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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碑(한비) - 李商隱(이상은)
韓碑(한비)는 한유(韓愈)가 지은 평회서비(平淮西碑:고문진보 후집 권3 30)를 가리킨다. 회서절도사(淮西節度使) 오원제(吳元濟)가 채주(蔡州)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당헌종 元和 12년(817)에 배도(裴度)가 총사령관이 되어 이를 토벌했다. 이때 한유(韓愈)는 행군사마(行軍司馬)로 종군했는데, 난(亂)이 평정된 후 황제가 한유에게 명하여 〈平淮西碑(평회서비)〉를 짓게 하였다.
이상은의 한비는 한유가 평화서비를 짓는 과정과 그 공을 극찬하며 평화서비가 참소에 의해 지워졌지만 후세에서 복구하여 남게 됨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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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회서비(平淮西碑)>
배도와 이소(李愬)가 회서 반란을 평정한 후 헌종은 승리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배도 수하의 행군 사마였던 한유(韓愈)는 이름난 문장가인데다 배도를 따라 회서에 가본 적이 있어서 회서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헌종은 한유에게 명해 「평회서비(平淮西碑)」 즉 회서를 평정한 공적을 기리는 비문을 작성하게 했다.
[출처] 韓碑(한비:한유의 평회서비찬) - 李商隱(이상은)|작성자 swings81
073한비(韓碑)
ㅡ 이상은(李商隱;812-858)
元和天子神武姿,
(원화천자신무자),원화 천자의 신무한 자태여
彼何人哉軒與羲.
(피하인재헌여희).그분은 어떤 분인가! 헌원씨와 복희씨라
誓將上雪列聖恥,
(서장상설렬성치),맹세하여 장차 여러 대의 성군의 부끄러움을 씻고자
坐法宮中朝四夷.
(좌법궁중조사이).법궁의 중앙에 앉으니 사방 오랑캐가 조회를 하네
淮西有賊五十載,
(회서유적오십재),서진에 도적이 있어 이제 오십 년인데
封狼生貙貙生羆.
(봉낭생추추생비).이리가 너구리를 낳고 너구리가 곰을 낳았도다
不據山河據平地,
(부거산하거평지),산도 물도 아닌 평지에 웅거하여
長戈利矛日可麾.
(장과리모일가휘).긴 창 과 날카로운 창을 갖고 날마다 도둑을 모은다
帝得聖相相曰度,
(제득성상상왈도),황제님 어진 재상 얻었으니 재상은 배도라고 하네
賊斫不死神扶持.
(적작부사신부지).도적이 찍어도 죽지 않으니 신이 돕는다네
腰懸相印作都統,
(요현상인작도통),허리엔 상인 차고 도통이 되어
陰風慘澹天王旗.
(음풍참담천왕기).음풍이 참담한데 천왕의 깃발 드높인다
愬武古通作牙爪,
(소무고통작아조).네 무장인 이삭, 한공무, 이도고, 이문통을 선봉으로 삼고
儀曹外郎載筆隨.
(의조외낭재필수).의조랑과 원외랑은 붓을 들고 따라간다
行軍司馬智且勇,
(항군사마지차용),행군사마는 지혜롭고 용감하고
十四萬衆猶虎貔.
(십사만중유호비).십 사만 군사들은 더욱 호랑이와 비휴같이 용맹하다
入蔡縛賊獻太廟,
(입채박적헌태묘),채 땅에 들어가 도적을 포박하여 태묘에 바치오니
功無與讓恩不訾
(공무여양은부자).공이 없거나 사양한 사람도 황제님 은혜 한량없다
帝曰汝度功第一,
(제왈여도공제일),황제는 “너 배도의 공이 제일이니
汝從事愈宜爲辭.
(여종사유의위사).너의 종사관 한유가 글을 지어야한다“고 하신다
愈拜稽首蹈且舞,
(유배계수도차무),한유는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뛰고 춤추며
金石刻畫臣能爲.
(금석각화신능위).금석에 새길 글을 신이 능히 하리라하네
古者世稱大手筆,
(고자세칭대수필),옛날에는 “대수필”이라 하는데
此事不系于職司.
(차사부계우직사).이 일은 직위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네
當仁自古有不讓,
(당인자고유부양),인에 이르러는 예부터 양보함이 없다하니
言訖屢頷天子頤.
(언흘누함천자이).말이 끝나자 황제님은 몇 번이나 끄덕끄덕 하시었네
公退齋戒坐小閣,
(공퇴재계좌소각),한공이 물러나 목욕재계 하신 후 작은 전각에 자리 잡고
濡染大筆何淋漓!
(유염대필하림리)!큰 붓에 덤뿍 적시니 어찌 그리 힘이 넘치는지
點竄堯典舜典字,
(점찬요전순전자),요전 순전의 글자도 하나하나 고쳐야하고
涂改淸廟生民詩.
(도개청묘생민시).청묘생민 시도 고쳐야하네
文成破體書在紙,
(문성파체서재지),문장은 남 다른 문체로 종이에 적어야 하는데
淸晨再拜鋪丹墀
(청신재배포단지).맑은 새벽 두 번 절하고 섬돌 위에 붉은 종이 펼쳐놓는다
表曰臣愈昧死上,
(표왈신유매사상),표하여 이르기를, “신 한유는 우매하여 죽어 마땅하나
詠神聖功書之碑.
(영신성공서지비).신의 성스런 공을 입어 이를 비에 새기려합니다“ 하네
碑高三丈字如斗,
(비고삼장자여두),비의 높이는 삼 장이며 글자의 크기는 북두 같아
負以靈鰲蟠以螭
(부이령오반이리).신령스런 거북에 업히어서 용으로 서리었다
句奇語重喩者少,
(구기어중유자소),비문의 구절은 기굴하고 말은 심오하여 깨닫는 다 적어
讒之天子言其私.
(참지천자언기사).이를 천자께 사사롭다고 참소하니
長繩百尺拽碑倒,
(장승백척예비도),백 척 긴 밧줄로 비를 당겨 넘어뜨리고
粗沙大石相磨治.
(조사대석상마치).거침 모래 큰 돌로써 갈아버렸네
公之斯文若元氣,
(공지사문야원기),그러나 한공의 이 문장이 원기가 있는 듯
先時已入人肝脾.
(선시이입인간비).먼저 사람의 몸에 들어갔네
湯盤孔鼎有述作,
(탕반공정유술작),성당왕의 반과 공씨의 정에 새긴 글이 있어
今無其器存其辭.
(금무기기존기사).이제 그 그릇은 없어져도 그 글은 남아있다네
嗚呼聖皇及聖相,
(오호성황급성상),아! 옛 성스런 황제와 어진 재상들
相與烜赫流淳熙.
(상여훤혁류순희).서로 더불어 그 밝음이 흘러 후세를 밝히네
公之斯文不示后,
(공지사문부시후),한공의 이 문장을 후세에 보이지 못한다면
曷與三五相攀追.
(갈여삼오상반추).어찌 세 다섯 재상들과 나란히 쫓을 수 있겠는가
愿書萬本誦萬過,
(원서만본송만과),원하노니, 일만 번을 베껴 쓰고 일만 번을 암송하여
口角流沫右手胝.
(구각류말우수지).입에 흘러 마르고 ,오른손에 굳은 살 져도 좋습니다
傳之七十有二代,
(전지칠십유이대),이 글을 전하기 칠십 이대
以爲封禪玉檢明堂基.
(이위봉선옥검명당기).왕 봉선시와 옥검 명당기의 글이 되게 하소서
[안병렬 역]
073 이상은(李商隱;812-858)
韓碑 한비
원화천자의
신무한 모습이여
그 사람은 누구인가?
훤원씨와 복희씨라.
맹세하여 장차
열대 성군의 부끄러움 씻고자
법궁에 앉아서
사방 오랑캐의 조공과 축하를 받으리라.
회서에 도적이
오십 년만에
이리가 너구리 낳고
너구리가 곰을 낳아
산도 강도 마다하고
평지에 웅거하여
제멋대로 발호한다.
황제 언진 세상 얻었으니
재상은 배도
도적이 찍어도 죽지 않으니
귀신이 도우심이라.
허리에 재상인 차고
도통이 되사
음풍 참담한데
천왕 깃발 드높인다.
용감한 네 장수
선봉이 되고
의조랑 원외랑도
붓들고 따라간다.
행군사마 한유.
지혜 있고 용감하고
십사만 많은 군사
맹수 같이 사납도다.
채땅에 들어가 도적 잡아
태묘에 바치오니
골로상 받든 양보하든
황제 은혜 한량없다.
황제께서 하신 말씀
배도 너의 공로 제일이니
너의 종사 한유는
응당 글지어 바치거라.
한유는 머리 숙여 재배하고
뛰고 춤추면서
금석에 새길 문장
신이 능히 하오리다.
옛날에 이른바
문장가요
이 일은
직위와 무관하니.
仁에는 예부터
양보함이 없습니다.
말씀 듣자 천자께서
몇 번이나 수긍한다.
한유 물러나 목욕재계
작은 집에 자리잡아
큰 붓에 듬뿍 찍어 써내니
어찌 그리 힘 있고 상세한고?
요전 순전 문자도
고쳐 써야 하고
청묘 생민시도
고쳐야 되리.
문장은 남다른 체제
종이에 베껴 쓰고
맑은 새벽 재배하고
섬돌 위에 펴 놓고
표를 올려 아뢴 말씀
신 한유 우매하여 죽어 마땅하오나
황제님의 성스런 공로 읊었으니
이를 비석에 새겨 주옵소서.
비석 높이는 三仄
글자는 북두 같고
돌자라에 업히어서
용으로 조각됐다.
비문은 빼어나고 심오하여
깨닫는 자 적으니
천자께 참소하여
편협하고 사사롭다 아뢰오니.
백 자 긴 새끼로
비를 당겨 넘기고서
거친 모래 큰 돌로
갈고 다듬어도.
한유의 이 문장
원기가 있는 듯
이미 벌써 일찍이
남의 가슴 들어갔네.
성왕탕왕의 욕반, 공씨의 정상
모두 비석글 있었으나
이제는 반도 정도 없건마는
그 문장은 남았더라.
아, 옛날의
거룩한 황제 어진 재상들
문장으로 빛내어서
후대까지 빛난다.
한유의 이 문장을
후세에 못 본다면
어떻게 너댓 친구들과
쫓아가며 드날릴까?
원컨대 일만본을 베끼고저
만번을 외고서
입끝이 마르고
오른손에 군살이 베기어도.
이 문장 전해주어
천만 대 가오리니
성왕 봉선시의 기도문 되고
명당 제전터의 헌사되오리.
당시삼백수 권1 칠언고시
73. 韓碑(한비) - 李商隱(이상은)
<한유의 평회서비를 찬하다>
韓碑(한비) - 李商隱(이상은)
韓碑(한비)는 한유(韓愈)가 지은 평회서비(平淮西碑:고문진보 후집 권3 30)를 가리킨다. 회서절도사(淮西節度使) 오원제(吳元濟)가 채주(蔡州)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당헌종 元和 12년(817)에 배도(裴度)가 총사령관이 되어 이를 토벌했다. 이때 한유(韓愈)는 행군사마(行軍司馬)로 종군했는데, 난(亂)이 평정된 후 황제가 한유에게 명하여 〈平淮西碑(평회서비)〉를 짓게 하였다.
이상은의 한비는 한유가 평화서비를 짓는 과정과 그 공을 극찬하며 평화서비가 참소에 의해 지워졌지만 후세에서 복구하여 남게 됨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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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회서비(平淮西碑)>
배도와 이소(李愬)가 회서 반란을 평정한 후 헌종은 승리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배도 수하의 행군 사마였던 한유(韓愈)는 이름난 문장가인데다 배도를 따라 회서에 가본 적이 있어서 회서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헌종은 한유에게 명해 「평회서비(平淮西碑)」 즉 회서를 평정한 공적을 기리는 비문을 작성하게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대 문장가 한유 [韓愈直諫] (중국상하오천년사, 2008. 4. 25., (주)신원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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