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귤당기(蟬橘堂記) -박지원
-종북소선(鍾北小選), 연암집 제 7 권 별집
[은자주]조선시대에 불경은 유학자에게 금서였다. 과거답안지에 불경의 문자가 나오면 몇 년씩 응시를 제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암은 이 記의 대부분을 불경의 언어로 채웠다. 이덕무가 호를 영처라 한 것은 북학파의 공통적 문학관인 동심설에 근거한 것이다.
연암의 글에 어린아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고정관념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실정을 표현하라는 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동심설의 뿌리는중국 명말청초 이지의 동심설에 근원한 것으로 원굉도 등 공안파들이 이를 수용하였다. 이지는 수호지 등 구어소설의 우수성을 주장하엿고 그의 글은 당시 금서에 묶였다.
영처자(嬰處子 이덕무(李德懋))가 당(堂)을 짓고서 그 이름을 선귤당(蟬橘堂)이라고 하였다. 그의 벗 중에 한 사람이 이렇게 비웃었다.
옛날에
이 부처 앞에서 참회를 하고 불법을 닦겠다고 크게 맹세를 하면서 속명(俗名)을 버리고 법호(法號)를 따를 것을 원하니, 대사(大師)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열경더러 이렇게 말을 했네.
이덕무는 젊은 시절에 삼호거사(三湖居士) · 경재(敬齋) · 팔분당(八分堂) · 선귤헌(蟬橘軒) · 정암(亭巖) · 을엄(乙广) · 형암(炯菴) · 영처(嬰處) · 감감자(憨憨子) · 범재거사(汎齋居士) 등의 호를 지녔다. 《靑莊館全書 卷3 嬰處文稿1 記號》 그 밖에 청음관(靑飮館) · 탑좌인(塔左人) · 재래도인(䏁睞道人) · 매탕(槑宕) · 단좌헌(端坐軒) · 주충어재(注蟲魚齋) · 학초목당(學草木堂) · 향초원(香草園) 등의 호가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호는 청장관(靑莊館)과 아정(雅亭)이다.
김시습(金時習)의 자이다. 김시습 역시 청한자(淸寒子) · 동봉(東峯) · 매월당(梅月堂) · 벽산청은(碧山淸隱) · 췌세옹(贅世翁) 등 호가 많았다.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심하도다, 너의 미혹됨이여. 너는 아직도 이름을 좋아하는구나. 중이란 육체가 마른 나무와 같으니 목비구(木比丘)라 부르고 마음이 식은 재와 같으니
라 부르려무나. 산이 높고 물이 깊은 이곳에서 이름은 있어 어디에 쓰겠느냐. 너는 네 육체를 돌아보아라. 이름이 어디에 붙어 있느냐? 너에게 육체가 있기에 그림자가 있다지만, 이름은 본래 그림자조차 없는 것이니 장차 무엇을 버리려 한단 말이냐? 네가 정수리를 만져 머리카락이 잡히니까 빗으로 빗은 것이지, 머리카락을 깎아 버린 이상 빗은 있어 무엇하겠느냐.
[주D-003]회두타(灰頭陀) : 두타(頭陀)는 범어(梵語)의 음역(音譯)으로 행각승(行脚僧)을 말한다.
네가 장차 이름을 버리려고 한다지만, 이름은 옥이나 비단도 아니요 땅이나 집도 아니며, 금이나 주옥이나 돈도 아니요 밥이나 곡물도 아니며, 밥솥이나 가마솥도 아니요 큰 가마나 큰솥도 아니며, 광주리도 술잔도 아니요 곡식 담는 각종 제기(祭器)도 고기 담는 제기도 아니다. 차고 다니는 주머니나 칼이나 향낭(香囊)처럼 풀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비단 관복이나 학(鶴)을 수놓은 흉배(胸背), 서대(犀帶)나
처럼 벗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양쪽 끝에 원앙(鴛鴦)을 수놓은 베개나 술이 달린 비단 장막처럼 남에게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때나 먼지처럼 물로 씻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물까마귀 깃으로 토해 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부스럼이나 마른 딱지처럼 손톱으로 떼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D-004]어과(魚果) : 과(果)는 신표(信標)라는 뜻이다. 물고기 모양을 나무에 새기거나 구리로 빚어 허리띠에 차던 관리의 신표를 말한다. 어부(魚符) 또는 어패(魚佩)라고도 하였다.
그것이 네 이름이기는 하지만 너의 몸에 속한 것이 아니라 남의 입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남이 부르기에 따라 좋게도 나쁘게도 되고 영광스럽게도 치욕스럽게도 되며 귀하게도 천하게도 되니, 그로 인해 기쁨과 증오의 감정이 멋대로 생겨난다. 기쁨과 증오의 감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유혹을 받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공포에 떨기까지 한다. 이빨과 입술은 네 몸에 붙어 있는 것이지만 씹고 뱉는 것은 남에게 달려 있는 셈이니, 네 몸에 언제쯤 네 이름이 돌아올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저 바람 소리에 비유해 보자. 바람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인데 나무에 부딪침으로써 소리를 내게 되고 도리어 나무를 흔들어 댄다. 너는 일어나 나무를 살펴보아라. 나무가 가만히 있을 때 바람이 어디에 있더냐? 너의 몸에는 본시 이름이 없었으나
네 몸을 칭칭 감아 너를 겁박하고 억류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주D-005]몸이 …… 생겨서 : 원문은 ‘卽有是事 廼有是名’으로 되어 있으나 이본에 ‘卽有身故 乃有是名’으로 되어 있어 이본에 따라 번역하였다.
또 저 울리는 종에 비유해 보자. 북채를 멈추어도 그 소리는 울려 퍼진다. 그렇듯이 사람의 몸이 백 번 죽어도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것은 실체가 없으므로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이는 마치 매미의 허물이나 귤의 껍질과 같아서, 껍질이나 허물과 같은 외물에서 매미 소리를 찾거나 귤 향기를 맡으려 한다면 이는 껍질이나 허물이 저처럼 텅 비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처음 태어나서 강보(襁褓)에서 응애응애 울 때에는 이러한 이름이 없었다. 부모가 아끼고 기뻐하여 상서로운 글자를 골라 이름을 지어 주고,
이 모든 게 다 네가 잘 되기를 축원한 것이다. 너는 이때만 해도 부모에 딸린 몸이어서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성장하고 나서야 네 몸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고 ‘나’를 입신(立身)하고 나서는 ‘그’가 없을 수 없으니, ‘그’가 ‘나’에게 와서 짝이 되어 마침내 한 쌍이 되었다.
자녀를 두니
둘씩 짝을 이루는 것이 마치 《주역》의 팔괘와 같았다.
[주D-006]다시 …… 주었으니 : 유아 사망률이 높던 당시에 귀신이 데려가지 말라고 일부러 ‘개똥이’와 같은 천한 이름을 지어 불렀던 풍습을 말한다.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 혼의(昏義)에 “혼례란 장차 두 성씨가 잘 만나는 것〔婚禮者 將合二姓之好〕”이라 하였다.
자녀들이 차례로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팔괘가 음효(陰爻)와 양효(陽爻)의 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유하였다. 이 구절이 ‘卽成四身’으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들과 딸을 두어 네 몸이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하여
거추장스럽게 되어 무거워 다닐 수가 없게 된다. 비록 명산(名山)이 있어 좋은 물에서 놀고 싶어도
슬퍼하고 근심하게 되며, 사이좋은 친구들이 술상을 차려 부르면서 이 좋은 날을 즐기자고 말을 해도 부채를 들고 문을 나서다 도로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차마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주D-009]몸이 …… 보니 : 원문은 ‘身之旣多’인데, ‘몸이 이미 넷이다 보니〔身之旣四〕’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원문은 ‘爲此艮兌’인데, 간괘(艮卦)는 그침〔止〕을 상징하고, 태괘(兌卦)는 즐거움〔說〕을 상징한다. 이 구절이 ‘이 네 몸 때문에〔爲此四身〕’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원문은 ‘爲此卦身’인데, ‘이 네 몸을 생각하여〔爲此四身〕’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네 몸이 얽매이고 구속을 받는 것은
이는 네 이름과 마찬가지여서, 어려서는 아명(兒名)이 있고 자라서는 관명(冠名)이 있으며, 덕(德)을 나타내기 위해 자(字)를 짓고 사는 곳에 호(號)를 짓는다. 어진 덕이 있으면 선생(先生)이란 호칭을 덧붙인다. 살아서는 높은 관작(官爵)으로 부르고 죽어서는 아름다운 시호(諡號)로 부른다. 이름이 이미 여럿이라 이처럼 무거우니 네 몸이 장차 그 이름을 감당해 낼지 모르겠다.’
[주D-012]몸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 원문은 ‘以多身故’인데, ‘몸이 넷이기 때문이다〔以四身故〕’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이는
에 나온 이야기일세. 열경(悅卿)은 은자(隱者)로서 이름이 아주 많아
때문에 대사(大師)가 이로써 경계한 것이네.
[주D-013]《대각무경(大覺無經)》 : 허구로 지어낸 불경 이름이다.
김시습은 다섯 살 적에 세종 앞에서 시를 지어 명성을 떨쳤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오세(五歲)’라고 불렀다고 한다. 《梅月堂先生傳》 오세암(五歲菴)도 그의 당호(堂號)라는 설이 있다.
갓난아기는 이름이 없으므로 영아(嬰兒)라 부르고 시집가지 않은 여자를 처자(處子)라고 하지. 따라서 영처(嬰處)라는 호는 대개 은사(隱士)가 이름을 두고 싶지 않을 때 쓴다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선귤(蟬橘)로써 자호(自號)를 하였으니 자네는 앞으로 그 이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일세. 왜냐하면 영아는 지극히 약한 것이고 처녀란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어서, 사람들이 자네의 유약함을 보고는 여전히 이 호로써 부를 것이요, 매미 소리가 들리고 귤 향기까지 난다면 자네의 당(堂)은 앞으로 시장처럼 사람이 모이게 될 걸세.”이에 영처자(嬰處子)가 말하기를,“대사가 한 말과 같이, 매미가 허물을 벗어 그 허물이 말라붙고 귤이 시들어서 그 껍질이 텅 비어 버렸는데 어디에 소리와 빛과 내음과 맛이 있겠소? 이미 좋아할 만한 소리와 빛과 내음과 맛이 없는데 사람들이 장차 껍질이나 허물과 같은 외물에서 나를 찾겠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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