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鏡浦臺

등경포대(경포대에 오르다)

朴遂良(박수량)

鏡面磨平水府深
경면마평수부심: 거울처럼 닦아 평평한 물은 깊은 못이로구나.
只監形影未監心

지감형영미감심: 다만 형체와 그림자만 비추고 마음은 비추지 못하는구나.

若敎肝膽俱明照

약교간담구명조: 만약 간과 쓸개(속마음)까지 모두 환히 비춘다면,

臺上應知客罕臨

대상응지객한림: 누대 위에는 손님(사람)이 드물리라.

 

新羅聖代老安詳
(신라성대노안상) 신라의 성스런 시대에 살던 노인 안상

千載風流尙未忘
(천재풍류상미망) 천년의 풍류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

聞說使華遊鏡浦
(문설사화유경포) 사화가 경포에서 논다는 말 듣고

蘭舟今復載紅粧
(난주금부재홍장) 아름다운 배에 오늘 다시 미녀 홍장을 데려 왔네.

<허훈(許薰), 동유록(東遊錄) 중에서>

 

이정암(1541~1600) 강원도암행어사

鑑湖爭似鏡湖明

(감호쟁사경호명) 감호와 경호가 맑음을 다투니

形勝關東獨擅名 

(형승관동독천명) 관동의 경치가 유독히 이름나

落日試登臺上望

(낙일시등대상망) 낙조의 전경을 누대에서 바라보니

橋頭人影畵中行

(교두인영화중행)  다릿머리 사람 그림자 화폭 속을 가는 것 같네

 

구사맹(1531~1604) 좌찬성

風煙萬古護西臺

(풍연만고호서대) 만고의 세월 풍정 경포대를 보호하고

百頃平波一面開

(백경평파일면개) 끝없이 넓은 호수 눈 아래 펼쳐지네

日落海門歸鳥盡

(일락해문귀조진) 해가 지자 바다어귀 뭇 새들은 돌아가고

月明唯有白鷗來

(월명유유백구래) 밝은 달 밤 호수에는 백구만이 날고 있네

조선 19대왕 숙종

汀蘭岸芝繞西東

(정란안지요서동) 난초지초 가지런히 동서로 둘러섰고

十里煙霞映水中

(십리연하영수중) 십리 호수 물안개는 수중에도 비치네

朝噎夕陰千萬像

(조일석음천만상) 아침안개 저녁노을 천 만가지 형상인데

臨風把酒興無窮

(림풍파주흥무궁) 바람결에 잔을 드니 흥겨웁기 그지없네

 

十二欄干碧玉臺
십이난간벽옥대, 푸른 빛이 나는 고운 옥으로 만든 벽옥대(碧玉臺) 열 두개의 난간에

大瀛春色鏡中開
대영춘색경중개, 봄을 맞은 대영(강릉의 옛 이름)의 봄빛이 거울 속에 비치는구나.

綠波淡淡無深淺 
녹파담담무심천, 푸른 녹색빛이 감도는 물결은 깊은지 얕은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맑디 맑고,

白鳥雙雙自去來
백조쌍쌍자거래, 갈매기는 짝을 지어 이리저리 오가는구나.

萬里歸仙雲外笛
만리귀선운외적, 먼 길 되돌아가는 신선은 구름 밖 젓대요,

四時遊子月中盃
사시유자월중배, 사계절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은 달 가운데 잔이로구나(술잔에 달이 비치는 구나).

東飛黃鶴知吾意 
동비황학 지오의, 동쪽으로 날아가는 누른 학이 내 뜻을 알아

湖上徘徊故不催
호상배회고불최, 호수 위를 빙빙 돌면서 짐짓 재촉하지 않는구나.

* 영언(永言):  시조(時調)의' 다른 이름.
말을 길게 한다는 뜻으로, '시'와 '노래'를 일컫는 말.
사(詞)에 장단을 붙여서 읊는 것. 노래.

≪서경(書經)≫에 따르면, ‘시는 뜻을 읊는 것이요,

노래는 말을 길게 늘인 것이다.[詩言志歌永言]’ 하였는데,

곧 마음내키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말로써 나타나게 되므로

시(詩)는 뜻을 표현하는 것이며,

말로 나타낸 것은 반드시 길고 짧은 절(節)이 있는 것이므로

노래는 이 말을 길게 늘인 것이라는 뜻.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崔澱[최전]의 경포대 詩.

蓬壺一入三千年
봉호일입삼천년 : 봉래산에 한 번 들어가면 삼천 년인데

銀海茫茫水淸淺
은해망망수청천 : 은빛 바다 아득하고 물은 맑고 얕구나.

鸞笙今日獨飛來
난생금일독비래 : 난새에 피리 불며 오늘 홀로 날아 오니

碧桃花下無人見
벽도화하무인경 : 벽도나무 꽃 아래 만나는 사람도 없구나.

*蓬壺[봉호] : 바다 가운데 있는 三神山[삼신산]으로  蓬萊山[봉래산]ㆍ方壺山[방호산]을 말함.

*鸞笙[난생] : 鸞[난]새를 타고 피리를 부는 신선을 이름.

* 崔澱[최전] 어려서 금강산에 노닌 적이 있었는데, 그 길로 嶺東[영동] 산천을 구경하고 경포대에 이르러

위와 같은 시를 지어 남겼으나 요절하였다.

星湖先生僿說卷之三十[성호선생사설30권] 詩文門[시문문]

崔澱[최전,1567-1588] : 자는 彦沈[언침], 호는 楊浦[양포].

   6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큰형에게 글을 배웠으며,

   9세에 李珥[이이]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8세에 지은 이 시는 기발한 시상과 절묘한 대구로

   시인으로서의 천재적 재질을 보여 주었다. 21세 요절.

 

金世弼:1473~1533 吏曹參判

登舟半日復登臺

(등주반일복등대) 뱃놀이 즐기고서 경포대에 다시 올라보니 

湖上奇觀別樣來

(호상기관별양래) 호수의 절경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네

黃鶴岳陽誰看句

(황학악양수간구)​ 황학루와 악양루의 글씨 누가 보았던가

若無李杜也駑才

(​약무이두야노재) 이백 두보 없었다면 알려지지 않았으리

 

조선 22대 정조임금(1776~1800) 어제시

江南小雨夕嵐暗

(강남소우석람암) 강남에 비 개이자 저녁 안개 자욱한데

鏡水如綾極望平

(경수여능극망평) 비단 같은 경포호수 가이없이 펼쳐졌네

十里海棠春欲晩

(십리해당춘욕만) 십리에 핀 해당화에 봄이 저물고 있는데

半天飛過白鷗聲

(반천비과백구성) 흰 갈매기 나지막이 소리내며 지나가네

박신(1362~1444) 교주강릉도안렴사

교주강릉도는 강릉의 옛 지명이고 안렴사는 고려, 조선시대 각 도의 으뜸 벼슬이에요.

少年持節按關東

소년지절안관동, 젊은 기개 지니고서 관동을 돌아볼 때

鏡浦淸遊入夢中

경포처유입모웅, 경포에서 노닐던 멋 꿈속에서 보여

臺下蘭舟忠又泛

대하란주충우범, 누대 아래 고운 배 또 띄운다고 하면

却嫌紅粧笑衰翁

각혐홍장소쇠옹, 주책없는 늙은이라 홍장이 비웃을 꺼야

안축(1282~1348) 강원도안렴사

雨晴秋氣滿江城

(우청추기만강성) 비 개이자 강뚝에 가을 기운 가득한데

來泛扁舟放野情

(래범편주방야정) 조각배들 지나듯 한가로이 떠 오네

地入壺中塵不倒

(지입호중진불도) 병속에 들어있는 땅 티끌도 이르지 못하고

天遊鏡裏畵難成

(천유경리화난성) 거울속에 노니는 사람 그림인들 그리겠나

烟波白鷗時時過

(연파백구시시과) 희뿌연 물결위로 백조는 오락가락

沙路靑驢緩緩行

(사로청려완완행) 당나귀는 모랫뻘을 힘겨운 듯 걸어가네

爲報長年休疾棹

(위보장연휴질도) 전해주게 사공더러 노젓는 일 그만두고

待看孤月夜深明

(대간고월야심명) 깊은 밤 외로운 달 구경이나 하자고.

 


*경포대 한시비 관련 포스트

https://m.blog.naver.com/bareunhall/222867941199

 

경포대 오르는 길, 경포대 한시비

경포대를 오르는 길에 경포대 한시비가 있어요. 2022년 8월 27일(토) 경포대는 신라 화랑들이 노닐던 문화...

blog.naver.com

 

경호(鏡湖)라고도 한다. 시의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약 6 km 지점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유천(楡川) 등의 작은 하천들이 흘러든다

√ 본래 주위가 12 km에 달하는 큰 호수였다고 하나, 현재는 흘러드는 토사의 퇴적으로 주위가 4 km로 축소되고, 수심도 12 m 정도로 얕아졌다

√ 호반 서쪽의 작은 언덕 위에 세워진 경포대는 예로부터 경포호를 배경으로 한 관동8경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 경포호는 호수 주위의 오래 된 소나무 숲과 벚나무가 유명하며, 경포호를 동해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해안사주는 경포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s6hhbkbwyk

 

https://www.youtube.com/watch?v=_zDXu2hvVKw

 

https://www.youtube.com/watch?v=Xu5XCGazdII

 

 

진부령 유별시(陳富嶺留別詩)

​ㅡ 택당 이식(澤堂李植 1584~1647년)

​西行正値北風時

(서행정치북풍시) 한양으로 승차되어 가는 길 북풍이 불고

​雪嶺參天鳥道危

(설령참천조도위) 눈 덮이어 음산한 영마루 새도 넘기 험한 길

​自是人情傷惜別

(자시인정상석별) 이제 인정에 마음 아픈 이별을 하네.

​君來饑我我留詩

(군래기아아유시) 그대들 배 주리며 따라왔는데 나는 이별시를 남기네

​* 험난한 진부령까지 전별 나온 간성현의 주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詩이다.

택당 이식(澤堂李植 1584~1647년)이 선정을 베풀며 간성 현감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며 마중나온 간성현 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시.

*조선시대에도 국민을 섬기는 택당 같은 관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진부령 고갯길에 우마차가 다닐 수 있게 한 데 대한 고마움을 전송으로 표현함.

 

https://kydong77.tistory.com/10865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월상계택(月象谿澤)이정구,신흠, 장유,이식

월사(月沙) 이정구, 상촌(象村) 신흠, 계곡(谿谷) 장유, 택당(澤堂) 이식.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월사(月沙) 이정구, 상촌(象村) 신흠, 계곡(谿谷) 장유, 택당(澤堂) 이식. 조선 중기 한문학 문장에

kydong77.tistory.com

月象谿澤 (월상계택)은 네 분 호의 첫자를 취하여 만든 말이다.

  • 월 (月):月沙 李廷龜 (월사 이정구)
  • 상 (象):象村 申欽 (상촌 신흠)
  • 계 (谿):谿谷 張維 (계곡 장유)
  • 택 (澤):澤堂 李植 (택당 이식)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8B%9D_(1584%EB%85%84)

이식(李植, 1584년1647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여고, 호는 택당, 본관은 덕수이다.

광해군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618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다시 등용되어 이조좌랑이 되었다. 그 후 부제학·대제학·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1642년 김상헌 등과 함께 과의 화의를 반대하였다 하여 선양에 잡혀 갔다가 돌아올 때, 다시 의주에서 붙잡혔으나 탈출하여 돌아왔다. 1643년 이후 이조와 예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그는 당대 일류의 문장가 신흠, 이정구, 장유와 더불어 조선 중기 4대 문장가월상계택(月象谿澤) 4대가로 꼽혔다. <선조실록> 수정 작업을 전담하였다.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PWmA_-Bws4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6/01/27/57ZSKAIIOVFX7AL63AUUORAESU/

 

연인이자 남편, 아버지였던 이중섭… 절망 속 예술로 피워낸 가족애

연인이자 남편, 아버지였던 이중섭 절망 속 예술로 피워낸 가족애 탄생 110주년 쓰다, 이중섭展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30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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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둘러싸인 태양을 배경으로 푸른 수탉과 붉은 암탉이 춤을 추고 있다. 1955년 화가 이중섭(1916~1956)이 일본에 있는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1921~2022)를 그리워하며 그린 ‘환희’. 닭을 의인화해 부부의 사랑을 표현한 역작이다. 2014년 서울을 찾은 야마모토 여사는 전시장에서 이 그림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

‘국민 화가’ 이중섭 탄생 110주년을 맞아 특별전 ‘쓰다, 이중섭’이 서울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30일 개막한다. 조선일보사와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비극적 삶에도 가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놓지 않은 ‘인간 이중섭’에 주목한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은지화 두 점 ‘가족 1’ ‘가족 2’, 아내와의 재회를 꿈꾸며 그린 유화 ‘환희’를 비롯해 은지화, 유화, 엽서화, 편지화 등 80점을 선보인다.

 
이중섭, 유화 ‘환희’(1955). 종이에 유채, 29.5×41㎝. /이중섭미술관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쓰다’. ‘텍스트 힙(text hip·텍스트를 읽고 쓰는 행위를 멋지게 여기는 문화)’이 문화 현상으로 떠오르는 시대적 분위기에 맞춰 새로운 시각으로 이중섭을 조망한다. 이중섭이 ‘쓴’ 편지와 엽서를 중심으로, 이중섭의 인생을 다시 ‘쓰며’ 추모한다. 이중섭의 생애와 예술 장르에 따라 ▲쓰다, 사랑을(엽서화) ▲쓰다, 절절함을(편지화) ▲새기다, 그리움을(은지화) ▲쓰다, 시대를(유화, 드로잉) ▲쓰다, 역사로(신문 아카이브) ▲쓰다, 나의 이야기(체험 공간) 등 6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이중섭, '말을 타는 사람들'(1941). 종이에 채색, 9×14cm. /개인 소장
이중섭, 은지화 ‘가족 2’(연도 미상). 은지에 새김, 8×14㎝. /개인 소장

시작은 일본 유학 시절 훗날 아내가 된 연인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들이다. 청년 이중섭은 1940년 12월부터 1943년 여름까지 14×9㎝ 크기의 작은 관제엽서에 사랑을 담아 보냈다. ‘엽서화’라고 불리는 이 그림들은 오직 단 한 사람, 연인 마사코를 위해 그린 것이다. 예술 실험과 순수한 사랑이 결합된 청춘의 기록이다. 이어지는 편지화 섹션은 1952년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이중섭이 겪은 고독한 시기를 다룬다. 글과 그림이 하나로 어우러진 편지들은 단순한 서신을 넘어 절절한 사랑과 상실을 담은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담뱃갑 은박지를 긁어 완성한 은지화 섹션은 극한의 현실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이중섭의 창조적 에너지를 보여준다. 유화 섹션에는 ‘환희’를 비롯해 ‘바다가 보이는 풍경’, ‘파란 게와 어린이’ 등 이중섭의 조형 실험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전시됐다.

 
이중섭, '아들 태성에게 보낸 편지'(1953). 종이에 펜, 채색, 26.4×20.2cm. /개인 소장

옛 신문 속 이중섭을 만나는 독특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신문 아카이브 섹션에서는 1955년 미도파 화랑에서 열린 이중섭의 첫 개인전 기사, 1956년 부음 기사 등 조선일보 아카이브를 통해 70여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마지막은 관람객이 직접 편지를 쓰는 체험 공간. 이중섭이 살았던 서귀포 초가의 단칸방과 부산 범일동 판잣집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편지를 쓰며 여정을 마무리한다.

이중섭, 은지화 '가족1'(연도 미상). 은지에 새김, 10×14cm. /개인 소장

이번 전시는 조선일보사와 이중섭미술관이 지난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함께 연 ‘이중섭, 백년의 신화’ 이후 10년 만에 다시 여는 특별전이다. ‘이중섭, 백년의 신화’는 국내 화가 개인전으로 최다 관람객(25만명)을 기록하며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전시 관계자는 “인공지능의 범람으로 아날로그의 향이 옅어져 가고 사랑도 이별도 금세 휘발하는 감정의 인스턴트 시대에, 이중섭이 손으로 사각사각 쓴 애잔한 그리움이 위로를 건넬 것”이라고 했다.

6월 14일까지.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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