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311화 - 객이 밭을 가는 소에 대해 묻다 (客問牛耕)
한 사람이 멀리 볼일이 있어 길을 나섰다.
한참을 가다가 피곤하여
길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다가 보니,
한 농부가 두 마리의 소에 멍에를 씌워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이 사람은 슬그머니 장난기가 돌아,
농부를 불러서 물었다.
"여보 농부!
두 마리의 소로 밭을 가니
한결 힘이 덜 들겠구려.
그런데 그 두 마리 중에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합니까?"
이에 농부는 힐껏 돌아보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당신은 그저 갈 길이나 가시오.
괜히 남의 일에 참견해서 망치려 들지 말고."
그러면서 쟁기질에만 열중할 뿐,
더 이상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불쾌히 여기면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여 걸음쯤 가고 있는데,
농부가 쟁기질을 멈추고 부지런히 따라와서는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마치 큰 비밀이나 알려 주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소 두 마리 중에
검정소가 일을 더 잘한다오."
그러자 이 사람은 껄껄 웃으면서 되물었다.
"이봐요, 농부! 이상하지 않소?
무엇 때문에 그까짓 말을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며,
게다가 앞서 물었을 때는
손을 내저으며 아무 대답도 않더니,
뭐 하러 예까지 따라와서
이렇게 일러 주는 거요?
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려."
"아아, 손님! 내 말 좀 들어 보소.
소가 비록 가축이나,
일을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찌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소?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신의 단점에 대해 들으면,
싫어하는 마음이 드는 건 매한가지라오."
그러자 이 사람은 크게 감동하여,
농부에게 절을 하면서 공손히 사례하고
그 자리를 떠나갔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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