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
영처고서-박지원
종북소선(鍾北小選), 연암집 제 7 권 별집
자패(子佩, 유련(柳璉))이 말했다.
“비루하구나, 무관(懋官)이 시를 지은 것이야말로!
옛사람의 시를 배웠음에도 그와 비슷한 점을 보지 못하겠다.
털끝만큼도 비슷한 데가 없으니 어찌 그 소리인들 비슷할 수 있겠는가?
야인(野人)의 비루함에 안주하고 시속(時俗)의 자질구레한 것을 즐기고 있으니,
바로 오늘날의 시이지 옛날의 시는 아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크게 기뻐하여 말했다.
원문은 ‘此可以觀’인데,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는 《시경(詩經)》의 시로써 풍속의 성쇠(盛衰)를 “살필 수 있다.〔可以觀〕”고 하였다.[주D-002]옛날을 …… 따름이다 : 옛날을 이상화하고 지금을 말세로 여기는 귀고천금(貴古賤今)의 복고적 사상을 비판한 말이다.
그러므로 세월이 도도히 흘러감에 따라 풍요(風謠)도 누차 변하는 법이다. 아침에 술을 마시던 사람이 저녁에는 그 자리를 떠나고 없으니, 천추만세(千秋萬世)토록 이제부터 옛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것은 ‘옛날’과 대비하여 일컬어지는 이름이요, ‘비슷하다’는 것은 그 상대인 ‘저것’과 비교할 때 쓰는 말이다. 무릇 ‘비슷하다’고 하는 것은 비슷하기만 한 것이어서 저것은 저것일 뿐이요, 비교하는 이상 이것이 저것은 아니니, 나는 이것이 저것과 일치하는 것을 아직껏 보지 못하였다.종이가 하얗다고 해서 먹이 이를 따라 하얗게 될 수는 없으며, 초상화가 아무리 실물과 닮았다 하더라도 그림이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래 도저동(桃渚洞)에 푸른 기와로 이은 사당이 있고, 그 안에 얼굴이 붉고 수염을 길게 드리운 이가 모셔져 있으니 영락없는 관운장(關雲長)이다. 학질(瘧疾)을 앓는 남녀들을 그 좌상(座牀) 밑에 들여보내면 정신이 놀라고 넋이 나가 추위에 떠는 증세가 달아나고 만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아무런 무서움도 없이 그 위엄스런 소상(塑像)에게 무례한 짓을 하는데, 그 눈동자를 후벼도 눈을 깜짝이지 않고 코를 쑤셔도 재채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덩그러니 앉아 있는 소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보건대, 수박을 겉만 핥고 후추를 통째로 삼키는 자와는 더불어 그 맛을 말할 수가 없으며, 이웃 사람의 초피(貂皮) 갖옷을 부러워하여 한여름에 빌려 입는 자와는 더불어 계절을 말할 수가 없듯이, 관운장의 가상(假像)에다 아무리 옷을 입히고 관을 씌워 놓아도 진솔(眞率)한 어린아이를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주D-003]
우사단(雩祀壇) : 서울 남산 서편 기슭에 있었던 기우제 지내던 단(壇)이다. 사방이 40척이고, 구망(句芒), 축융(祝融), 후토(后土), 욕수(蓐收), 현명(玄冥), 후직(后稷)을 모셨다. 유월 상순에 제사를 드렸다. 남관왕묘(南關王廟)가 그 부근인 남대문 밖 도저동(桃渚洞)에 있었는데 선조(宣祖) 때 명 나라 장수 진인(陳寅)이 세웠다고 한다.
무릇 시대와 풍속을 걱정하고 가슴 아파한 사람으로는 역사상 굴원(屈原)만 한 사람이 없는데도, 초(楚) 나라 풍속이 귀신을 숭상했기 떄문에 귀신을 노래한 구가(九歌)를 지었으며, 한(漢) 나라는 진(秦) 나라의 옛것에 의거하여 진 나라의 땅에서 황제가 되고 진 나라의 성읍에다 도읍을 정하고 진 나라의 백성을 백성으로 삼았으되,
약법삼장(約法三章)에 있어서는 진 나라의 법을 답습하지 않았다.
[주D-004]구가(九歌) : 태일신(太一神)인 동황태일(東皇太一), 구름신인 운중군(雲中君), 상수(湘水)의 신인 상군(湘君),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상부인(湘夫人) 등 귀신들을 노래한 11수로 되어 있다.
[주D-005]약법삼장(約法三章 한 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진 나라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한 뒤, 진 나라의 가혹하고 번다한 법률 대신 삼장(三章), 즉 살인자는 죽이고 상해자와 도적은 처벌한다는 세 가지 법만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하였다. 《史記 卷8 高祖本紀》
지금 무관(懋官)은 조선 사람이다. 산천과 기후가 중화(中華) 땅과는 다르고 언어와 풍속도 한당(漢唐)의 시대와 다르다. 그런데도 만약 작법을 중화에서 본뜨고 문체를 한당에서 답습한다면, 나는 작법이 고상하면 할수록 그 내용이
실로 비루해지고, 문체가 비슷하면 할수록 그 표현이 더욱 거짓이 됨을 볼 뿐이다.
[주D-006]실로 : 원문은 ‘實’로 되어 있는데, 이본에는 ‘益’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비록 구석진 나라이기는 하나 이 역시 천승(千乘)의 나라요,
신라와 고려가 비록 검박(儉薄)하기는 하나 민간에 아름다운 풍속이 많았으니,
그 방언을 문자로 적고 그 민요에다 운(韻)을 달면 자연히 문장이 되어 그 속에서 ‘참다운 이치〔眞機〕’가 발현된다.
답습을 일삼지 않고 빌려 오지도 않으며,
차분히 현재에 임하여 눈앞의 삼라만상을 마주 대하니, 오직 이 시가 바로 그러하다.
아, 《시경》에 수록된 삼백 편의 시는 조수(鳥獸)와 초목(草木)의 이름을 들지 않은 것이 없고,
여항(閭巷)의 남녀가 나눈 말들을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패국(邶國)과 회국(檜國) 사이에는 지리적으로 풍토가 같지 않고,
강수(江水)와 한수(漢水) 유역에는 백성들이 그 풍속을 각기 달리하므로,
시를 채집하는 사람이 열국(列國)의 국풍(國風)으로 만들어
그 지방 백성들의 성정(性情)을 고찰하고 그 풍속을 파악하였던 것이다.
[주D-007]《시경》에 …… 없고 :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는 《시경(詩經)》의 시를 공부하면 “조수와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주자(朱子)는 시집전서(詩集傳序)에서 《시경》의 국풍(國風)은 여항의 가요에서 나온 것이 많으며,
남녀가 함께 노래하면서 각자의 감정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무관(懋官)의 이 시가 예스럽지 않은 점에 대해 어찌 다시 의아해하겠는가.
만약 성인(聖人)이 중국에 다시 나서 열국의 국풍을 관찰한다면,
이 《영처고(嬰處稿)》를 상고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조수와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 남녀의 성정 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를 ‘조선의 국풍’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주D-009]우리나라 남녀의 성정 : 원문은 ‘貊男濟婦之性情’인데, ‘貊男濟婦’의 정확한 뜻을 판단하기 어렵다. ‘貊男’은 고구려 남자, ‘濟婦’는 백제 여자를 가리킨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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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의 시가 현재의 시라고 비판 받다
자패【유득공(柳得恭)의 숙부인 우련(柳璉, 1741~1788)으로 자패(子珮)는 그의 자(字)이다. 문집으로 『낭환집(蜋丸集)』이 있다】가 말했다. “비루하구나! 무관이 시를 지음이여.
學古人而不見其似也.
옛 사람을 배웠다고 하나 비슷하지가 않구나.
曾毫髮之不類, 詎髣髴乎音聲?
일찍이 터럭과 털이 유사하지 않으니, 어찌 소리가 비슷하겠는가?
安野人之鄙鄙, 樂時俗之瑣瑣,
촌사람들의 거침을 편안히 여기고 당시 풍속의 자질구레함을 즐기니
乃今之詩也, 非古之詩也.”
이것은 지금의 시지, 옛날의 시가 아니다.”
지금이 옛날이 되고 같지 않음은 전범(典範)이 되리라
余聞而大喜曰:
내가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此可以觀.
“이것은 볼 만한 게 있다.
由古視今, 今誠卑矣.
옛날을 기준으로 지금을 보면 지금은 참으로 비루하다.
古人自視, 未必自古.
그러나 옛 사람이 스스로 봄에 스스로 옛 것일 필요는 없다.
當時觀者, 亦一今耳.
당시에 보는 것들이 또한 하나의 지금일 뿐이니 말이다.
故日月滔滔, 風謠屢變,
그러므로 해와 달은 도도히 바뀌고 노래는 자주 변하여
朝而飮酒者, 夕去其帷,
아침에 술 마시던 사람이 저녁이면 주막을 떠나니,
千秋萬世, 從此以古矣.
천추만세가 이로부터 옛날이 되었다.
然則今者對古之謂也,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것은 과거에 대칭적으로 말한 것이고,
似者方彼之辭也.
비슷하다는 것은 저것에 비교하여 말한 것이다.
夫云似也似也, 彼則彼也,
대체로 ‘비슷하다’고 말하면 비슷한 것이고, ‘저것이다’라고 하면 저것이지만,
方則非彼也, 吾未見其爲彼也
비교하면 저것이 아닌 게 되니, 나는 저것이 됨을 보지 못했다.
紙旣白矣, 墨不可以從白;
종이는 이미 희기에 먹은 흰 것을 따를 수 없고
像雖肖矣, 畵不可以爲語.
(그림으로 그려진) 형상이 비록 닮았더라도 그림이기에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영처고엔 어린아이의 진솔함이 담겨 있다
雩祀壇之下, 桃渚之衕, 靑甍而廟,
우사단(雩祀壇)아래 도저동에 푸른 대마루의 사당에
*【우사단(雩祀壇): 서울 남산 서편 기슭에 있었던 기우제 지내던 단(壇)이다. 사방이 40척이고, 구망(句芒), 축융(祝融), 후토(后土), 욕수(蓐收), 현명(玄冥), 후직(后稷)을 모셨다. 유월 상순에 제사를 드렸다. 남관왕묘(南關王廟)가 그 부근인 남대문 밖 도저동(桃渚洞)에 있었는데 선조(宣祖)때 명(明) 장수 진인(陳寅)이 세웠다고 한다】
貌之渥丹而鬚儼然, 關公也.
모습이 윤기 나고 붉은 수염을 단 근엄 있는 관우상이 있다.
士女患瘧, 納其牀下,
사녀(士女)【사녀(士女): 남자와 여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가 학질을 앓아 그 평상 아래에 들어가면
戄神褫魄, 遁寒祟也.
정신이 혼미해지고 넋이 나가 한기를 내쫓는 빌미가 되곤 한다.
孺子不嚴, 瀆冒威尊,
그런데 어린아이는 무서워하지 않고 위엄과 존중을 모독하여
爬瞳不瞬, 觸鼻不啑,
눈동자를 찔러대도 눈을 깜빡이지 않고 코를 후벼대도 기침하지 않는
塊然泥塑也.
한 덩어리 진흙 상(像)인 것이다.
由是觀之, 外舐水匏,
이로 말미암아 보면 수박의 겉핥기 하는 사람이나
全呑胡椒者, 不可與語味也;
후추 통째로 삼키기 한 사람과는 함께 맛에 대해 얘기할 수 없고,
羡鄰人之貂裘, 借衣於盛夏者,
이웃의 담비가죽옷을 부러워한 나머지 한 여름에 빌리는 사람과는
不可與語時也.
함께 시기적절함에 대해 말할 수 없다.
假像衣冠, 不足以欺孺子之眞率矣.
그러니 의관을 본떴더라도 어린아이의 진솔함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시의 풍속을 존중한 굴원과 진나를 계승한 한나라
夫愍時病俗者, 莫如屈原,
때를 가엾게 여기며 풍속을 안타까워한 사람으로는 굴원만한 이가 없는데
而楚俗尙鬼, 「九歌」是歌.
초나라 풍속에선 귀신을 숭상했기에 「구가(九歌)」에선 귀신을 노래했다.
*【구가(九歌): 굴원이 지은 초사(楚辭)의 편명. 태일신(太一神)인 동황태일(東皇太一), 구름신인 운중군(雲中君), 상수(湘水)의 신인 상군(湘君),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상부인(湘夫人) 등 귀신들을 노래한 11수로 되어 있다】
按秦之舊, 帝其土宇,
한나라는 진나라의 옛것들을 살펴 땅과 집에서 제왕이 되었고
都其城邑, 民其黔首,
성읍에서 도읍했으며, 그 백성들을 그대로 백성으로 삼았지만
三章之約, 不襲其法.
삼장(三章)의 간략함으로 진나라의 법을 답습하지 않았다.
*【삼장지약(三章之約): 한 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진 나라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한 뒤, 진의 가혹하고 번다한 법률 대신 삼장(三章), 즉 살인자는 죽이고 상해를 입힌 자와 도적은 처벌한다는 세 가지 법만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함】
덕무의 글은 어설프게 따라하지 않고 지금을 그려냈다
今懋官朝鮮人也.
이제 무관은 조선 사람이다.
山川風氣地異中華, 言語謠俗世非漢ㆍ唐.
산천과 풍기가 중국과 다르고 언어와 노래와 풍속이 한나라나 당나라가 아니다.
若乃效法於中華, 襲體於漢ㆍ唐,
그럼에도 만약 법은 중국을 본받고 문체는 한나라나 당나라를 답습했다면
則吾徒見其法益高而意實卑,
우리들은 그 법은 더욱 고상하되 내용은 실제로 비루해지고
軆益似而言益僞耳.
문체는 더욱 유사하되 말은 더욱 인위적임을 보게 될 뿐이다.
左海雖僻國, 亦千乘,
우리나라는 비록 구석에 있지만 나라는 또한 천승의 국가이고
羅ㆍ麗雖儉, 民多美俗,
신라와 고려가 비록 볼품없지만 백성에게는 아름다운 풍속이 많으니,
則字其方言, 韻其民謠,
사투리를 글로 적고 민요를 부르면
自然成章, 眞機發現.
자연히 문장이 만들어져 참된 천기가 발현된다.
不事沿襲, 無相假貸,
따라 답습하길 일삼지 않고 서로 빌려오지 않으며
從容現在, 卽事森羅,
조용히 현재를 따라 곧 삼라만상을 일삼으니
惟此詩爲然.
오직 이 시가 그러한 것이다.
지금을 담아냈기에, 이 책은 조선의 노래다
嗚呼! 三百之篇, 無非鳥獸草木之名,
아! 300편은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이 아닌 게 없었고
不過閭巷男女之語.
마을 남녀의 말에 지나지 않았다.
則邶ㆍ檜之間, 地不同風,
그러니 패땅과 회땅의 사이에서도 지리적으로 풍속이 같지 않고
江漢之上, 民各其俗.
양자강과 한수의 위에서도 백성들의 풍속이 제각각이었다.
故釆詩者以爲列國之風,
그러므로 시를 채집하는 사람들은 여러 나라의 노래로
攷其性情, 驗其謠俗也.
성정(性情)을 고찰했고 노래의 풍속을 징험했다.
復何疑乎此詩之不古耶.
그러니 다시 어찌 이 시가 옛 것이 아님을 의심하리오.
若使聖人者, 作於諸夏,
가령 성인에게 중국에서 일어나
而觀風於列國也, 攷諸嬰處之稿,
여러 나라의 풍속을 관찰하게 한다면 영처의 원고를 살펴보리니,
而三韓之鳥獸艸木, 多識其名矣,
삼한의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되고
貊男ㆍ濟婦之性情, 可以觀矣,
이북 사내와 제주 아낙의 성정을 볼 수 있으리니,
雖謂朝鮮之風可也. 『燕巖集』 卷之七
비록 ‘조선의 노래’라 말하더라도 괜찮으리라.
namu.wiki/w/%EC%9D%B4%EB%8D%95%EB%AC%B4
"남을 부를 때 ‘이놈, 저놈’ 또는 ‘이것, 저것’이라 하지 말라.
화가 난다 해서 '도적’이니 ‘개돼지’니 ‘원수’니,
또 거기에다 ‘죽일 놈’이라 욕하거나 ‘왜 안 죽니’라고도 하지 말라.
그가 아무리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말이다.이것이 교양인(선비)의 예절이다."
"남의 말을 들을 때 비록 내가 아는 것과 다르다 해도
내가 아는 것을 고집하여 핏대를 올리며 남을 꺾으려 들지 말라.
남의 연회에 참석했을 때도 음식이 시다느니 짜다느니 평하지 말라.
돌아와서 음식이 맛나지 않은 것을 흉보지 말라.
남의 집에 갔을 때 머리를 돌리고 눈알을 굴리며 사방 벽을 바삐 보거나 책을 마구 빼 보고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
이것이 교양인(선비)의 예절이다."
"요새 사람들이 온종일 모여서 지껄이는 말이 농담, 바둑이나 장기 이야기, 여색 이야기, 술과 음식 이야기,
아니면 벼슬에 관한 이야기나 가문의 자랑에 대한 것에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 역시 민망스럽다.
이런 말을 즐겨하는 사람들이 남과 더불어 학문을 논하는 것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상추를 싸 먹을 때 직접 손을 대서 싸 먹어서는 안된다.
너무 크게 싸서 입안이 다 보이게 벌리고 먹는 것은 상스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사소절(士小節)」, 사전(士典)」
ko.wikipedia.org/wiki/%EC%9D%B4%EB%8D%95%EB%AC%B4
저서
- 《관독일기》(觀讀日記)
- 《기년아람》(紀年兒覽) : 이만운과 공저
- 《뇌뢰낙락서》(磊磊落落書)
- 《사소절》(士小節)
- 《앙엽기》(盎葉記)
- 《열상방언》(洌上方言)
- 《영처문고》
- 《영처시고》
- 《예기고》(禮記考)
- 《이목구심서》
- 《입연기(入燕記)》
- 《천애지기서》(天涯知己書)
- 《청비록》(淸脾錄)
- 《편찬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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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주기》(峽舟記)
- 《건연집》 :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와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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