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의 이유
- 이원규(1962-)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 번 이라도 타 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은 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