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iSJsQjy58hg
https://www.youtube.com/watch?v=9F_5i652t0A
https://www.youtube.com/watch?v=g9sDr4_ORuo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95%BD%EC%9A%A9
언문습득
정약용은 특별한 스승이 없이[17] 부친 정재원의 임지를 따라다니며 부친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형 정약전은 성호 이익의 학맥을 잇는 녹암 권철신으로부터 사사했으나 정약용은 부친의 가르침 이외에 독학하였다. 이가환, 이승훈과 교류하게 되면서 이익의 학문을 접했으나 유작을 통해서 사숙(私淑)했을 뿐이다.[18]
네살에 천자문을 배웠고[19] 일곱 살 때 '바다'라는 시를 지은 것이 남아있다. 열 살 이전의 어린 시절에 지은 시를 모아 《삼미자집》(三眉子集)이라는 책을 냈는데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20] 삼미(三眉)라는 별명은 어릴 적에 걸렸던 천연두가 나으면서 생긴 흉터 때문에 눈썹이 세 개 생겼다는 뜻이다. 아홉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맏형수 경주 정씨와 계모 김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열살때 경서와 사서를 모방해서 작문한 글이 자신의 키만큼 쌓였다고 한다.[20]
어릴 적에 천연두에 걸렸으나, 왕족 출신의 사가 명의였던 이헌길의 진료로 인하여 살았다. 정약용은 훗날 이헌길의 《마진기방》을 바탕으로 한층 발전된 홍역 치료서 《마과회통》을 집필하고, 이것은 현대 의학이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조선의 생명을 구한다. 또한 정약용은 이헌길의 생애를 다룬 《몽수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성호학파 입문
1776년 결혼하여 처가에 왕래하기 위해 서울을 자주 드나들면서 이때 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21]같은 해 아버지가 다시 벼슬을 하여 호조 좌랑이 되었으므로 서울에 집을 세내어 살았다.[13] 1776년 4월10일(음력 2월22일)에 승지 혼문으로 명성이 높은 이가환과 매부 이승훈을 만났다.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이었으며, 성호 이익의 종손으로 당시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는 중심인물이었다. 이승훈도 이익의 학문을 계승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영향을 받아 정약용도 그 이익의 유서를 공부하게 되었다.
이들에게서 이익의 학문을 접하면서 실학사상의 토대를 다졌다. 이익은 근기학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 정약용이 어린시절부터 근기학파의 개혁이론에 접했다고 하는 것은 청장년기에 그의 사상이 성숙되어 나가는 데 적지 않은 의미를 던져주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정약용 자신이 훗날 이 근기학파의 실학적 이론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게 된 단초가 바로 이 시기에 마련되고 있었다.[6]
1777년(15세) 화순 현감이 된 아버지를 따라가서 화순현 북쪽에 있는 동림사에 가서 형 정약전과 함께 서책 학습에 매진했다,[13] 1780년(18세) 아버지가 경상도 예천군수로 부임하자 예천에 가서 살았다.[22] 1782년, 서울에 집을 마련하여 정착 한 후 과거공부에 전념하였고 1783년에 세자 책봉 경축 증광시에 합격하고 회시로 생원이 되었다. 22세에는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갔는데, 매달 치르는 시험과 열흘마다 치르는 순시(旬試)에 매번 높은 성적으로 뽑혀서 책과 종이와 붓을 상으로 하사받으며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13]
'물의 정원'은 강물 너머 운길산이 병풍처럼 둘러진 수변 공원이다. 가까이에 운길산전철역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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