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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鄭周永|Chung Ju-y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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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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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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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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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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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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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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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峨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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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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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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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
별칭은 왕회장.[17] 현대그룹의 창업주이자 초대 회장으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 중 한명이다.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에서 소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을 극복하고 일어서서 현대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의 인물이기도 하다.
1930년대 쌀 배달부터 시작해 자동차 정비업, 건설업 등을 거치며 20세기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인물이었으며 1990년대에는 정계에도 진출했지만 낙선한 후 1998년에는 소 떼를 이끌고 방북한 것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 등을 유치한 대북 사업의 선구자로 활동하다 2001년에 사망하였다.
호는 '아산(峨山)'이다. 북한 강원도 지역에 있는 고향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18] 오늘날 울산에는 그의 호를 딴 아산로가 있다.
1995년 미국 포브스 선정 세계 9위 부자에 등극하기도 했다.[19] 1995년 기사
별칭은 왕회장.[17] 현대그룹의 창업주이자 초대 회장으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 중 한명이다.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에서 소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을 극복하고 일어서서 현대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의 인물이기도 하다.
1930년대 쌀 배달부터 시작해 자동차 정비업, 건설업 등을 거치며 20세기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인물이었으며 1990년대에는 정계에도 진출했지만 낙선한 후 1998년에는 소 떼를 이끌고 방북한 것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 등을 유치한 대북 사업의 선구자로 활동하다 2001년에 사망하였다.
호는 '아산(峨山)'이다. 북한 강원도 지역에 있는 고향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18] 오늘날 울산에는 그의 호를 딴 아산로가 있다.
1995년 미국 포브스 선정 세계 9위 부자에 등극하기도 했다.[19] 1995년 기사
https://www.youtube.com/watch?v=_xmN5fn3AzY
https://namu.wiki/w/%EA%B8%88%EA%B0%95%EC%82%B0%20%EA%B4%80%EA%B4%91
금강산 관광
금강산 관광은 1998년 11월 18일 부터 2008년 7월 13일 까지 약 10년간 시행된 대한민국
namu.wiki
1. 개요
2. 상세
금강산은 신라, 고려 때부터 본국은 물론 중국까지 명성이 높았을 정도로 한반도를 대표하는 비경으로 손꼽혔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금강산선과 경원선이 지어지며 금강산과 원산은 휴가철인 여름, 겨울에 해수욕과 삼림욕, 스키를 탈 수 있는 휴양지였고 저 멀리 일본 본토에서도 관광객이 찾아올 정도였다.
그러나 남북 분단 이후 휴전선 이북 북한령이 되어 50여년간 관광이 불가능했다. 1998년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이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 관광 협정서를 체결하였고,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금강산 관광이 실시되었다.
처음에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바로 근처임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의 동해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금강호, 봉래호, 풍악호, 설봉호) 가야 했지만 배로 수송할 수 있는 관광객의 수가 제한되어 수지타산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 때문에 현대그룹과 북한이 추가적 협상을 하여 2003년 9월부터 버스를 타고 육로 관광이 시작됐고, 2008년 3월부터는 자가용을 타고 갈 수도 있게 됐다.[3]
동해북부선 철도 역시 제진역부터 금강산청년역까지 연결하여 금강산 관광객들을 위한 정기 여객열차를 운행할 계획이 있었지만[4] 하술할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소요 시간은 부산 출발 버스를 기준으로 통관 절차및 휴게소 등을 포함하여 12시간 가량 걸렸다. 아침 6시에 출발하면 저녁 6시에 도착하는 셈. 주요 관광지는 당연히 금강산, 북한 서커스와 교예단 공연, 금강산 온천 등이 있었다. 각종 쇼나 식사, 온천 등은 개별로 결제해야 했으며, 한화 결제가 가능했다. 2004년 기준 금강산 온천의 가격은 한화 12,000원. 기념품샵에는 북한산 기념품들이 판매되고 있었으며, 특히 다양한 술이 인기가 있었다. 가장 인기있던 품목은 들쭉술.
다만 금강산의 진면목이 모든 관광객에게 개방된 건 아니었다. 초창기에는 북한의 군사지역이 많은[5] 내금강이 개방이 안 되었는데, 문제는 조선, 일제강점기까지 금강산 여행이라고 하면 내금강을 말하는 것일 정도로 비중이 높은 곳이었다. 내금강은 2007년 5월부터 제한적으로 열렸다.
그러나 정상 비로봉 코스는 결국 금강산 관광이 폐지되는 날까지 일반 관광객에게는 개방되지 않았다. 즉 2000년대에 금강산을 가본 사람#이라고 해도 금강산의 핵심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객들의 대부분은 금강산청년역 근처의 관광특구에서 머무르고 매일 금강산으로 떠나는 일정마다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금강산 관광 말기에 승용차를 타고 간 관광객들도 관광특구 내에 차량을 외금강 호텔에 세워 두고 마찬가지로 별도의 셔틀버스로 이동했다.
특구 내의 온정각 등에는 훼미리마트 편의점이 2곳 있었고, 통천항 인근에는 해수욕장[6]과 아난티 골프리조트가 있었다. 2021년 현재 해수욕장을 비롯한 남측 시설들 대부분은 방치된 상태이며, 금강산 아난티 골프리조트는 북측의 독단적 동결 이후 중국인 관광객용으로 재사용되고 있었다가 코로나 확산 이후로는 사실상 폐쇄되었다.
그러나 남북 분단 이후 휴전선 이북 북한령이 되어 50여년간 관광이 불가능했다. 1998년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이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 관광 협정서를 체결하였고,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금강산 관광이 실시되었다.
처음에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바로 근처임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의 동해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금강호, 봉래호, 풍악호, 설봉호) 가야 했지만 배로 수송할 수 있는 관광객의 수가 제한되어 수지타산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 때문에 현대그룹과 북한이 추가적 협상을 하여 2003년 9월부터 버스를 타고 육로 관광이 시작됐고, 2008년 3월부터는 자가용을 타고 갈 수도 있게 됐다.[3]
동해북부선 철도 역시 제진역부터 금강산청년역까지 연결하여 금강산 관광객들을 위한 정기 여객열차를 운행할 계획이 있었지만[4] 하술할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소요 시간은 부산 출발 버스를 기준으로 통관 절차
다만 금강산의 진면목이 모든 관광객에게 개방된 건 아니었다. 초창기에는 북한의 군사지역이 많은[5] 내금강이 개방이 안 되었는데, 문제는 조선, 일제강점기까지 금강산 여행이라고 하면 내금강을 말하는 것일 정도로 비중이 높은 곳이었다. 내금강은 2007년 5월부터 제한적으로 열렸다.
그러나 정상 비로봉 코스는 결국 금강산 관광이 폐지되는 날까지 일반 관광객에게는 개방되지 않았다. 즉 2000년대에 금강산을 가본 사람#이라고 해도 금강산의 핵심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객들의 대부분은 금강산청년역 근처의 관광특구에서 머무르고 매일 금강산으로 떠나는 일정마다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금강산 관광 말기에 승용차를 타고 간 관광객들도 관광특구 내에 차량을 외금강 호텔에 세워 두고 마찬가지로 별도의 셔틀버스로 이동했다.
특구 내의 온정각 등에는 훼미리마트 편의점이 2곳 있었고, 통천항 인근에는 해수욕장[6]과 아난티 골프리조트가 있었다. 2021년 현재 해수욕장을 비롯한 남측 시설들 대부분은 방치된 상태이며, 금강산 아난티 골프리조트는 북측의 독단적 동결 이후 중국인 관광객용으로 재사용되고 있었다가 코로나 확산 이후로는 사실상 폐쇄되었다.
2.1. 중단 이후
2008년 7월 11일에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직후 갑작스럽게 중단됐다. 더 늦게 시작한 개성관광은 몇 달 더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그것도 해를 넘기지 못하고 중단되어 북한 관광은 다시 불가능해졌다.[7] 금강산 관광 사업권은 여전히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계열사인 현대아산이 갖고 있다.
현대그룹 측에서는 여건이 된다면 정식 관광 재개까지는 보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북측에 △진상규명 △재발방지 △신변안전을 위한 제도적 보장 등 '3대 선결 조건'을 요구해왔는데, 정작 북한 정권이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사과를 할지는 알 수 없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지 몇 개월 뒤인 2009년 3월에는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던 현대아산 소속 근로자 유성진씨가 북한 여성 근로자에게 반해 '자유로운 사회에서 같이 살자'라며 탈북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북한에 적발되어 억류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사태 해결을 위해 2009년 8월 10일을 시작으로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 일주일[8]동안 방북을 하여 5일간은 평양시에 머무르며 북한 당국과 대화했고, 최종적으로 방북 마지막 날에는 묘향산에서 김정일을 만나 유씨의 석방은 물론이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포함한 나머지 남북경협 사업의 재개를 이끌어내는 등 예상보다 더 성공적인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8월 17일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현정은 회장은 다음과 같은 5개항의 합의를 발표했다. 합의 내용으로는 △유성진씨 석방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 재개 △백두산 관광 개시 △남측 인원의 군사분계선 육로통행과 북측 지역 체류 재개 △남북 이산가족 상봉 및 친척 추석 상봉 실시 등 많은 부분에서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 이명박 정부와 당시 미국 정부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보이는 등 # # 관광 재개가 이루어지는 듯 하였으나...
허나 최종적으로는 유씨 석방과 이산가족 상봉만 이루어지고, 정작 이후 이명박 정부는 정부 당국 간 합의가 아닌 현대그룹과 북측의 대남사업 주체인 아태평화위 사이에서 이뤄진 민간 차원의 합의라는 이유로 금강간 관광 재개에 소극적으로 대응함에 따라 관광 재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010년 당시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대북제재인 '5.24 조치'를 발표하고, 연평도 포격전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냉각기에 접어들면서 이명박 정부 당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바뀌고 북한도 김정은 시대로 바뀐 2013년 6월 6일에는 놀랍게도 북한이 먼저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와[9]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을 주제로 한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의했고[10] # 이에 따라 통일부도 즉각 화답하여 6월 12일 서울에서 회담을 열자고 제의하였다. #
북한도 이를 수락하며 6월 9일부터 11일까지 판문점에서 실무회담이 이루어졌으나, 실무회담 이튿날 의제 부분에서 이견이 표출되며[11] 삐그덕거리기 시작했고 # 결정적으로 11일에 당국간의 대표 '격' 문제를 놓고 대립이 일어났다. 즉,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기엔 수석대표의 격이 서로 맞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12][13] 북한이 먼저 결렬을 선언하면서 회담 대표단 파견을 보류했고 12일에는 겨우 재개됐던 판문점 연락 채널까지 다시 끊어버리는 등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리며 또 다시 관광이 재개되는데 실패했다. # '격' 문제에 대한 KBS의 분석
개성공단 재가동을 합의한 2013년 8월에는 남측의 이산가족 상봉 실무접촉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북측이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을 또 제안했다. 남측은 금강산 사업과 이산상봉은 연계돼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그러면서도 분리 대응 방침 아래 회담일도 상봉 행사 직후인 10월 2일로 제안했으나...
북한이 9월 21일 일방적인 이산가족 상봉 연기 선언을 함에 따라 회담이 무기한 연기가 되었다. 이날 북한의 조평통위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측이 다음 달 2일로 제안한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도 '돈줄' 운운하며 모략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연기를 선언했고, "상봉행사를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연기한다."라고 모처럼 개선되던 남북관계가 보수세력의 대결소동으로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의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이뤄진 북남관계의 진전을 '원칙론'의 결과로 광고하는 것이야말로 파렴치한 '날강도행위'이다." 라고 하는 등 남측이 '원칙있는 대북정책'의 성과를 강조한 것도 문제 삼았다. #
북한은 당시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북핵과 미사일은 세계 평화의 위협 요소이며 북한이 종북 세력과 '4세대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도 문제 삼았고, 통합진보당 소속 이석기 의원의 체포 이후에는 관영 매체를 통한 대남 비난도 재개하는 등 사실상 박근혜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태도 성립이 안되어 있고 또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댓가로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상당히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한 듯 하다. #
이후에도 여러차례 남북 고위급 회담과 군사회담이 열리며 금강산 관광 재개가 의제로 올려질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나 좀처럼 올려지지도 않고 지지부진 했으며, 결정적 타격으로 2016년 2월을 마지막으로 남측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 선언을 하는 동시에 북측은 연락망마저 모두 차단하는 등 결론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끝날때까지도 금강산 관광 재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진보정권으로 교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6차 핵실험까지 강행하는 등 한동안 계속해서 남북관계는 냉각 상태에 있었으나, 2018년이 되면서 김정은이 새해 신년사를 통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의 파견과 남북대화를 타진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
평창 올림픽 이후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그와 동시에 4.27 판문점 선언,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 2018년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등 모처럼 10여년만에 남북관계가 훈풍을 맞게 되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가 다시 논의 될 수 있을지 주목을 받는 상황.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체결된 9월 평양공동선언에 '금강산 관광 정상화' 문구가 명시되어 있어 비핵화 추진에 따른 대북 경제 제재 등이 풀리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거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읽어보면 알겠지만 불과 1년 남짓한 사이에 이조차도 물건너가는 분위기다.
2019년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대가없이 재개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대북제재를 피해 토지이용료나 노동보수 등을 지급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그해 2월 말 북미정상회담이 불발로 끝나면서 다시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그리고 그해 10월 23일 김정은이 금강산을 돌아보며 폭탄선언을 하는데, 현대아산이 지어놓은 금강산 관광 시설에 대해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 "자연경관에 손해",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 운운하며 맹비난하는 동시에,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 년 간 방치되어 흠이 남았다고, 땅이 아깝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 로동신문 등이 일제히 보도하면서 아버지의 업적을 부인하는 패드립까지 시전하였다. # 사실상 확인사살을 한 셈.
10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기존 관광 방식(정확히 말하면 관광 대가를 북한에게 지급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때문에 계속, 그대로 되풀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
2021년에도 북한은 금강산 개발을 독자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 2022년 3월에는 호텔해금강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 2024년 4월 북한 측에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금강산 관광 인프라를 만들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코로나 봉쇄도 풀렸겠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하는 조치로 보인다. # 2024년 5월 기준 남한 측에서 지어준 건물 상당수가 철거되긴 했으나, 코로나 19의 여파로 북한 측에서 새 건물을 짓는 것은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
현대그룹 측에서는 여건이 된다면 정식 관광 재개까지는 보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북측에 △진상규명 △재발방지 △신변안전을 위한 제도적 보장 등 '3대 선결 조건'을 요구해왔는데, 정작 북한 정권이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사과를 할지는 알 수 없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지 몇 개월 뒤인 2009년 3월에는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던 현대아산 소속 근로자 유성진씨가 북한 여성 근로자에게 반해 '자유로운 사회에서 같이 살자'라며 탈북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북한에 적발되어 억류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사태 해결을 위해 2009년 8월 10일을 시작으로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 일주일[8]동안 방북을 하여 5일간은 평양시에 머무르며 북한 당국과 대화했고, 최종적으로 방북 마지막 날에는 묘향산에서 김정일을 만나 유씨의 석방은 물론이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포함한 나머지 남북경협 사업의 재개를 이끌어내는 등 예상보다 더 성공적인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8월 17일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현정은 회장은 다음과 같은 5개항의 합의를 발표했다. 합의 내용으로는 △유성진씨 석방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 재개 △백두산 관광 개시 △남측 인원의 군사분계선 육로통행과 북측 지역 체류 재개 △남북 이산가족 상봉 및 친척 추석 상봉 실시 등 많은 부분에서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 이명박 정부와 당시 미국 정부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보이는 등 # # 관광 재개가 이루어지는 듯 하였으나...
허나 최종적으로는 유씨 석방과 이산가족 상봉만 이루어지고, 정작 이후 이명박 정부는 정부 당국 간 합의가 아닌 현대그룹과 북측의 대남사업 주체인 아태평화위 사이에서 이뤄진 민간 차원의 합의라는 이유로 금강간 관광 재개에 소극적으로 대응함에 따라 관광 재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010년 당시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대북제재인 '5.24 조치'를 발표하고, 연평도 포격전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냉각기에 접어들면서 이명박 정부 당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바뀌고 북한도 김정은 시대로 바뀐 2013년 6월 6일에는 놀랍게도 북한이 먼저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와[9]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을 주제로 한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의했고[10] # 이에 따라 통일부도 즉각 화답하여 6월 12일 서울에서 회담을 열자고 제의하였다. #
북한도 이를 수락하며 6월 9일부터 11일까지 판문점에서 실무회담이 이루어졌으나, 실무회담 이튿날 의제 부분에서 이견이 표출되며[11] 삐그덕거리기 시작했고 # 결정적으로 11일에 당국간의 대표 '격' 문제를 놓고 대립이 일어났다. 즉,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기엔 수석대표의 격이 서로 맞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12][13] 북한이 먼저 결렬을 선언하면서 회담 대표단 파견을 보류했고 12일에는 겨우 재개됐던 판문점 연락 채널까지 다시 끊어버리는 등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리며 또 다시 관광이 재개되는데 실패했다. # '격' 문제에 대한 KBS의 분석
개성공단 재가동을 합의한 2013년 8월에는 남측의 이산가족 상봉 실무접촉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북측이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을 또 제안했다. 남측은 금강산 사업과 이산상봉은 연계돼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그러면서도 분리 대응 방침 아래 회담일도 상봉 행사 직후인 10월 2일로 제안했으나...
북한이 9월 21일 일방적인 이산가족 상봉 연기 선언을 함에 따라 회담이 무기한 연기가 되었다. 이날 북한의 조평통위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측이 다음 달 2일로 제안한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도 '돈줄' 운운하며 모략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연기를 선언했고, "상봉행사를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연기한다."라고 모처럼 개선되던 남북관계가 보수세력의 대결소동으로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의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이뤄진 북남관계의 진전을 '원칙론'의 결과로 광고하는 것이야말로 파렴치한 '날강도행위'이다." 라고 하는 등 남측이 '원칙있는 대북정책'의 성과를 강조한 것도 문제 삼았다. #
북한은 당시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북핵과 미사일은 세계 평화의 위협 요소이며 북한이 종북 세력과 '4세대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도 문제 삼았고, 통합진보당 소속 이석기 의원의 체포 이후에는 관영 매체를 통한 대남 비난도 재개하는 등 사실상 박근혜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태도 성립이 안되어 있고 또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댓가로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상당히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한 듯 하다. #
이후에도 여러차례 남북 고위급 회담과 군사회담이 열리며 금강산 관광 재개가 의제로 올려질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나 좀처럼 올려지지도 않고 지지부진 했으며, 결정적 타격으로 2016년 2월을 마지막으로 남측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 선언을 하는 동시에 북측은 연락망마저 모두 차단하는 등 결론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끝날때까지도 금강산 관광 재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진보정권으로 교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6차 핵실험까지 강행하는 등 한동안 계속해서 남북관계는 냉각 상태에 있었으나, 2018년이 되면서 김정은이 새해 신년사를 통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의 파견과 남북대화를 타진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
평창 올림픽 이후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그와 동시에 4.27 판문점 선언,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 2018년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등 모처럼 10여년만에 남북관계가 훈풍을 맞게 되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가 다시 논의 될 수 있을지 주목을 받는 상황.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체결된 9월 평양공동선언에 '금강산 관광 정상화' 문구가 명시되어 있어 비핵화 추진에 따른 대북 경제 제재 등이 풀리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거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읽어보면 알겠지만 불과 1년 남짓한 사이에 이조차도 물건너가는 분위기다.
2019년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대가없이 재개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대북제재를 피해 토지이용료나 노동보수 등을 지급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그해 2월 말 북미정상회담이 불발로 끝나면서 다시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그리고 그해 10월 23일 김정은이 금강산을 돌아보며 폭탄선언을 하는데, 현대아산이 지어놓은 금강산 관광 시설에 대해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 "자연경관에 손해",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 운운하며 맹비난하는 동시에,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 년 간 방치되어 흠이 남았다고, 땅이 아깝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 로동신문 등이 일제히 보도하면서 아버지의 업적을 부인하는 패드립까지 시전하였다. # 사실상 확인사살을 한 셈.
10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기존 관광 방식(정확히 말하면 관광 대가를 북한에게 지급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때문에 계속, 그대로 되풀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
2021년에도 북한은 금강산 개발을 독자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 2022년 3월에는 호텔해금강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 2024년 4월 북한 측에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금강산 관광 인프라를 만들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코로나 봉쇄도 풀렸겠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하는 조치로 보인다. # 2024년 5월 기준 남한 측에서 지어준 건물 상당수가 철거되긴 했으나, 코로나 19의 여파로 북한 측에서 새 건물을 짓는 것은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
3. 기타
금강산 관광을 2008년 중단 이전에 다녀온 경우는 금강산 관광을 이유만으로는 미국 여행 시 ESTA 사용이 불가능하지 않다. 즉 신원에 다른 문제가 없다면 일반적인 금강산 관광 경험자는 ESTA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2011년 3월 이후 금강산 관광지구[14]나 개성공단 등 북한지역 공무방문자는 ESTA 사용이 평생 불가능하며, 차후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면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물론 금강산 관광 프로그램이 부활된 이후에 금강산 여행을 다녀오게 된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2000년 2월 24일에는 도전 골든벨 금강산관광 편을 특별촬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11년 3월 이후 금강산 관광지구[14]나 개성공단 등 북한지역 공무방문자는 ESTA 사용이 평생 불가능하며, 차후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면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물론 금강산 관광 프로그램이 부활된 이후에 금강산 여행을 다녀오게 된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2000년 2월 24일에는 도전 골든벨 금강산관광 편을 특별촬영한 적이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E6pDCaUWdw&t=406s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40389091
그림으로 자수성가...조선의 '국민화가' 겸재 정선을 만나다
그림으로 자수성가...조선의 '국민화가' 겸재 정선을 만나다, Cover Story 호암미술관 겸재 정선 특별전으로 만나는 그의 삶과 예술
www.hankyung.com
https://www.youtube.com/watch?v=LGuCE2OPiqs
https://www.youtube.com/watch?v=n9xqi1VUNeU
https://www.youtube.com/watch?v=z2YqOm7u1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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