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허 룡하, 만해한룡운당대선사비, 비문글씨 김충현

이 비의 소재는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있는 종로2가 탑골공원이다.

 

春晝(춘주-봄날)

ㅡ한용운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

삽살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어디서 꾸꾸기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따슨 볕 등에 지고 유마경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여 꽃 밑 글자 읽어 무삼하리요.

 

   대실로 비단 짜고 솔잎으로 바늘 삼아

      만고청수 수를 놓아 옷을 지어 두었다가

       어즈버 해가 차거든 우리 님께 드리리라.

*운허 룡하남은 비문의 종결부를 만해 선생의 시조로 마무리한 것이 특이하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2643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kydong77.tistory.com/18968

 

耘虛 龍夏 찬, 卍海龍雲堂大禪師碑/ 김시습, 십현담 요해/한룡운, 주해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9A%A9%EC%9A%B4 한용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용운(韓龍雲, 1879년 8월 29일 ~ 1944년 6월 29일)은 일제 강점기의 시인, 승

kydong77.tistory.com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ongchshin37&logNo=220363983877

 

만해용운당대선사비(卍海龍雲堂大禪師碑)

2) 만해용운당대선사비(卍海龍雲堂大禪師碑)   韓國末年에 山中佛敎를 都市로 끌어내려 大衆化하고 아...

blog.naver.com

 

卍海 龍雲堂大禪師碑

만해 룡운당대선사비

 

한국말년에 산중불교를 도시로 끌어내려 대중화하고 쇠망하는 국운을 만회하여 민주사회를 실현하려던 큰 지도자가 있었으니 그가  곧 禪(선)과 敎(교)를 겸통하고, 眞(진)과 俗(속)을 쌍융한 룡운당대선사이다.

師는 서력 1879년 고종 16년 을유 음력 7월12일에 충청도 홍주목 주북면 옥동(현 중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에서 충훈부도사 한응준의 차남으로 났으니 본관은 청주요 모는 창성 方씨다.

누대의 士족으로  祖 영우는 훈련원 검정이고 증조 광후는 지중추부사였다. 선생의 속명은 유천(裕天), 자는 貞玉이니 어려서부터 총명이 과인하여 재동으로 유명하였고  향숙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18세에 숙사가 되어 [동몽]을 가르치면서 탐관오리의 침탈에 시달리는 민족을 구출하는 생각으로 동하당운동에 가담하였다.

24세에 일본의 침략이 점점 심해짐에 자주독립을 공고히 하려는 뜻을 품고 쾌연히 집을 떠나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에서 련곡화상에게 득도하니 계명이 봉완이요, 후에 건봉사 만화화상에게 법을 이어 법호를 룡운이라 하고 뒤에 아호를 卍海(만해)라 하다.

출가한 지 미구에 속가의 父와 兄은 창의대장 민종식과 함께 정산에서 의병을 일으키어 남포와 홍주를 젘서하더니

마침내 중과부적으로  패적하다.

[참고]

  • 남포읍성 함락 (1906.05.13): 의병은 남포읍성에서 5일간 전투 끝에 승리하여 남포군수를 감금하고 관군 30여 명을 귀순시켰다.
  • 홍주성 탈환 (1906.05.19): 남포에서 전열을 정비한 후 홍주성을 공격하여 성공적으로 진입하였다.

 

1916년 경술년에 원종 종무원의 한 간부가 일본 조동종과 연합조약을 맺으므로 만해 선생은 영호성호, 진응해찬, 그봉병연 등 제사와 더불어 임제종을 주창하여 이를 반대하였다.

조국이 병합되매 내외의 정세를 살피기 위하여 남북 만주로 만유하다가 가막눈들의 오해로 해삼위와 통화현에서 불의의 횡액을 당하였으나 선생은 일생동안 이를 발설하지 않으셨다.

25세 떼에는 통도사에서 대장경을 열람하면서 [불교대전]을 편술하였고,

36세 때에는 설악산 오세암에서 은거하는데  납월[섣달] 8일 밤에 동사에 들어갔다가 풍설이 요란하여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오랜 동안 참구하던 의심을 깨치어 古人의 친정처에 이르고 頌을 지었다

만해 한용운 오도송 (悟道頌) [1]

  • 男兒到處是故鄕 (남아도처시고향): 남아가 가는 곳 그 어디나 고향이건만
  • 幾人長在客愁中 (기인장재객수중): 몇 사람이나 나그네 시름 속에 오래 잠겨 있는가
  • 一聲喝破三千界 (일성갈파삼천계): 한 소리에 삼천대천세계를 갈파하니
 

한룡운, 박인환, 이중섭, 방정환/ 망우역사문화공원

한룡운, 나룻배와 행인, 조선독립의 書/ 十玄談 - 김시습,요해 & 한룡운,주해 https://www.youtube.com/watch?v=KrKt9VlekUU https://www.youtube.com/watch?v=T7Lo2S6ZPHs https://www.youtube.com/watch?v=vUjF_ST0V5g https://www.youtube.com

kydong77.tistory.com

현재 위 안내판은 철거되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전면에서 남좌여우이므로 표지석에서  떨어져 있는 곳이  다비 후 유해를 모신 만해 선생 묘소이다.

표지석 가까이는 부인 유씨 묘소.표지석에  '夫人兪氏在右'라 밝혔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bmb2Edy-Rhw&list=RDbmb2Edy-Rhw&start_radio=1

 

https://www.youtube.com/watch?v=7od-1lJGEfY&list=RDbmb2Edy-Rhw&index=2

 

한용운 ‘님의 침묵’ 100년…사랑·연민 담은 ‘기룸의 시학’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259899.html

 

한용운 ‘님의 침묵’ 100년…사랑·연민 담은 ‘기룸의 시학’ [.txt]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시집 ‘님의 침묵’은 1926년 5월20일 회동서관에서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이다. 한해 전에 나온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과 함께 한국 근대시의 수원지로 구실

www.hani.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