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향의 무덤 동그라미 부분]

 

*충주 충주호  말목산의 우측 청풍호 자락에 관기 두향의 묘가 있다

 

  퇴계 선생과 기녀 두향

  http://blog.naver.com/finecock/220520608336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해온 것은 48세 때였고 그때 고을의 관기였던

두향은 18세였다.

 

퇴계는 엄격한 학자이면서 속으로는 인간미 넘치는 분이었는데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터라 외로워서인지 이내 두향이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

 

두향은 외모도 아름다웠고 글솜씨며 거문고 솜씨도 빼어나서 퇴계의 귀여움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 지 9개월이 지나 퇴계는 경상도 풍기군수로 옮겨가게 되었다.

 

관기는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당시의 풍속 때문에 두향은 결국 퇴계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떠나기 전 마지막 밤에 두향은 이렇게 읊었다고 한다.

두보의 시 “꿈에서 이백을 보다”의 한 구절이다.

 

죽어 이별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데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네.

 

이후 퇴계와 두향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두향은 퇴계 선생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던 강선대에 움막을 짓고 오매불망 선생만 생각하며

여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서신 왕래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퇴계 역시 두향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퇴계의 다음 시를 두향에게 보낸 시라고 생각하고 있다.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면서

비어 있는 방 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말라

 

퇴계는 본래 매화를 사랑하여 100편 이상의 매화시를 지었는데 그 중 91수를 직접 써

목판에 새긴 시첩이 지금도 전한다.

 

그런데 세상에 전하기로 퇴계가 풍기로 떠나갈 때 꾸린 짐 속에는 두향이가 준

수석 두 개와 매화 화분 한 개가 있었다고 한다.

 

퇴계의 매화 사랑을 두향이와 연관 짓는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지 못하는데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면서 제자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 “저 매화나무에 물 줘라”를

두향이를 염두에 둔 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출처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보완]

제비봉에서 생각해보는 퇴계와 두향

http://blog.daum.net/boxer1234/712

 

아래는 충주 말목산 제비봉 부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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