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母 께서 일찍 돌아가시어 지방엔 세 분 신위를 모신다.
지방 끝의 두 자는 일반적으로 '神位'라 쓰지만 형님께서 그 자리를 함자로 바꾸었다.
왕의 시호 등을 관장하던 봉상시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께서는 1905년경 한성판윤을 지내셨다.
조선왕조실록 1905년 기록에 할아버지께서 진주로 유배 가신 걸 보면
을사오적신과 달리 일제의 한일강제병합에 반대하신 걸로 추정된다.
유배기간이 끝난 후 함창읍 교촌2리(애기비)에 낙향하셨다.
마을 앞들은 거의 자신의 소유였는데 문경에도 많은 토지가 있어
매년 가을걷이가 끝나면 황소들 잔등에 바리바리 농지 사용료를 받아왔다고 한다.
한성판윤인 아버지 덕분에 족보에 올라 있는 나의 아버지 벼슬은 통덕랑이시다.
상주농잠학교 출신으로 목재업(상주)과 광산업(포천) 사업을 하셨는데
공교롭게 내 장인되시는 분도 상주농잠학교 출신이라 한다.
손자들은 아래 사진에 동참했으나 사진을 찍은 아들과 부엌에서 일하시던 형수님은 누락되었다.
할아버지 인연으로 집에다 김정호의 수선전도도 편액하여 걸어 두었다.
긑의 두 장은 지나치며 찍은 한국은행 사진이다.
모두 부자되시라구요.
'생활의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0) | 2015.01.01 |
---|---|
Merry Christmas! (0) | 2014.12.24 |
명동거리 2 (0) | 2014.09.07 |
명동거리 1 (0) | 2014.09.07 |
2014년 새아침이 밝아오네 (0) | 2014.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