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1786-1856)
초의 의순(1786-1866)
집앞에 소나무 2그루[초의(노송)와 이상적] , 집뒤에도 잣나무 2그루
우측 상단의 題辭에는 "歲寒圖 藕船是賞 阮堂"이라 적었다.
제사를 번역하면, "세한도를 우선 이상적은 감상하시게. 완당 김정희"
그림을 해석하면, 내 마음은 벗님들 덕분에 한겨울에도 춥지 않아! 오두막이야 썰렁하지만.
*아래동영상에서 기념관, 적려유허비, 청동상을 제외한 위리안치된 초가 등은 이전부터 있었던 건물임. 기년관엔 소장품, 복사본 등 전시중.
추사 김정희 선생 유배지
https://www.youtube.com/watch?v=wrqxTgzFtRQ
위 사진의 기념관, 적려유허비, 나가는 곳 앞의 동상 등은 새로 추가한 것임.
바문의 ‘적려’란 귀양살이하던 오두막집이란 뜻이고,
‘유허비’는 기념할 만한 옛 자취에 세운 비석을 의미한다.
세한도 발문 - 추사 김정희 (0) 2018.11.12/ 하단에 한문원문과 번역을 탑재함.
http://kydong77.tistory.com/18044
자기 신상의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위안치된 죄인인 자신을 찾아주는 동갑의 초의선사에 대한 유불을 초월한 금란지교를 조각으로 시각화한 것은 뛰어난 착상으로 보였다. 세한도 발문은 제자이며 역관인 이상적에게 준 글인데 세한연후에도 변함없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언급하신 공자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그린 그림이 세한도임을 밝혔다. 진리에 준거하여 살아야 가치있는 삶이라 예찬할 수 있다. 그림 속의 두 그루 소나무는 초의선사와 이상적을 표상화한 것이라 추정된다. 집뒤의 잣나무 같은 분들도 계셨다. 유적지에서도 그들을 생각하면 살 맛나는 세상이었음에 틀림없다. 참고로 당시의 제주행이란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정치적 위협은 차치하더라도 풍랑 등 자연의 재해로 인하여 목숨까지 걸어야 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뱃길이었다.
서도(書道)를 통하여 9년간의 말년 유배생활의 시련을 극복한 선생의 올곧은 삶은 한국인들에게 두고두고 사표가 되리라 확신하며 삼가 추사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참고] 세한도 발문의 중심문장의 원문과 추사선생의 해설을 좀 더 자세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孔子曰
공자왈, 공자가 『논어』 「자한」편에 에 이르기를,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오랜 세월) 후에 시드는 것을 안다고 하였네.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송백시관사시이부조자,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계절 내내 시들지 않은 것이라서,
歲寒以前一松栢也
세한이전일송백야,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 한 결 같이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요,
歲寒以後一松栢也
세한이후일송백야,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 한 결 같이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이지만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성인은 특별히 날씨가 추워진 뒤에 이를 일컬었네.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18044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세한도 -유자효 /시
http://kydong77.tistory.com/8219
*유자효(1947- ) - 서울대 불교과 졸. 시인, 방송인.
* 위 시에서는 "
허망한 꿈을 그린다"고 했으나 운영자는 그 실상은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해석한다.
탱자나무를 심은 위리안치 뒤가 서당. 아래 좌측건물
위는 주인집 거처. 앞의 물레방아, 돼지우리, 대문간 등은 주인의 소유물.
나가는출입문을 나서면 추사 선생의 청동상은 기념관, 유허비 등과 함께 신설함.
뒤가 거처,사진 왼족이 서당, 우측이 주인의 살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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