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103화 - 주빈(主賓)의 자리에 앉았다가 (獨在主賓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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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周)씨 성(姓)을 가진 노총각 아전이 있었던 바 그 모습이 훌륭하였다.
성묘(省墓)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촌가(村家)에 투숙하게 되었는데,
마침 주인집에는 혼례(婚禮)를 치를 신부(新婦)가 있었다.
주씨는 혹시 남은 음식이라도 맛볼까 하여
사랑방 근처를 배회하고 있으려니까
과연 주인집에서 손님을 부르기에
주씨도 사랑방에 들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술을 주고 받다가 여러 손님들이 흩어져 가고,
한방에 있던 새 사위는 술에 만취가 되어
밖에 나가 방뇨(放尿)를 하다가 볏짚단 위에 넘어진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리니,
방에는 주씨 혼자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자 주인집 사람이 주씨를 신랑으로 잘못 알고 나오라 하더니
촛불을 든 자가 신부방 앞의 휘장을 걷어 올리고,
예(禮)를 맡은 자는 주씨를 인도하니
주씨는 마침내 방으로 들어가 신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주씨는 화촉(華燭)아래 신랑이 된 기분이 즐겁기만 하였다.
새벽이 되어 신랑이 취했던 술이 깨어
일어나 신부방에 들어가려고 하나,
문이 굳게 닫힌 채, 고요하고 인적이 없는지라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나는 신랑이다!" 하자
안에서,
"사위는 벌써 가례(家禮)를 마쳤는데
어떤 미친놈이 그런 말을 하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신랑이 크게 노하여 수행하여 온 친척들과 함께
한참 떠들고 다툰 끝에
밖에 있는 사람이 진짜 사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인 노인은 크게 당황하여 주씨에게,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오?" 하고 물었다.
"엊저녁에 투숙한 나그네입니다." 라고 주씨가 대답하자,
"무엇 때문에 우리 가문을 어지럽혔느냐?" 하고
다시 주인 노인이 다시 물었다.
"장례자(掌禮者)가 인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씨의 이 말에 주인 노인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주씨를 내치고 새 사위를 들이려고 하자,
주씨가 조용히 의관(衣冠)을 갖추고 뜰아래로 나와 절을 하면서,
"바라건대 한마디 말씀드리고 나가겠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여인의 길은
한번 허락하면 종신토록 고치지 않는다 하며,
한번 그 절개를 잃으면 아내됨을 부끄러워한다 하는데,
부모로서 진실로 딸의 절개가 온전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이지러진 것을 원하십니까?
노인장의 따님은 저에게 정절을 바쳤습니다.
재삼 생각하여 주십시오." 하니
주인 노인은 한참 중얼거리며 생각을 하다가,
"이미 도적의 술책에 빠졌으니 이걸 어찌 하겠는가?" 하였다.
그리하여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새로 정하여졌다.
그 후 주씨는 그 문호(門戶)를 크게 세우고
자손들이 번창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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