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988년 내가 처음 출간했던 책의 표지입니다. 1993년 작품 및 관련 자료를 얹어 증보판을 출간하였습니다.
[주]중학동기 한 분이 동기들 홈피에 <호질>을 소개한 글이 있어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원섭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원섭님의 탐구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열하일기> 25권은 조선후기에 쓴 책 중 베스트셀러에 속합니다.
내용면에서도 박제가의 <북학의>와 함께 당대 양반관료지식인 그룹이 몰두하던 성리학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로 개설과 수레의 제작, 해외무역 등을 통한 물류의 유통, 수로(水路)와 수차(水車)의 개발 등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한 북학파의 주장을 대변합니다. 조선 후기 지성의 압권이라 할 만합니다.
북한의 <조선문학사>에도 이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호질’이란 제목은 없고, <범의 꾸중>이라고 제목을 번역하여 실었습니다.
아래에 <호질>의 이해를 위한 자료 주소창을 소개하고 ‘연구요약’을 옮겨 봅니다.
‘연구요약’의 주소창을 클릭한 내용입니다.
원문 & 번역 대역
http://blog.naver.com/osj1952/100024984969
완역[주석과 함께 읽을 것]
http://cafe.naver.com/komup/29
연구요약
http://cafe.naver.com/muzasicsangpalza/61
1. 호질(虎叱)의 구성
<호질문>은 <열하일기> 「관내정사」 7월 28일자에 실려있는데, 이 <호질문>은 단일 액자 서사 문학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작품 출처에 대한 진술로 도입 부분이고
둘째, 작품 <호질> 부분이고
셋째, 후지 부분이다.
이처럼 <호질문>은 액자 소설의 성격이 있다. 액자 소설의 형태는 자기 의식 고백의 주관적 자아와 허구적인 서사적 자아 사이에서 망설이는 작가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형태로서, 작가가 씩씩하게 현실의 한복판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우리가 <호질문>을 읽을 때, 소설에서 중시하는 등장 인물의 형상화나 배경에 대한 세부 묘사, 교묘한 사건 구성 등은 대화 내용을 부각시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배려에 그칠 따름으로, 작자의 분신인 작중화자가 개진하는 도도한 변론과 그 논리성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호질>에서 우연의 묘미는 역설적인 논리와 온갖 고사를 동원하여 북곽선생을 질타하는 범의 도도한 웅변 그 자체에 있다. 범이 인의 도덕을 표방하면서도 불의를 자행하는 유자를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2. 호질을 얻은 경위
호질을 얻은 경위는 (1)과 (2)에 나타나 있는데, 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호질>은 박지원이 산해관에서 연경으로 가는 도중 옥전현이란 곳에서 묵게 되었을 때 심유붕이라는 소주인의 점포 벽상의 절세기문의 격자를 발견하고 동행한 정진사란 인물과 함게 베겨온 글이다.그 베낀 동기는 국내에 돌아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읽혀 배를 움켜잡고 한바탕 웃게 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이글을 베낄 때 정진사는 중간부터,자신은 처음부터 베꼈는데 숙소에 돌아와 살펴보았더니 정진사가 베낀 부분에 잘못 쓴 글자와 빠뜨린 자구가 무수히 많아 도무지 문맥이 통하지 않아 대략 자신의 뜻으로 얽어서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었다.그리고 <호질>은 원래 작자 성명과 제목이 없었는데,아마 근세 화인이 비분하여 지은 것일 것이며, 글 중의 <호질> 두 글자를 뽑아 제목을 삼았다.
3. 우언(寓言)과 패로디
<호질>은 소설의 성격 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특징이 많이 나타나는데,이는 우언과 패로디의 관점으로 접근할 때 온당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언(寓言)은 상대방을 더욱 잘 설득하기 위해 자기 견해를 직접 주장하는 대신 허구적인 이야기를 빌어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글을 가리킨다. 이 우의는 비판이 금지된 대상을 비판할 때 큰 구실을 한다.
패로디는 유명한 작품, 문장, 고사, 사건, 인물 등을 넌지시 빌어와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이 패로디는 과거의 전통을 가치의 한 근원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의미의 이중화를 통한 새로움 가치의 추구에서 둘의 조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호질>에선 『시경』 『주역』 『예기』 『맹자』 『대학』 같은 유가(儒家) 경전 중의 유명한 명구를 대거 패로디하여 다름아닌 유자(儒者)를 풍자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1> 원전의 알레고리
박지원은 심유붕의 점포에 걸린 격자문을 두고 근세 중국인(華人)이 비분함을 참지 못해서 지었으리라고 하였으니,<호질>의 원문의 내용이 우언의 형식을 빌어 청조 중국의 현실을 풍자한 작품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면 <호질>의 어느 내용이 반청적인 불온한 것일까.
작중 배경은 춘추 시대에 풍속이 음란했던 것으로 소문난 정(鄭)나라로 설정되어 있고,등장 인물들의 성도 북곽이니 동리니 하는 고대 중국의 복성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漢人들의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청조의 가차없는 탄압을 의식해서 이러한 작중 배경과 인물을 설정한 것이지,실제로 청조 치하의 중국 현실을 풍자하고자 한 것이다.
작품의 초두에서 범을 소개하며 "예성문무 자효지인 웅용장맹(睿聖文武 慈孝智仁 雄勇壯猛)"이라 예찬한 문구는 황제에게 바치는 존호를 익살맞게모방한 패러디로 범이 포악한 만주 황제를 상징하고 있음을 암시한다.이 점에 관해 성현경은 '虎者 胡也'로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이 밖에 창귀 육혼의 제안에 대해 범이 "짐이 이를 좀더 소상히 듣고자 한다."라 말한 대목도 범이 황제를 상징하고 있음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 한편 천하무적이라는 범에게도 그를 잡아먹는 비위,죽우 등 갖가지 맹수들이 있다고 한 것은 천하 막강의 대청 황제도 강성한 주변 민족들의 발호를 두려워하여 몽고의 추장들이나 티베트의 판첸 라마를 극진히 대우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을 암암리에 풍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북곽선생은 '손수 교열한 책만도 만 권이요,九經을 해설한 저서는 만오천 권'이나 된다는 위선적인 학자로,이는 '고증학풍에 매몰되어 만족 통치의 현실에 안주하는 한족 선비'를 형상화한 것이다. 만주족 지배하에 곡학아세로 자신을 적응시켜가는 중국인사들의 비열상을 풍자한 것이니,말하자면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 자신의 고발이요 성토인 것이다.
아울러 소문난 절부임에도 실은 姓이 다른 자식을 다섯이나 둔 동리자는 천저가 가짜 절부인 음녀 동리자에게 정문까지 세워주며 표창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청조의 위선적인 예치주의를 풍자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중원은 장악한 청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방편으로 前明의 충신들을 표창하고 효자와 노인에게 특전을 베푸는 등 유교식의 예치를 강화해 왔다.
박지원은 <호질>의 후지에서 당시의 중국사를 '기나긴 밤'의 시대요 '夷狄의 禍가 맹수보다 더 심한'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그리고 그는 이러한 시대에도 문장으로 출세를 꾀하는 선비들에 대해 '맹수조차도 잡아먹고 싶어하지 않을' 추악한 존재로 매도하는 한편,청조는 漢族에게 胡俗을 강요하는 무리한 강권통치로 인해 언젠가는 타도되고 말 것임을 예언하면서 '중국이 맑아질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 후지를 통해서 원전 <호질>의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 개작(박지원)의 알레고리
지금 전하고 있는 박지원 개작 <호질>은 <호질> 원작의 패로디의 성격이 있다. 연암이 <호질> 원작을 주목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반청적인 내용 때문이겠지만, 이와 함께 일찍부터 조선 선비 사회의 풍조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품고 있던 연암으로서는 <호질> 원작 중의 통렬한 유자(儒者) 비판에 대해서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비록 조선 현실을 맞대놓고 풍자한 작품이 아니지만,원전의 우의로서 읽을 때 어떤 점이 당시 조선의 시대적 상황에 일치하는가. 기존의 <호질>원전을 개작하여 새로운 주제가 덧붙여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 다시 말해 <호질> 원전의 우언(寓言)이 거듭 우언화되어 '우언의 우언'으로 되고 있는 부분은 어디인가. <호질>에서 읽을 수 있는 조선적 성격은 무엇일까.이는 박지원이 원작을 부연 개작하는 과정에서 첨가된 대목에 잘 드러나 있을 것이다. 박지원의 입김을 강하게 받은 대목을 찾아보자.
박지원이 어느 부분을 개작하였는지 명백하게 가리기는 어렵지만,가필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범도 상주는 잡아먹지 않는다.'는 조선 속담을 차용한 구절이라든가, '의(醫)'란 곧 의심스러울 '의(疑)'요,'무(巫)'는 속일 '무(誣)'이며,'유(儒)'란 아첨할 '유(諛)'라는 조선식 한자음에 따른 것도 연암의 가필일 가능성이 많다. (유(儒)와 유(諛)는 중국어로는 각각 '르우'와 '위'로 발음되므로, 醫와 疑, 巫와 誣 같은 정확한 동음이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범이 '오행정립(五行定立) 미시상생(未始相生)'하면서 전래의 오행상생설을 비판하거나 인성과 물성의 동일을 주장하는 대목은 분명히 박지원의 손길이 미친 곳이니,이 의견들은 박지원의 평소 신론이기 때문이다.
[은자주]이 부분은 일기 내용을 사실로 인정한 경우이고 골동품 가게에는 이 천하의 기이한 문장은 아예 없었거나 간략했을 것이라는 것이 김택영의 주장인데 나는 이 견해를 지지한다. 김택영은 중국에서 연암 선생 사후 105년 만인 1910년에 <연암집>을 간행하며 발문에서 이 점을 밝혔다.그의 손자 박규수는 문집을 출간했지만 연암선생은 강렬한 비판의식을 담은, 양반관료지배계층을 공격하는 반체제적가치관 때문에 문집이 간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흰것을 가지고 검다고 말하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나의 성벽도 상당 부분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탐닉하여 발분(發憤)의 문학정신을 정립한 연암선생에게서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인다.연암 선생의 글은 1900년에 김만식이라는 분이 간행한 것이 있으나 필자는 진본을 본 적이 없고, 지금 도서관 등에 전하는 것은1932년 박영철이 납활자로 찍은 <연암집>이다. 연암문집은 조선시대에는 필사로 전해오던 금서였다.
4. <호질>의 기본구조
<호질>의 기본 구조는 사람을 잡아먹는 범이 위선적인 대학자 북곽선생을 논변으로 압도시키는 것이다. <호질>의 중심은 의인화된 범과 가공적인 인물 북곽선생 사이의 대화에 있다. 작가는 표면에 나서지 않고 범을 풍자의 주체로 내세우고 있다.
이 작품은 시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서술자가 사건에 참여하지 않지만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는 객관적인 삼인칭 서술자에 의해서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양반의 허위의식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서술자에 의해서 서술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작품에서 서술자와 가장 가까운 견해를 가진 인물은 범이라고 하겠다. 범을 연암 자신이라 할 때 서두 부분에 표현된 범을 잡아 먹을 수 있는 많은 상상적인 동물들은 연암 자신에 내재해 있는 모순이나 도덕적 결함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연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은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당시 사회에서 권력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권력자들과 같은 부류인 위선적인 도학자들에게는 과감하게 질책을 가할 수 잇는 연암 자신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호질>은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범의 앞장을 서서 먹이감을 찾아준다는 악귀들이 범과 문답을 나누는 대목, 동리자와 밀회 중이던 북곽 선생이 그녀의 자식들에게 들켜 도망치다가 두엄 웅덩이에 빠지는 대목, 그리고 범의 꾸짖음이 나타난 대목이다.
이 중 범의 꾸짖음이 소설 전체 분량 가운데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 소설의 중심 사상은 범의 꾸짖음에 드러나 있다고 할 것이다. 범이 북곽선생을 앞에 두고 꾸짖는 요지는 대충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선비라는 것이 아부, 아첨을 잘 한다.
2) 천하에 이치는 하나다.
3) 인륜 도덕을 세워서 권장하지마는, 인간의 나븐 짓은 막을 길이 없다.
4) 理를 논하고 性을 이야기하지만, 벌꿀·젖·누에·옷을 빼앗고는 마침내 저희들끼리 잡아먹고
5) 전쟁을 일으켜서 서로 잡아 먹고, 전쟁 기구를 자꾸만 만들어 낸다.
5. <호질>의 해학성 - 상대주의적 인식론에 의거한 풍자적 수법
범은 유가적·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간 이외의 사물을 보는 더욱 높은 차원의 관점에 서서 유자의 위선을 풍자하고 있다.
전형적인 유가적 발상으로는 인간의 특권적인 우위를 전제하고 인간 이외의 모든 사물을 이와 대립시키는데, 연암은 만물을 차별성보다는 동일성의 차원에서 인식하려는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릇 천하의 理는 하나이니 虎가 실로 악하다면 인성도 악할 것이요,인성이 선하다면 호성도 선하다"든가 "天이 명한 바로 보자면 虎와 人은 똑깥은 一物이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인물성 동일론은 인간과 금수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차등을 인정하지 않는 만인평등론으로 발전할 수 잇는 단초이다. 따라서 범의 질책은 조선 양반사회의 불평등 관계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은자주]조선후기사회의 사상사적 쟁점은 인물성상동론(人物性上同論)과 인물성상이론(人物性上異論)의 대립이었다. 이는 호락(湖洛)논쟁으로 지역적 특성을 지니는데, 범의 주장을 연암 박지원의 생각으로 본다면 인간과 범의 성품이 같다는 낙론(洛論)의 인물성상동론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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