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야심경 해설 4.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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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은 관세음보살님을 뜻합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반야심경은 당나라 현장법사(삼장법사)께서 한역하신 것입니다.

아주 짧게 핵심만 있습니다.

계빈국 반야 ․ 이언 이 두 분이 공역하신 반야심경도 있는데, 여기에는 경전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즉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로 시작되어서....

“다 함께 받들었다”라는 내용으로 끝을 맺습니다.

계빈국 반야/이언 이 두분이 공역하신 반야심경을 읽어보면 좋습니다.

거기에 나와 있다시피,

이 반야심경은 관재자보살(관세음보살)께서 사리자(사리불)에게 설법하는 것입니다.

이때 부처님은 삼매에 들어 계십니다.

우리가 읽는 반야심경, 즉 현장법사께서 한역하신 그 반야심경의 내용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관세음보살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사리자(사리불)께서 질문을 하고 관세음보살께서 쭉 답변 내용을 설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사리자여..사리자여...라는 내용이 반야심경에 나오게 됩니다.

보살(菩薩)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보살(菩薩)이란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입니다.

보살(菩薩)이란

나의 행복을 다른 중생에게 주고, 나의 고통을 돌보지 않고 모든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려는 자입니다.

모두가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고,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없애고, 자신만의 행복을 위하는데....

보살(菩薩)만은 그 반대로 오로지 남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대승(大乘)입니다.

보살(菩薩)이 제도하고자 하는 중생의 숫자는 단 몇몇이 아니고 일체 중생 모두를 말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며, 이런 보리심을 낸 자가 바로 보살(菩薩)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마음을 낸 보살은 너무나도 희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석가부처님께서도 보살로 계시다가 성불하셔서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석가부처님께서도 역시 대승의 길을 걸으신 것 입니다.

온 우주에는 수천억 수천조이상의 무량한 중생들이 살며,

그 중생들 가운데 아라한을 성취하는 자들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이 하며,

그 가뭄에 콩 나듯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러한 보리심을 내는 자는 또 더더욱 드물며,

그 극소수의 보살들 중에서도 성불하여 부처님이 되는 자는 더욱 더 희유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야말로 희유하고도 희유하신 분입니다.

반야경에 보면 이 보살에 대한 설명이 아주 다양하고 깊게 나와 있습니다.

보리심을 내서 성불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보살은 희유하고도 희유한데,

대다수가 보살행을 포기하고 2승, 즉 아라한이 되거나 벽지불이 되고 맙니다.

사리자(사리불)께서도 본래는 보살행을 60겁 동안 하셨는데, 중도포기하고 아라한이 되셨습니다.

이와 반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기필코 성불하는 보살을 <아비발치>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또는 아유월치 보살이라고도 한역되어져 있습니다.

<아비발치> 보살이 부처님으로부터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습니다.

보살(菩薩)은 이미 제법실상인 空을 깨달아 알고 있는 성인입니다.

그러나 보살(菩薩)이 성취하고자 하는 도는 아라한도/벽지불도가 아니고 바로 부처님이 되는 불도(佛道)입니다.

보살(菩薩)은 언제나 해탈해서 열반에 들어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즉 마음만 먹으면 아라한이 될 수도 있고, 벽지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악마들은 이 보살들에게 부처의 길을 포기하고 아라한/벽지불이 되라고 꼬드깁니다.

그러나 보살들은 자비심으로 일체중생을 생각하고 그들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열반을 취하지 않습니다.

즉, 자신이 아직 부처님께서 갖춘 공덕의 대부분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면 열반을 취하지 않습니다.

만약 보살이 부처님이 될만한 공덕과 지혜를 다 갖추지 않았는데 열반을 취해버리면,

그땐 아라한/벽지불이 됩니다.

벽지불이란 독각을 의미하며, 부처님이 없는 시대에 혼자 깨달아서 해탈하고 열반에 드는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항상 자신이 부처님이 될 만한 공덕과 지혜를 다 갖추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보살(菩薩)도 역시 깊이 空해탈문에 들어가지만, 깊은 지혜로써 열반을 취하지 않고

아직 때가 아님을 알아 끊임없이 중생을 돕는 보살행을 하게 됩니다.

모든 보살(菩薩)께서 하시려는 것은 모든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마음을 다 버리고, 오로지 다른 중생들을 위한 분이 바로 보살(菩薩)입니다.

보살의 종류는 또 크게 생신보살과 법성생신보살이 있습니다.

생신보살이란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지고 생사윤회를 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분이고,

법성생신보살이란 진리 그 자체의 몸을 얻어 욕계/색계/무색계를 초월해서 자유롭게 중생을 제도하는 분입니다.

보살(菩薩)은 부처님이 되고 나서야 중생을 제도하는 게 아닙니다.

보살(菩薩)은 보살행을 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중생을 제도하십니다.

보살(菩薩)은 가르침으로 아라한/벽지불도 탄생시키며, 보리심을 내게 해서 보살도 탄생하게 합니다.

물론 모든 보살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능력과 지혜를 갖춘 보살에 한해서 입니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관세음보살님을 말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지장보살님은 많이들 아실 겁니다.

지장보살님의 서원은 지옥이 있고,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중생이 있는 한

절대 나는 성불하지 않고 끊임없이 보살행을 하겠다라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은 일부러 성불을 하지 않고 여전히 지금도 보살행을 하고 계신다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석가부처님께서는 관세음보살님을 많이 찬탄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위덕이 한도 끝도 없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께서는 성불할 수 있는 조건을 이미 다 갖추셨지만,

성불해서 멸도에 들지 않고 그 무량한 세월동안을 언제나 중생을 돕는 보살행을 하고 계시므로 찬탄하셨습니다.

일생보처보살이라는 분이 계신데, 이 뜻은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성불하는 보살을 뜻합니다.

현재 미륵보살께서 일생보처보살이십니다.

내생에 인간으로 오셔서 성불하시기 때문입니다. 현재 도솔천에 계십니다.

미륵보살은 아주 까마득한 먼 미래에, 통상 57억년 후에 성불하여 부처님이 되십니다.

그 때는 인간 수명이 엄청나게 길고, 몸의 크기도 엄청나게 큽니다.

지금 인간은 2미터가 안되지만, 그때 중생들의 몸은 120미터쯤 되며, 부처님의 몸은 250미터 가량 됩니다.

석가부처님께서는 출가 후 6년간 엄청난 고행 후에 성불하셨지만,

미륵부처님께서는 출가한 바로 그날 성불한다고 합니다.

또한 석가부처님께서 인도 영취산에서 설법하셨듯이, 미륵부처님도 또한 인도 영취산에서 설하십니다.

석가부처님께서 설하신 법과 미륵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은 똑같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진리는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핵심은 반야바라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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