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목당(榮木堂) 이공(李公)에 대한 제문(祭文)


[주C-001]영목당(榮木堂) : 연암의 처삼촌인 이양천(李亮天 : 1716 ~ 1755)의 호이다. 연암의 장인인 이보천(李輔天)의 동생으로, 홍문관 교리를 지냈다. 이양천은 시문(詩文)에 뛰어났으며, 수학 시절의 연암에게 문학을 지도하였다. 《연암집》 권3 ‘영목당 이공에 대한 제문〔祭榮木堂李公文〕’ 참조.

[은자주]년보에서 지적했듯이 연암은 처숙 이량천이게서 사기, 좌전, 국어 등의 역사서와 한유, 유종원, 두보의 시문을 배웠다. 사마천의 발분(發憤)의 정신과 사실에 바탕한 시문의 글쓰기는 이때 터득되고 북학파 인사들과 교류하며 명말청초 이지(李摯)의 동심설(童心說)에서 그의 문학관은크게 확충되었다. 그는 이량천에게서 3년간 수학하였지만 문학의 본령을 터득했으므로 그에 대한 애도가 남다르다.

余方有進 여방유진 내 한창 진취하려는데
公奄棄世 공엄기세 공이 갑자기 별세하시니
茫茫岐路 망망기로 갈림길 하많은데
我尙疇詣 아상주예 어느 분을 찾아가야 하리

我疑何質 아의하질 의심나면 뉘게 묻고
我惰孰勵 아타숙려 게으르면 뉘 잡아주리
念玆益悲 념자익비 생각할수록 슬픈 것은
實爲我地 실위아지 실은 제 처지가 슬퍼서네.

서두에서 벌써 그 지극한 정을 담아내는 솜씨가 독자의 가슴을 친다.


유세차(維歲次) 을해(1755) 11월 경오삭(庚午朔) 1일 경오에 반남(潘南) 박지원은 삼가 술과 과일로 제물을 갖추어, 홍문관 교리 이공의 영전에 곡하며 영결을 고합니다.

[주D-001]경오삭(庚午朔) 1일 경오 : 고대에는 날짜를 적을 적에 ‘元嘉三年三月丙子朔二十七日壬寅’이라는 식으로 연월(年月) 다음에 반드시 초하루를 뜻하는 삭(朔) 자를 붙여서 삭(朔) 제(第) 몇 일(日)이라 쓰고 또 간지(干支)를 붙였다. 따라서 초하루를 적을 때에도 이 제문처럼 ‘乙亥十一月庚午朔一日庚午’라 하여, 번거롭지만 날짜를 중복해서 적었다. 《日知錄 卷20 年月朔日子》


余年二八 여년이팔 내 나이 열여섯에
入贅賢門 입췌현문 덕망 높은 집안에 장가드니
弟兄湛樂 제형담악 형제분이 우애로워
和氣氤氳 화기인온 화기가 애애했네
外舅謂我 외구위아 장인께서 이르시되
余季好文 여계호문 내 아우 글 좋아하여
仕宦雖疎 사환수소 벼슬에는 비록 소홀해도
文學甚勤 문학심근 문학에는 몹시 부지런하니

來舍甥館 래사생관 생관에 와 머물거라
余季汝師 여계여사 내 아우가 너의 스승이니라


[주D-002]생관(甥館) : 사위가 거처하는 방을 말한다.


公之愛我 공지애아 나에 대한 공의 사랑
視舅亦深 시구역심 장인보다 더 깊어서
授我詩書 수아시서 내게 경서(經書) 가르칠 제
嚴課無私 엄과무사 엄한 일과 사정없었네
陪公周旋 배공주선 공 모시고 따라다닌 지
四年于玆 사년우자 이제 어언 사 년일세
文與世降 문여세강 세상 따라 문학도 쇠퇴해지매
公起其衰 공기기쇠 공이 다시 일으켜 세웠나니
文劈韓骨 문벽한골 산문은 한유의 골수를 취했고
詩斲杜肌 시착두기 시는 두보의 속살을 얻었네


소자불녕 소자불녕 재주 없는 이 소자는
才魯性癡 재로성치 어리석고 노둔한데
荷公誘掖 하공유액 공의 유도에 힘입어서

庶幾愚移 서기우이 우공이산(愚公移山) 바랐더니
余方有進 여방유진 내 한창 진취하려는데
公奄棄世 공엄기세 공이 갑자기 별세하시니
茫茫岐路 망망기로 갈림길 하많은데
我尙疇詣 아상주예 어느 분을 찾아가야 하리

[주D-003]우공이산(愚公移山) : 우공(愚公)이란 노인이 집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들을 깎아 없애버리고자 결심하고 쉬지 않고 노력했더니 상제(上帝)가 감동하여 그 산들을 딴 곳으로 옮겨주었다고 하는 《열자(列子)》 탕문(湯問) 중의 우화에서 나온 고사성어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침내 큰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讀古一傳 독고일전 옛 전(傳) 한 편 읽자 해도
已多觝滯 이다저체 막히는 곳 너무 많아
數行才下 수행재하 두어 줄만 읽어 내려가면
群疑交蔽 군의교폐 뭇 의심이 앞을 가려
廢書太息 폐서태식 책을 덮고 장탄식
繼以悲涕 계이비체 슬픈 눈물 뒤따르네


[주D-004]옛 …… 해도 : 《사기》나 《한서》에 실린 전(傳)들을 가리킨다. 연암은 이양천으로부터 사기를 배웠는데 항우본기(項羽本紀)를 본떠 이충무전(李忠武傳)을 지었더니, 이양천은 사마천(司馬遷)이나 반고(班固)와 같은 경지를 얻었다고 크게 칭찬했다고 한다. 《過庭錄 卷1》


我疑何質 아의하질 의심나면 뉘게 묻고
我惰孰勵 아타숙려 게으르면 뉘 잡아주리
念玆益悲 념자익비 생각할수록 슬픈 것은
實爲我地 실위아지 실은 제 처지가 슬퍼서네


去夏潦暑 거하료서 지난 여름 장마와 무더위에 /
公疾始祟 公疾始祟 공의 병이 처음 생겼네 /

玉巖淸泉 옥암청천 아름다운 암벽 맑은 샘에서 /
公于濯纓 공우탁영 공은 갓끈을 씻고 /

浴沂新服 욕기신복 기수(沂水)에서 목욕할 제 입을 새옷 /
此日旣成 차일기성 그날에 다 지어졌는데 /
顧謂小子 고위소자 이 소자 돌아보며 이르시길 /
盍觀於水 합관어수 어찌 물에서 보지 않느냐 /
盈科而進 영과이진 웅덩이를 채우고야 나아가니 /
有爲若是 유위약시 뜻 이루는 것도 이 같은 법 /

逝水其忙 서수기망 흘러가는 냇물처럼 바빠야 한다 /
言猶在耳 언유재이 그 말씀 아직도 귀에 쟁쟁 /
而今思之 이금사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
警誨止此 경회지차 공의 마지막 가르침이셨네 /


[주D-005]기수(沂水)에서 …… 지어졌는데 : 공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포부를 물었을 때 증점(曾點)은 “늦은 봄이 되어 봄옷이 다 지어지면, 관(冠) 쓴 어른 5, 6명, 동자 6, 7명과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시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답하였다. 《論語 先進》 여기서는 이양천이 연암을 데리고 물가로 놀러 나갔던 일을 가리킨다.
[주D-006]어찌 …… 나아가니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물을 보는 데에 방법이 있다. …… 흐르는 물이란 것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觀水有術 …… 流水之爲物也 不盈科 不行〕”고 하였고, 이루 하(離婁下)에 “근원이 있는 물은 용솟음치며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웅덩이를 채우고야 나아가 사해로 쏟아진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고 하였다. 쉬지 않고 실천함으로써 차근차근 학업을 성취할 것을 당부한 말이다.
[주D-007]흘러가는 …… 한다 :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시기를, ‘나아가는 것은 이 냇물과 같도다.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逝者如斯夫 不舍晝夜〕’고 하였다.”는 구절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논어집주(論語集註)》에 따르면, 이 구절은 쉬지 말고 면학할 것을 당부한 말이다.


天生我公 천생아공 하늘이 우리 공을 낳으시고 /
年命何屯 년명하둔 어찌 수명은 짧게 주셨는고 /
苫席無孤 점석무고 거적 자리엔 상주(喪主) 없고 /
萱堂有親 훤당유친 북당(北堂)에는 모친 계시네 /
昧昧者理 매매자리 모를 것이 이치라서 /
難質鬼神 난질귀신 신에게도 묻지 못해 /
無年無嗣 무년무사 후사 없고 단명한 건 /
昔人所愍 석인소민 옛사람도 슬퍼한 일 /
孰主張是 숙주장시 누가 이를 주장했나 /
其亦不仁 기역불인 그도 또한 잔인하이 /


早擢魁科 조탁괴과 장원 급제 일렀으나 /
家甚淸貧 가심청빈 집은 몹시 청빈했고 /

歷敭華要 력양화요 화직(華職) 요직(要職) 거쳤지만
/
養未專城 양미전성 고을 수령되어 부모 봉양 못 했네 /

金馬玉堂 금마옥당 금마옥당도 /
於公非榮 於公非榮 공에겐 영화가 아니었어라 /


[주D-008]장원 급제 일렀으나 : 이양천은 1749년(영조 25) 춘당시(春塘試)에 문과 급제하였다.
[주D-009]화직(華職) 요직(要職) 거쳤지만 :
이양천은 1749년 이후 1755년 작고할 때까지 사간원 정언 · 헌납, 홍문관 부수찬 · 부교리 · 교리, 세자시강원 사서 · 필선 등을 지냈다.
[주D-010]금마옥당(金馬玉堂) :
원래 한(漢) 나라 때 글 잘짓는 신하들이 황제의 부름을 기다리던 궁중의 금마문(金馬門)과 옥당서(玉堂署)를 가리키는데, 후대에는 한림원(翰林院)의 학사(學士)를 가리키게 되었다. 이양천이 홍문관의 관직을 지냈으므로 한림원의 학사에 견주어 표현한 것이다.


曩進一疏 낭진일소 전에 상소 한번 올렸다가 /
遂竄南荒 遂竄南荒 남쪽 변방으로 귀양 가고 마셨지 /
余病未別 여병미별 나는 병으로 송별을 못 해 /
來拜高堂 래배고당 고당에 와 절 드리니 /
壁掛輿圖 벽괘여도 벽에 지도 걸어놓고 /
指示泫然 지시현연 가리키며 눈물지으셨네 /


[주D-011]전에 …… 마셨지 : 이양천은 홍문관 교리로서 영조 28년(1752) 10월 소론의 영수인 이종성(李宗城)을 영의정으로 임명한 조치에 항의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흑산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연암집》 권3 불이당기(不移堂記) 참조.


逖矣遷人 적의천인 아스랗다 귀양 가시는 분 /
鬱繆山川 울무산천 산과 물이 얼기설기 /
某水某山 모수모산 아무 물 아무 산을 /
何時度越 하시도월 어느 제 다 거칠꼬 /
不忍生離 불인생리 생이별도 못 참거든 /
況此死別 황차사별 사별이야 오죽하리 /
昔公謫去 석공적거 전에 공이 귀양 가실 젠 /
奉慰有說 봉위유설 위로드릴 말이라도 있었지만 /
今公此行 금공차행 지금 공이 이렇게 가실 제는 /
忍作何言 인작하언 차마 무슨 말을 하오리 /
余懷抑塞 여회억새 이내 가슴 답답하여 /
不覺聲呑 불각성탄 저도 몰래 울음 삼키네 /


維廣之陽 유광지양 광주(廣州)라 그 남쪽이 /
卽公眞宅 즉공진댁 바로 공의 안식처일레 /
啓殯隔宵 계빈격소 밤 지나면
계빈이라 /
含哀告訣 함애고결 슬픈 영결 고하오니 /
文辭雖拙 문사수졸 문장 비록 졸렬해도 /
腑肺攸出 부폐유출 가슴속에서 우러나왔고 /
奠物雖薄 전물수박 제물 비록 박하지만 /
情禮所設 정례소설 정례로써 올린 거니 /
尊靈不昧 존령불매 밝으신 영령이시여 /
庶歆玆酌 서흠자작 이 술 한 잔 받으소서 /
尙饗 상향 상향 /


[주D-012]광주(廣州)라 …… 안식처일레 : 이양천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 돌마면(突馬面) 율촌(栗村)에 있었다.
[주D-013]계빈(啓殯) :
발인을 할 때에 관을 내오기 위하여 빈소(殯所)를 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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