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 입구에서 2.5km쯤 나오는 길 왼쪽에 허브농원이 있다. 전에는 허브만 있었는데 야생화 간판도 내걸엇다. 철지난 장미덩굴에는 꽃잎이 작은 장미화가 아직도 피고 있었고, 원추리, 창포, 땅바닥에 붙은 야생화들이 무더위에 혀를 빼물었다. 거기 귀족의 클레마티스도 있었다. 그늘을 드리워 '길손의 기쁨'이라는 별명을 지닌 클레마티스가 기중 반가웠다.
-미당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이 작품은 미당 선생이 23세 때(1937년) 중추(中秋)에 지은 것이다.
출전:<시건설> (1939), <화사집>(남만서고, 1941)
[클레마티스 -허브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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