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 연암집 제 4 권
[주C-001]총석정(叢石亭)에서 해돋이를 구경하다 : 연암의 아들 박종채(朴宗采)가 지은 《과정록(過庭錄)》에 의하면, 영조 41년(1765) 연암은 벗 유언호(兪彦鎬) · 신광온(申光蘊)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할 때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 시를 보고 판서 홍상한(洪象漢)이 칭찬해 마지않았다고 하며, 연암 스스로도 득의작으로 자부하여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월 20일 조에 수록해 놓았다. 윤광심(尹光心)의 《병세집(幷世集)》에는 총석관일(叢石觀日)이라는 제하에 수록되어 있는데, 자구의 차이가 있으며 12행 84자가 추가되어 있다. 《연암집》에 수록된 시의 초고로 짐작된다.
行旅夜半相呌譍 길손들 한밤중에 서로 주고받는 말이
遠鷄其鳴鳴未應 먼 닭이 울었는가 아직 울지 않을 텐데
遠鷄先鳴是何處 먼저 우는 먼 닭은 그게 바로 어드메냐
只在意中微如蠅 의중에만 있는 거라 파리 소리처럼 희미하네
邨裏一犬吠仍靜 마을 속의 개 한 마리 짖다 도로 고요하니
靜極寒生心兢兢 고요 극해 찬기 일어 마음이 으시으시
是時有聲若耳鳴 이때 마침 소리 있어 두 귀가 울리는 듯
纔欲審聽簷鷄仍 자세히 듣자니 집닭 울음 뒤따르네
[주D-001]파리 소리처럼 희미하네 : 《시경(詩經)》 제풍(齊風) 계명(鷄鳴)에 “닭이 우는 것이 아니라, 파리 소리로다.〔匪鷄則鳴 蒼蠅之聲〕”라고 하였다. 현비(賢妃)가 임금이 조회(朝會)에 늦지 않게 깨우려고 조바심하다가 파리 소리를 닭 울음으로 잘못 들었다는 뜻이다.
[주D-002]두 귀가 울리는 듯 : 이명증(耳鳴症)으로 헛소리를 들은 듯하다는 뜻이다.
此去叢石只十里 예서 가면 총석정이 십 리밖에 되잖으니
正臨滄溟觀日昇 동해에 곧바로 다다르면 해돋이를 보겠구먼
天水澒洞無兆朕 하늘과 맞닿은 물만 넘실넘실 해 뜰 조짐 전혀 없고
洪濤打岸霹靂興 거센 파도 언덕 치니 벼락이 일어나네
常疑黑風倒海來 노상 의심쩍은 건 폭풍이 바다를 뒤집어엎고
連根拔山萬石崩 뿌리째 산을 뽑아 뭇 바위 무너질까
無怪鯨鯤鬪出陸 고래 곤어 다투다가 뭍으로 나올 법도 하이
不虞海運値摶鵬 뜻밖에도 항해하다 나래 치는 붕새를 만날지도
但愁此夜久未曙 다만 걱정되는 건 이 밤이 오래도록 아니 새어
從今混沌誰復徵 이제부터 혼돈을 뉘 다시 징벌할지
無乃玄冥劇用武 아마도 겨울 신이 제 힘을 과시하여
九幽早閉虞淵氷 구유(九幽)를 일찍 닫고 우연(虞淵)을 얼게 하지 않았나
[주D-003]곤어(鯤魚) : 북해(北海)에 살며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물고기로,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온다. 원문의 ‘鯤’이 《병세집》에는 ‘鼉’로 되어 있다.
[주D-004]나래 치는 붕새 : 《제해(齊諧)》에 붕새가 남쪽 바다로 이동할 때 물보라가 삼천 리나 일어나며 “나래로 회오리바람을 쳐서 오르기 구만 리나 된다.〔摶扶搖而上者九萬里〕”고 하였다. 《장자》 소요유에 나온다.
[주D-005]이제부터 혼돈을 : 혼돈은 천지개벽 초에 만물이 아직 구별되지 않은 어두운 상태를 가리킨다. 이 혼돈은 중국 고대 문헌에서 주로 부정적인 존재로 의인화(擬人化)되었다. 《장자》 응제왕(應帝王)에서는 눈, 코, 입, 귓구멍, 콧구멍이 없는 중앙의 제왕으로 소개되어 있다. 삼황(三皇) 이전 천지의 시초의 제왕이라고도 한다. 또한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제홍(帝鴻) 즉 황제(黃帝)의 못난 자식으로서 그 후손이 요순(堯舜) 시대 때 악명 높은 사흉(四凶)의 하나였다고 한다. 《신이경(神異經)》에는 곤륜산(崑崙山) 서쪽에 사는 악수(惡獸)라고도 하였다. 원문의 ‘從今’이 《병세집》에는 ‘從玆’로 되어 있다.
[주D-006]구유(九幽) : 땅속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킨다.
[주D-007]우연(虞淵) : 전설상 해가 지는 곳이다.
恐是乾軸旋斡久 아마도 하늘 축이 오래도록 돌고 돌다
遂傾西北隳環絙 서북으로 기울어져 묶은 줄이 끊어진 게지
三足之烏太迅飛 세 발 달린 까마귀 날기로는 천하제일인데
誰呪一足繫之繩 누가 주술 부려 발 하나를 노끈으로 매어 놓았나
海若衣帶玄滴滴 해야(海若)의 옷과 띠엔 물방울이 뚝뚝 듣고
水妃鬢鬟寒凌凌 수비(水妃)의 쪽 찐 머린 추위 서려 싸늘하네
[주D-008]하늘 축 : 원문의 ‘軸’이 《병세집》 등 이본에는 ‘紐’로 되어 있다. ‘건뉴(乾紐)’는 천도(天道)란 뜻이다.
[주D-009]서북으로 기울어져 :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이 서북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列子 湯問》 《사기(史記)》 권127 일자열전(日者列傳)에도 “하늘은 서북쪽이 부족하니 별들이 서북으로 이동한다.〔天不足西北 星辰西北移〕”고 하였다.
[주D-010]묶은 …… 게지 : 원문의 ‘隳’가 《병세집》에는 ‘墮’로 되어 있다.
[주D-011]세 발 달린 까마귀 : 전설상 해 속에 산다는 새이다.
[주D-012]주술 : 원문의 ‘呪’가 《병세집》에는 ‘叱’로 되어 있다.
[주D-013]해야(海若) : 전설상의 해신(海神)이다.
[주D-014]수비(水妃) : 전설상 수중의 신녀(神女)이다.
[주D-015]쪽 찐 머린〔鬢鬟〕 : 양쪽 귀밑머리를 잡아당겨 만든 환상(環狀)의 쪽 찐 머리를 말한다.
巨魚放蕩行如馬 큰 고기 활개 치며 준마같이 내달리니
紅鬐翠鬣何鬅鬙 붉고 푸른 지느러미 어찌 그리 터부룩한고
天造草昧誰參看 개벽 이전 어둔 누리 본 사람이 누구더냐
大呌發狂欲點燈 참다 못해 외쳐 대며 등이라도 켜려 드네
欃槍擁彗火垂角 혜성이 꼬리를 끌고 화성(火星)이 광망(光芒)을 뻗치네
[주D-016]혜성이 꼬리를 끌고 : 원문의 참창(欃槍)은 혜성의 이름이고, 혜성은 비를 들어 쓸어 버린 듯이 꼬리를 길게 끌기 때문에 소추성(掃帚星)이라고도 한다.
禿樹啼鶹尤可憎 낙엽 진 나무의 부엉이 울음 더욱더 밉상일레
斯須水面若小癤 조금 뒤에 수면에 작은 부스럼 생긴 듯
誤觸龍爪毒可
용의 발톱 잘못 긁혀 독기로 벌겋더니
其色漸大通萬里 그 빛이 점점 커져 만리를 비추누나
波上邃暈如雉膺 물결 위에 번진 빛 꿩의 가슴 비슷하이
天地茫茫始有界 아득아득 이 천지에 한계 처음 생겼으니
以朱劃一爲二層 붉은 붓 한 번 그어 두 층이 되었구려
梅澁新惺大染局 매삽이라 신성이라 염색집이 하도 커서
千純濕色縠與綾 몇 천 필 색을 들여 온갖 비단 으리으리
作炭誰伐珊瑚樹 산호나무 누가 베어 참숯을 만들었나
[주D-017]붉은 …… 그어 : 원문의 ‘以朱劃一’이 《병세집》에는 ‘殷紅深碧’으로 되어 있다.
[주D-018]매삽(梅澁)이라 신성(新惺)이라 : ‘매삽’과 ‘신성’은 그 의미가 불확실하나 염색집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원문의 ‘惺’이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월 20일 조에는 ‘醒’으로 되어 있다.
繼以扶桑益熾蒸 부상나무 뒤이으니 더욱더 이글이글
炎帝呵噓口應喎 염제는 불을 불어 입이 응당 비틀리고
祝融揮扇疲右肱 축융은 부채 휘둘러 바른팔이 지쳤구려
鰕鬚最長最易爇 새우 수염 가장 길어 그슬리기 제일 쉽고
蠣房逾固逾自
굴껍질은 굳을수록 더욱더 절로 익네
[주D-019]부상(扶桑)나무 : 전설상 해 뜨는 곳에 자란다는 나무이다.
[주D-020]염제(炎帝) : 전설상 불을 주관하는 신이다.
[주D-021]축융(祝融) : 이 또한 불을 주관하는 신이다.
寸雲片霧盡東輳 한 치 구름 조각 안개 동으로 다 쓸려 가서
呈祥獻瑞各效能 온갖 상서 바치려고 제 힘을 다하누나
紫宸未朝方委裘 자신궁(紫宸宮)엔 조회 전에 바야흐로 갖옷을 모셔놓고
陳扆設黼仍虛凭 병풍만 펼쳐 논 채 용상은 비어 있네
纖月猶賓太白前 초승달은 샛별 앞에 오히려 밀려나서
頗能爭長薛與滕 먼저 예를 행하겠다고 등설(滕薛)처럼 제법 맞서누나
[주D-022]온갖 …… 다하누나 : 원문의 ‘獻瑞各效能’이 《병세집》에는 ‘效瑞難具稱’으로 되어 있으며, 이어서 ‘成曇變霱爭來王 縓緣絳領金線縢’ 2행이 추가되어 있다.[주D-023]자신궁(紫宸宮) : 당송(唐宋) 시대에 천자가 신하나 외국의 사신을 조회하던 정전(正殿)이다.
[주D-024]바야흐로 갖옷을 모셔놓고 : 임금이 죽고 새 임금이 아직 조정에 나와 앉기 전에는 선왕의 유의(遺衣)인 갖옷을 모셔놓고 조회한다.
[주D-025]등설(滕薛)처럼 제법 맞서누나 : 노(魯) 나라 은공(隱公) 11년 봄에 등후(滕侯)와 설후(薛侯)가 노 나라에 조현(朝見)을 왔다가 예를 행하는 데 있어 그 선후를 다투자 은공이 설후를 설득하여 등후가 먼저 예를 행하도록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氏傳 隱公11年》
赤氣漸淡方五色 붉은 기운 차츰 묽어 오색으로 나뉘더니
遠處波頭先自澄 먼 물결 머리부터 절로 먼저 맑아지네
海上百怪皆遁藏 바다 위 온갖 괴물 어디론지 숨어 버리고
獨留羲和將驂乘 희화만이 홀로 남아 수레 장차 타려 하네
圓來六萬四千年 육만이라 사천 년을 둥글둥글 내려왔으니
今朝改規或四楞 오늘 아침 동그라미 고쳐 어쩌면 네모가 될라
萬丈海深誰汲引 만길의 깊은 바다에서 어느 누가 길어 올렸을까
始信天有階可陞 이제서야 믿겠노라 하늘도 오를 계단이 있음을
[주D-026]먼 물결 머리부터 : 원문의 ‘處’가 《병세집》에는 ‘海’로 되어 있다.
[주D-027]바다 위 : 원문은 ‘海上’인데, 《병세집》에는 ‘俄者’로 되어 있다.
[주D-028]희화(羲和) : 전설상 해를 태운 수레를 모는 신이다.
[주D-029]수레 …… 하네 : 《병세집》에는 이 다음에 ‘有物如盖來覆之 其下蜿蜒馳神螣’ 2행이 추가되어 있다.
[주D-030]육만이라 사천 년 :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의하면, 우주가 개시해서 소멸할 때까지를 1원(元)이라 하는데, 1원은 12회(會)로, 1회는 30운(運)으로, 1운은 12세(世)로, 1세는 30년(年)으로 나뉜다. 따라서 1원은 12만 9600년이 된다. 우주의 역사가 6회(會)가 되면 6만 4800년이 된다.
[주D-031]하늘도 …… 있음을 :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진자금(陳子禽)이 자공(子貢)에게 공자라도 그대만 못하겠다고 칭찬하자, 자공은 “선생님에게 미칠 수 없음은 하늘을 계단을 밟아 오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라고 반박하였다.
鄧林秋實丹一顆 등림에 가을 열매 한 덩이가 붉었고
東公綵毬蹙半登 동공이 채색 공을 차서 반만 올렸구려
夸父殿來喘不定 과보는 헐레벌떡 뒤따라오고 있고
六龍前道頗誇矜 육룡은 앞서 끌며 교만스레 자랑하네
天際黯慘忽顰蹙 하늘가 어둑해져 갑자기 눈살 찌푸리고
努力推轂氣欲增 어영차 해 수레 미니 기운이 솟아난 듯
圓未如輪長如瓮 바퀴처럼 둥글잖고 독처럼 길쭉한데
出沒若聞聲砯砯 뜰락 말락 하니 철썩철썩 부딪치는 소리 들리는 듯
萬物咸覩如昨日 만인이 어제처럼 모두 바라보는데
有誰雙擎一躍騰 어느 뉘 두 손으로 받들어 단번에 올려놨노
[주D-032]등림(鄧林) : 전설상의 숲 이름이다. 《산해경(山海經)》 해외북경(海外北經)에, 과보(夸父)가 해를 따라 달리다가 목이 말라 죽었는데 그때 버린 지팡이가 숲을 이뤄 등림이 되었다고 한다.
[주D-033]동공(東公) : 전설상의 해를 맡은 신이다.
[주D-034]육룡(六龍)은 앞서 끌며 : 전설에서 해의 신이 수레를 타면 여섯 용이 수레를 끌고 희화가 이를 몰고 다닌다고 한다. 원문의 ‘道’가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월 20일 조에는 ‘導’로 되어 있다.
[주D-035]바퀴처럼 둥글잖고 : 원문의 ‘圓’이 《병세집》 등 이본에는 ‘團’으로 되어 있다.
[주D-036]뜰락 …… 듯 : 《병세집》에는 이 구절 다음부터 끝까지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즉 “金銀震蕩色未定 欲掛冥靈枝不勝 慌惚直欲雙手擎 轉眄之間一躍騰 快如盡曉難解書 喜極新逢欲招朋 爽如翻惺作噩夢 喉中未聲聲忽能 離海一尺無不照 儘覺生平天宇弘”으로 되어 있다.
[주D-037]만인이 …… 바라보는데 :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오(九五)의 효사(爻辭)에 대한 공자의 풀이 중에 “성인이 나타나시니 만물이 바라본다.〔聖人作而萬物覩〕”는 말이 있다. 주자(朱子)의 본의(本義)에 의하면 이때 만물(萬物)은 만인(萬人)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해를 성인에 비겼다.
[김홍도 이인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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