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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熱河日記) - 찰십륜포(札什倫布)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열하일기(熱河日記) - 찰십륜포(札什倫布)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찰십륜포(札什倫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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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熱河日記) - 찰십륜포(札什倫布)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찰십륜포(札什倫布)

 

1. 찰십륜포(札什倫布)

2. 중존평어(仲存評語)

 

 

 

찰십륜포(札什倫布)

반선액이덕니(班禪額爾德尼)를 찰십륜포(札什倫布)에서 보았다. 찰십륜포란, 서번(西番) 말로서 대승(大僧)이 거처하는 곳이란 말과 같다. 피서산장(避暑山莊)으로부터 궁성을 돌아서 오른쪽으로 반추산(盤捶山)을 바라보고 더 북쪽으로 십여 리를 가서 열하를 건너면, 산을 의지하여 동산을 만들었고 언덕을 뚫고 산 모롱이를 끊어 산 뼈다귀만 드러내고 있는데, 저절로 언덕이 찢어지고 석벽이 깎여져 십주(十洲)와 삼산(三山)의 모양같이 바윗돌이 착낙(錯落)하여, 마치 짐승이 입을 벌리고 새가 날개를 펴서 구름이 흩어지고 우레가 터지는 듯한데, 공중에 다리 다섯이 놓였고 다리로부터 층계로 길을 내어 그 평평한 곳에 용과 봉을 새겼다. 길을 따라 흰 돌로 된 난간이 구부러지고 꺾이어 문까지 닿았다. 또 두 개의 각문(角門)이 있는데 모두 몽고 군사가 지키고 있었다. 문에 들어서니 땅에는 벽돌을 깔아 층계로 세 길을 만들었는데, 흰 돌로 된 난간에는 모두 구름과 용을 새겼고 길은 한 다리로 합치게 되었다. 다리에는 구멍 다섯이 있고 대()의 높이는 다섯 길이나 되는데, 난간을 둘렀고 모두 무늬 있는 돌에는 해마(海馬)나 기린 같은 짐승들을 새겼는데, 비늘과 뿔과 갈기와 발굽들은 모두 돌 빛깔을 따라서 했다. 대 위에는 전각 둘이 있는데 전각은 모두 처마를 겹으로 했고 황금 기와를 이었다. 집 위에는 여섯 마리 용이 걸어 다니는 듯이 만들어졌는데 모두 황금으로 그 몸뚱이를 만들었다. 둥근 정자나 굽은 집과 겹쳐 있는 다락과 포개어진 전각이나 드높은 헌함과 층으로 된 행랑들은 모두 푸른빛초록빛자줏빛남빛으로 된 유리 기와를 이어 억천만금의 비용을 들였다. 채색은 신기루(蜃氣樓)를 능가했고, 아로새긴 솜씨는 귀신도 부끄러워할 만하고 헛 신령이 우레를 핍박하는 듯하고 어둡기는 새벽녘과 같았다. 동산 가운데는 새로 어린 소나무를 심었는데 산골짜기에 연해서 모두 곧고 크기는 한 길이나 되었다. 나무에는 종이를 매어 그 전에 심은 것을 표해 놓았다. 섞어 심은 기이한 화초는 모두 처음 보는 것으로 그 이름도 알 수 없는데, 이때 바야흐로 죽도(竹桃)가 만개했다. 나마(喇嘛) 수천 명이 모두 붉은 선의(禪衣)를 끌고 누런 좌계관(左髻冠)을 쓰고 팔뚝을 내놓고 맨발로 문이 메도록 몰려드는데, 그들의 얼굴은 모두 칼로 깎은 듯, 검붉고 코가 크고 눈이 오목하며, 턱이 넓고 곱슬 수염에 손과 발은 사슬로 채우고 머리는 맨머리였다. 귀에는 금고리를 달고 팔뚝에는 용 무늬를 수놓았다. 전각 속 북쪽 벽 아래에는 침향(沈香)으로 높이가 어깨에 닿게 연꽃 탁자를 만들어 놓았는데, 반선은 남쪽을 향해서 다리를 꼬고 앉았다. 누런 빛 우단으로 된 관을 썼는데 말갈기 같은 털이 달렸고 모양은 가죽신같이 생겨 높이가 두 자 남짓이나 됐다. 금으로 짠 선의(禪衣)를 입었는데 소매가 없이 왼쪽 어깨에 걸쳐서 온몸을 옷으로 쌌다. 오른편 옷깃 겨드랑 밑으로 오른 팔뚝을 드러냈는데 장대하기가 다리만 하고 금빛이었다. 얼굴빛은 누렇고 둘레가 예닐곱 뼘이나 되는데 수염 난 자리는 없고, 코는 쓸개를 떼어 달아맨 것 같으며, 눈썹은 두어 치나 되고 흰 눈동자가 겹으로 되어 음침하고 컴컴해 보였다. 왼쪽에는 낮은 상 두 개가 있어 몽고왕 둘이 무릎을 연해 앉았는데, 얼굴은 모두 검붉으며 그 중 하나는 코가 뾰족하고 이마가 드높고 수염이 없었으며, 한 명은 얼굴이 깎인 듯하고 올챙이 수염에 누런 옷을 입었다. 중얼거리면서 서로 보고는 다시 머리를 들고 무엇을 듣는 듯했다. 나마 두 명이 오른편에 모시고 섰고 군기 대신(軍機大臣)은 나마의 밑에 서 있다. 군기 대신이 황제를 모실 적에는 누런 옷을 입었는데 반선을 모실 적에는 나마의 옷을 바꾸어 입었다. 내가 아까 황금 기와가 햇빛에 번쩍이는 것을 보다가 전각 속에 들어가니, 집 안은 침침하고 그가 입은 옷은 모두 금으로 짰으므로 살갗은 샛노랗게 되어 마치 황달병 걸린 자와 같았다. 대체로 금빛깔로 뚱뚱 부어 터질 듯이 꿈틀거리는데 살은 많고 뼈는 적어서 청명하고 영특한 기운이 없으니, 비록 몸뚱이가 방에 가득하나 위엄(威嚴)을 볼 수 없고, 멍청한 것이 수신(水神)과 해약(海若)의 그림과 같았다. 황제가 내무관(內務官)을 시켜서 조서(詔書)를 전달하게 하는데 오색 비단 한 필을 가지고 반선을 보게 하여, 내무관이 손수 비단을 세 곳에 나누어 사신에게 주었다. 이것은 이름을 합달(哈達)’이라 하는 것으로, 대개 반선은 자기 말에 그의 전신(前身)이 파사팔(巴思八)이라 하고, 파사팔은 그 어머니가 향내 나는 수건을 물고 낳았으므로 반선을 보는 자는 반드시 수건을 갖는 것이 예절로 되어 있어, 황제도 매양 반선을 볼 때마다 역시 누런 수건을 갖는다 한다. 군기 대신의 처음 말로는, 황제도 머리를 조아리고 황육자(皇六子)도 머리를 조아리며 부마도 머리를 조아리니, 이번 사신도 응당 가서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고 했다. 사신은 아침에 이미 예부(禮部)와 다투어 말하기를,

 

머리를 조아리는 예절은 천자의 처소에서나 하는 것인데, 이제 어찌 천자에 대한 예절을 번승(番僧)에게 쓸 수 있겠소.”

하여 항의하였더니, 예부에서 말하기를,

 

황제도 역시 스승의 예절로 대우하는데, 사신이 황제의 조칙을 받들었을 적에야, 같은 예로 대우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했다. 사신이 즐겨 가지 않으려 하여 굳이 서서 다투니, 상서(尙書)덕보(德保)는 노해서 모자를 벗어 땅에 던지고, 몸을 던져 방바닥에 쓰러지면서 큰 소리로,

 

빨리 가, 빨리 들어가.”

하면서 사신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때 군기 대신이 무슨 말을 하는데 사신은 못 들은 것 같았고, 제독(提督)이 사신을 인도하여 반선(班禪) 앞에까지 이르니, 군기 대신이 두 손으로 수건을 받들고 서서 사신에게 준다. 사신은 수건을 받아 가지고 머리를 들고 반선에게 주니, 반선은 앉은 채 수건을 받으면서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수건을 무릎 앞에 놓으니, 수건이 탁자 아래까지 늘어졌다. 차례로 수건 받기를 마친 다음에 반선은 다시 군기 대신에게 주니, 군기 대신이 수건을 받들고 반선의 오른편에 모시고 섰다. 사신이 막 돌아서려 하는데 군기 대신은 오림포(烏林哺)에게 눈짓을 하여 중지시켰다. 이것은 대개 사신으로 하여금 절을 하게 하기 위함인데, 사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머뭇머뭇 물러서서 검은 비단에 수놓은 요를 깐 몽고왕의 아랫자리에 앉았다. 앉을 때 조금 허리를 구부리고 소매를 들고는 이내 앉으니, 군기 대신은 얼굴빛이 황급해 보였지만 사신이 벌써 앉아버렸으니 또한 어쩔 수가 없는지라 숫제 못 본 체했다. 제독은 수건을 나누어 얻을 때 남은 것이 한 자 남짓하였는데 이것을 반선에게 올리면서 조심스레 머리를 조아렸고, 오림포 이하 모두들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차를 몇 바퀴 돌린 뒤에 반선은 소리를 내어 사신이 온 이유를 묻는데, 말소리가 전각 안을 울려 독 속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머리를 숙여 좌우편을 고루 둘러 보더니, 미간(眉間)을 찡그리고 눈동자가 눈 속에서 반쯤 드러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속으로 굴리는 것이 시력(視力)이 나쁜 사람 같았다. 눈동자는 더 희어지고 흐릿하여 더욱 정광(精光)이 없어 보였다. 나마가 말을 받아서 몽고왕에게 전하자, 몽고왕은 군기 대신에게 전하고 군기 대신은 오림포에게 전하며, 오림포는 우리 역관(譯官)에게 전하니, 대체로 이것은 오중(五重)의 통역이다. 상판사(上判事)조달동(趙達東)이 일어나 팔뚝을 걷어붙이며,

 

만고에 흉한 사람이로군. 옳게 죽을 리가 없을 거야.”

하기에, 나는 그에게 눈짓을 했다. 나마 수십 명이 붉고 푸른 모직과 붉은 탄자와 서장 향()과 조그마한 금 불상을 메고 와서 등급대로 나누어 주는데, 군기 대신이 받들고 있던 수건으로 불상을 쌌다. 사신은 그 다음에 일어서서 나왔는데, 군기 대신은 반선이 하사한 모든 물건을 펴 보고 황제께 아뢰기 위하여 말을 달려 갔다. 사신은 문을 나와 560보쯤 가서 절벽을 등지고 소나무 그늘 모래 위에 둘러 앉아 밥을 먹으면서 의논하기를,

 

우리들이 번승을 볼 적에 예절이 많이들 소홀하고 거만해서, 예부의 지도대로 못했으니 저이는 만승 천자의 스승인지라, 앞으로 우리에게 득실이 없을 수 없을 것이야. 그가 준 선물들을 물리친다면 불공하다 할 것이요, 받자니 또 명색이 없는 일인즉 장차 어찌하면 좋을까.”

하였다. 당시의 일이 창촐간이라 받고 사양하는 것이 마땅한지 않은지를 계교(計較)할 여가도 없었고, 모두 황제의 조서에 매인 일인데다가 저들의 행사는 번개 치고 별 흐르듯이 삽시간에 끝내버렸기 때문에 우리 사신의 진퇴와 좌립은, 다만 저들의 인도에만 따를 뿐이어서 흙으로 뭉치고 나무로 깎은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이다. 또 통역은 중역(重譯)이 되어 피차의 통관이 도리어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되어, 마치 벌판에서 괴상한 귀신을 갑자기 만난 듯 어떻다고 측량할 수 없었다. 사신은 비록 묘한 말과 익숙한 행동이 있었지만 장황스레 늘어놓을 수도 없었고, 저들도 역시 능히 그렇게 하지 못한 것도 그 형세가 그렇게 된 것이다. 정사가 말하기를,

 

지금 우리가 유숙하는 집은 태학관(太學館)이라서 불상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니, 우리 역관을 시켜 불상 둘 곳을 찾아보게 하라.”

고 했다. 이때, 번인(番人)한인(漢人) 할 것 없이 구경꾼이 성같이 둘러싸서 군뇌(軍牢)들은 몽둥이를 휘둘러 쫓았으나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여들었다. 모자에 수정 구슬을 단 자와 푸른 깃을 꽂은 궁중의 근신(近臣)들이 와서 그 속에 섞여 서서, 염탐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영돌(永突)이 큰 소리로 나를 불러,

 

사신께서 좋지 않은 기색으로 마당에 나앉아서 오랫동안 잘잘못을 의논하고 수군대시는 것이, 저 사람들에게 공연히 의심을 사지 않을까요.”

하기에, 내가 돌아다 보니, 전에 황제의 조서를 전하던 소림(素林)이 내 등 뒤에 서 있다가 여러 사람 틈으로 나가 말에 올라 달려 가는 것이다. 여러 사람 중에 또 두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가는데, 자세히 보니 그들은 모두 환관 나부랑이들이다. 박불화(朴不花)가 원()에 들어갔을 때부터 원의 내시들은 우리나라 말을 많이 배웠고, ()의 시절에도 얼굴이 잘생긴 조선 고자들을 시켜 내시들에게 조선말 공부를 시켰으니, 지금 우리를 엿보고 간 두 사람도 어찌 조선말을 배우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랴. 소림과 같이 있던 푸른 깃을 꽂은 자도 와서 말을 세우고 자못 오랫동안 있다가 갔는데, 그 왕래가 하도 빨라서 마치 나는 제비와 같았다. 사신과 역관들은 이 자들이 와서 엿듣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고 반선에게 받은 불상도 미처 처치하지 못했으므로, 자리를 파하고 돌아가지도 못하고 모두 묵묵히 앉았는 판에, 황제는 어원(御苑)에서 매화포(梅花砲)를 놓고 사신을 불러 들어와 보게 하였다. 전각은 처마가 겹으로 되었고, 뜰에는 누런 장막을 치고 전각 위에는 일월과 용봉을 그린 병풍과 벌여 놓은 보물들이 심히 엄숙했다. 일천 관리들이 차서대로 섰는데 반선이 혼자 먼저 탁자 위에 앉으니, 일품(一品) 보국공(輔國公)들과 조정의 고관들이 모두 탁자 아래로 나아가서 모자를 벗고 머리를 조아렸다. 반선이 손수 한 번씩 이마를 어루만져 주자 그들은 일어서서 나가면서 다른 사람을 대하여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 후 천자가 누런 빛 작은 가마를 타니 다만 칼찬 56쌍 시위(侍衛)가 길을 인도한다. 풍악은 퉁소 한 쌍, 젓대 한 쌍, 징 한 쌍, 비파생황거문고와 구라파의 쇠 거문고 두세 대와 박자판 한 쌍이요, 의장(儀仗)도 없이 따르는 자는 백여 명쯤 되었다. 황제가 탄 가마가 앞에 이르자, 반선은 천천히 일어나 탁자 위에 몇 걸음 발을 옮겨 동쪽으로 향해 즐거운 빛으로 웃는 얼굴을 짓는다. 황제는 45칸 떨어져 가마에서 내려 빨리 쫓아가서, 두 손으로 반선의 손을 잡고 서로 흔들면서 마주 보고 웃고 이야기를 한다. 황제는 갓 꼭지가 없는 붉은 실로 짠 모자에, 검정 옷을 입고, 금실로 짠 두꺼운 요 위에 평좌(平坐)하고, 반선은 금 삿갓에 누런 옷을 입으며, 금실로 된 두꺼운 방석 위에 부처 모양으로 동쪽으로 나가 한 탁자 위에 앉는다. 둘의 방석은 무릎이 닿을 듯한데, 자주 몸을 기울여 서로 이야기할 적에는 반드시 둘이 서로 웃음을 띠고 즐거워했다. 자주 차를 올리는데 호부 상서(戶部尙書)화신(和珅)은 천자에게 바치고, 호부 시랑(戶部侍郞)복장안(福長安)은 반선에게 바치는데, 복장안은 병부 상서융안(隆安)의 아우로서 화신과 함께 시중(侍中)으로 귀한 품위가 조정에 진동한다. 날이 이미 저물자 황제가 일어서니 반선도 역시 일어나 황제와 함께 마주 서서, 둘이 서로 악수를 하고 얼마 있다가 등을 지고 갈라져 탁자에서 내려섰다. 황제는 이내 안으로 들어가는데 나올 적의 차림대로 돌아가고, 반선은 황금 교자를 타고 찰십륜포로 돌아갔다.

 

 

[D-001]십주(十洲) : 중국 전설 중의 신선이 살고 있는 열 군데의 섬.

[D-002]삼산(三山) : 역시 전설 중의 신선이 살고 있는 세 군데의 명산.

[D-003]해약(海若) : 바다의 귀신. 남화경(南華經) 추수편(秋水篇)에 나온다.

[D-004]합달(哈達) : 나마교에서 예물로 쓰는 엷은 비단.

[D-005]박불화(朴不花) : 원 순제(元順帝) 때 곧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우리나라 환관으로 원에 들어가, 황후의 사랑을 받은 자.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

 

 

중존평어(仲存評語)

 

 

중존씨(仲存氏)는 말하였다.

 

목천자전(穆天子傳)으로부터 이하 한의 동방삭전(東方朔傳)》ㆍ《비연외전(飛燕外傳)》ㆍ《서경잡기(西京雜記) (() 유흠(劉欽)이 지음) □□□ 등 서적은, 모두 궁중 밖에서는 참견할 것이 못되는 여관(女官)들이 쓴 책이므로 일체 이것을 패관(稗官)으로 돌리지만, 모두 족히 당시 제왕들의 취미와 행동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니, 여기에 실린 글은 무엇이라 일컬을는지 모르겠다.”

하고, 그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중국의 사대부들로서 반선을 얻어 보지 못한 자는 도리어 우리에게 그 모양이 어떻더냐고 물었으니, 이것은 그들의 뜻이 사람의 이목을 더럽히지 않고자 함인데, 우리는 그들의 외설된 일에 이끌려서 아무 거리낌없이 하였으니 가히 수치스럽기 짝이 없다.”

 

[C-001]중존평어(仲存評語) : 여러 본에 모두들 이 소제(小題)가 없었으나, 여기에는 주설루본에 의하여 추가한다.

[D-001]중존씨(仲存氏) : 연암의 처남 이재성(李在誠)의 자.

[D-002]목천자전(穆天子傳) : 주 목왕(周穆王)이 서역을 여행한 기록이다. 저자는 미상.

[D-003]동방삭전(東方朔傳) : 한 무제(漢武帝) 때 동방삭의 골계적(滑稽的)인 일을 기록한 것. 저자 미상.

[D-004]비연외전(飛燕外傳) : 한 성제(漢成帝) 때 황후인 비연의 자매(姉妹)에 대한 고사. 영현(伶玄)이 지었다고 한다.

 

 

 한국고전번역원  이가원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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