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야심경 해설 30.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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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득(無所得)!!!

도대체 뭘 얻지 못한다는 것일까요?

바로 스스로의 성품, 즉 자성(自性)을 말합니다.

실체(自性)라고 여길만한 게 그 무엇도 없으므로, 무소득(無所得)입니다.

무소득(無所得)이란 그래서 스스로의 성품을 얻을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왜 얻을 바가 없냐면 생겨난 모든 법(法)들은 인연화합으로 생겨났으므로(연기법)

거기에는 고정불변의 실체....즉 스스로의 성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얻을 바가 없는 고로...라는게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의 뜻입니다.

연기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전편에서 했으므로 생략합니다.

무소득(無所得)!!!

이게 사실 굉장히 중요한 것 입니다.

도를 닦으면서도 뭘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정반대로 닦는 것입니다.

얻을 게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이 바로 불교의 도이며,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스스로의 성품이 본래 없으므로, 실체를 구할래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뜻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우리 눈에 보여지고 들려지는 건 있지만, 거기에 영원불변의 실체(성품)이 없어서 공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보여지는 것이든, 들려지는 것이든 스스로의 성품이 없으므로 영원하지 못하고 변화해 갑니다.

이 변화해 간다라는 게 바로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 정말로 얻을 게 있다면, 반드시 거기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게 물건이든 진리든 말이죠.

집착하게 되면 그것은 곧 고통입니다.

열반과는 정반대지요.

그러므로 진리 자체에도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불교의 진리인 열반/공/반야바라밀/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도 역시나 실체가 없어 공한 것입니다.

공한 것에서는 그 무엇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위의 말은 진제의 측면에서 한 말입니다.

속제의 측면에서는 온갖 차별이 있으니 얻음도 있고, 깨달음/열반도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 입니다.

이런 세속적인 표현은 세속의 틀에 맞게 설명한 것입니다.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해서죠.

반야경을 봐야 합니다.

또 그 반야경을 풀이한 대지도론을 봐야만 합니다.

이러한 대단히 깊은 내용의 설법이 반야경과 대지도론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야말로 세속적인 그런 관념과는 완전히 꺼꾸로입니다.

정반대입니다.

불자들은 이런 걸 반드시 알고 구도의 길을 걸어야만 바라는 걸 성취할 수 있습니다.

첫째가는 제1의 진리를 불교에서는 제일의제/승의제/진제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곧 반야바라밀입니다.

반야바라밀이란 그 무엇에도 얻을만한 게 없어서 집착할 대상조차 없다는 뜻입니다.

이 상태가 바로 열반입니다.

그러므로 뭘 얻기 위해 도를 닦는다면 정반대로 닦는 것입니다.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이게 바로 위의 뜻입니다.

얻을게 없는 고로.............!!!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위의 말은 진제의 측면에서 설하신 것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얻을 수 있는게 단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모든 것은 연기로 인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연기법!!!

그래서 연기법이 부처님 가르침의 근간이라는 것입니다.

연기법에 인과법이 담겨져 있고, 거기에 또 空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인과의 실체가 바로 공입니다.

윤회의 실체가 바로 해탈이죠. 그러므로 윤회가 없으면 해탈도 없는 것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이러한 불가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로 떨어트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정말로 중생에게 알려주시려는 게 바로 이 반야바라밀입니다.

이 반야바라밀을 알아야만 아라한/벽지불/부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죠.

반야바라밀이란,

위에서의 설명처럼 무소득(無所得)...얻을 만한게 단 하나도 없어서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공이나 반야바라밀에도 역시나 집착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진리라는 것은 피안으로 건너는 뗏목이며,

도를 닦는 것은 피안으로 건너가는 게 목적이지 뗏목을 저 언덕에 도착시키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진리에도 역시나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진리에 집착하면 그건 더 이상 진리가 될 수가 없습니다.

무소유(無所有)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도 본래의 뜻은 <있는 바가 없다>는 뜻 입니다. 이 말이 반야경에 아주 많이 나옵니다.

뭘 소유하지 않아서 무소유가 아니고,

본래 있는 게 없어서 소유할 만한 게 그 무엇도 없다는 게 바로 무소유입니다.

왜냐면 본래의 뜻처럼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본래 없습니다.

그래서 본래 가질 수조차 없습니다.

당연히 이 말도 역시나 진제의 측면에서 한 말입니다.

또한 세속에서도 역시나 가진 것을 모조리 잃게 되므로 소유한 게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합니다.

죽음을 통해 가진 것을 모조리 다 잃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사실상 가진 게 가진 게 아닙니다. 영원히 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잠시 가졌다라고......착각할 뿐이죠.

결국 잃게 되는 것은 가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거기에 집착한다면 반드시 잃게 되니 그땐 고통이 생깁니다.

무소유(無所有)

있는 바가 없어서.....

무소득(無所得)

얻을 바도 역시나 없다.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반야바라밀은 깊고도 깊고 불가사의하며,

생각이나 논리로써는 절대적인 진리(반야바라밀)에 접근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을 공하게 텅 비워야...

무소유..즉 있는 바가 없어야 반야바라밀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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