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 사진 2장과 박물관의 조각 2징을 퍼다 실었다.
시스티나 소성당
로마 시내는 경주처럼 시가지 전체가 유적지였는데
30 미터도 넘는 교황청 담벽이 聖과 俗을 구분해 주었습니다.
나는 새도 넘기 힘든 담벼락 높이였습니다.
8시인가 그 사람들 출근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9시에 문을 연다 하여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벌써 궁전 담벽 밑으로 넉 줄로 500미터쯤 줄을 서 있었습니다.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거죠. 유럽이 카톨릭 국가임이 실감났습니다. 10월 18일즘이었는데,입에서는 찬 찬김이 보이는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그러나 교황청 박물관을 관광하고 말로만 듣던 시스티나 소성당에서 미켈란젤로라는 거장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들떠 있는 눈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술의 전당이라는 말을 쓰는데 시스티나 소성당이야말로 세계 사람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예술의 전당의 극치였습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343명의 인물을 재현하는데 천재 거장도 4년6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건물 내부의 벽과 돔 천정을 빈 틈없이 메꾼 당대 최고의 천재화가들의 사실적 그림과 만나는 건 생각만 해도 신바람이 나는 일이었습니다.
을유문화사의 세계사상전집인가 하는 책의 표지에 나오는, 아들에게 다가가려는 여호와의 손길과 죄의 속성을 지닌,자신감을 잃어버린 아담의 맥빠진 모습도 미켈란젤로 할아버지는 천정을 쳐다보며 그렸습니다. 여호와는하늘의 속성을 부여하려는 듯이손길을 뻗치지만 아들의 손은 자신의 미래를 예감한 듯 죄책감에 빠져 그 손가락이 꼬부라지고 맙니다. 유태인들의 논리대로 인간이 여호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면 죄의 산물인 인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통제할 애들이 없으니 여호와께서는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겠지요? 홍수를 퍼붓거나 화산 폭발이나 쓰나미 같은 걸 일으키며 지내지 않았을까요? 건물 내벽과 천정이 그림으로 가득찬, 예술의 극치를 제공하는시스티나 소성당은 과연 로마관광의 압권이었습니다.
광대한 규모의 성베드로 성당 또한 관광객들을 압도했습니다.
아래 두 개의 퍼온 글에서 시스티나 소성당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스티나 소성당은 1475년에서 1483년 사이에 건축됐다. 1473년 교황 식스투스 4세가 교황의 기도실로 조성한 것으로 당시 보티첼리, 페루지노 등에 의해 양쪽의 벽이 구약성서의 내용 ‘모세의 일생'과 신약성서의 내용 ‘예수님의 일생'으로 각각 8점의 그림들이 좌우측 벽면에 벽화로 꾸며져 있었다. 그 후 율리우스 2세의 명에 의해 미켈란젤로가 천정과 정면의 큰 벽화를 그렸다.
천장 중앙부에 《창세기》를, 그 주위에 《12명의 무녀(巫女)와 예언자》를, 삼각형 모양의 요면벽(凹面壁)과 반월형 벽면에 《그리스도의 조상》을, 그리고 네 모퉁이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각각 그렸다.
1534년 그는 다시 바울로 3세의 위촉으로 정면의 제단화(祭壇畵)를 그렸다. 벽면전체를 상하 4층으로 나누어 7년에 걸쳐 위에서부터 천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심판의 장면, 묵시록의 7천사, 그리고 맨 아래층에는 지옥을, 지난번의 고전적 작풍과는 다른 격렬한 터치로 표현하였다.
이탈리아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 ) 는 1508년 5월 천정화 그림 작업에 착수하여 4년 6개월 동안 정열과 창작력을 총 동원하며 1512년 10월 불후의 대작인 창세기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재현한 ‘천지창조'를 인류에게 선물했습니다.누구나 시스티나 소성당에 가보면 예술의 영원성을 부인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인간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는 법인데, 게다가 천재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작업에 쉽게 지치는 법인데, 그는 40대 중반을 소스티나 소성당의 천정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밑그림에 욕을 썼다가 덧칠한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는군요.
1534년 그는 다시 바울로 3세의 위촉으로 7년에 걸쳐 정면의 제단화(祭壇畵)까지 그렸다고 합니다. 후면의 벽에는 '최후의 만찬'이 큰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천장화 제작 이후 24년이 지난 61세의 나이에 정면벽화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사전에도 실린, 정제된 지식은 좀 부족하지만 후덕한 농부 같은 탈진한 모습의 그의 자화상은 아마도 이 7년간의 작업 후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 왜, 자신의 에너지를 몽당 쏟아부운 후의 멍한 허탈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삶에 지친 피곤에 찌들은 모습요. 누가 아래의 이 맥빠진 사진을 보고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와 함께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3대화가의 한 사람이라고 감히 상상이나 하겠어요? 거장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스스로도 벽화에 혼이 다 배앗긴 지친 모습이 자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핑계로 주교가 환쟁이인 자기를 만나주지 않자 피렌체로 달아나 자기를 찾아온 주교의 사자에게 나 없다고 전하란 말을 남기기도 하고, 최후의 심판을 그릴 때 벌거벗은 모습을 탓하자 지옥의 인물에다 주교의 얼굴로 대체한 그런 패기는 얼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기 삶에 대한 자조, 시니컬한 냉소 같은 건 부여해도 될 것 같기도 하군요.
호인연인가, 악연인가?
또 시스티나 성당에 갇히게 되다니....
나는 미켈란젤로 할아버지가 불쌍해 죽는 줄 알았어유.
그렇다고 그의 신앙을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는 갖가지 물감을 뿜어내는 붓끝에서 자기 존재의 의의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창세기를 읽으며 그 장면을 시각화하여 비주얼한 세계로 바꾼 건 어릴 적부터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 그가 기독교 국가의 백성임을 입증한다. 잡념이 신성성에 개입되었다면 모든 이들로부터 추앙받는 여호와를 경외의 대상으로형상화하는 작업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당대 최고 화가들(?)이 동원되어 돔형의 천정과 벽을 천정화와 벽화로 가득채운 시스틴 소 성당은 오래 머물러도 지루하지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형편만 허락된다면 그곳은 하루 종일 쳐박아 두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방이었습니다.
예술이 경전과 만나면 그건 불후의 명작이 되는거죠. 그게 초능력을 발휘하는 예술가의 신앙의 힘이 아닐까요?
나의 불찰을 사죄하는 심정으로 소성당을 소개한 블로그를 여러 개 소개하고 천정화도 함께 공부해 보기로 한다. 맨아래 사진2장은 성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와 외관 모습을 실었다.
아래 블로그에서 미켈란젤로(1475-1564)의 역작 성 시스티나 성당(1508-1512)의 천장벽화를 상세히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300여명의 인물들이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http://blog.naver.com/jpk85/90004184726
http://blog.naver.com/swwyang/100009731859
아래 블로그를 보면 천정화 그림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swwyang/100009785251
■ 숫자는 밑에서 천장을 올려다 보았을 때의 천정화의 배치도 ■
중앙 주제 (Genesis) |
1.빛과 어둠의 창조 | 2. 해와 달과 초목의 창조 | 3.물과 땅의 분리 |
4. 아담의 창조 | 5. 이브의 창조 | 6. 원죄와 낙원추방 | |
7. 노아의 번제 | 8. 대홍수 | 9. 노아의 술취함 | |
네 모서리 (Pendentives) |
10.유디스와 Holofernes | 11.다윗과 골리앗 | 12.교활한 독사 |
13.하만의 형벌 | |||
주제의 좌우 (Prophets & Sibyls) |
14.예레미아 | 15.Persian 무녀 | 16.에스겔 |
17.Erythrean 무녀 | 18.요엘 | 19.스가랴 | |
20.Delphian 무녀 | 21.이사야 | 22.Cumaean 무녀 | |
23.다니엘 | 24.Libyan 무녀 | 25.요나 | |
26-39.그리스도의 조상들 | 27a-38a.그리스도 선조의 가족들 | ||
아홉 주제 그림의 네 모서리마다 <Ignudi>가 그려져 있습니다 |
출처:http://db.hs.kr/pjs1104/fineart.html
*아래 그림은 위, 아래가 반대임, 아래에서 위로 가면서 숫자를 맞춰가면 됩니다. 4번 아담의 창조를 기준으로 해도 됩니다.
2. 해와 달과 초목의 창조에서 엉덩이를 까고 달아나는 사람은 뉘신고? 미켈란젤로 할아버지의 유머여! 안 그러고는 지루해서 미쳐버렸을 겁니다.
대칭구도상 한 사람 배치하긴 해야 허는디, 구름 아줌마를 그린 건가?
1.빛과 어둠의 창조 | 2. 해와 달과 초목의 창조 | 3.물과 땅의 분리 |
4. 아담의 창조 | 5. 이브의 창조 | 6. 원죄와 낙원추방 |
7. 노아의 번제 | 8. 대홍수 | 9. 노아의 술취함 |
아래에서는 장면을 절단한 사진과 설명을 수록함.
http://blog.naver.com/swwyang/100009785305
[은자 주] 더 상세한 내용을 알고자 하시는 분은 구약성서 <창세기>를 통독하실 것.
주야로<창세기>를 묵상하는 기독교도라면 그림만 봐도 무슨 얘기인 줄 알 수 있음.
http://massay.egloos.com/1755222
천지창조, 아담의 탄생
http://blog.daum.net/skj2607/9190100
http://blog.daum.net/luci52/15638115
아래 블로그에는 10꼭지가 넘는,잘 찍은바티칸 사진이 있다.
내가 놓친 장면들도 많았다. 이 블로그에 비하면 나의 소개는 소품에 불과하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커녕 나는 코끼리란 말만 듣고 말았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http://blog.paran.com/newbell/18178928
https://ko.wikipedia.org/wiki/%ED%94%BC%EC%97%90%ED%83%80
이 블로그 운영자
- 시스티나성당 [Cappella Sistina] http://100.naver.com/100.nhn?docid=100592건축가 조반니 데 도르티의 설계로 1473년 착공, 1481년에 완성하였다. 건물 자체는 깊이 40.5m, 너비 13.2m의 장당(長堂)을 높이 약 30m의 요면(凹面) 궁륭천장(穹窿天障)으로 덮고, 좌우에 고창(高窓)을 배열한 평범한 것에 불과하나, 내부의 벽화와 천장화(天障畵)는 르네상스 회화의 보고(寶庫)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본당(本堂)의 완성에 이어 교황 식스토 4세는 피렌체와 움브리아의 대표적 화가를 불러 좌우 벽면에 《모세의 생애》와 《예수의 생애》 등 도합 12점의 벽화를 제작하도록 명령하였다. 보티첼리를 중심으로 D.기를란다요, P.디코시모, L.시뇨렐리, 페루지노, 핀트리코 등이 3개년에 걸쳐 그린 이들 그림에는 성기(盛期) 르네상스의 도래가 가까운 젊은 이탈리아 회화의 싱싱한 감각이 넘치고 있다. 그 뒤 얼마간의 시기를 두었다가 미켈란젤로에 의한 유명한 천장 그림의 제작이 시작된다. 1508년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이 대역(大役)을 명령받은 그는, 먼저 화필로 넓은 천장에 기둥과 인방(引枋) 등의 건축적인 구조부분을 그리고,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틀 안에 여러 장면을 그려 넣는 수법을 썼다. 이런 식으로 1512년까지는 천장 중앙부에 《창세기》를, 그 주위에 《12명의 무녀(巫女)와 예언자》를, 삼각형 모양의 요면벽(凹面壁)과 반월형 벽면에 《그리스도의 조상》을, 그리고 네 모퉁이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각각 그렸다. 1534년 그는 다시 바울로 3세의 위촉으로 정면의 제단화(祭壇畵)를 그렸다. 벽면전체를 상하 4층으로 나누어 7년에 걸쳐 위에서부터 천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심판의 장면, 묵시록의 7천사, 그리고 맨 아래층에는 지옥을, 지난번의 고전적 작풍과는 다른 격렬한 터치로 표현하였다. 이 회화의 완성으로 최초의 12점의 측벽화(側壁畵)와, 미켈란젤로의 고전적 화경(畵境)을 말하는 천장화, 그리고 앞으로 닥칠 바로크 회화의 선구적 역할을 하는 제단화, 바꾸어 말하면 성기(盛期) 르네상스를 중간 시기로 하는 전후 세 시기에 속한 작품이 이 성당 안에 모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