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95- 수염 많은 손님 (髥客逢辱)

한 사람이 입가에 수염이 너무 무성하고 길어서 보는 사람들이 추하게 여겼다.

하루는 무슨 일로 먼 길을 가다가, 

마침 겨울철이라 날씨도 춥고 배가 고프기도 하여

주막에 들어가 몸을 좀 녹이면서 쉬어가려고 했다.

그래서 주막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 사람은 심부름하는 아이를 보고

술을 한 잔 가져오라고 시켰다.

이에 그 아이는혼자 입을 막고 웃으면서 말했다.

"손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려고 술을 가져오라 하십니까?"

"무엇을 하다니? 마시려고 그러지, 왜?"

"옛? 술을 마신다고요. 손님께서는 마시려고 해도

입이 없는데 어떻게 마신다는 겁니까?

입이 있어야 술을 마시지요."

아이의 이 말에 이 사람은 화가 나서

두 손으로 수염을 가르며 꾸짖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이 놈아! 이게 입이 아니고 무엇이냐? 잘 봐라, 여기 입을."

이에 입을 본 아이는 신기하다는 듯이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말했다.

"옳지, 그렇군요! 그렇다면 건넛마을 사는

김병사(金兵士)의 아내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겠네요.

걱정 안 해도 되겠는걸요."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일찍이

그가 김병사의 처와 어울려 놀 적에

옷을 벗겨 보았는데,

그 곳에 음모가 너무 많아 옥문을 온통 덮고 있는지라,

결국은 어디가 어딘지 몰라 그 입구를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 주점에서 일하는 노파가 다가오더니,

지팡이로 아이의 머리를 때리면서 말했다.

"이 놈아! 네 부친은 비록 시골에 살았지만,

평소에 지혜가 많고 지식 또한 풍부한 사람이었어!

그런데 너는 어디서 나왔기에 이리도 어리석고 바보스러우냐?

손님 어른의 입이 있고 없는 게 너와 무슨 상관이고,

하물며 다른 집 여자가 음문이 있고 없는 걸 가지고

어린 네가 뭐라 따질 처지가 되느냔 말이다.

어린 게 이리 당돌해서 어디다 쓰겠느냐?"

노파가 이렇게 꾸짖으니,

그 사람은 어린 것이 너무 맹랑하게 굴어서 화가 나던 차에

속이 후련해지고 기분이 좋아 노파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노파가 다시 말했다.

"이 놈아! 너는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말을 보지 않았느냐?

말 갈퀴에 털이 그렇게 무성해도, 들춰 보면 그 속에

초롱초롱한 눈알이 있지 않더냐?

개를 봐도 그렇지. 꼬리가 그렇게 많은 털로덮혀 있어도,

들어보면 그 밑에 항문이 있단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털이 무성한 곳이라도 들춰보면

그 가운데는 하나 같이 구멍이 있기 마련이란다.

앞서 노파가 아이를 꾸짖을 때는 기분이 좋던 이 사람은

지금 노파가 한 말을 가만히 듣고 보자,

자신의 무성한 수염 밑의 입을 여러 가지 좋지 못한 것들에 비유하는 것 같아

부끄러움을 느끼고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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