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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熱河日記) - 양매시화(楊梅詩話)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양매시화(楊梅詩話)
1. 양매시화서(楊梅詩話序)
2. 양매시화(楊梅詩話)
양매시화서(楊梅詩話序)
내가 유황포(兪黃圃) 세기(世琦)를 유리창(琉璃廠)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의 자(字)는 식한(式韓)이며 거인(擧人)이다. 그 뒤 열하로부터 북경에 돌아오자, 곧 황포와 약속하여 양매서가(楊梅書街)에서 이야기하기를 무릇 일곱 차례나 하였다. 황포가 해내(海內)의 명사들을 많이 소개하였다. 능 거인(凌擧人) 야(野), 고 태사(高太史) 역생(棫生), 초 한림(初翰林) 팽령(彭齡), 왕 한림(王翰林) 성(晟), 풍 거인(馮擧人) 승건(乘健) 등이 모두 재주가 높고 운치가 맑아서, 그들의 작품에는 편언(片言)과 척자(隻字)라도 입맛에 향기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필담했던 초고가 거의 여러 명류(名流)들이 가져간 바 되었다. 그리하여 돌아올 때 행장을 점검하여 보니 겨우 10분의 3,4가 남았는데, 더러는 술취한 뒤에 이룩된 난초였고, 또는 저무는 햇빛에 달린 필적이었다. 비유하건대 마치 저 여산(廬山)의 새벽 구름인 양, 참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또는 소옹(小翁 중국 고대 선인(仙人))이 휘장을 가리고 앉아 옥패(玉佩) 소리가 더딘 듯싶었다. 엄계(罨溪)에서 한가한 날에 며칠 아침을 뒤적거려서 비로소 그 순서를 정하였다. 아아, 당시의 일을 상상해 보건대, 나 홀로 붉은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서 많은 손님을 눈맞이 하니 말과 수레가 앞뒤를 잇달았으며, 언론이 시작되어 흉금을 터놓고 농담을 주고받던 일이 마치 눈에 뵈는 듯하며, 이야기가 분분하여 마치 저 담화(曇花)가 어지러운 듯하였다. 긴 해를 보내면서 파리채를 휘두르며 손과 팔이 함께 바빴으니, 인간에 이 기쁨이야말로 어느 때에 잊어질 수 있으리요.
전방표(錢芳標)의 자는 보분(寶汾), 또는 보분(葆馚)이니, 강남(江南) 화정(華亭)에 사는 사람이다. 병오년에 거인(擧人)으로서 벼슬이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이르렀다. 일찍이 〈내직잡시(內直雜詩)〉가 있으니, 그 1절에 이르기를,
붉은 주사 거듭 찍어 경전 그 빛 고운 종이 / 丹砂印重鏡箋勻
조선서 보낸 글월 해 걸러 자주 오네 / 隔歲朝鮮拜表頻
섬나라 낭호필이 망가졌음 못 믿거나 / 不信狼毫窮島筆
승두 같은 글씨 위부인의 필첩이네 / 蠅頭慣搨衛夫人
라 하였다. 중국 사람이 흔히들 우리나라 백추지(白硾紙 도침(搗砧)한 백지)와 낭미필(狼尾筆)로서 시편(詩編)에 나타내었으나,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애초에 낭(狼)이 없었으니 어찌 그 꼬리로써 만들 수 있었으리요. 보분(寶汾)이 이른바 ‘경전(鏡箋)’이란 곧 백추지였으니 종이가 몹시 매끄럽고, 낭의 털이란 곧 우리나라 사람의 이른바 ‘황모(黃毛)’였으니, ‘황(黃)’이란 곧 예서(禮鼠 족제비)였으나 국산 예서는 쓸 수 없게 되었으므로, 국내에서 쓰는 것이 모두 당황모(唐黃毛)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람은 이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자관(寫字官)이 중엽(中葉) 이전에는 모두 위부인의 글씨체를 썼으나, 요즈음에 이르러서는 모두 홍무정운체(洪武正韻體)를 쓰게 되었다.
[주D-001]여산(廬山) : 강서성(江西省)에 있는 명승지(名勝地).
[주D-002]엄계(罨溪) : 연암서당(燕巖書堂) 앞에 있는 시내 이름.
[주D-003]담화(曇花) : 《법화경(法華經)》에서 이르는 우담발화(優曇鉢花)의 약어.
[주D-004]파리채 : 사슴의 꼬리로 만든 불자(拂子). 이야기를 할 때 휘두르는 제구.
[주D-005]〈내직잡시(內直雜詩)〉 : 내부(內府)에 당직(當直)하면서 잡감(雜感)을 읊은 시.
[주D-006]붉은……찍어 : 시전지(詩箋紙)에 붉은 주사로 무늬를 찍은 것.
[주D-007]경전(鏡箋) : 거울같이 맑고 매끄러운 시전지.
[주D-008]승두 같은 글씨 : 파리 대가리처럼 가는 글씨.
[주D-009]위부인의 필첩이네 : 진(晉)의 왕희지(王羲之)의 스승이던 위부인이 쓴 서첩(書帖).
[주D-010]홍무정운체(洪武正韻體) : 명(明)의 홍무(洪武) 때에 악소봉(樂韶鳳) 등이 칙명을 받들어서 편찬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가원 (역) ┃ 1968
양매시화(楊梅詩話)
중국 사람이 우리나라의 사장(詞章)을 뽑을 때는, 대체로 잘 다듬어 빛깔을 내기도 하려니와 깎아 내기도 하고 끊어 버리기도 하여, 다만 그 유명한 글귀만을 뽑았던 것이다. 비유하건대, 거친 숲을 불사른 뒤에야 아름다운 나무가 스스로 나타남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하자와 잘못되었던 것을 덮어서 아름다운 경지(境地)로 이끌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습속에는 반드시 남의 문장이나 험한 글귀들을 꼬집어 내곤 하였다. 그리하여 가끔 농조로 쓰여진 시제(詩題)나 글귀는 일시적인 농담에서 나온 것으로서, 반드시 그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기어코 남에게 전파(傳播)하여 그의 이름과 성을 들어서 질책하면서 그 잘못된 것을 지적하기도 하려니와, 더러는 이 한 가지의 일로서 그의 일생의 업적을 덮어 버리기도 하였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일찍이 왕사진(王士稹)이 엮은 《감구집(感舊集)》을 보았는데, 그 중에 청음(淸陰)의 시(詩)를 뽑았으되 고치고 끊어 버린 것이 많기에 상세히 기록한다.
[주D-001]왕사진(王士稹) : 청(淸)의 이름 높던 문학가. 호는 어양산인(漁洋山人).
[주D-002]청음(淸陰) : 조선 인조(仁祖) 때 사람 김상헌(金尙憲)의 호.
ⓒ 한국고전번역원 ┃ 이가원 (역)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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