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중/T. S.Eliot의 '황무지` 번역 답글
[답글 1]
처음에는 간단한 隨想형식의 글을 쓰려하였으나 생각은 이리저리 가지를 치고 당초 의도와 다르게 내용이 전개되기도 하여 긴밀성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고, 또 글쓰기가 단속적으로 되다보니 구성면에서도 엉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좀 산만하더라도 일단 글을 시작하고 끌어 나가보자는 생각이 일었다.글을 아직 끝까지 다 쓰지 못해 연재형식으로 'tentative'한 글을 써나가며, 각 회의 글을 올린 후 생각이 바뀌면 먼저 회분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마지막 회분이 끝난 후 완결된 전체 글을 다시 게재하는 다소 실험적인 시도를 해볼까 합니다. 각 회분에서 친구들의 피드백이 있으면 내용을 수정보완 하는데 좋은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일어납니다. 참고로 이 응답글은 '황무지' 마지막 회(6월 30일)에 대한 저의 꼬리글(7월 2일)에서 제시한 주제(현대성의 난해함과 형식미에 나타난 自我)를 대체로 따라갈 것입니다. ----------------------------------------------------------- 序'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이 독백은 소리 내어(pronounced) 던져진 Shakespearean dramatic monologue일 수도 마음속에서 의식으로 흐르는 (overheard) Joyce's interior monologue일 수도 있다. 이 독백 속에는, 어느 경우이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감시하고 성찰하는 自我가 고개를 들고 있다. 소극적으로는 自嘲를, 적극적으로는 자신의 운명 또는 세상의 틀을 바꿀 지도 모르는 먼 시작일 수도 있을 것이다.1. 존재Being.인간human being은 하나의 존재이다.살아있는 존재(생명체)는 그가 설(담길) 자리(a place)가 필요하다.그 존재의 조건은 'being in a time-space'이다.A가 차지한 공간(time-space)은 B(타자)에게 배타적이다.(A만의 공간은 타자와 동시에 포개어질 수 없다.)따라서 B는 A와 '다른' 시공간을 확보하려고 한다.(가설1):이 존재의 배타성은 삶의 조건으로 모든 생명체의 본능에 잠재 되어 있다.공동체에서는 이 배타성은 완화된다. 이 배타성의 완화, 또는 친화력의 보완으로(척력과 인력의 조절로) 생명체는 생존능력을 높이려고 한다. 이 배타성의 경합(경쟁)으로 개체 내에서도 'time' 요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즉 수명(life-span)도 이 배타성과 함수관계를 가진다. 한 개체의 기관(cell, organ)에서도 이 관계는 적용된다. 例; 한 그루의 나무에서 묵은 잎들이 새 잎에 '자리'를 내주는 현상. (가설2):생체는 '배타적' 시공간을 확보하려는 본능의 경합(경쟁)으로 새로운 시공간으로 이동하며, 따라서 새로운 환경조건에 노출되고 적응하기 위해 진화하게 된다.(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조상들은 생존을 위해, 비우호적 경쟁이나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수십만 년 동안에 엄청난 공간을 이동하였다. 아프리카에서 유럽, 아시아로, 다시 북아메리카를 거쳐 남아메리카로. 그들은 아마도 식량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본능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근대인들은, 어느 정도 본능의 요구를 넘어서면서, 문명의 전개과정에서 내적성찰(introspection)을 강화하였다. 성찰의 대상은 바깥세계뿐만 아니라 그 세계와 개인의 관계,그리고 '나'자신의 어둠 같은 내면에까지 이르렀다.계몽주의시대를 거치며 문명의 전개에 참여자는, 시민사회의 저변이 확대됨으로써,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산업혁명은 혁신(innovation)의 충격파를 인간정신의 내면에까지 던졌다. 개명된 개인들은 자아의 정체성 혼란과 더불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경쟁적 환경 속에 각자의 존재양식을, 설 자리를 정해야할 부담을 自我에게 지웠다.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연결자로서 심리학의 발전은 19세기 이후의 인간사회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데 크게 유용한 도구가 되었고 나아가 현상의 촉매 기능까지 하게 되었다.여기서 존재Being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다음의 自我의 외부세계에 대한 반응에 본능의 흔적을 연결 지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답글 2]
2. 자아의 재발견: - 자의식(self-consciousness)과 내면의 성찰Friedrich Nietzsche((1844-1900)는 그의 철학적 저작을 통하여 기존의 가치체계를 근본에서 흔들어놓고 사유의 중심으로서 개인을, 문명의 건강성을 강화해야한다고 역설하였다.개인은 모든 기존의 가치를 되묻고 창조적 역동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기존의 가치에는 神뿐만 아니라 계몽주의시대 이래의 이성에 기초한 합리주의도 포함 된다. 그의 철학의 영향력은 20세기에 들어서는 실로 다방면에 걸쳤으나 심리학과 예술일반에서 특히 지대하였다. Nietzsche의 개인중시 사상은 심리학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자기 성찰적 사고를 증폭시켰다. 무의식(unconsciousness)의 발견과 S. Freud(1856-1939)의 정신분석학은 인간 정신의 내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더불어 自我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이 지성인들 특히 문학 분야에서 많이 탐색되었다. 실제로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는 인간정신의 심연을 드려다 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마음)과 세상의 관계를 조명한 걸출한 인물이 많이 나왔다. 또한 세기 말의 불안정과 제일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고조된 개인의 자의식에 의한 인간이성에 대한 회의의 증폭과 더불어 계몽주의적 유산에 대한 반동이 여러 분야에서 모더니즘운동으로 나타났다.[일반에 많이 알려진 바와 달리 무의식(the unconscious, the unconscious mind)은 Sigmund Freud에 의해 발견된 것이 아니라 William James(1842-1910)가 'Principles of Psychology'라는 저서에서 'unconscious', 'subconscious'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James는 그의 저서에서 mind-world connection을 'in terms of a 'stream of consciousness''라고 기술함으로써 '의식의 흐름'이란 표현을 만들어 내었고, 문학에서는 May Sinclair(1863-1946)가 처음 도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Freud는 초기에는 정신을 'the unconscious, conscious, subconscious'로 나누었으나 후에 'id, ego, super-ego'라는 용어로 대체하여 설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ego는 id와 super-ego의 중재자로서 두 욕망 사이의 균형을 이루며 외부세계에 반응하려고 한다.]Joseph Conrad(1857-1924), William B. Yeats(1865-1939), Marcel Proust(1871-1922), C. J. Jung(1875-1961), James Joyce(1882-1941), Ezra Pound(1885-1972)등이 T. S. Eliot(1888-1965)이 그의 詩作을 형성할 때 영향을 미쳤을 직전, 또는 동시대에 활동한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특히 James Joyce는 Eliot과 비슷한 활동시기에 소설분야에서 혁신적이고 야심적인 대표작 'Ulysses(1918-22)와 Finnegans Wake(1923-39)를 발표하였다.그는 소설형식에서 내면의 독백(interior monologue)을 '의식의 흐름'기법을 이용하여 신화, 역사, 문학 등에서 가져온 방대한 상징들로써 造語, 同音異義재담(puns), 引喩(allusions)들로 구성된 독특하고 혁신적 산문언어를 구사하였다. Joyce는 '나는 '율리시즈'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enigmas and puzzles)를 숨겨놓았다. 앞으로 수 백 년 간 대학교수들이 이를 풀어내느라 바쁠 것' 이어 '이것이야말로 불멸에 이르는 길' 이라고 말하였다 한다. 그는 그에게 폐쇄와 억압의 상징인 더블린을 20세 되던 1902년에 떠나 유럽대륙에서 유랑생활을 하였다. 그러면서 호머의 오디세우스의 유랑에 병치되는 1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율리시즈'를 고향 더블린을 무대로 그 소설을 시리즈로 발표하였다. Eliot은 이 소설의 초기 시리즈(에피소드)를 읽고 그의 詩 '황무지'의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의식의 흐름'기법을 사용하여 쓴 작품은 1910-1911년(발표는 1915)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으로 인정된다. Ezra Pound는 1917년 'The Cantos'의 1차 초안(fragmentary epic)을 쓰며 'The modern world needs such a rag-bag to stuff all its thoughts in.'라고주장하였다. 이 말은 세상은 더 이상 주역(영웅)만이 소리를 내는 역사(서사시)여서는 안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는 또 'Make it new'라며 시인들에게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명하였다.Eliot은 자신의 '황무지'를 운문으로 쓴 중얼거림 'a rhythmical grumbling'이라고 하였다. '내면의 독백을 몰고 있는 고조된 자의식 -自我의 작동은 19세기말이후 진지한 문학작품들의 특성인 듯하다. 특히 '의식의 흐름' 기법은 유행처럼 많은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었음이 알려져 있다.여기서 잠시 Joyce와 Pound 그리고 Eliot의 심리를 들여다보자.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Joyce는 작품의 혁신성과 불멸성에 강한 욕구를 내보이고 있다.바꿔 말하면 'different' from others, 'distinct' from others 로 'a place in the Temple of Fames'라는 '자리'에 대한 원초적 본능을 읽을 수 있다.Pound는 modernist운동을 이끌며 'new' 패러다임을, '변화'를 역설하고 있다.이것은 기존의 가치와 패러다임을 부정하려는 심리의 발로이고,Eliot은 새로이 조명된 전통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Eliot의 경우 a little different from the different tendency(new wave)의 입장이다.그는 작가의 전통에 대한 관계를 강조하며 말한다:'We shall often find that not only the best, but the most individual parts of (a poet's) work may be those in which the dead poets, his ancestors, assert their immortality most vigorou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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