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주
- 천경림 흥륜사 02 2009.04.30
- 천경림 흥륜사 01 2009.04.30 2
- 양산재 2009.04.30
- 나정 2009.04.30
천경림 흥륜사 02
천경림 흥륜사 01
[은자주]고속버스로 경주시내로 진입하다 오른족의 첫 숲이 혁거세왕릉인 오릉이다. 문천 다리를 지나 30 미터쯤 지나면 맨 아래의 돌말뚝과 골목길 표지를 스쳐지나간다. 거기가 신라 불교의 첫 삽을 뜬 천경림 흥륜사다. 천경림은 귀족들이 제천의식을 행하던 곳이니 이차돈이 왕명을 사칭하여 나무들을 베어내고 사찰을 지은 것은 민간신앙과 외래문화와의 대충돌을 예고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왕명을 사칭한 죄로 순교당했는데, 문제는 그 해에 법흥왕[시호]이 불교를 공인한 점이다. 후세의 역사가들이 의문점을 제기하는 것도 바로 거기에 있다. 곧, 법흥왕과 이차돈이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귀족들의 위세를 누르고 국민통합을 기도한 법흥왕은 20대 초반의 젊은 근신(近臣)의 피를 뿌리고, 고대의 세계 종교인 불교를 수용함으로써 만민평등과 홍익인간이라는 불교적 가치관을 이 땅에 구현하는 데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법당 앞의 탑은 이차돈의 순교기념비이다. 순교비 원형은 사찰안내문 아래 있는 화강암에 새긴 것으로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차돈의 순교와 불교공인의 관게는 아래 창에서 본 바 있으므로 풍경만 탑재한다.
이차돈의 영혼이 수국으로 피어났나? 순백의 수국의 꽁송이들이 은자의 영혼을 맑게 씻어 주었다.
http://blog.paran.com/kydong/31334340
양산재
[은자주]] 사전의 설명을 옮긴다. 문이 굳게 닫혀 1980년대 후반에 은자가 찍은 흑백 사진으로 보완한다.
경주 양산재 [慶州 楊山齋]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塔洞)에 있는 사당. 1970년 건립한 전형적인 재실(齋室) 건축물로서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부 촌장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BC 57년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취산진지촌,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의 6부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신라의 첫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이후 3대 유리왕이 이들의 건국 공로를 기리기 위해 양산촌은 이씨, 고허촌은 최씨, 진지촌은 정씨, 대수촌은 손씨, 가리촌은 배씨, 고야촌은 설씨로 각각의 성을 내려 이들이 각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
사당은 외삼문인 대덕문(大德文)을 지나면 동편에 윤적당(允迪堂), 서편에 익익재(翼翼齋)가 배치되어 있고 내삼문인 홍익문(弘益門)이 있다. 홍익문 안에는 주건물인 입덕묘(立德廟)가 세워져 있으며 옆에는 전사청이 자리잡고 있다. 입덕묘는 이익공(二翼工)에 일고주(一高柱) 5량(樑)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이씨, 최씨, 손씨, 정씨, 배씨, 설씨 시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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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
[은자주]나정은 박혁거세왕의 탄강지다. 내남쪽으로 나가다 포석정 못 미쳐 좌측 남산 자락 송림 언덕에 위치하였고, 조금 더 진입하면 1960년대 조성한 육부촌장을 모신 사당인 양산재도 있다. 은자가 1980년대에 찍은 흑백사진의 비석 상단에는 <신라시조왕탄강정기비명병서>라 썼는데 비명은 남공철 찬으로 기억한다. 경주의 유적들은 영조 때에 대대적으로 확인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비석은 순조 3년(1803)에 건립되었다.
2008년 11월3년 반에 걸친발굴작업을 마친 후 지금은 빈 공터인데 입간판은 2012년까지 한 변의 길이 10미터의 팔각건물, 우물, 담장 등의 복원계획을 밝히고 있다. 발굴 결과는 <나정복원정비계획> 설명 아래 사진에 있다.
군데군데 서 있는 겹벚꽃도 반가웠다. 동영상은나정 둘레의 나무들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