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단정한 정장에 넥타이 차림인 박인환,
우수에 젖은 그의 표정에는 가시지 않은 전쟁의 상흔이 일렁인다>
중학동기 남성원님의 글에서 퍼왔다.
드라마는 유튜브에서 퍼왔다. 이붕구의 <명동백작>을 재구성한 것이다.
사랑방
929 | 명동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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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백작은 소설가 이봉구(1916~1983)의 별명이자 그가 쓴 명동회고록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신문기자 신분으로 매일 최불암의 모친이 운영하는 명동의 목로주점 <은성> 등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문인․화가․음악가․교수․영화인 등 당대의 지식인들과 함께 명동문화, 나아가 한국문화를 선도한 인텔리겐차였다.
1980년대 「명동백작」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한국문화의 메카 명동 이야기와 열띤 문화담론을 벌이던 지식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었다.
오래 잊고 지내던 최근의 어느 날, 각중에 「명동백작」에 대한 그리움이 왈칵 치솟았다.
세상 지우기의 후유증이 지적知的 목마름으로 전이되어 동서고금의 고전을 섭렵하던 뒤끝이다.
서점에 알아보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실력이 모자라 작은애한테 부탁을 해봐도 절판이라는 같은 답만 돌아왔다.
몇 군데 수소문해놨지만 책이 손에 들어올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그래서 생각난 짐에 「명동백작」의 핵심 부분 가운데 박인환의 애절한 사연 하나를 우선 함께 음미해보고자 한다.
언젠가 「명동백작」을 입수하면 저 암울한 천구백오륙십년대의 명동거리를 다시 함께 더듬어보려 한다. -
먼저 우리 귀에 익숙한 박인환의 시부터 한 수 감상해보자.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 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 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것만
※ 과거는 ; 박인희의 노래에서는 어감상 ‘옛날은’으로 바꾸었음
1956년 3월 하순의 어느날 초저녁.
명동 뒷골목 목로주점 <경상도집>에
시인 박인환(1926~1956), 작곡가 이진섭, 가수 겸 영화배우 나애심 등이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거리 곳곳은 물론 목로주점 안에도 6․25전쟁의 매캐한 상흔이 어지러이 남아 있었다.
술이 거나해지자 이진섭이 나애심에게 노래 한 곡 불러보라고 지분거렸지만 나애심은 딴청만 부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거나 말거나, 박인환은 주모에게서 받은 누런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흐릿한 시선으로 박인환의 손길을 이윽히 건너다보던 이진섭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종이를 낚아챘다.
박인환의 대표시 「세월이 가면」이었다.
시를 빨아들일 듯 몇 번을 곱씹어 읽은 이진섭은 즉석에서 곡을 붙여 나애심에게 한 번 불러보기를 청했다.
삶의 고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나애심은 악보를 보며 성의 없이 노래를 한 번 불러보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불멸의 대표곡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린 것이다.
잠시 뒤 성악가 임만섭과 소설가 이봉구가 왁자지껄 주점으로 들어섰다.
박인환과 이진섭은 분주하게 두 후래자後來者와 인사를 나누고 찌그러진 양은술잔에 거푸 막걸리 석 잔씩을 권한 뒤
이진섭이 임만섭에게 악보를 건네주었다.
두세 차례 악보를 찬찬히 읽은 임만섭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렁찬 테너로 「세월이 가면」을 열창했다.
힘없는 발걸음으로 명동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우르르 <경상도집> 앞으로 몰려들었다.
청중들의 열렬한 앵콜 요청에 임만섭은 다시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켜더니 「세월이 가면」을 재창再唱했다.
노래는 금세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세월이 가면」은 드물게 성악곡으로 보급되었는데, 세인들에게는 「명동엘레지」로 널리 알려졌다.
훗날 애잔한 음색의 대중가수 박인희가 원제인 「세월이 가면」으로 리바이벌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경상도집>에서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10년 전에 타계한 첫사랑 여인의 기일을 맞아 망우리공동묘지를 다녀왔다.
「세월이 가면」은 피를 토하듯 그 첫사랑에 얽힌 애절한 추억을 한 올 한 올 반추한 정한情恨이었다.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가랑잎이 나뒹구는 옛 연인의 헐벗은 묘지를 바라보던 젊은 시인의 적막한 심경이 시공을 건너와 가슴을 엔다.
그러나 사람은 가더라도 두 연인의 절절한 사랑이 사라질 리야 있겠는가.
그 처연한 심사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을.
이 시를 마지막으로 박인환은 며칠 뒤인 1956년 3월 29일, 자택에서 잠들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사인은 과음에 의한 심장마비.
(요절이 애통하기는 하지만 이 얼마나 부러운 죽음인가!)
이땅에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세계를 펼친 열정적 시인이 만 30세의 너무나 아쉬운 나이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춥고 배고픈 시절임에도 언제나 깔끔한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명동을 누볐던 ‘명동신사’ 박인환은 동료 문인들의 청을 받아들인 미망인의 양해 아래 망우리공동묘지 옛 연인의 묘 옆에 묻혔다.
‘……참으로 너는 정들다 만 애인처럼 소리 없이 가는구나’
조병화(1921~2003) 시인이 동료시인 박인환의 발인 때 낭독한 조시弔詩의 마지막 구절이다.
조병화 역시 명동의 여러 목로주점을 단골로 드나들던 '명동시민'의 한 사람이었다.
‘정들다 만 애인’ - 이보다 더 진한 아쉬움이 어디 있으랴.
마도로스파이프로 유명했던 그 조병화 시인도 소리 없이 우리 곁을 떠났다.
대학생 상대 월간 「Young」誌의 의뢰로 혜화동로터리에 있는 조병화 시인의 집필실에서 그 분을 인터뷰한 기억이 아련하다.
타자기도 컴퓨터도 외면하고 눈을 감을 때까지 만년필로만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시를 써내려 가신 조병화 시인,
인터뷰의 주제는 그 분이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값비싼 만년필을 비롯하여 만년필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가장 애지중지하는 만년필은 김종필이 유럽 여행길에 사다 선물한 ‘몽블랑’이라던 얘기가 어렴풋하다.
「SBS 10년사」 집필 때 알게 되어 이따금 우리 동기들 주석에도 동행하던 「Young」誌의 편집장은 잘 있는지…
박인환은 강원도 인제 출신으로 평양의전을 다녔으나
해방과 함께 대학을 중퇴하고 상경하여 낙원동에 서점을 열어 생계를 꾸렸다.
1946년에는 국제신보에 「거리」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48년 결혼과 함께 김경린․김수영 등과 詩동인지 「新詩論」을 발간하는 등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펼쳐나갔다.
전쟁 중에는 경향신문의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너무나 서둘러 떠나는 바람에 그가 남긴 육필집肉筆集은 「박인환 選詩集」이 유일하다.
강원도 인제군은 ‘박인환 거리’를 조성하고 문학관과 시비를 세우는 등 시인의 아쉬운 생애를 붙잡고 있다.
박인환의 대표작 하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목마와 숙녀」를 떠올린다.
좀 길지만 그의 요절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옮겨 소개한다.
해설집만 해도 수십 권이 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우리 현대시史에 길이 남을 불멸의 명시이기 때문이다.
나는 술로 시작하여 술로 끝나기 때문에 특별히 이 시를 좋아한다.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난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버지니아 울프(1882~1941) ; 영국의 여류작가.
소설에 처음으로 의식의 흐름을 도입하여 문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강물에 투신하여 자살함으로써 당대는 물론 후대 문인과 문학도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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