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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서
글을 써서 교훈을 남기되 신명(神明)의 경지를 통하고 사물(事物)의 자연법칙을 꿰뚫은 것으로서 《역경(易經)》과 《춘추(春秋)》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을 것이다. 《역경》은 미묘하고 《춘추》는 드러내었으니, 미묘란 주로 진리를 논한 것으로서, 그것이 흘러서는 우언(寓言)이 되는 것이요, 드러냄이란 주로 사건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것이 변해서 외전(外傳)이 이룩되는 것이다.
[주C-001]열하일기 서(熱河日記序) : 다른 여러 본에는 모두 이 서(序)가 보이지 않고, 다만 최근에 발견된 ‘연암산방본(燕巖山房本)’에 실려 있으므로 이에 추가하였다.
[주D-001]우언(寓言) : 말이나 글에 실제가 아닌 뜻을 의탁한 것이니, 장주(莊周)의 《남화경(南華經)》 중에 우언편(寓言篇)이 있다.
[주D-002]외전(外傳) : 정사(正史)에 싣지 않은 전기를 내전(內傳)과 구별하기 위한 서술이니, 《방경각외전(放瓊閣外傳)》이 이에 해당한다.
저서(著書)하는 데는 이러한 두 갈래의 방법이 있을 뿐이다. 내 일찍이 시험삼아 논하여 보았노라. 《역경》의 육십사괘(六十四卦) 중에서 언급한 물건으로서 용이니, 말이니, 사슴이니, 돼지니, 소니, 양이니, 범이니, 여우니, 또는 쥐니, 꿩이니, 독수리니, 거북이니, 붕어니 하는 것들이 모두 다 참으로 있었던 물건이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하진 못할 것이다. 또 인간에 있어서는 저 웃는 자, 우는 자, 부르짖는 자, 노래부르는 자나, 또는 눈먼 자, 발저는 자, 엉덩이에 살이 없는 자, 그 척추의 고기가 벌어진 자 들을 언급하였는데, 그런 인간이 참으로 있었다고 생각되는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초(蓍草)를 뽑아서 괘(卦)를 벌이면, 그 참된 상(象)이 곧 나타나고 길흉(吉凶)과 회린(悔吝)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주D-003]시초(蓍草) : 괘(卦)를 뽑는 데 쓰는 영초(靈草).
[주D-004]회린(悔吝) : 회(悔)는 괘(卦)의 상체(上體)요, 린(吝)은 인색(吝嗇)함이니, 곤괘(坤卦)에서 나타난 효상(爻象)의 하나.
미묘한 곳으로부터 드러내는 경지로 지향하는 까닭이었으니, 우언(寓言)을 쓰는 이가 이러한 방법을 쓴 것이다. 《춘추》중에 기록된 2백 42년 사이의 일에는, 온갖 제사와 수렵(狩獵)과 조회와 회합과 정벌(征伐)과 침입이, 실로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좌구명(左丘明)ㆍ공양고(公羊高)ㆍ곡량적(穀梁赤)ㆍ추덕보(鄒德溥)ㆍ협씨(夾氏) 등의 전(傳)이 제각기 같지 않을 뿐더러, 이를 논하는 자들이 남이 반박하면 나는 지키기로 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주D-005]좌구명(左丘明) : 춘추 때 노(魯)의 태사(太史). 《춘추전(春秋傳)》을 지었다.
[주D-006]공양고(公羊高) : 춘추 때 자하(子夏)의 제자. 역시 《춘추전》을 지었다.
[주D-007]곡량적(穀梁赤) : 역시 자하의 제자로서 《춘추전》을 지었다.
[주D-008]추덕보(鄒德溥) : 명(明)의 학자. 덕함(德涵)의 아우. 《춘추광해(春秋匡解)》를 지었다.
이는 드러난 곳에서부터 미묘한 곳으로 드는 까닭이었으니, 외전(外傳)을 쓰는 이가 이러한 방법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옛 기록에, “장주(莊周)가 저서에 능하다.”고 일렀던 것이다. 장주의 저서 중에 나타난 제왕(帝王)과 성현(聖賢)이나, 임금과 정승, 처사(處士)와 변객(辯客) 들에 대한 일도, 더러는 정사(正史)에서 빠뜨린 일을 보충할 수 없지 않을 것이다. 장(匠) 석(石)이나 윤(輪) 편(扁)이 반드시 그 사람이 있었을 것이며, 심지어는 부묵자(副墨子)니 낙송손(洛誦孫)이니 하는 자는 어떤 인물들이었던가.
[주D-009]장주(莊周) : 춘추 시대의 철학가(哲學家). 저서에는 《남화경(南華經)》이 있다.
[주D-010]장(匠) 석(石) : 옛 장인(匠人). 석(石)은 그의 이름.
[주D-011]윤(輪) 편(扁) : 옛 수레바퀴를 만드는 공인. 편(扁)은 그의 이름.
[주D-012]부묵자(副墨子)니……하는 자 : 문자(文字)에 대한 의인칭(擬人稱)이니, 《남화경》 대종사(大宗師)에, “나는 부묵자에게 들었고, 부묵자는 또 낙송손(洛誦孫)에게 들었노라.” 하였다. 낙송은 반복(反復)하여 외는 것을 이름이니, 역시 의인칭이다.
또 망량(罔兩 물귀신)이니 하백(河伯 물귀신)이니 하는 귀신이 과연 말할 수 있는 존재였던가. 외전이라면 참과 거짓이 서로 섞여 있겠고, 우언이라 하더라도 미묘함과 드러냄이 잇따라 변해지곤 하여, 사람으로서는 그 원인을 측량할 수 없으므로 이를 조궤(弔詭 궤변(詭辯))라 불러 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학설을 결국 폐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리에 대한 논평을 잘 전개하였기 때문이니, 그를 저서가(著書家)로서의 웅(雄)이 아니라 이르진 못할 것이다. 이제 대체로 연암씨(燕巖氏)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알지 못하겠다. 그 어떠한 글이었던고. 저 요동(遼東) 들을 건너서 유관(渝關)으로 들어 황금대(黃金臺) 옛 터에 서성이고, 밀운성(密雲城 하북성에 있다)으로부터 고북구(古北口)를 나서 난수(灤水) 가[邊]와 백단(白檀 밀운성의 현(縣))의 북녘을 마음껏 구경하였는바 진실로 그런 땅이 있었으며, 또 그 나라의 석학(碩學)ㆍ운사(韻士)와 함께 교제하였는바 진실로 그런 인물이 있었으며, 사이(四夷)가 모두 이상한 모양과 기괴한 옷에 칼도 머금고 불도 마시며, 황교(黃敎) 반선(班禪)의 난쟁이가 비록 괴이한 듯하지마는 그가 반드시 망량이나 하백은 아닐 것이요, 진귀한 새나 기이한 짐승, 아름다운 꽃이나 이상한 나무의 그 정태(情態)를 곡진히 묘사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어찌 일찍이 그 등마루의 길이가 천 리라느니, 그 나이가 8천 세라느니 하는 따위가 있었단 말인가.
[주D-013]연암씨(燕巖氏) : 저자 연암을 일컫는 말.
[주D-014]유관(渝關) : 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지명.
[주D-015]황금대(黃金臺) : 하북성(河北省)에 있는데, 춘추 시대 연 소왕(燕昭王)이 세웠다.
[주D-016]고북구(古北口) : 하북성에 있는 관(關) 이름. 곧 호북구(虎北口).
[주D-017]난수(灤水) : 찰합이(察哈爾)에서 발원하여 열하성(熱河省)을 거쳐 발해(渤海)로 들어간다.
[주D-018]사이(四夷) :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동이(東夷)ㆍ남만(南蠻)ㆍ서융(西戎)ㆍ북적(北狄)을 말한다.
[주D-019]황교(黃敎) : 서장(西藏) 라마교(喇嘛敎)의 한 파. 그 교의 중들이 누른 빛깔의 옷을 입었으므로 이름하였다.
[주D-020]반선(班禪) : 황교 즉 라마교의 교주(敎主). 반(班)은 박학(博學)이요, 선(禪)은 광대(廣大)의 뜻을 가졌다.
[주D-021]그……천 리라느니 : 《남화경》에 새 위나 대붕(大鵬)의 등마루가 천 리나 된다 하였다.
[주D-022]그……8천 세라느니 : 《남화경》에 이른바 영춘(靈椿)이 8천 년을 묵었다 하였다.
나는 이에서 비로소 장주의 외전에는 참됨도 있고 거짓됨도 없음이 아닌 반면, 연암씨의 외전에는 참됨은 있으나 거짓됨이 없음을 알았노라. 그리하여 이에는 실로 우언을 겸해서 이치를 논함에 돌아가게 되었으니, 이는 마치 패자(覇者)에 비한다면, 진 문공(晉文公)은 허황하고 제 환공(齊桓公)은 올바르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하물며 그 이치를 논함에 있어서도, 어찌 황홀히 헛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에 그쳤을 뿐이겠는가. 그리고 풍속이나 관습이 치란(治亂)에 관계되고, 성곽(城郭)이나 건물, 경목(耕牧)이나 도야(陶冶)의 일체 이용(利用)ㆍ후생(厚生)의 방법이 모두 그 가운데 들어 있어야만, 비로소 글을 써서 교훈을 남기려는 원리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리라.
[주D-023]진 문공(晉文公) : 춘추 시대 진의 임금. 문공은 시호요, 이름은 중이(重耳)니, 당시 오패(五覇)의 하나.
[주D-024]제 환공(齊桓公) : 춘추 시대 제의 임금. 환공은 시호요, 이름은 소백(小白)이니, 역시 오패의 하나.
[주D-025]이용(利用)ㆍ후생(厚生) : 정덕(正德)과 함께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서 이른바 삼사(三事)가 된다. 산업을 잘 다스려서 민생의 일용에 이롭게 하며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모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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