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 고소설 읽기의 어려움
1960년대 후반 동국대 국문과를 다녔던 분들이라면 한 해의 여름방학은 창경궁 규장각에서 보내야 했었다.
고소설 연구의 권위자이셨던 시원(柿園) 김기동(金起東) 선생님의 고소설 작품의 줄거리 정리 과제물 때문이었다.
서른 살 안팎의 나이에 편입한 미혼의 한 여학생은 규장각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동물원* 철책에 붙어서서
원숭이들의 애무를 감상하거나 빈 입을 저작하며 먼 데 하늘을 바라보는 낙타에 넋을 빼앗긴 시간이 더 많았다.
나는 그 여학생이 동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붓글씨로 필사한 고소설을 한 줄도 읽을 수
없는 난감함 때문에 철책 앞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랜 것으로 짐작한다.
궁인들이 필사한 고소설은 고대 불교 경전처럼 단아하여 아름답기는 했으나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해독이
거의 불가능했다. 현대국어만 읽어온, 활자 표기에만 익숙한 학생들에게 필사본 국문 고소설은 아름답긴 하지만
그저 해괴한 문자일 뿐이었다. 문장부호 하나 없이 한 줄을 시작하면 그 줄이 끝날 때까지 연속으로 달아 쓴데다
행아래 ‘아(ㆍ)’자까지 섞어 놓으니 그것이 어떤 음운의 표기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다행히 규장각에는 흰 머리를 곱게 빗질하여 비녀를 꽂고 흰 모시 한복 차림의 상궁 한 분이 계셔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두점을 찍어 보지만 문맥이 통하지 않던 게발자국 새발자국을 줄줄이 읽어 주셨다. 한창 나이에
노안(老眼)을 당해내지 못하는 내 눈이 부끄러웠다.
그 때 우리는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에야 과제물을 제출할 수 있었고, 선생님께서는 미리 과제물 미제출자는
학점을 내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혹자는 선생님께서 학생들의 과제물을 가문소설의 경개 정리에 이용하셨으리라 말하지만 나는 수긍하지 않는다.
문맥도 통하지 않고 제출자조차 무슨 말을 썼는지 알 수 없는 과제물을 자료로 활용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시 명구를 우리말로 적어 놓았다 하더라도 원작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학생들에게는
돼지에게 진주목걸이일 뿐이다. 게다가 필사자가 유사하거나 엉뚱한 음절을 적어 놓거나 자음접변되는
단어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한 경우에 현대어 표기로 바꾸고 보면 실소를 금하기 어려웠다. 양반들이 삽입을
주문한 한시구가 광대들의 입말(口語)에서 엉뚱하게 변개됨은 필사본은 차치하고서라도 목판본이나
활자본 작품에서도 흔히 목도된다.
국문본 고소설 읽기의 어려움은 일차로 띄어쓰기가 안 된 데다가 연철 혼철에 생소한 한자어의 남용, 명시문의
독음 돌출 등을 들 수 있다. 이 책에 수록한 <퇴별가>에서 띄어쓰기와 한자, 문장부호를 제외하고 보면 짐작이
간다. 국문본 고소설의 훌륭한 독자라면 표기를 무시하고, 문자를 소리로 바꾸어 이해하는 훈련이 절실히
요청된다.
필자는 이미 대학 시절 시원 선생님의 연령을 훌쩍 넘어섰지만 선생님의 열정에 못 미침을 부끄러워한다.
강의실에서 강독할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고소설 작품을 골고루 맛보기 위해서는 개인의 각고의
노력이 요청된다. 선생님과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에 대한 참회의 심정으로 원문 표기를 정리하고, 제 자리
에서 직해가 가능하도록 괄호를 사용하여 우리말이나 한자를 적어 이 책을 상재한다.
갑신년 동짓날
編著者 적음
*동물원이 과천으로 이전하기 전에는 이 창경궁 안에 있었는데, 당시에는 창경궁도
‘창경원’이라 하여 동물원을 연상시켰다. 이것은 내가 총독부시기의 일본인들과
그 당시 한국의 집권층들을 용서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남의 나라 궁궐을 동물원으로 만들고 벚꽃으로 언덕을 덮어
벚꽃이 만개한 봄날이면 시민들을 불러모아
밤에도 궁궐을 유린시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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