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사보작가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영업용 택시기사로 일하는 중학동기 홈피에 올라온 남성원님의 <청계천 나들이>라는 수필에서 공지영의 <고등어> 부분만 잘라왔다.

공지영 장편소설 「도가니」를 읽으며 오랜만에 원 없이 울어봤다.
카타르시스.
노년의 퇴락한 성기능을 보완해주는 새로운 오르가즘이다.

「도가니」의 배경은 霧津市다. 안개로 유명한 도시 무진시는 김승옥의 단편소
설 「무진기행」에서 따왔다. 존경하는 선배의 작품을 패러디한 까닭은 무겁고
부도덕한 내용에 스스로 부담을 느껴 좀 희석시켜보려 한 듯하다.

서울대 불문학과 60학번 김승옥은 내 고등학교 시절의 가장 절망적인 벽이었다.
독문학과 60학번 이청준과 둘이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다음 학기 등록금 걱정을 하다가
밤 늦게 결론을 앋었다.
까짓 신춘문예에나 한번 도전해보자.
떨어지면 군대나 가고.
두 달 뒤 김승옥은 「생명연습」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록금을 마련했고
이청준은 떨어져 입대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읽은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김승옥이 까짓 한번 도전해보자고 며칠 만에 써서 덜커덕 당선된 「생명연습」은
작가나 한번 해볼까 하던 내 창작의욕을 깡그리 녹여버렸다.
뒤를 이은 그의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은 마무리 펀치를 가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 좀 쓴다는 평을 들어왔던 나로서는
도저히 쫓아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소재요 문체였다.
그 천하의 김승옥이 일찍 절필하고 교수의 길을 가고 있어 아쉽다.

떨어져 군에 갔던 늦깎이 이청준은 제대 후 등단한 뒤
「서편제」를 비롯하여 우리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여러 佳作을 남기고
2008년 70세를 일기로 작고하여 더욱 아쉽다.

「도가니」는 무진시의 한 농아학교 이야기다.
공무원 출신인 이사장은 정부 보조금으로 복지재단을 설립한 뒤
온갖 부정과 편법으로 시에서 손꼽히는 부를 축적한다.
우리나라 수십, 수백 복지재단의 실상이다.
이사장의 쌍둥이 아들은 교장과 행정실장을 맡아 횡령을 전업으로 삼는 것으로도 모자라,
장기간에 걸쳐 여자 원생들을 상습 성폭행한다.
여기에 충복인 지도교사 한 명도 성폭행에 살인까지 저지른다.

실직해 있다가 아내의 주선으로 5천만 원의 뇌물을 쓰고 교사로 취직한 주인공.
그는 대학 선배인 인권운동가 여주인공과 힘을 합쳐 이들의 비리를 고발한다.
이사장의 손길이 골고루 미처 있는 무진의 경찰, 교육당국, 시청 복지과는 꿈쩍도 않는다.
결국 언론의 힘으로 재판에 붙이기는 했지만
이들은 有權無罪 無權有罪 법칙과
검찰이든 법원이든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이 사회의 시스템에 따라
정상참작이라는 미명하에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이 역시 이 나라 수많은 다른 토호들의 비리 엄폐행태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뜻있는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별도 시설에서 자유롭게 공부한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권력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사지 멀쩡한 자나 장애인이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동등하다는 진리를 공지영은 침착하고 뭉클하게 그려나갔다.
공지영은 작품과 비슷한 신문기사를 보고 끈질긴 취재 끝에 감동적인 작품을 완성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기술 또한 백미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신경숙의 베스트셀러와 `비평의 위기`  (0) 2010.10.16
초등학생 시 `아빠는 왜?` 뒤늦게 화제  (0) 2010.10.16
동화교실 02  (0) 2009.03.26
동화교실 01  (0) 2009.03.26
신춘문예시 25 편  (1) 2009.01.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