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ㅡ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은자주] 제목은 노천명이 사슴을 두고 한 말이지만

기린이야말로 사슴 목보다 몇 배 더 기니 그만큼 더 슬프지 않겠는가?

더구나 홍학은 목이 길지만 다리가 길어 발 아래 것이나 먹을 수 있지만

기린은 목의 길이에 비해 다리가 짧아 허리춤께 아래 것은 먹을 수 없으니 더욱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높은 데 것을 독식하려다 발 아래 것은 먹을 수 없도록 숙명지어졌구나.

그런데도 지금 너는 높은 곳 나무껍질을 벗겨 먹기에 여념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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