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ttp://kr.blog.yahoo.com/dlghd42/5110

 

109명의 현역시인이 뽑은 '최고의 시구'(1-3)

한국의 현대시사가 어느덧 100년을 넘었다. 우리 시문학사 100년을 수놓았던 수많은 시인들 가운데 불멸의 명시名詩를 남긴 시인은 얼마나 될까. 작고시인·현역시인을 통틀어 ‘명시’의 반열에 드는 그 문학작품을 읽고 오늘의 우리 시인들은 어떤 영향과 자극을 받았을까. ‘명시’의 한 구절,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에 밑줄을 그은, 오늘의 우리 시인들에게 가슴 깊이 와닿은 시의 진정성과 고백을 기획 특집으로 싣는다. -편집자-

 

나태주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에서

중학교 3학년 때. 열다섯 살 때. 적산가옥으로 남겨진 썰렁한 다다미방 하숙집에서 겨울을 나며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하던 때. 함께 하숙하고 있던 동급생으로부터 얼핏 전해들은 한 편의 시, 그리고 그 첫 구절은 나의 어린 영혼을 흔들어주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가슴속이 쩌르르했다. 어쩌면 이리도 내 마음 그대로일까. 시란 이렇게 다른 사람 마음을 대신해서 표현해주고 또 그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주는 것인가 보구나. 막연히, 참으로 막연히 나는 이 한 편의 시를 앞에 두고 시인이 되어보고 싶었다. 만약 내가 중학교 시절 이 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모르면 몰라도 나는 시인이 되지 않았어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바꾸어 버린 한 편의 시, 그리고 한 구절. 그 사무치는 풋내기 소년의 감동 앞에 다시 한번 선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희덕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에서

김수영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월리스 스티븐즈의 시 「혼돈의 감정가」에 나오는 두 개의 명제를 떠올리게 된다. “A.폭력적 질서는 무질서이다”와 “B.위대한 무질서는 질서이다”라는 명제가 그것이다.
김수영에게 있어서도 폭력적 질서란 낡고 고정된 질서를 의미하고, 위대한 무질서란 무한대의 운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김수영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예민한 혼돈의 감별사이자 창조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진정한 혼돈의 진원지를 ‘욕망’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는 욕망의 검은 입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이 구절은 거대한 뿌리, 또는 고요한 사랑의 발견에 도달하는 김수영의 시적 도정을 압축하고 있는 셈이다. 욕망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사랑을 발견할 수 없다는 그의 전언은 혼란도가 낮은, 그리하여 폭력적 질서에 갇혀 있는 나의 시들을 화들짝 깨우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노향림

내가 많은 돈이 되어서
선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맘놓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리니
―― 김종삼, 「미사에 참석한 이중섭 씨」에서

김종삼 시인은 한 시대를 불행하게 살다 간 시인이었다. 가난과 알코올 중독으로 시달리다 끝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시를 발표할 무렵도 시인은 늘 소주병을 뒷주머니에 넣고 조선일보 뒷골목 지금은 없어진 아리스 다방에 나타나곤 했다.
차를 시키진 않고 컵을 달래서 소주를 마시곤 했다. 시는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하게 읽혀도 과음에서 오는 자신의 육신의 망가짐을 미처 알지 못했을까. 그토록 버티기 어려운 환경에서 이처럼 놀라운 시를 쓰다니, 나는 이 시를 읽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병들고 가진 것 없는 자의 시혜를 말하기 위해 불행하게 살다간 이중섭의 혼을 빌어 시인은 말하고 있었다. 선택하지 않아도 불행은 예고되듯이 시인은 끝내 술로 세상을 떠났다. 육신의 스러짐을 알고도 오히려 시로써 우리에게 시혜를 베풀고자 했을까.



마경덕

집은 벽 속의 곳간에서 제 나이를 꺼내 먹으며 늙어간다 집은 저 벽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
―― 손순미, 「담벼락 속에 집이 있다」에서

집은 담쟁이덩굴 속에 갇혀 있다. 고집이 센 덩굴은 스스로 손을 풀지 않는다. 덩굴은 담벼락을 옥죄며 더 깊이 뿌리를 묻는다.
나는 그때 그 담쟁이 속에 갇혀 있었다. 담쟁이는 날로 그늘을 넓히고 오래된 몸은 자주 삐걱거렸다. 낙심이란 마음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바닥을 친 마음은 좀처럼 일어설 수 없었다. 나를 포기하고 나니 어느 날 그늘이 되어 있었다. 하릴없이 나이를 꺼내 먹으며 늙어 가는 그때 이 시구詩句가 내게 왔다. 벽을 부수고 나오라고 했다. 덩굴을 걷어내는 일은 벽을 부수는 일, 생각을 깨뜨리지 않고는 나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나를 붙잡고 늘어지던 덩굴손의 마디가 툭툭 끊어지고 벽 속에서 새로운 내가 태어났다. 나는 오랫동안 나에게 갇혀 있었다.

마종하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
―― 이육사, 「절정」에서

뼈를 추리자니 한 뼈로 순수한(!) 저항 시인 이육사를 떠올렸는데, 예수보다 짧게 주기의 「절정」을 밝힌 그와 더불어, 썩지 않은 육질로도 발라 일컫자면 유약한 김영랑의 “찬란한 슬픔”이 김현승의 견고한 “절대고독”으로, 박노해의 유연한 “강철의 풀잎”으로 맥을 잇는 것이다.
자리끼가 얼어붙는 오막살이에서 “강철로 된 무지개”는 섬광처럼 번개치는 작렬로 미친 듯이 나를 솟구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1 때 나는 투쟁의 앞장에서 모든 부정한 봄(3·15)을 「절정」의 꽃(4·19) “무지개”로 터뜨렸던 것이다. 절대로 자랑일 수 없는 기름 뺀 당위로써.
그 시대의 친일파나 다름없는 낭만적 낭인들에게 “시인이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 이른 유치환의 촌철살인도 자못 서릿발 같은 결기가 서린 “소리 없는 아우성”의 「깃발」로서, 그들의 핏맥은 오늘도 단단히 눈부신 다리로 질러 우리를 둥글게 감싸고 있다.



맹문재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 박노해, 「하늘」에서

나는 아직도 ‘밥줄’이라는 말에 가슴이 아리다. 밥줄 때문에 자존심을 버리고 얼마나 세상 앞에서 허리를 굽실거렸던가. 내가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에 들어 있는 시들에 감동한 것도,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해진 신발 같은 인상으로 구걸하는 사람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바닥에 드러누워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옹호하는 것도, 밥을 남기지 않고 악착같이 먹는 것도 밥줄 때문이다. 내가 문학의 지향점으로 삼는 근거이기도 하다. 밥줄을 쥐려고 몸부림쳤던 순간들,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밥줄의 운명에 당당히 맞서자. 밥줄을 쥐지 못한 사람들을 품자.

문인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새떼는 계절풍, 바람에게서 몸을 배웠다. 새떼는 일체다. 새떼 속의 새는 그 한 마리 한 마리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공중에 거구를 두는 일군의 세포, 세포다. 그것이 아니라면 군무는 없다. 산 너머 바다 건너 확신의 땅, 거기로 가는 길도 없다. 새떼는 바람을 입는다.
어깨에 힘 빼고, 혀 꼬부리지도 않고 그저 한 마디 툭, 던진 이 말이 자주 날 들어올리곤 했다. 나는 늘 맥없이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으면서도 욕망은 왈칵, 저 새떼의 일원이었다. 그야말로 서러운, 저 ‘새떼에게로의 망명’이었다. 그렇게 곧 그 바닥을 뜨고 싶었다.
이 시를 낳게 한 80년대 상황에 관해선 나는 할 말 없다. 다만, 시인이 발견한 이 한 마디 말, 그 힘이 굉장해서 놀라웠다. 늦깎이, 내가 절망하고 분발한 첫 구절이다.

문정희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 서정주,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에서

불행히도 나에게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는 없다. 나는 너무 어린 시절부터 시 애호가가 아니라 시 창조자가 되어버렸다. 눈부신 시구를 보면 감동과 전율보다는 질투에 온 입술이 파래지기 일쑤였다.
10대 때는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라는 발레리의 시구와 함께 미당의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는 시구를 좋아했다. 그러나 후에 보니 미당에게는 황홀한 시구가 너무 많았다. “문열어라 꽃아”(「꽃밭의 독백」)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문둥이」) 등……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내가 나를 전율시킬 한 줄의 시구를……

문태준

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 이성복, 「아주 흐린 날의 기억」에서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이 출간된 1990년 5월에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내 기억으론 이 시집을 몇 차례 산 것 같다. 나눠준 것도 있고 분실한 것도 있는데, 내가 지금 소중하게 갖고 있는 시집은 휴가를 나왔다 화천에 있는 군부대로 복귀하면서 산 것이다. 동보서적에서 구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이 시집을 사서 군복 속에 감춰 넣고 부대 위병소를 통과했던 것 같다. 위병소에서 물품 검사를 했었고 또 시집 같은 것을 부대로 갖고 들어가기가 그때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시집을 또 군복 속에 감춰 넣어 주로 부대의 재래식 화장실에서 즐겨 읽었다. 검열을 피하느라 이 시집을 땅속에 몇 날을 묻어두기도 했다. 여름장마가 지나가던 때여서 나중에 땅을 열고 꺼내보니 흙물이 들었다. (사실 이 시집은 검열을 피해야 할 책은 아니었는데 나는 어쨌든 노루처럼 겁이 있었다.)
실탄사격을 하고 와서도 읽고, 행군을 마치고 와서도 읽었다. 강한 군대에 살면서 나는 여린 속잎 같은 이 시집을 꺼내 읽었다. 시 「아주 흐린 날의 기억」은 짧다. “새들은 무리지어 지나가면서 이곳을 무덤으로 덮는다//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이 시구를 읽으면서 나는 널 안에 매장된 나를 보았다. 막연하게 슬픔에 기대게 되었다. 군대 가서 나는 시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곳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시집을 읽다가 이 일구를 만났다.

박남철

“아, 참, 그리고 선생님, 벌써 한 두어 달 됐네요? 저, 요즘 회사 못 나가고 있습니다.” “왜에?” “저, 위암 수술했습니다.”
“요일아…… 너 지금 ‘위염’이라고 그랬니, ‘위암’이라고 그랬니?”
“선생님, 저 ‘위암’ 수술했습니다.”
“……”
―― 2007년 8월 31일 저녁; 정병근 시인의 근황 때문에 해본 전화에서

흘러나온 김요일 시인의 육성시
갑자기, 눈물이 비오듯이 흘러내려서, 더 이상 말을 잇지도 못했었다. 어머님 타계 소식을 두어 달이나 지난 뒤에 법원에서 날아온 우편물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때도 눈물은 나오지도 않았었건만……
지난 6월에 있었던 ‘시작문학상’ 뒤풀이에, 뒤늦게 참석해서는, 갑자기 뒤에서 나를 껴안고 볼을 부벼대면서, 처음으로, “사랑의 스킨십”을 다 표현해주었던 녀석이…… 고은경 시인은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지 두어 달만에 위를 들어내서 나를 절망케 해주더니, 너는 이제 《세계의문학》으로 등단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니, 또 나를 절망케 해주는구나……

박제천

오오 견디련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 정지용, 「장수산」에서

한때 유엔 고지 밑에서 군생활을 하였다. 산으로 둘러싸여서 하늘이 손바닥만큼 보이는 분지였다. 어느 날 밤 동초를 서다가 정지용의 「장수산」이 떠올랐다. 그리고 누군가 내가 말해주듯 “오오 견디련다/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가 들려왔다. 그때나 이제나 시를 외지 못하는데 그냥 탄식처럼 내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아마도 중학생 무렵에 읽었던 시, 그때는 그냥 그저 덤덤한 구절이 내 가슴 어디에 잠복되었다가 나타난 것이다. 이 시를 쓸 무렵의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했다 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40년 뒤, 또 이 구절이 떠오른다. 스무 살 무렵에는 비감하였다면, 늙마의 이제는 정신이 백골처럼 무심하여선가, 그냥 그저 무심한 내 자신에게 일러주는 말이 되었다.

박주택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백석의 시는 아련한 그리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고향 같기도 하고 꿈 속 같기도 하고 태반 같기도 한 백석 시를 읽고 있노라면 아득한 시간의 수염을 만지며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는 아내도 없고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부모며 동생들과도 떨어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을 헤매이다 가슴이 메여오고 눈에 뜨거운 것이 괴여 오는 것을 적막하면서도 낮게 노래한다.
크고 높은 것을 생각하며 눈을 맞는 정한 갈매나무는 그러나 나의 가슴에 자라며 쌀랑쌀랑 생애의 문창을 친다.

박형준

선량한 아버지와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거기서 너는 살았다
―― 이성복, 「모래내·1978년」에서

내가 이성복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1982) 겨울이었다. 어느 날 인천 대한서림에서 계간 《세계의 문학》을 한 권 샀다. 페이지를 넘기다 김수영이 자기의 자화상 밑에 “시는 나의 닻(錨)이다’라고 써놓은 문장을 보고 석쇠에 올려진 생선구이처럼 온몸이 막대기로 관통당한 느낌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김수영의 자화상과 그의 단 한 문장에 이끌려 제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인 이성복의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김수영 때문에 이성복의 시에 빠졌고, 이성복이 김수영의 이름으로 상을 받은 덕분에 김수영의 시를 탐독했다. 한동안 《세계의 문학》에 실린 이성복의 대여섯 편의 시를 뜯어내 호치키스로 찍어 수업시간에도 읽고 집에 와서도 읽었다. 그리고 나는 위의 시구절을 통해 내 가족 이야기를 시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박후기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 박남수, 「새」에서

일곱 살, 글을 깨치면서 가장 먼저 읽은 시가 박남수의 「새」라는 작품이다. 문학청년이었던 큰형님이 솜씨 좋게 그림까지 곁들여 마루에 떡하니 걸어놓았으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냥 외워져 버린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시원찮은 발음으로 종알종알!
다시, 「새」를 생각한다. 한 덩이 납의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늘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 역할에 익숙해져 있는 나를 들여다보면, 참 우습다. 사랑이 떠나갔다. 납의 마음을 버리는 순간, 나는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로 남겨진다.

반칠환

비비새가 혼자서앉아 있었다.
//(중략)


한참을 걸어가다

되돌아봐도
그 때까지 혼자서

앉아 있었다.
―― 박두진,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 품에서 떨어진 꿩에병아리 같던 때였다. 귀 기울이면 달맞이꽃 씨앗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던 적막한 산골이었다. 해종일 외딴집 홀로 지키다 집안에 뒹굴던 형아들 초등학교 국어책을 읽던 일곱 살 무렵이었다. “마을에서도/숲에서도/멀리 떨어진/논벌로 지나간/전봇줄 위에 //혼자서 동그마니” 앉아 있던 ‘비비새’가 내 가슴으로 날아왔다. 젖은 손으로 피복이 벗겨진 전깃줄을 만진 듯하였다. 어린 속으로도 그렁그렁하여 중얼거렸다. ‘비비새도 혼자서 앉아 있구나.’ 머리 굵으며 나는 생각했다. ‘비비새가 혼자 있는 걸 아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시인이 되었다.

서규정

너는 살고
나는 죽고
이것으로 이번 생에서 우리는 비겼다
―― 최영철, 「아버지와 아들」에서

초등학교 무렵 우연히 읽은 《아리랑》이란 대중잡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시구는 어린 심중에 말뜻은 몰라도 그 한 줄은 스물여덟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까지 주문처럼 따라다녔다. 현실은 늘 불안하고 불만스럽고 불순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인들의 공적지평이란 생활의 역경과 고통을 주변부에 두었을 땐 중창단의 합창처럼 한번 부르고 잊어버리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각인인 것이다.
“너는 살고/나는 죽고//이것으로 이번 생에서 우리는 비겼다”
윌슨병 앓는 오십대 아버지가 윌슨병 앓는 아들의 부탁을 받고 아들을 목졸라 죽였다는 처연한 단언이다. 위 시구가 아찔하고 아리고 섬뜩한 것은, 당뇨와 고혈압 거기다 신경계 질병을 앓는 팔십이 훌쩍 넘은 어미를 두고, 역시 수발을 들어줄 사람 하나 없이 당뇨와 고혈압을 안고 있는 내가 잘못되어 먼저 떠난다면…… 가족을 베고 황산벌로 나서는 계백처럼 나는 틀림없이 분기탱천하겠지만, 하여 빛나는 시구는 아포리즘적인 사유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결국 삶은 견성이고 발견인 것이다.

성찬경

백금처럼 빛나는 노년을 살자.
―― 구상, 「노경老境」에서

한국 현대시에 명시 명구도 많지만 문자 그대로 나를 벼락치듯 전율시키는 시구는 바로 이 구절이다. 이 시구를 처음 보았을 때도 그러하였지만 내가 노년이 된 지금에 와서는 더욱 그러하다.
백금은 무게가 나가는 귀금속 중의 귀금속이다. 황금보다 더 귀하다. 그러나 그 빛은 황금처럼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흰색이다. 노년의 은유로 이보다 더 들어맞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리 높이 읊으며 아로새기는 것이다. 그렇다. 백금처럼 빛나는 노년을 살자!

손세실리아

여자는 함께 있으면 계집이 되고 헤어지면 어머니가 된다
―― 정진규, 「이별」에서

나는 아직 이보다 슬픈 시구를 본 적이 없다. 한때, 누군가의 ‘계집’이었으나 이제는 헤어져 ‘어머니’로 돌아간 ‘계집’의 비애가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시인의 별사別辭는 매정하기도 뭉클하기도 하다. ‘어머니’이기보다는 ‘계집’으로 남고 싶은 여자의 마지막 염원마저 꺾어버리는 단호한 이별통보인 까닭이다. 함께 있을 때 계집일지라도, 헤어지면 그 즉시 어머니가 되는 게 여자의 몸이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싶은 건지도 모를 일이겠다.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서로 다르다. 여하튼, 살아오면서 지금껏 ‘계집’일 뻔했던 시절 나라고 왜 없었겠는가. 이 한 줄 시구로 말미암아 ‘계집’과 ‘어머니’ 중 후자를 택했을 뿐.

손현숙

그 누구도, 하느님도 따로 한 봉지 챙겨 온전히 갖지 못한 하루가 갔다
―― 문인수, 「최첨단」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일 뿐이다. 어제의 당신이 오늘의 당신이 아니듯이,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원이라는 말. 변치 않겠다는 맹세. 이런 것들에 모든 것을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나간다. 시간은 누구의 울 안에도 갇히는 법이 없다. 달이 해를 따라가듯 언제나 시작 안에는 끝이 존재하는 거다.
봐라! 시인은 하느님도 하루는 온전히 챙겨 갖지 못한다고 일갈한다. 그러나 그 하루는 목숨이 끝나지 않는 한은 또다시 싹트는 미물, 송곳 끝 같은 느낌으로 가고, 또 온다. 가난도, 부귀도, 사랑도. 오랜 백수白手가 빚어낸 시간의 철학! 해일이다. 지진이다. 쓰나미다.



송승환

싱그러운 거목巨木들 언덕은 언제나 천천히 가고 있었다
나는 누구나 한번 가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었다
―― 김종삼, 「풍경」에서


등단 전에 나에게 주어진 화두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이면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복합적 의미를 은연중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 화두가 제기된 것은 해안의 저녁 노을 때문이다. 노을은 왜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안겨주는가, 라는 의문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진술과 묘사의 구분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노을의 아름다움과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다시 읽은 김종삼의 시는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내가 써야 할 시의 스타일과 그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송재학

새벽에 쫓아나가 빈 거리를 다 찾아도
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 닫혀 있어라.
―― 고은, 「작은 노래」에서

스무 살 미만의 고 3짜리가 이 구절을 섬광으로 문득 만났다. 만상은 물질이다. 개념과 추상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만지고 구부리고 맛볼 수 있는 구체적인 물질이 된 것은 그 이후. 아마 처음 내 머리의 골통 물질에 들어왔던 희미한 자각은 범신론이거나 정령주의 주변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라고 생각한 것은 고은의 시선집 『부활』을 몇 번 거친 후였다. 범신론이나 정령주의는 신비적 세계관, 대상을 만지고 씹어먹고 뱃속에 오래 삼켰다가 다시 똥을 누려면 시적 대상은 지척지간 친밀한 물질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뻔뻔한 물질들! 비의 속에 자신을 자꾸 숨기는 시/물질은 철면피하기도 하다.



신달자

어느날에사
어둡고 아득한 바위에
절로 임과 하늘이 비치리오
―― 박목월, 「임」에서

천둥의 빗금이 내 가슴을 쫙 후비듯 금을 긋는 싯구는 결코 한 시인이나 한 구절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젊은날에 속절없이 시가 부풀어 올라 하루살이도 푹푹 빠지기만 했던 앳되고 물렀던 내 가슴에 쾅하고 천둥이 내려치던 시들 때문에 나는 각혈을 하지 않고서도 젊은날을 잘 보냈는지 모른다. 그 많은 시구 중에 만난 박목월의 시 「임」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혼절할 뻔하였다.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그것은 내가 무슨 백일기도 끝에도 닿지 못할 것 같은 선명한 이미지요, 손쉽게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무거운 의미의 밀착이었다. 언제 나는 저기에 닿을 수 있나! 그 충격은 지금도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

신대철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어서 너는 오너라」에서

어떤 기운이 갑자기 핏속을 흔들 때 나는 문득 시성을 느낀다. 그 시성은 물론 기발한 시구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억누를 길 없는 죄악에 몸부림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에게서도 온다. 이젠 차가운 대기처럼 온몸을 스쳐가는 시 전체에 집중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끝없는 갈망과 끝없는 결핍이 하나로 뭉쳐져 나는 잠시 정신의 균형을 되찾는다. 사는 게 무엇인지, 신념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 나는 데마(디모데후서 4:10 참고)처럼 세상으로 나가 보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래 방황했다. 방황하는 곳이 그 어디든 밤마다 허공에서 푸른 목소리가 울려왔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길모퉁이에서 불안스레 듣던, 저 맑고 뜨겁고 목 타는 울림, “어서 너는 오너라”.



심재휘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에서

윤동주 시의 이 구절은 나에게 벼락처럼 왔다고 할 수 없다. 그의 시는 평범했고 안이했다.
그리고 나는 시인이 되었다. 시를 쓰는 일은 시를 읽는 일과 같거나 달랐다. 가장 고통스럽게 정직할 때 최고의 절창이 나온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는 세상에서 진짜 부끄러워할 수 있는 사소한 능력은 시 쓰기의 전부가 되었다.
“최후의 나”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언젠가부터 이 너무나 평범한 구절이 나에게 벼락이 되었고, 시를 쓸 때마다 갈수록 더 강한 벼락을 치고 한다. 잘 보면 ‘부끄러운’이라는 말에 피가 비친다.

안도현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푹푹 눈이 내린다는, 이 말도 안 되는 구절 때문에 나는 백석을 좋아한다. 분명히 문장구조의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충돌이거나 모순이다. 연애의 달인답다. 여기에 넘어가지 않을 여자는 없을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우주에 눈이 내린다니! 그리하여 나는 가난하고, 너는 아름답다는 단순한 형용조차 찬란해진다.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30년대에 이미 죽은 문장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연인에게 산골로 가서 살자고 하면서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사내는 백석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듯하다.



오탁번

눈보라는 꿀벌 떼처럼
닝닝거리고 설레는데,
어느 마을에서는 홍역紅疫이 척촉처럼 난만爛漫하다
―― 정지용, 「홍역」에서


정지용이야말로 한국 현대시사의 본문本文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시답잖게 읽는 시러배들이야 알 수 없겠지만, 우리 말의 영혼에 가슴 저려본 이는 아무도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내가 현대시를 전공하면서 딱 맞닥뜨린 시인이 정지용인데 그것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형벌과도 같았다.
<눈보라-꿀벌떼>와 <홍역-철쭉(척촉)>으로 벼락치듯 섬광을 일으키는 언어의 막강한 힘은 쓰나미와도 같고 화산과도 같고, 내 운명의 바늘을 홱 돌려놓고는 무명無明 저편에 숨어서 ‘용용 죽겠지’ 나를 울리는 시의 여신의 잉걸불보다 뜨거운 젖꼭지와도 같다.



유안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김소월, 「초혼」에서

시인 아닌 아무것도 안되겠다고 스스로 맹세했던 중학생 적에는, 하교길 오뉴월 땡볕을 이고 걸으면서도 구르몽의 시구였던가 “시몽, 너는 좋아하니 낙엽 밟는 소리를” 이 구절이 알사탕처럼 입안에 굴러다니곤 했는데, 대전시를 가로지르는 목척교를 건널 때는 영락없이 입 속에서 굴러다니는 구절은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흐르네”였다고 기억되는데― 그 맹목과 무지와 순백의 백지 같은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해서 소월의 「초혼招魂」과 마주치게 되었던가? 분명하게 기억되진 않지만, 소월의 「산유화」에서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를 두고 계절의 순서가 바뀐 까닭을 질문했다가 문예반 선생님께 망신을 당하고, 「산」이라는 시에서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에서 “산새도”의 “도”와, 왜 하필 “오리나무”였을까를 혼자 곰곰 생각하던 때와 거의 같은 때였을라?!
소월에 미쳤던 여중학생은 「초혼」을 만나자마자 까무라칠 것만 같았지. 부르다가 죽어도 좋을 이름 하나를 갖고 싶었고, 나에게도 내 이름을 부르다 죽을 누군가가 있었으면 소원했지.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붉은 피가 솟구치는 이 뜨거운 한 구절로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로 혼자서 약속하고 굳게굳게 맹세했는데― 성적이 올라가자 스스로 그 맹세를 깨뜨려버렸지만.

유영금

그러나 그보다는 차라리
빨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 최승자, 「오 모든 것이 끝났으면」에서

내가 나를!!, 찔러 죽이거나 목을 매달아 죽이거나 청산가리를 먹여 죽이거나 가스를 마시게 해 죽이거나 총으로 두개골을 쏴 죽이거나 달리는 열차 바퀴에 던져 죽이거나 고층건물 위에서 떨어뜨려 죽이거나 손목의 동맥을 잘라 죽이거나 신나를 뿌려 태워 죽이거나…… 그 중 빠르게 죽여 버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선택 때문에 분열에 시달리던 오래 전의 내게 최승자의 시 “그러나 그보다는 차라리/빨리 나를 죽여주십시오”는 내가 죽음에 성공한 것처럼 황홀했다. 실패에 짓밟혀 구차스러운 숨을 끌고 가고 있지만 벼락같이 섬뜩한 이 시구는, 눈을 떠야만 하는 매일 아침의 나를 희망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다. 누군가 나를 죽여 버리는 것이 더 빠르다.

 

유홍준

무수한 정적은 와글와글거린다
―― 문인수, 「무수한 정적은 와글와글거린다」에서

“슬픔은 물로 된 불인 것 같다”고 할 무렵의 문인수는 한동안 내 텍스트였다. 글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문인수의 『뿔』이라고 하는 시집을 나는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내 안목이 그랬다. 그러니까 아직 늦깎이 시인 문인수가 뜨기(?) 전의 일이었다. 믿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문인수는 나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말로는 할 수 없는 어떤 것, 묘한 정서적 일체감이었다. 하여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좌우지간 쓸데없는 말 필요 없고, 언제 시인과 매운 고추 다대기 왕창 푼 순대국밥이나 한 그릇 했으면 좋겠다. 무수한 정적은 와글와글거리는 것처럼, 슬픔은 물로 된 불인 것처럼, 겸상을 해 보았는데 문인수와 나에게 짜고 독하고 매운 것은 속이 다 시원한 것이다. 역설이다. 하여간……



이가림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 정지용, 「고향」에서

지금으로부터 45~6년 전, 그러니까 내가 전주고교에 다니던 시절, 국어를 가르치시던 신석정 선생으로부터 처음으로 정지용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 당시 월북시인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탓에, 정○○으로 부르며 금기시했음에도, 석정 선생께서는 수업시간 중에 「유리창」,「고향」,「바다」 같은 작품을 받아쓰게 했다. 특히 「고향」에 나오는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이란 구절은 그때 이래 “바람 먹고 구름똥 싸는” 방랑아의 꿈을 늘 내 가슴에 심어주는 벅찬 출발의 신호가 되었다. 내가 프랑스 문학을 공부한답시고 파리를 어슬렁거린 것도, 최소한 5년 주기로 이국땅을 떠돌아다니게 되는 것도 다 이런 낭만적 역마살의 노래를 좋아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번 고향을 떠난 자는 항상 이곳이 아닌 저 먼 미지의 나라에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인가 보다.



이건청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제목이 되어 있기도 하고 곡진하기 이를 데 없는 절창,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시를 읽다가 보면 공들여 힘들게 쓴 흔적이 나타나 있는 시가 있기도 하고, 시인의 내면에서 충분히 무르익어 저절로 흘러나온 듯하면서도 치밀한 구조를 이룬 시를 만날 수도 있다. 나는 물론, 뒤의 경우의 시를 훨씬 윗질로 보는 사람이다.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자신의 심적 정황을 ‘저물녘 노을 속으로 흘러가는 강물’로 치환하면서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으로 슬픔의 깊이를 인식해내고 있으며,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랑 끝 울음”을 거쳐 “미칠 일 하나로 흘러 바다”에 이르는 정서의 고양 과정을 치밀하게 끌어 담고 있다. 이렇게, 격정의 정서를 모두 포용하고 있으면서도 ‘소리 죽은 가을 강’이 되어 흘러간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그런 심회의 절정에서 만나게 되는 진한 감동의 언어이다.

이근배

나는 지낸 밤 꿈속의 네 눈썹이 무거워 그걸로 여기 한 채의 절간을 지어 두고 가려 하느니
―― 서정주, 「기인 여행가」에서

영혼의 작은 숨결도 그려낼 수 있는 내 어머니의 나랏말씀은 어떻게 짚어 내야 시가 되는가? 이 물음 앞에서 나는 서정주 선생을 먼저 머리에 떠올린다. 해묵은 것이려니 하고 오래 덮어두었다가도 여기저기 자주 들춰지는 미당 시에 눈이 가면 내 머릿속은 회오리바람이 분다.
첩첩한 미당 시의 산맥 어디를 기웃거려도 마치 신들린 듯이 쏟아내는 낱말 하나 시구 하나에 내가 가진 말들은 삽시간에 꼬리를 감춘다.
미당이 시 속에 감추고 있는 ‘눈썹’은 우리 시문학사의 화두가 되고 있다. 「수대동시」(1941) 「동천」(1966) 「추석」(1966) 등에 나오는 ‘눈썹’의 절정은 아무래도 이 「기인 여행가」에서 보게 된다. 미당에게 있어 ‘눈썹’은 우주만큼이나 크고 영원한 사랑의 표상이다. 꿈 속에서 만난 ‘눈썹’으로 절간을 세웠으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사랑의 공양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지금 그 절간의 풍경소리가 자꾸 귀속에서 울리는 것을 듣고 있다.



이대흠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이성복, 「그날」에서


“내가 없었을 때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도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오래도록 세상은 젓갈처럼 깊어가고 나는 아무런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고, 한 나라를 이루지도 못했다. 지네인 듯 발이 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고, 처음보다 부피만 더 커진 몸뚱이로 나는 외길에 서 있”었다. (졸시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에서 인용) 짐승들은 제 입으로 짐승이라 하지 않았고, 피 묻은 입을 다른 피로 닦았다. 미친 자들이 지배하였으므로 미치지 않는 자가 미친 것처럼 보였던 1980년대. 극약을 가지고 다녔지만, 순교할 기회조차 없었다. 미친개가 미친개를 물어 모두 미쳐갔던,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이동순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백석, 「모닥불」에서

1980년대 초반, 그 엄혹하던 시절에 나는 이름이 낯선 한 시인의 작품에 푹 빠져 있었다. 백석白石, 우리 문학사에서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특이한 존재였다. 하지만 뒤에 알고 보니 이미 1930년대의 찬란한 별이었다. 분단의 폭풍 속에서 가랑잎처럼 흩어진 그분의 작품을 하나 둘 모으고 정리하던 중 시 「모닥불」과 만나게 되었는데, 내 가슴 속은 그야말로 번개가 치는 듯 수백만 볼트에 감전이 된 듯 무서운 전율이 왔다. 모닥불 속에서 우리 민족사의 상처와 불구성을 읽어내다니…… 나는 미친 듯이 백석의 작품을 모았고, 마침내 분단 이후 최초로 한 권의 전집을 발간하였다. 이제 그분의 문학은 우리 문학사에서 당당한 위상으로 복원되었다. 백석과의 만남은 나의 감격이었고, 나의 행운이었으며, 이젠 나의 자부심으로 살아 있다.



이병률

나는 이렇게 한가하고 게으르고 그러면서 목숨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하는 것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그 오래고 깊은 마음들이 참으로 좋고 우러러진다
―― 백석, 「조당?塘에서」에서

이상하다. 아직도 따뜻한 것에 연연해함은, 밋밋하게 편편하게 살아도 살아지는 세상에 자꾸 목 뒤에 뭔가가 켕긴 것이 있는 사람처럼 따뜻한 것을 찾아 자꾸 뒤돌아보게 됨은 부끄럽기조차 하다. 그래도 이 한 줄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다 보면 나아진다. 목욕이라도 한 기분이 된다.
삶을, 인생을 저리 순연하게 ‘우러러’볼 수 있다니 백석은 참 인간으로서도 잘 살았다 싶다. 이 땅의 전부를 담고 있으며 한 생의 궁극을 집어낸 이 한없이 느리고 미쁘며 태연하고도 갸륵한 한 줄이여. 나는 이 한 줄이 참으로 애틋하고 뜨겁다.

이선영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 버렸다.
―― 김수영, 「거미」에서

‘바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기에, 또한 얼마나 절절하기에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그러다 ‘까맣게 몸이 타 버’린 김수영의 ‘거미’는 이후 내 뇌리에 각인된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였다. 본시 거미에 대해 생명으로서의 한치의 외경심이나 일말의 연민조차 가져본 적이 없던 나에게 김수영의 ‘거미’는 그대로 섬광 같은 시인의 실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시인의 길을 가려던 나의 실존에 대한 섬뜩한 예감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성부

먼 길에 올 제
호을로 되어 외로울 제
푸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 김현승, 「푸라타나스」에서

열여섯 살의 여드름 투성이였던 소년에게 이 시구는 충격이라기보다 큰 그리움의 하나로 다가왔다. 그때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먼 길’과 ‘외로움’의 실체가 눈에 선하게 잡혀지는 것 같았다. 집을 떠나 어디론가로 가고 싶다는 여행에의 욕망, 그 여로에서 터득하게 될 고독의 본질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는데, 세계와 삶에 대한 어떤 각성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정지된 나무가 하나의 영혼으로, 그리고 한 고독한 인간을 고독하지 않게 위무하는 손길로 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수명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소
―― 이상, 「꽃나무」에서

이것을 읽었을 때, 시가 무엇인지 알았던 것 같다. 욕망과 함께 욕망의 불가능함을 말이다. 시는 이 불가능으로 시작된다.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는 또 다른 자아일까, 타자일까. 이상은 양자가 하나가 되는 어느 지점이 시의 뇌관임을 보여준다. 시인들은 안에, 혹은 밖에 꽃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겠지만.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 거리감을 직관하는 것이 시이다. 그것을 채우는 것이 시이고, 또 내버려두는 것이 시이다. 나는 시의 이러한 운명을 사랑한다. 시는 “갈 수 없”음으로 도달하기 때문이다. 관통하기 때문이다.



이수익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 서정주, 「화사花蛇」에서

서정주 초기 시편의 휘황한 원초적 생명력은 나의 10대 문학소년 시절을 뜨거운 피로 세례하였다. 그 중에서도 원죄의 달콤한 유혹과 관능을 징그러운 배암으로 육화시킨 「화사花蛇」는 언제나 그 절정에서 나를 숨가쁘게 조여 왔다. 내 몸 안의 피의 유전자와 상통하는 ‘어떤 무엇’이 있었음이 틀림없었으리라. 특히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라는 구절에 이르면 나는 늘 숨막히는 희열을 전신으로 감싸 안곤 했다.
그런 내면적 뜨거움이 이후 나의 시에서 피, 절정, 죽음, 황홀, 비애 등의 언어로 채색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승하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서정주, 「자화상」에서

미당은 23세 되던 해 가을에 「자화상」을 썼다. 나는 바로 그 나이에 미당 선생의 제자가 되어 있었다. 수업 시간에 스승은 호되게 꾸중을 하셨다. “이건 시가 아닐세!”라고. “이런 시는 앞으로 쓰지 말게!”라고. 스승의 시 수십 편을 이마 위에 얹고 있던 나는 스승의 몰인정에 학교 앞 주점 왕개미집에서 오랜 날을 살았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전시 체제로 바뀌어 가던 1937년, 스승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간질병 환자인 양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나 역시도 1982, 83년 그 언저리에서 분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치를 떨고 있었다. 시대가 참으로 어두웠기에, 스승의 말마따나,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을 남몰래 꿈꾸며 시를 쓰고 있었다. 스승은 말더듬이 환자였던 나의 자화상인 「화가 뭉크와 함께」를 등단작으로 뽑아주셨다. 스승의 파안대소가 미치도록 듣고 싶은 2007년 9월의 어느 아침이다.

이승훈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
―― 이상, 「아침」에서

고교 시절 처음 이상의 시를 읽고 충격을 받는다. 세상에 이런 시가 있다는 것도 충격이고 이런 시인이 있다는 것도 충격이고 이런 시인과 만난 것도 충격이다. 그가 노래하는 병든 내면은 당시의 나의 내면이고 그 후 나는 이상의 정신적 가족이 된다. 그는 폐결핵으로 시달리는 밤을 노래하고 이런 밤은 당시의 어둡던 가정, 나약한 감성, 우울한 사춘기의 은유가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결국 고독한 체념과 말라버린 사유와 초췌한 감성이 있을 뿐이다. 사는 건 병드는 것. 그렇게 고교 시절을 보냈다. ‘밤은 참 많기도 하더라.’ 이런 밤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 원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 오규원, 「버스정거장에서」에서

1987년 3월 서울예대 문창과에 들어갔고, 1987년 10월 명동의 서점에서 오규원 선생님의 새 시집을 샀다. 「버스정거장에서」의 첫 구절인, 이 시구를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습작을 하던 1991년, 밥그릇을 소재로 시를 쓰게 되었다. 이런 것도 시가 되나요, 하고 여쭈었다. 이 세상에 시 아닌 것은 없다. 네가 쓰는 모든 것이 시다, 오규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순간 즉각적으로 이 시구가 다시 떠올랐고, 이 시구를 처음 보았을 때 무너져 내렸던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짐짓 태연해 보이는 이 진술은 내가 시에 대해, 삶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한 번에 무너뜨렸던 것이다(내가 안다고 믿고 있던 것들은 내가 가장 모르는 것들이었다). 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시다, 언어도 삶도 벼랑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나는 언어가, 삶이 균형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이 시구를 붙잡고 날아오르며 벼랑을 만든다.

이유경

내 너를 찾아 왔다.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 서정주, 「부활」에서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은 아니지만, 최초로 나를 감동시킨 시 한 구절은 서정주의 「부활」의 도입부였다.
이 시를 처음 대한 것은 고교에 입학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한답시고 서정주 조지훈 박목월 공저의 『시창작법』(1954)이란 책을 사 읽으면서였다. 미당의 <일종의 자작시 해설―「부활」에 대하여>란 글에 시 전문이 실려 있었다.
열여섯 일곱의 사춘기를 갓 지난 나의 감성에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는 황홀한 사랑의 풍경을 전개해 주던 것이었다. 슬프고 쉬운 시였기에 감동이 더했던 모양이다.
훗날 성인이 되어서도 한동안 나는 술에 취하면 노래 대신 이 시 전문을 소리쳐 외곤 했다.

이윤학

아침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씩씩하고 활기차게 ‘필승’ 또 ‘필승’경례를 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그렇게 인사를 하십니까


네, 저기 있는 까치를 보고 인사합니다

필승!
―― 정용주, 「필승」 전문

3,4년 전 이 시를 처음 읽게 되었다. 한 남자가 아침마다 창문을 열어놓고 까치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남자는 부동자세로 까치가 날아올 나무를 아니면 지붕을 또는 전봇대를 힘주어 바라보았다.
왜 반드시 이겨야 하나, 왜 반드시 이겨야 하나, 왜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 되나? 씩씩하고 활기차게 ‘필승’ 또 ‘필승’을 외치지 않으면 안 되나? 왜 하필 까치에게, ‘필승’ 또 ‘필승’ 경례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되었나?
처음에는 화자 자신에게 퍼붓는 ‘냉소冷笑’로 읽히더니, 종내는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자기 암시暗示로 옮겨갔다. 까치를 보면 이 시가 생각나더니, 나무나 지붕이나 전봇대만 봐도 ‘필승必勝’이 들려왔다. “……오직 하나, 나는 나 자신에게 승리했을 뿐이다.” 김산 평전에서 읽은 구절과 함께.



이윤훈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이 시는 젊다. 여든이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신선한 감각이 살아나 시의 자장을 잃지 않고 있다.
이 시 속에서는 야사 하이페츠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아련하다. 극도로 절제된 감정과 섬세한 감각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시의 공간이 있다. 그 속에 고양이로 현현된 생생한 봄을 만난다.
나른한 아침 봄볕 속 이 시를 진언처럼 읊조리면 이 시와 내 시의 한 접점에서 모를 새 한 마리 고양이로 변한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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