雲門。不是目前機。亦非目前事時如何。門云。倒一說。
〈頌〉倒一說分一節。同死同生爲君訣。八萬四千非鳳毛。三十三人入虎穴。別別。擾擾匆匆水裏月。

벽암록 제15칙 운문화상의 도일설(倒一說)

“병든 환자가 없다면 처방전도 필요 없어”

{벽암록} 제15칙에는 운문 화상이 일대시교에 대한 질문에 ‘일대일(一對一)의 설법도 완전히 끝내버렸다’고 하는 ‘도일설(倒一說)’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어떤 스님이 운문 화상께 질문했다. “현재 눈앞에 직면한 상대의 마음 작용(機)도 없고, 현재 눈앞에 직면한 문제(事)도 없을 경우는 어떻습니까?”

운문 화상이 대답했다. “일대일(一對一)의 설법도 끝났다(倒一說)”

擧. 僧問雲門, 不是目前機, 亦非目前事時如何. 門云, 倒一說.

‘倒一說’은 본래 청정한 경지 표현
‘一字不說’‘刹竿倒却’도 같은 의미

이 일단은 {벽암록} 제14칙에 제시한 ‘대일설(對一說)’과 짝을 이룬 선문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운문광록} 상권에는 각각 수록하고 있다. 질문자가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원오의 시대에는 대화의 내용을 한 짝으로 파악하고 있다.

‘목전(目前)의 문제(事)’란 눈앞에 직면한 지금 여기 자기 일(事)을 말하며, ‘목전(目前)의 마음 작용(機)’이란 눈앞에 직면한 자기 일에 대한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선어록에 자주 언급하는 선기(禪機)나 대기(大機)는 마음의 지혜작용을 표현하는 말이다. 불교교학에서 작용(機)이란 주관(能觀)적인 마음이고, 문제(事)는 객관(所觀)적인 경계로서 인간의 인식은 이 주관과 객관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금 여기서는 이러한 주관과 객관의 상대적인 인식을 초월하여 “눈앞에 직면한 지금 여기 자기 마음의 작용도 없고, 눈앞에 직면한 지금 여기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일도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날카롭게 던지고 있다.

{벽암록} 제14칙에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는 일대일(一對一)의 대화로 질문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한 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번뇌 망념의 문제가 있는 중생도 없고, 중생심에 떨어진 번뇌 망념의 일(문제)도 없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운문 화상이 질문하고 있다. 즉 ‘병든 환자도 없고, 번뇌 망념의 병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지도 하시겠습니까?’

운문 화상에게 질문한 스님은 마음과 경계,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 ‘본래 한 물건도 없는 세계(本來無一物)’, ‘천지(天地)라는 차별심이 나누어지기 이전의 경지’ 혹은 ‘부모(父母)라는 차별심이 일어나기 이전의 본래면목’의 경지를 체득한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불법을 설하여 지도 하시겠습니까? 라고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체의 언설로서 설할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 혹은 한 글자로도 설할 수 없는 불립문자의 세계를 체득한 사람에게 어떻게 불법을 제시합니까? 라고 날카롭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스님의 질문에 대하여 원오는 “이러한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대개 많은 사람이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고 코멘트를 하면서 평창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질문한 스님은 참으로 작가 선객이기에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처음의 질문은 법문을 청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질문이며, 또한 지혜작용의 칼날을 숨긴 질문이라고 하겠다. 만약에 운문이 아니었다면 그의 질문을 어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문 선사는 이러한 기량이 있었기에 그의 질문에 응하여 이와 같이 대답한 것이다.” 운문 화상은 ‘일대일(一對一)의 설법도 끝났다’라는 의미로 역시 ‘도일설(「倒一說)’이라는 일구(一句)로 대답했다. 앞의 14칙에서는 ‘대일설(對一說)’이라고 하고 여기서는 ‘도일설(倒一說)’로 말했는데, 여기서 ‘도(倒)’라는 한 글자가 이 선문답에서 운문 화상이 설한 중요한 법문인 것이다.

질문자가 마음으로 번뇌 망념이 있을 때는 부처님께 질문하고 설법을 듣지만, 질문자도 없고, 질문할 문제도 없을 때는 일대일의 설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설법이 완전히 끝났다는 의미로 일대일의 설법도 타도해 버린다고 하면서 ‘도일설(倒一說)’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즉 ‘일대일의 설법을 타도해 버렸다’고 한 것은 앞에서 설한 일대일의 설법은 끝나 버렸다는 의미이다. 질문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한 것이 일대일의 설법이었다. 설법을 듣고 진실을 깨달았다면 그것으로 만사는 끝난 것이다. 병든 환자가 처방을 받고 병이 나았다면 본래 건강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병든 흔적이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일대일의 설법을 듣고 진실을 체득하여 본래의 청정한 불심으로 되돌아간 경지는 마음에 번뇌 망념도 없고, 경계에 대한 차별심과 집착도 없다. 일체의 흔적과 자취도 남김이 없는 몰종적(沒跡)의 경지, 본래 텅 빈 근원적인 깨달음의 세계를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고 한다. 본래 한 문제도 없어진 경지에서는 일대일의 대화나 문답도 필요 없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이고, 올바른 법문을 설하는 것이 대답이다. 일문일답(一問一答)의 선문답은 대화를 추론하거나 분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체의 자취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문제가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인 근원적인 본래심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일대일의 대화로 이루어진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 하나하나의 대화를 모두 텅 비우고, 자취나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일이다. 그것이 49년간 설법한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일자불설(一字不說)’의 참된 소식인 것이다.

<증도가>를 보면 “깨닫고 나면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 근원적인 자성이 천진불이다(覺卽了 無一物)”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불법의 근본을 깨닫고 나면 마음의 번뇌도 경계에 떨어진 차별 분별심도 없는 것이다.

{무문관} 제22칙에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전법에 대한 문답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아난존자가 가섭존자에게 질문했다. ‘석가세존께서 가섭존자에게 금란가사를 전한 일 이외에 또 무엇을 전했습니까?’ 그러자 가섭은 ‘아난이여!’라고 불렀다. 아난은 ‘예’라고 대답하니, 가섭은 ‘문전의 찰간(刹竿)에 걸려있는 깃발을 철거하라(倒却門前刹竿着)!’ 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깃발을 철거하라(倒却)’는 말은 운문의 ‘도일설(倒一說)’과 같은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찰의 문전에 있는 찰간에 깃발을 세우는 것은 설법이 있다는 표시이다. 가섭이 아난에게 찰간의 깃발을 철거(倒却)하라고 지시한 것은 설법과 전법이 완전히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깃발을 걸어둘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말한다. 가섭이 “아난이여!” 부르고, 아난이 “예!”라고 대답한 그것으로 이심전심의 전법이 모두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쓸데없이 깃발을 내세워 모양과 형식으로 제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운문이 ‘도일설(倒一說)’이라고 한 일구(一句)도 문제를 제기하여 해결을 구하는 일대일의 대화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경지를 단적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설두 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일대일의 대화가 끝났다(倒一說)고 한 말씀, 한 덩어리를 쪼개어, 생사를 같이하는 각오로 그대를 위하여 결단해 주었네. 8만 4천의 대중은 봉황의 털이 아니며, 33인의 조사는 호랑이 굴로 들어갔도다. 별나고 별남이여, 술렁술렁, 한들한들 물속에 비친 달이로다.”

‘한 덩어리를 쪼개어(分一節)’는 스님의 질문과 운문이 대답이 한 치의 틈도 없고,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는 것과 같이 분명하고 적절한 답변이었다. ‘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운문의 살인도와 활인검을 휘두르는 법문은 질문한 스님을 위해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는 비결을 제시한 것이다. 부처님의 문하에도 8만4천의 대중이 있었지만 모두 불법을 계승한 것은 아니다. 오직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심인을 전해 받았다. 또한 서천 28조와 동토 6대 조사 33명의 조사가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 새끼를 얻은 것처럼, 목숨을 걸고 수행하여 석존의 불법을 전해 받은 것이다. 이러한 조사들의 풍광은 각각 독특하고 독창적인 것으로 마치 달빛이 천만의 강물 속에 비치는 것처럼, 법신의 광명이 시방세계에 두루함을 읊었다.



[第016則]啐啄
〈垂示〉垂示云。道無橫徑。立者孤危。法非見聞。言思逈絶。若能透過荊棘林。解開佛祖縛。得箇穩密田地。諸天捧花無路。外道潛窺無門。終日行而未嘗行。終日說而未嘗說。便可以自由自在。展啐啄之機。用殺活之劍。直饒恁麽更須知有建化門中一手抬一手搦。猶較些子。若是本分事上。且得沒交涉。作麽生是本分事。試擧看。
〈本則〉擧。僧問鏡淸。學人啐。請師啄。淸云。還得活也無。僧云。若不活遭人怪笑。淸云。也是草裏漢。
〈頌〉古佛有家風。對揚遭貶剝。子母不相知。是誰同啐啄。啄覺猶在殼。重遭撲。天下衲僧徒名邈。


벽암록 제16칙 경청화상과 형편없는 수행자(草裏漢)

“형식적 줄탁이 아니라 내용의 진지함 있어야”

{벽암록} 제16칙에는 경청 화상과 형편없는 졸승과의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어떤 스님이 경청 화상에게 질문했다. “학인이 달걀 속에서 나오려고 신호하면(?) 화상께서는 병아리가 태어나도록 달걀을 쪼아(啄) 주시오”

경청 화상이 말했다. “과연 살아날 수 있겠는가?” 그 스님이 말했다. “만약 살아나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경청 화상이 말했다. “역시 형편없는 놈(草裏漢)이군!”

擧. 僧問鏡淸, 學人, 請師啄. 淸云, 還得活也無. 僧云, 若不活遭人怪笑. 淸云, 也是艸裏漢.


‘줄탁동시’는 무심의 경지서 작용
참된 ‘줄탁’이 있는지 반성할 필요


경청 화상은 道(868~936)선사로 {조당집} 제10권 등에 그의 약전하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경청 화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처음 설봉 화상을 친견하고 종지를 얻은 뒤에 항상 줄탁(啄)의 기연으로 후학을 지도하고, 학인의 근기에 맞추어 설법하였다. 그는 대중법문에서 ‘대개 수행하는 사람은 줄탁(啄) 동시의 안목을 가지고 줄탁동시의 지혜작용이 있어야 비로소 수행승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병아리가 달걀 속에서 껍질을 쪼면 어미 닭이 밖에서 달걀 껍질을 쪼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고 하였다. 그 때 어떤 스님이 앞으로 나와서 질문했다. ‘어미 닭이 쪼고 병아리가 쪼면 화상의 경지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 좋은 소식이다.’ ‘ 반대로 병아리가 쪼고 어미닭이 쪼면 학인의 경지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본래면목이 들어나지.’ 이 때문에 경청 화상의 문하에서는 줄탁의 기연(이야기)이 있게 되었다.”

이 공안에서 문제로 제시하는 말은 줄탁동시(啄同時)이다. 즉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고 신호를 보내는 소리를 줄()이라고 하고, 어미닭이 병아리가 알에서 태어날 시기를 알고 껍질을 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 달걀 속에서 성장된 병아리가 내부에서 알을 쪼는 것을 줄()라고 하고, 그 순간에 어미닭이 밖에서 알을 쪼아 깨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 달걀 속의 병아리와 어미닭의 호흡과 기합(氣合)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선에서는 스승이 제자를 지도하고 불법을 체득하는 깨달음의 인연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깨달음을 체득하는데 필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학인이 좌선의 수행으로 불법의 대의를 참구하는 내적(內的) 사유와 스승의 올바른 지도와 교시를 제시하는 외적(外的) 사건(기연, 인연)이 동시에 부합되어야 한다.

경청 화상은 줄탁의 기연으로 학인들을 지도하였기 때문에 본칙과 같은 어떤 학인이 도 이 문제를 중심으로 질문을 하고 있다. 즉 학인은 “나는 달걀 속에서 쪼아 신호를 보낼테니, 화상은 밖에서 달걀을 쪼개어 주십시오.” 이 말은 ‘저는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여 깨달음을 열도록 하고자 하니 화상은 방편으로 빨리 학인을 깨닫도록 지도해 주십시오.’ 라는 의미의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인의 질문은 병아리가 어미닭에게 알에서 나갈 것을 재촉하고 있는 것인데, 달걀 속에서 성장한 병아리의 부화시기가 맞지 않는데 어미닭이 껍질을 쪼개면 병아리는 죽고 만다. 그래서 경청 화상은 그대가 재촉하면 껍질을 쪼아 쪼갤 수는 있지만, “과연 무사히 살아 날 수 있을까?”라고 걱정스럽게 말한 것이다. 이것은 어미닭으로서는 병아리가 무리하게 재촉하면서 요구하기 때문에 당연한 걱정에서 한 말이다. 줄탁동시의 작용이란 조작심이 없는 무심의 경지에서 작위성이 없이 자연스럽고,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학인은 자신 있게 다음과 같이 대꾸하고 있다. “만약에 살아남지 못한다면 천하의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즉 이 말은 ‘만약 내가 불법을 깨닫지 못하고, 안목이 없는 존재라면 화상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라는 의미이다.

원오는 “이 학인은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산다고 하여, 관계도 없는 사람들까지 걱정하도록 만들고 있다”라고 하면서, 그 학인은 “한 쪽만 쳐다보고 가는 놈(擔板漢)”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 말은 편견에 떨어져 융통성이 없는 놈이란 말이다. 즉 경청 화상의 유명한 줄탁동시의 법문에만 집착하여 자신의 수행과 근기는 고려하지 않고 화상의 지시만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는 놈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경청 화상은 “역시 형편없는 놈(草裏漢)이군”이라고 평하고 있다. 즉 학인은 자신이 불법의 대의를 체득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입장이라고 자만하고 있었지만, 경청 화상의 눈에는 번뇌 망념의 차별심과 분별심에 떨어져 풀밭에서 헤매며 안목이 없는 형편없는 놈이라고 나무라고 있다. 즉 줄탁동시의 인연과 기회를 만들기엔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는 녀석이다. 밖으로 깨달음을 체득하는 분위기는 추구하고 있지만, 안으로 불법수행의 안목이 전혀 구족되지 않고, 근기가 익지 않은 놈이라고 꾸짖는 말이다.

원오도 경청 화상이 주장하는 ‘줄탁동시’의 공안을 적당히 생각하면 안 된다고 이 공안을 읽는 수행자들에게 주의하면서, ‘평창’에 남원화상의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남원 혜옹(南院慧 : 860~930) 화상이 대중에게 법문하였다. ‘여러 총림에서 줄탁동시의 안목을 갖추었을 뿐, 줄탁동시의 작용은 갖추지 못했다.’ 라고 말하자, 어떤 스님이 나와서 질문했다. ‘무엇이 줄탁동시의 작용입니까?’ 남원 화상이 말했다. ‘작가 선지식이라면 줄탁을 하지 않는다. 줄탁을 하면 동시에 죽게 된다.’”

남원 화상이 제시하고 있는 줄탁동시의 안목과 작용에 대한 법문을 잘 음미하고 사유하여 불법의 대의를 체득해야 경청 화상의 법문을 충분히 소화할 수가 있다. 작가는 생사대사의 본분사(일대사)를 체득한 선승인데, 그러한 선승은 줄탁(啄)같은 쓸데없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줄탁과 같은 조작과 작위성에 떨어진 행위는 이미 줄탁의 선기(禪機:지혜작용)는 상실된 것이기 때문이다.

병아리가 안에서 쪼고, 어미닭이 밖에서 쪼는 것을 형용하며 말하는 줄탁동시의 작용은 전광석화와 같고 의식적인 분별의 여지가 없는 세계이다. 그런데 본칙에서 “학인이 안에서 쪼면, 화상은 밖에서 쪼아 주십시오”라는 질문은 조작과 의식적인 줄탁동시를 요구하는 질문인 것이다. 이러한 줄탁동시의 질문은 벌써 줄탁동시의 안목이 아니며, 지혜작용인 선기도 죽은 것이다. 그래서 남원 화상은 작가 선지식은 분별과 의식으로 조작된 줄탁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설두 화상은 다음과 같이 의미로 게송으로 읊고 있다. “경청 고불(古佛)은 줄탁동시의 가풍이 있네. 선승은 선문답으로 종지를 거양할 때에 반드시 학인의 잘못됨을 완전히 벗기고 들어내어 본래면목을 체득하도록 해야 한다” 경청 화상의 줄탁동시 법문은 어미닭이 병아리가 달걀 속에서 쪼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병아리는 어미닭이 껍질을 쪼는 것을 알고서 쪼는 것이 아니라고 “새끼와 어미가 서로 모르는데, 누가 동시에 줄탁 할 수 있으랴!”라고 읊고 있다. 어미닭과 병아리가 모두 무심의 경지에서 줄탁이 동시에 작용하여 근기가 서로 익은 상응된 묘용인 것이다. 분별 의식으로 줄탁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에게도 과연 그런 줄탁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경청 화상이 ‘살아 날 수 있을까?’ 라는 말을 ‘쪼았다(啄)’고 하고, 학인인 ‘살아남지 못하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된다’는 말은 ‘자각했다(覺)’고 읊고 있다. 지도해 주시면 깨닫게 되지요 라는 의미이다. 학인이 “살아남지 못하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된다”고 말했지만 “아직도 그대는 껍질 속에 병아리로 남아 있군” 경청 화상이 “형편없는 놈”이라고 한 말로 다시 한번 두드려도 “천하의 납승은 부질없이 겉모습만 더듬네”라고 읊고 있다.



[第017則]坐久成勞
〈垂示〉垂示云。斬釘截鐵。始可爲本分宗師。避箭隈刀。焉能爲通方作者。針箚不入處。則且置。白浪滔天時如何。試擧看。
〈本則〉擧。僧問香林。如何是祖師西來意。林云。坐久成勞。
〈頌〉一箇兩箇千萬箇。脫卻籠頭卸角馱。左轉右轉隨後來。紫胡要打劉鐵磨。

벽암록 제17칙 향림화상과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의미

“지식으로 알기보다는 삶 자체를 바꿔야”

{벽암록} 제17칙은 향림 화상에게 조사가 중국에 오신 의미를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다.
어느 스님이 향림 화상에게 질문했다.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향림 화상이 대답했다. “오랫동안 앉아서 좌선하니 피곤하군.”

擧. 僧問香林, 如何是祖師西來意. 林云, 坐久成勞.


‘부처님 정법 전파’라는 생각도 분별
‘불법은 당연한 일’ 멋대로 왜곡말라


이 공안은 〈오등회원〉 15권 향림장에 전하고 있다. 향림 화상은 운문문언의 법을 이은 징원(澄遠: 908~987)선사다. 그의 전기는 〈전등록〉22권, 〈회요〉26권 등에 전하고 있다. 중국 사천성(蜀) 성도의 향림사 주지로서 운문 선사의 선풍을 정통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원오도 ‘평창’에서 인정하고 있다. 이 공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향림 화상은 운문 선사의 문하에서 18년간 시자로 있었기 때문에 ‘원시자(遠侍者)’로 잘 알려진 선승이다. 운문의 불법을 직접 체득하는 시기는 늦었지만 참으로 그는 그릇이 큰 선승이었다고 원오도 ‘평창’에 칭찬하고 있다.

어떤 스님이 향림 화상에게 “달마 조사가 중국에 오신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즉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에 불법을 전하게 된 참된 정신은 무엇입니까?’ 라는 의미의 질문이다. 원오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의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착어하고 있듯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의미는 무엇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라는 질문은 선어록에 약 220회 이상 등장하고 있을 정도다. 이는 천하의 모든 선승들이 가졌던 문제였음을 말해준다. 사실 선수행자가 이 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수행한 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유명한 대답이 〈종용록〉47칙과 〈무문관〉37칙에 싣고 있는 조주 화상의 ‘뜰 앞의 잣나무’이다.

〈벽암록〉제20칙에도 용아 화상이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祖師西來意)’이라는 공안을 싣고 있다. 과연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에 오신 의도가 있는가를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달마가 중국에 오신 의도나 목적을 묻는 말이 아니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전한 선불교의 참된 정신은 무엇인가를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초점을 잘못 이해하면 엉뚱한 줄(칸)에 답안을 쓰게 된다.

향림 화상은 이에 대해 한마디로 “오래 앉아서 좌선 수행하느라고 애썼네(坐久成勞)!”라고 대답하고 있다. 원오도 “물고기가 헤엄치니 흙탕물이 일어나고, 새가 날아가니 깃털이 떨어진다.”고 코멘트를 붙이고 있다. 즉 너무나도 지극히 당연한 사실(일)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선원에서는 상당설법이 끝난 뒤에 주지는 대중들에게 “오래서서 나의 법문을 듣느라고 수고 했네(久立珍重)!” 라고 일상적인 인사말을 한다. 향림 화상의 대답도 선원에서 수행자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주고받는 지극히 당연한 인사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단순한 범부의 중심으로 나눈 인사말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원오도 ‘평창’에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이 향엄 화상이 ‘오래 앉아서 좌선수행 하느라 애썼네!’라고 말한 것을 잘못 알고 있다.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시어 9년 동안 면벽(面壁)을 했으니 오랫동안 앉아 있어 피로하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지만, 전혀 근거도 없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은 향엄 화상이 체득한 완전하고도 자유로운 불법의 깨달음의 경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안목 없는 주장이다.”

원오가 지적한 것처럼, 당시 불법에 대한 안목 없는 선승들이 향엄 화상이 대답한 ‘오래 앉아서 좌선 수행하느라고 애썼네(坐久成勞)’란 말을 가지고 여러 가지 제멋대로 이해하고 주장하는 말들을 비판하고 있다. 다시말해, 올바른 안목으로 향엄 화상의 법문을 참구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하는 안목 없는 사람들은 글자대로 해석하여 달마대사가 9년간 앉아서 좌선수행한 모습으로 이해한 말이다. 최근에 간행한 〈벽암록〉 주석서에도 “달마는 소림사에서 오랫동안 앉아 좌선하며 뛰어난 제자가 오는 것을 기다리다 지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 달마가 아니라 “향엄 자신이 오랫동안 좌선 수행하고 앉아 있지만 찾아오는 제자가 없어 지치고 피로했다”라는 해석도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누가 누구에게 “오랫동안 앉아서 좌선 수행하느라고 애썼네!”라고 말을 했을까? 라고 그 주인공을 찾는 분별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선문답을 단순히 글자 해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선승들이 대답한 한마디 한 구절에도 불법의 대의를 체득할 수 있는 법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정법의 안목이 없으면 선문답의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다. 단순히 글자로 이해할 수 있는 대화라면 굳이 선문답이라는 말로 기록하지 않아도 된다. 선문답은 평범한 범부들의 차별심 분별심으로 나눈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라 일체의 분별과 차별적인 인식으로 이해하는 중생심을 초월한 불심(佛性)의 지혜로 나눈 법문이기 때문이다.

불법의 지혜를 체득한 선승들의 대화(선문답) 내용은 평범한 일상생활의 대화를 나누는 깨달음의 지혜로운 생활임과 동시에 불법의 진실을 나누는 보살행의 법문이다. 불법을 체득한 선승들의 지혜로운 법문이기 때문에 기록할 가치가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대화를 통하여 불법을 체득할 수 있는 참된 인간교육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공안의 이해에 가장 어려운 점은 ‘달마가 중국에 오신 의도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제기와 ‘오랫동안 좌선 수행하느라 애썼네!’ 라는 말을 글자대로 해석하는 오류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들이 달마가 중국에 오신 의도(의지)를 파악하려고 참선을 한다. 무자화두를 참구할 때도 “왜 무(無)라고 했는고?”라면서 조주의 의지를 참구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왜 자신의 의지를 참구하지 않고, 달마의 의지나 조주의 의지를 참구해서 무엇 하려고 하는가? 참구한다고 달마나 조주의 의지가 파악될 수 있는 문제인가? 세월만 헛되이 보내고, 자신도 중생심의 선병에서 허덕이는 불법에 대한 안목이 없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달마가 중국에 온 것은 부처님의 정법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별심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마가 중국에 온 것은 의도나 의지가 없다. 의도나 의지는 목적의식이 있는 중생심인데, 달마대사는 한갓 범부로서 중생심으로 불법을 전하고 중생을 교화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마대사는 자신이 세운 원력을 실행하기 위해서 시절인연에 맞는 자기의 일을 당연히 실천한 것일 뿐, 별다른 목적의식이나 의도를 가지고 중국에 온 것이 아니다. 불보살이 실행하는 일은 원력을 세운 보살도의 일임과 동시에 지금 여기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일은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 가운데 지극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때문에 자신이 해야 하며, 결코 남이 대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움직이고 숨쉬는 일, 음식을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과 같이 당연한 일을 한 것이다.

그래서 향엄 화상은 “오랫동안 좌선수행 하느라 애썼네!”라고 대답하고 있다. 이 말은 선원에서 수행하는 사람은 많은 시간 좌선하며 불법을 사유하고 정법의 안목을 체득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달마가 중국에 오신 참된 정신이 자신의 일을 당연히 한 것처럼, 그대도 “좌선 수행하느라 애쓰고 있네!”라고 지극히 당연한 일을 일상의 인사말로 대답한 것이다. 일상의 인사말 하는 가운데 불법의 정신을 체득해야 하는 것이 선문답이다. 불법의 체득한 깨달음의 생활은 지금 여기 자신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떠나서 존재하거나 실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오는 “향림 화상이 ‘오랫동안 좌선수행 하느라 애썼네(坐久成勞)!’라고 말한 의미를 이 공안을 읽는 그대는 아는가? 안다면 자신의 삶이 안목 있는 불심의 생활이 되어 다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第018則]無縫塔
〈本則〉擧。肅宗皇帝問忠國師。百年後所須何物。國師云。與老僧作箇無縫塔。帝曰。請師塔樣。國師良久云。會麽。帝云。不會。國師云。吾有付法弟子耽源。卻諳此事。請詔問之。國師遷化後。帝詔耽源。問此意如何。源云。湘之南潭之北。中有黃金。充一國。無影樹下合同船。琉璃殿上無知識。
〈頌〉無縫塔見還難。澄潭不許蒼龍蟠。層落落。影團團。千古萬古與人看。

벽암록 18칙 혜충국사의 ‘무봉탑’

삼라만상 그대로가 이음새 없는 ‘무봉탑’

{벽암록} 제18칙에는 남양혜충 국사가 입적할 때에 숙종 황제에게 이음새가 없는 탑(無縫塔)을 만들어 줄 것을 간청하는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숙종 황제가 혜충 국사에게 물었다. “국사께서 입적한 뒤에 필요한 물건이 무엇입니까?” 국사는 대답했다. “노승을 위해서 이음새가 없는 탑(無縫塔)을 만들어 주십시요.” 황제는 말했다. “국사께서는 탑의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혜충 국사가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알았습니까?”라고 하자, 황제는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국사가 말했다. “나의 법을 부촉한 제자 탐원(耽源)이 있는데, 이 일(此事)을 알고 있습니다. 조서를 내려 그에게 묻도록 하십시요,” 국사가 입적한 뒤에 황제는 조서를 내려 탐원에게 물었다. “이 국사가 말씀한 이 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탐원이 말했다. “상주(湘州)의 남쪽, 담주(潭州)의 북쪽” (설두가 착어 했다. “한 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황금이 있어 온 나라에 가득하다” (설두가 착어 했다. “산처럼 생긴 주장자로다”) “그림자 없는 나무아래 함께 타는 배가 있다.” (설두가 착어 했다. “바다는 잠잠하고 강물은 맑다”) “유리로 만든 궁전위에 아는 사람이 없도다” (설두가 착어 했다. “무봉탑에 대하여 할 말은 다했다”)

擧. 肅宗皇帝, 問忠國師, 百年後, 所須何物. 國師云, 與老僧, 作箇無縫搭. 帝曰, 請徙搭樣, 國師良久云, 會. 帝云不會. 國師云, 吾有付法弟子眈源, 却此事, 請詔問之. 國師遷化後, 帝詔眈源, 問此意如何. 源云, 湘之南(兮)潭之北, (雪竇着語云, 獨掌不浪鳴.) 中有黃金充一國. (雪竇著語云, 山形杖子.) 無影樹下合同船. (雪竇著語云, 海晏河淸.) 瑠璃殿上無知識. (雪竇著語云, 拈了也.)


진리의 모습은 바깥에서 찾을 수 없어
모양과 소리에 집착하면 번뇌에 불과

이 얘기는 〈전등록〉 제5권에 전하고 있는 것으로, 혜충 국사가 입적하기 직전 대종(代宗)황제와 하직할 때에 나눈 대화이다. ‘평창’에서도 숙종과의 대화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혜충(? ~775)국사는 육조혜능의 제자로 하남성 남양의 백애산(白崖山) 암자에서 40년간 거주하였다. 그의 도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숙종과 대종황제의 국사로 초빙되었기 때문에 혜충 국사로 불리게 되었다.

황제는 혜충 국사와 하직할 때에 “국사가 입적한 이후에 내가 국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해드리면 좋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국사는 “저를 위해서 이음새가 없는 탑(無縫塔)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대답한다. 입적한 스승을 위해서 탑을 세우는 것은 보은과 공양의 의미인데, 인도나 중국, 한국에도 많은 선승들의 부도탑이 조성되었다.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無縫塔)이란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는 탑을 말한다. 원오도 “형체를 파악 할 수 없다”라고 착어를 하고 있다. 형체가 없는 탑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온 우주의 법계를 하나의 탑으로 말한 것이다. 즉 우리들 각자의 본성은 자타(自他)나 미오(迷悟)의 차별과 분별심으로 꿰맨 자국이 없다. 선에서는 일원상(一圓相)과 같이 진여실상(眞如實相)의 상징어로 사용하는 말인데, 아상, 인상이 텅 비워진 자기가 우주 만법과 하나가 된 만법일여 만물일체(萬法一如, 萬物一體)의 경지를 의미하는 말이다.

황제는 국사가 말한 이같은 무봉탑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탑의 모양에 대하여 질문했다. 국사는 황제에게 잠시 침묵하는 모습으로 보여 주고는 “내가 침묵으로 보여준 의미를 잘 파악했습니까?”라고 확인하고 있다. 국사의 침묵은 일체의 상대적인 차별과 분별심을 초월하고, 아상 인상을 텅 비운 불심의 경지를 직접 보여 주고 있다.

황제는 국사의 무봉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국사는 황제에게 나의 제자 탐원(耽源)이 내가 말한 무봉탑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니 그에게 자세히 물어 보라고 말했다. 탐원은 길주 탐원사 응진(應眞)선사로 국사를 오랫동안 모신 시자다. 국사의 법을 계승한 인물이며, 〈무문관〉 17칙에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른 공안을 싣고 있다. 선문에서는 일원상(一圓相)을 앙산혜적에게 전수한 선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국사가 입적한 뒤에 황제는 탐원에게 국사가 말한 무봉탑에 대하여 문의하자, 탐원은 무봉탑의 형체를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대답했다. “상주의 남쪽, 담주의 북쪽, 그곳에는 황금이 있어 온 나라에 가득찼네. 그림자 없는 나무아래 함께 타는 배가 있다. 유리로 만든 궁전 위에 아는 사람이 없네.”

상주와 담주는 중국 동정호(洞庭湖)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상강(湘江)과 담강(潭江)을 말한다. 석탑의 모양과 형체에 집착하고 있는 황제에게 “상주의 남쪽 담주의 북쪽”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탐원의 말은 남쪽의 끝, 북쪽의 끝과 같은 말로, 우주 건곤(乾坤)이 모두 무봉탑 아닌 것이 없다는 소식을 읊고 있다. 무봉탑은 어떤 고정된 모양이 없고, 어떤 고정된 장소에 한정되어 있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방세계가 모두 무봉탑인 것이다.

이말에 대하여 설두는 “한 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라고 착어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손은 탐원을 비유한 말이다. 황제가 무봉탑에 대하여 질문하자, 탐원이 “상주의 남쪽, 담주의 북쪽”이라고 대답했지만 황제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탐원 혼자 아무리 무봉탑에 대하여 말해도 말귀를 못 알아 듣고 있다는 의미이다.

탐원의 두 번째 게송에 “그 곳에는 황금이 가득 있어 온 나라에 가득 찼네”라고 읖은 것은 시방세계의 무한한 공간에는 일체의 모든 불법(황금)이 가득 충만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미타경〉과 〈화엄경〉 등에서는 불국토(法界)를 황금과 칠보(七寶) 등으로 비유하고 있다. 우리들의 본체인 진여 법성의 무봉탑(法界) 가운데는 일체의 모든 만법이 여법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게송에 설두는 “산처럼 생긴 주장자”라고 착어하고 있는데, 산에서 꺾어온 자연 그대로의 주장자를 말한다. 주장자는 선승이 갖는 도구로서 불성의 지혜작용을 무애 자재하게 활용하는 것을 상징한다. 탐원이 “그 곳에는 온 나라에 황금이 가득”이라고 읊은 것은 무봉탑의 세계를 꾸밈없이 자연 그대로 완전히 제시하여 보여준 말이다.

탐원은 “그림자 없는 나무아래 함께 타는 배가 있다”라고 읊고 있다. 그림자 없는 나무(無影樹)는 무봉탑을 말한다. 그림자가 없는 것은 상대적인 차별과 분별이 없는 절대의 경지이다. 선악(善惡)과 미오(迷悟), 시비(是非)는 모두 중생심의 차별로 나타난 그림자다. 이 게송은 일체중생이 절대(一味)평등한 불심(佛心)의 배를 함께 타고 있는 경지를 읊고 있다.

이 게송에 대해 설두는 “바다는 잠잠하고 강물은 맑다”고 착어했다. 일체 중생이 함께 타고 있는 배는 바람(중생심) 한 점 없는 잠잠한 불성의 바다에서 근심 걱정 없이 순조롭게 항해 할 수 있다. 일체의 차별심이 없는 동정일여(動靜一如)의 불심의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탐원이 “유리로 만든 궁전 위에 아는 사람이 없네”라고 읊고 있는데, 유리 궁전은 수정궁전으로 일체의 분별과 지해, 망념이 없는 청정한 불국토로서 무봉탑을 말한다. 무봉탑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무봉탑을 찾고 있는 것처럼, 무봉탑의 경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무봉탑은 각자의 번뇌 망념을 비운 진여 불성이며, 삼라만상의 일체 만법과 함께하고 있는 불심을 말하는데 각자의 불심을 밖을 향해서 어떤 모양과 형체로 찾아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비판하고 있는 게송이다.

설두는 “무봉탑에 대하여 할 말을 다 했다”라고 착어했다. 즉 탐원의 게송은 국사가 말한 무봉탑을 올바른 설명으로 남김없이 잘 표현했다고 칭찬하고, 게송에도 “무봉탑은 보기 어렵다”라고 읊고 있다. 무봉탑을 보려고 하면 도리어 더욱 보기가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第019則]只竪一指
〈垂示〉垂示云。一塵擧大地收。一花開世界起。只如塵未擧花未開時。如何著眼。所以道。如斬一綟絲。一斬一切斬。如染一綟絲。一染一切染。只如今便將葛藤截斷。運出自己家珍。高低普應。前後無差。各各現成。儻或未然。看取下文。
〈本則〉擧。俱胝和尙。凡有所問。只豎一指。
〈頌〉對揚深愛老俱胝。宇宙空來更有誰。曾向滄溟下浮木。夜濤相共接盲龜。

벽암록 19칙 구지화상의 한 손가락 법문

“손가락 하나에 우주의 진리가 다 들어있다”

{벽암록} 제19칙에는 구지(俱) 화상이 한 손가락을 세워 불법을 설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구지 화상은 누구라도 불법에 대하여 질문하면, 단지 한 손가락만을 세우기만 했다.

擧. 俱和尙, 凡有所問, 只竪一指.


일지선은 화엄과 유마와 동일한 세계
지혜 체득없이 손가락만 세우면 망상

조사들의 행장을 모아놓은 {조당집} 19권 '구지화상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구지 화상은 천룡(天龍)의 법을 이었고 경안주(敬安州)에 살았다. 그 밖의 행적은 알 수가 없어 기록하지 못한다. 선사가 암자에 살고 있을 때에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와서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선사의 선상을 세 바퀴 돌고는 주장자를 우뚝 선사 앞에 세우고 서서 말했다. '화상께서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시면 삿갓을 벗겠습니다.' 선사가 대답을 하지 못하니 비구니는 그냥 떠나려고 했다. 이에 선사는 말했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하루 저녁 묵어가도록 하시오' 비구니가 말했다. '제 질문에 대답을 하시면 묵어가겠지만 대답을 못하시면 이대로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떠나 가버렸다.

이때 선사는 혼자 탄식하였다. '나는 명색이 사문이라고 하면서 비구니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외람되이 장부의 형상은 갖추었으나 장부의 작용이 없구나! 이 산을 떠나 선지식을 두루 친견하리라.' 그리고 조용히 선정에 드니 갑자기 어떤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삼(三), 오(五)일 안에 큰 보살이 오셔서 화상께 설법해 드릴 것이요' 그런지 열흘이 지나지 않아 천룡 화상이 왔거늘 선사는 뛰어나가 말에 절을 하고 맞아들여 모시고 서서 앞에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한 즉 천룡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니 즉시에 환히 불법을 깨달았다.

선사는 그 뒤로 대중에게 말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룡 화상에게 일지선(一指禪)을 얻은 뒤로 평생 동안 사용해도 다 사용하지 못했다.'" 구지 화상은 항상 구지관음다라니(俱觀音陀羅尼: 七俱佛母心陀羅尼經)를 외우고 다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마조도일의 제자 법상(法常: 752~839)의 법을 이는 천룡 화상의 제자이다. 천룡 화상의 전기도 잘 알 수가 없다.

구지 화상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불법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을 할지라도 단지 한 손가락만을 세웠다고 한다. 원오도 '평창'에 "만약 손가락을 가지고 이렇쿵 저렇쿵 말한다면 구지화상을 법문을 저버린 것"이라고 주의하고 있다. 손가락을 보는 자는 경계에 떨어진 중생이다.

선어록은 선승들의 대화와 행동을 기록하고 있는 언행록이다. 말(言句)은 행위의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행위는 말(言句)보다도 한층 더 깊이 있는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원오도 '수시(垂示)'에 "한 티끌이 일어나니 온 대지가 그 속에 들어가고, 꽃 한 송이 피니 그 속에 세계가 열린다"라고 한 말은 한 생각의 번뇌 망념이 일어나면 만법이 일어난다는 {기신론}의 말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티끌이 일어나기 전에, 꽃 한 송이가 피기 전의 지혜작용이 오직 이 구지 화상의 한 손가락에 현성(現成)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도 같은 뜻이다. 즉, 번뇌 망념이 일어나기 이전, 언어 문자의 방편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불법의 근본을 구지 화상이 한 손가락을 세워서 제시하고 있는 법문을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 근원적인 본래심의 경지를 한 손가락으로 제시한 것이다. 마치 세존이 영산에서 많은 대중들에게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자 가섭이 미소로 대답한 것과 같은 법문이다.

선불교에서 하나(一)는 불법의 근본인 진실을 표현하는 불립문자의 경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또, 둘(二)은 언어 문자로서 진실을 체득하는 방편법문이다. 선문답에서 행동으로 제시한 불법의 근본은 만법의 근원인 일심(一心)의 법문이다. 불법은 마음으로 만법의 진실을 깨닫고 지혜를 체득하는 심법(心法)이다. 달마가 일심(一心)의 불법을 전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일심(一心)의 법문인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말한다. 선에서 제시한 일심(一心)의 법문은 {화엄경}에서 설하는 '일체의 모든 법은 마음이 만드는 것(一切唯心造)'이나 '만법유심(萬法唯心)' 그리고 '하나가 곧 많음(一卽多)' '하나가 곧 일체(一卽一切)'라는 법계의 연기를 사상적인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런데, 선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의 모든 법은 하나(一心)로 되돌아간다고 주장하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의 법문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조당집} 제7권 설봉장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위산이 앙산에게 질문했다. '그대가 밤새도록 불법을 사유하고 궁리하여 이룬 것이 무엇인가?' 앙산이 선뜻 한 획(불법의 대의)을 그어 보이니 위산이 말했다.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그대의 경지를 바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어떤 사람이 장경에게 물었다. '앙산이 한 획을 그은 뜻은 무엇입니까?' 장경이 손가락을 하나 세워 일으켜 보였다. 또 순덕에게 질문하니 순덕도 역시 손가락을 하나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그 스님이 말했다. '불법은 불가사의하여 천성(千聖)이 같은 길을 달린다.'"

원오는 '수시'에서 "한 티끌이 일어나면 온 대지가 그 속에 들어가고, 꽃 한 송이 피어나니 그 속에 세계가 열린다."라고 했다. '평창(評唱, 선에서 옛 사람의 이야기를 평하고 제창하는 것)’에서는 "한 티끌이 일자마자 대지는 전부 그 속에 들어가고, 꽃 한 송이 피어나니 온 세계가 열린다. 사자의 한 터럭에 백억 마리의 사자가 나타난다."라고 했다. 이는 낙보원안(834~898)의 말을 인용하여 일즉다(一卽多)의 융통과 대소(大小)가 무애자재한 불법의 불가사의한 경지를 설한 것이다.

{유마경}에 '한 터럭 속에 사해(四海)의 바닷물을 포용한다'고 하여, {소부사의경(小不思議經)}이라고 하였고, {화엄경}에 '일심(一心)에 法界를 포용한다'고 하여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이라고 한다. {능엄경}에서 '한 터럭(一毛端)에 두루 모두 시방국토를 포용한다'고 하는 불법의 정신을 구지 화상은 손가락을 세운 법문으로 전개하고 있다. 구지의 일지선(一指禪)은 불법의 일심법계(一心法界) 정신에 {장자} '제물론편'에서 "천지(天地)는 한 손가락(一指)이며, 만물은 한 마리의 말(一馬)이다", "천지(天地)는 같은 뿌리요, 만물(萬物)은 일체(一體)"라는 사상을 수용하여 철학과 이론으로 이해하는 불법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직접 불법을 정신을 현실에서 체득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행위의 법문이다.

{무문관}에는 구지화상의 일지선(一指禪) 법문에 이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구지 화상을 시봉하는 동자가 한 명이 있었는데, 구지화상이 외출하였을 때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구지화상께서는 어떤 법문을 설하는가?'라고 묻자, 그 동자 역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후에 구지화상은 이처럼 동자가 자기의 불법을 흉내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어느 날 하루는 드디어 칼로서 동자의 손가락을 절단해 버렸다. 동자는 아픔을 참지 못해 통곡하며 달아나고 있을 때에 구지화상은 동자를 불렀다. 동자는 머리를 돌려 화상을 쳐다보았다. 그 때에 구지화상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이 때 동자는 홀연히 깨달았다."

무문선사는 "구지 화상과 동자의 깨달음이 손가락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잘 파악하여 깨달음을 체득했다면 천룡과 구지, 동자와 이 공안을 읽고 있는 그대가 하나의 꿰미에 꿰어 놓은 것처럼, 똑같은 깨달음의 경지를 체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라고 평하고 있다. 원오도 '평창'에서 "구지화상이 손가락을 세우는 법문는 참구하기는 쉽지만 깨닫기는 어렵다. 요즘 사람들은 질문을 하면 손가락을 세우고 주먹을 불끈 드는데, 이것은 망상 분별일 뿐 반드시 뼛속에 사무친 투철한 견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은 의미의 게송을 읊고 있다. "구지화상은 누구에게나 손가락 하나만 세워 언어 문자를 초월한 법문으로 학인을 지도한 선풍(禪風)을 좋아한다. 손가락 하나로 전 우주를 텅 비워버리고, 들어올려 이러한 법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라고 칭찬했다.



[第020則]西來無意
〈垂示〉垂示云。堆山積嶽。撞牆磕壁。佇思停機。一場苦屈。或有箇漢出來掀翻大海。踢倒須彌。喝散白雲。打破虛空。直下向一機一境。坐斷天下人舌頭。無爾近傍處。且道從上來。是什麽人曾恁麽。試擧看。
〈本則〉擧。龍牙問翠微。如何是祖師西來意。微云。與我過禪板來。牙過禪板與翠微。微接得便打。牙云。打卽任打。要且無祖師西來意。牙又問臨濟。如何是祖師西來意。濟云。與我過蒲團來。牙取蒲團過與臨濟。濟接得便打。牙云。打卽任打。要且無祖師西來意。
〈頌〉龍牙山裏龍無眼。死水何曾振古風。禪板蒲團不能用。只應分付與盧公。這老漢。也未得勦絶。復成一頌。盧公付了亦何憑。坐倚休將繼祖燈。堪對暮雲歸未合

벽암록 20칙 용아화상과 달마가 오신 뜻

“조사의 뜻을 편견으로 재단하지 말라”

{벽암록} 제20칙에는 용아(龍牙) 화상이 취미(翠微)선사와 임제(臨濟) 선사를 찾아가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질문하는 공안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용아화상이 취미 선사에게 질문했다.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무엇입니까?" 취미 선사는 "나에게 선판(禪板)을 건네주게나.!"라고 말했다. 용아화상이 선판을 취미 선사에게 갖다 드리자, 취미 선사는 선판을 받자마자 곧바로 후려쳤다. 용아화상은 말했다. "치는 것은 선사 마음대로 치시오.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용아화상은 다시 임제선사에게 질문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임제 선사는 말했다. "나에게 방석을 건네주게!" 용아화상은 방석을 임제선사에게 갖다 드리자, 임제선사는 곧장 후려쳤다. 용아화상은 말했다. "치는 것은 선사 마음대로 치시오.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擧. 龍牙問翠微, 如何是祖師西來意. 微云, 與我過禪板來. 牙, 過禪板與翠微. 微, 接得便打. 牙云, 打卽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牙, 又問臨濟, 如何是祖師西來意. 濟云, 與我過蒲團來. 牙, 取蒲團過與臨濟. 濟, 接得便打. 牙云, 打卽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고정관념에 떨어지면 본래의 뜻 오해
좌선 흉내낸다고 진리 체득할 수 없어

용아 화상은 동산양개의 법을 이은 거둔(居遁: 835~923)선사로 호남 용아산 묘제선원에서 선풍을 떨친 선승이다. 그의 전기는 {조당집} 8권, {송고승전} 13권에 전하고 있는데, 여기에 제시한 공안은 {전등록} 17권과 {임제록}, {굉지송고} 80칙 등에도 전하고 있다.

{벽암록} 제4칙에 덕산이 위산영우선사를 참문한 것처럼 용기가 충천한 젊은 수행자 용아 화상은 먼저 취미 선사을 방문하여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취미선사는 단하천연(丹霞天然)선사의 법을 이은 당대의 유명한 무학(無學)선사이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祖師西來意)'은 {벽암록} 17칙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선승들이 많이 사용하는 정형구의 질문이다. 수행자가 정면에서 돌파하여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불법의 근본문제이다.

그런데 취미 선사는 "저기 있는 선판을 건네주게!"라고 말했다. 선판은 좌선 수행중에 잠시 턱을 기대고 쉴 수 있는 도구이다. 용아 화상은 "예!"하고 노스님이 시키는 대로 정직하게 선판을 건네주자, 취미 선사는 선판을 받는 순간 곧장 후려쳤다. '이 멍청한 녀석! 조사의 뜻을 알기나 해? 지금 나에 선판을 건네주는 그 지혜작용의 일이 바로 살아있는 조사의 뜻이라는 사실을 체득해야지!'라는 친절한 훈계다.

용아화상은 "때리는 것은 노스님 맘대로 하세요. 그러나 조사의 뜻은 없군요"라고 말하고 곧장 나가 버렸다. 용아 화상은 "번뇌 망념이 한 생각도 없는 무념무위(無念 無爲)의 경지가 조사가 오신 뜻(祖師意)"이라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취미 선사를 점검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취미 선사가 조사의 뜻을 직접 친절하게 행동으로 보여준 법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시 젊은 패기로 당시 유명한 임제선사를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제시하며 임제의 안목을 점검하고 있다.

임제선사는 "나는 지금 좌선을 하려고 하는 참인데, 그대는 나에게 방석을 건네주게!”라고 말했다. 임제는 조사의를 체득한 경지의 삶을 지금 여기서 좌선하는 자신의 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용아 화상은 역시 임제의 법문을 파악하지 못하고 "예!"하며 방석을 건네주고 있다. 임제는 방석을 건네 받는 즉시에 "이 멍청한 놈!"하고 주장자로 후려쳤다. 용아 화상은 역시 "때리는 것은 노스님 맘대로 하시오. 조사의는 없군요!"라고 자기 나름대로 임제의 선기(지혜작용)를 점검하고 있다.

원오는 "귀신의 소굴에서 살림살이하고 있군"이라고 착어했는데, 용아 화상이 '조사의 뜻(祖師意)은 없다'고 하는 고정관념에 떨어져 지혜작용이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즉 용아 화상이 '조사의'가 없다고 하는 주장은 '일체의 생각을 텅 비운 공무(空無)의 경지가 조사의 뜻이라는 편견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자신의 일을 통한 지혜의 작용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또한 용아 화상은 '조사의 뜻(祖師意)이 없다'고 하는 한 생각에만 사로잡힌 편견으로 취미와 임제 선사를 점검하려고 하는 승부심에 떨어져 있는 것인데, 이기고 지는 승부심을 가지고 선문답을 하는 것은 주객(主客)의 차별심에 떨어진 중생의 삶을 살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용아 화상이 뒤에 선원을 열고 수행자들을 지도할 때에 어떤 스님이 질문했다. "화상이 취미와 임제 선사를 참문 하였는데 그 두 존숙을 인정하십니까?" 용아 화상은 "두 존숙이 불법을 체득한 경지를 인정하지만 단지 조사의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생각하는 편견으로 점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산어록}에 의하면 용아 화상은 동산 선사를 참문하여 똑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동산 선사는 "동수(洞水)의 물이 역류할 때에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라고 말하자 곧바로 깨닫고 동산의 법을 계승하게 된 사실을 전하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용아화상은 한결같이 제방의 선지식을 두루 찾아다니며 선법과 인격을 탁마하였으니 후대에 수행자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설두 화상의 게송을 살펴보자. "용아산의 안목 없는 용이여!" 이 말은 용아 화상이 취미와 임제 선사를 점검하러 가는 기세는 용아(龍牙)라는 이름에 걸맞게 훌륭한 용(龍)의 모습이었는데, 두 존숙의 지혜법문을 체득하지 못한 것은 불법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썩은 물속에서 어떻게 고풍(古風)을 떨칠 수가 있으랴!" 용아화상은 자신이 조사의는 없다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적멸(寂靜)세계가 불법을 깨달은 경지로 생각하고, 깨달음의 세계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물에 빠져있는 눈알(정법의 안목)이 빠진 용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취미가 선판을 제시하고, 임제가 방석을 제공해도 그러한 도구를 조사의로서 활용할 수 있는 안목이 없게 되었으니 그 선판과 방석을 나 설두(盧公)에게 넘겨 주시오라고 읊고 있다.

설두는 "이 늙은이(용아)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군(絶)! 또 하나의 게송을 더 지어야 겠네!"하고 게송을 짓고 있다. 설두는 앞의 게송에서 용아는 참된 불법의 깨달음을 체득하지 못하여 안목없는 선승으로 취급했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완전히 죽여 버리는 것(絶)은 아까운 인물이다. 미련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하나의 게송을 더 첨가한다고 하고 있다. 초절(絶)은 {서경}에 나오는 말로 '소멸시키다'라는 의미이다.

"선판과 방석을 나 설두(盧公)에게 넘겨준들 어찌 의지할 것이 있으랴!. 방석에 앉거나 선판에 기대어서 조사의 등불을 계승하려 하지 마오." 나는 앞의 게송에서 용아 화상에게 선판과 방석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나에게 건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판과 방석을 받으면 불법을 전해 받았다는 분별심을 일으키기 쉽지만, 나는 이러한 정식(情識)을 끊었기 때문에 방석과 선반을 의존하지 않는다. 방석 위에 앉아서 9년 면벽하며 좌선한 달마와 같이 조사의 흉내를 낸들 조사의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며, 의미있는 일도 아니며, 또한 선판에 기대어 피로를 푸는 일도 모두 쓸데없는 일이다. '조사가 오신 뜻(祖師意)'이란 좌선 수행을 하는 자세나 모양을 취한다고 체득되는 것이 아니며 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옛날에는 황벽과 임제처럼, 선판과 방석이 전법의 인가증명으로 활용된 적은 있지만. 나 설두는 그것보다 달마가 중국에 오기 이전의 소식을 존중하고 싶다. 설두는 참된 조사의를 세계를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로서 제시했다. "저녁 구름은 돌아가느라 모여들지 않나니, 먼 산은 아득히 푸르름에 쌓여 있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