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바람 속에서


-
홍신선


너와 나에게 젊음은 무엇이었는가


수시로 입 안 말라붙던 갈한 욕망은 무엇이었는가


아직도 눈먼 황소들로 몰려와서는 노략질하는 것,

잣대기다 무릎 꿇고 넘어지는 것, 나둥그러지기도 하는 것,


낡은 집 고향의 쓸쓸한 토방에서 내다보는 황사 바람이여


오늘은 너의 자갈 갈리는 목쉰 사투리들이 유난히 거칠다


깨진 벽틈 속 실낱의 좀날개바퀴 울음은 들리지 않는다


그 소리들은 외침들은 왜 그리 미미한가


쥐오줌 얼룩든 천정 반자들이 무안한 듯 과거로 내밀려 앉아 있다


너는 삭막한 하늘 안팎을 뉘우침처럼 갈팡질팡 들락이는데...



척추 디스크를 앓는 아내와


지방에 내려간 자식은


멀리 네 옷깃에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씨앗에서 막 발 뺀 벽오동나무의 발뿌리에다 거름 똥 채워주고


연탄재 버리고 깊은 낮잠 한 잎.


내일 모레쯤


살속에 밤톨만한 멍울을 감춘 박태기나무들이


종기 짜듯 화농한 꽃들을 붉게 짜낼 것이다.


나이 늘어 심은 어린 나무들이 한결 처연하다.


낙발처럼 날리는 센 햇살 몇올, 저녁 해가 폐광처럼 비어 있다



운명은 결코 뛰쳐나갈 수 없다는 것


장대높이뛰기로도 시대의 담벽은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그렇게 생각 안채로 들여보내고 하루를 네 귀 맞춰 개어 깔고


무심히 흑백 TV의 풀온을 당기면 떠오르는 화면,


꼿발 딛고 아득히 넘겨다보는

흐린 화면 너머의 더 흐린 화면 그 곳엔 무엇이 있었는가


황사 바람이여 지난 시절 그 4.19 5.16 5.17 속에


누가 장대높이뛰기를 하였는가


나는 어디에 고개 묻고 있었는가


비닐 씌운 두둑에 고추모 옮겨 심고 멍석딸기꽃 밑에 마른 짚 깔기


젖먹이 기저귀 갈아주듯 깔아주며


언젠가 풋딸기들이 뾰족한 궁둥이로 편히 주저앉을 것을 생각하는


나날의 이 도와 궁행은 얼마나 사소한가 거대한가


풀먹여 새옷 입듯이


마음 벗고 껴입는.

[도라지 & 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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