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성좌

- 시인 고박인환의 관 앞에서-

-조병화

 

인환이,

너는 가는구나.

대답도 없이 떠나는구나.

 

-1956년 3월20일 오후 9시

31세의 짧은 생애로

너는 너의 시와 같이 먼지도 없이 눈을 감았다.

 

시를 쓰는 것만이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인생이요,

인생은 잡지의 표지처럼 쓸쓸한 것도 아닌 것, 외로운 것도 아닌 것,

이렇게 너는 말을 했다.

 

너는 누구보다도 멋있게 살고,

멋있는 시를 쓰고,

언제나 어린애와 같은 흥분 속에서 인생을 지내 왔다.

 

인환이,

네가 사랑하고 애끼고 돈은 없어도 언제나 만나면 즐거운

너의 벗들이 지금 네 앞에 모다 고개를 숙이고 모여들 있다.

 

너는 참으로 우정의 배반처럼

먼저 떠나가는구나.

 

경쾌한 네 목소리도

흥분 속에 타오르는 너의 시와 평론도

정열적인 너의 고독과 비평도

- 이제는 끝을 막는구나.

 

네가 없는 명동,

네가 없는 서울, 서울의 밤거리,

네가 없는 술집, 찻집, 영화관,

참으로 너는 정들다 만 애인처럼 소리 없이 가는구나.

 

인환이,

1950년대 우리 젊은 시단은

항시 네가 이야기하던 ‘장미의 온도’와 같은 너를 잃었다.

 

인환이 잘 가거라.

너의 소원대로 너의 사랑하는 벗들은 지금

너의 관이 나가는 이 마당에 모다 모여들 있다.

 

죽음이라는 것은 멀고 쓸쓸한 것이라는데

편히 가거라.

쉬어서 가거라.

편히 쉬어라

[출처]1956.03.25 동아일보 4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view.nhn?editNo=1&printCount=&publishDate=1956-03-25&officeId=00020&pageNo=5&printNo=10218&publishType=00020&articleId=&serviceStartYear=1920&serviceEndYear=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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