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101화 - 저 이가 바로 그 스님이라오 (當日山僧)
http://blog.joins.com/kghkwongihwan/10445243
윤생(尹生)이라는 사람이
관서지방을 객유(客游)하다가
어떤 촌가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비를 만나 계속 묵게 되었다.
안주인은 비록 나이가 들었으나
말씨와 모양과 거동이
여느 시골 노파와 같지 않았는데,
하루는 그 안주인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아마도 심심하실 터인데,
내가 옛날이야기를 해 드리겠으니
한 번 웃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한다.
"그것 참 좋소이다." 하고
윤생이 대답하자
주인 남자가 나서며,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또 하려고 하오?"
하며 만류했으나
노파는,
"이제 당신과 저는
다 함께 늙었는데
그 말을 해서
해로울 것이 있겠소?"
하고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나는 본시
초산(楚山) 기생으로서
나이 열여섯에
초산 사또에게 홀려,
그의 총애를 받아
그의 방에서만 함께 지냈었는데
뜻밖에 사또가 갈려 가게 되어,
이별에 임하여
그가 쓰고 있던
집물(什物)을 모두 나에게 주며,
또한 후하게
먹을 것을 준 후에 말하기를,
'내가 돌아간 후에
너도 곧 뒤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함께 백년을 지내는 것이 좋으리라.'
하기에 나는 울면서
그것을 허락하였지요.
사또가 떠난 후,
그 애틋한 정을 이기지 못하여
그가 준 것을 패물로 바꾸어
동자(童子) 한 놈을 데리고
나도 그곳을 떠났지요.
그런데 겨우 며칠 길을 가다가
때마침 겨울이라
큰 눈이 내리고
가던 길마저 잃게 되어,
동자로 하여금
말을 버리고
길을 찾게 하였더니
잘못하여 눈 속에 빠져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죽고 말았지 뭡니까?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다리는 얼어
걸음을 걸을 수조차 없었는데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 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멀리 숲 사이로
깜빡거리는 불빛이 보였습니다.
옳거니,
'사람이 사는 게로구나.' 하고
기다 시피 하여
그곳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고 보니
부처님을 모신 암자였습니다.
그러나 방안에는
탁자위에
부처님 한 분이 계실 뿐
아무도 없어 조용하기만 한데,
아랫목이 따뜻하고
등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누가 있기는 있는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처지가 처지인지라
주인 승락이고 뭐고 할 바 없이
말안장을 풀고
죽을 쑤어 먹인 뒤
나도 방 가운데 퍼져 누웠습니다.
언 몸이 녹으면서
이번에는 열이 나기 시작하는데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보는 사람도 없고 해서
치마 저고리를 다 벗어제치고
속옷 바람으로 누웠더니
좀 열이 가셔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스님 한 분이
내게 달려들어 강간을 하니
도저히 항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깊은 산중이라
누가 와서 도와줄 리도 없고....
본래 이 스님은
이미 십 여세 때부터
삭발 출가하여
생식을 하면서
혼자 암자를 지키고 살아왔는데,
그때 나이 28세로
바로 탁자위에 있었던
부처님처럼 보였던 분이었어요.
계행(戒行)이 비록 높았으나
정욕(情慾)이 움직이게 되니
그것을 어떻게 억제하지 못하였지요.
이튿날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눈이 처마에 까지 쌓여
돌아가고자 하나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럭저럭 암자에서
겨울을 나다보니
두 사람의 정이 흡족하여졌는데
스님이 말하기를,
'나도 당신을 찾지 않았고
당신 또한 나를 찾지 않았건만
길에 쌓인 눈이 나로 하여금
당신을 만나게 해 준 것이요.
나의 계행은
당신으로 인하여 훼손되었고
당신의 절개는
나로 인하여 이지러졌소.
이는 하늘이
당신과 나의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라
아니 할 수 없으니
어찌 옛 낭군을 찾아가
첩이 되려고 하시오?
나와 함께 해로(偕老)하여
안락을 누리는 것이 어떻소?'
하기에 또한 생각해보니
이치에 맞는지라
환속(還俗)하는 그 스님을 따라
여기 와서 살았는데,
아들과 딸을 낳고
집안이 넉넉하니
이 어찌 하늘의 이치가 아니겠소?
저 노인네가 바로
그 날의 환속한 스님이라오." 하고는
이야기를 마쳤더란다.
'고전문학 > 국역고금소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03화 - 주빈(主賓)의 자리에 앉았다가(獨在主賓席) (0) | 2015.03.09 |
---|---|
제102화 - 나 또 방귀를 뀌었는데 (0) | 2015.03.09 |
제100화 - 노인이 사리도 모르면서 (0) | 2015.03.07 |
제99화 - 생원댁에 도적이 들다 (0) | 2015.03.07 |
제98화 - 곧 벼락부자가 되겠는데 (0) | 2015.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