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96- 여인의 원한 (公州一金姓者)

[참고]파수록을 편찬한 김연(金淵)

 

공주에 김씨 성을 가진 선비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선비는 어려서부터 그 재주가 뛰어나 문장에 재능을 보이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칭찬했고,

선비 또한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며 좋은 가문에 장가들고,

과거에도 쉽게 급제하여 크게 출세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김씨 선비는 일찍이 과거에도 급제하지 못했고,

생각했던 대로 좋은 집안의 규수와 혼인도 하지 못한 채

늙고 가엾은 신세가 되었다.

이에 선비는 사람들을 만나면 늘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슬퍼했다.

"모두들 내 말 명심하시오. 

아내가 아무리 못 생겼더라도 결코 박대하거나 버리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김씨 선비에게는 지난날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남들이 모두 그의 재능을 칭찬하고, 자기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졌던

김씨 선비에게 뜻밖의 재난이 닥쳤다.

 

부모 모두 일찍이 세상을 떠나 외톨이 신세가 된 선비는 숙부에게 의지하여 자랐다.

이에 장가들 나이가 되어 배필을 구하니,

각지의 딸을 둔 가문에서 다투어 중매를 보내 청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숙부는 중매가 들어온 곳을 모두 적어서 조카인 김씨 선비에게 의논하며,

그 가문과 처녀의 나이 등을 일일이 설명해 주고는,

"모두 좋은 가문들이며 규수 또한 현숙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나로서는 선택하기가 쉽지 않구나.

잘 생각해 보고 네 스스로 선택하기 바란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김씨 선비는 숙부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숙부님, 어느 집안인들 선택의 대상이 되지 않겠습니까만,

돌아가신 선친께서 제가 어렸을 때

어느 집안의 규수와 의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친께서 정해 놓으신 그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이에 숙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찬성했다.

그리하여 옛날 부모끼리 약속해 놓은 집에 청혼을 하고 날을 정해 예물을 보낸 뒤,

마침내 혼례식을 올리고 첫날밤을 맞았다.

 

그런데 그 날 밤 신부를 살펴본 선비는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몸이 매우 작고 피부에는 검은 점이 가득한데다 얼굴도 못생기고,

한쪽 눈마저 찌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선비는 아무리 살펴봐도 신부에게서 여인의 매력을 발견할 수 없었고,

오로지 기괴하게만 보여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선비는 화가 잔뜩 나서 떨치고 일어나려 했다.

이 때 신부가 선비를 향해 애원하는 것이었다.

"제 몸과 얼굴이 못생겼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찌 남자로서 저 같은 여인을 데리고 한평생 살려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간절히 빌겠습니다.

한 가지 소원만 들어주십시오.

그저 첫날밤 신랑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말만 듣지 않게 해주십시오.

바라옵건대, 오늘밤 큰 은혜를 베풀어 저와 함께 밤을 보내 주신다면,

내일 떠나시어 좋은 규수를 만나 혼인을 하고 영화를 누리신대도,

죽어서 원혼은 되지 않겠사옵니다."

 

신부가 이렇게 간절히 애원했지만, 

선비는 당시 나이도 어리고 인생의 경륜도 없는지라,

그 말을 더욱 증오하면서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뿌리치고 나와 버렸다.

그리하여 선비가 집까지 반쯤 걸어왔을 때, 

신부 집 종이 급히 따라와서는 신부가 목을 매고 자결했다는 말을 전했다.

 

이에 선비는 한편으로 측은하게도 생각되었지만,

워낙 화가 나 있던 터라 무시하고 곧 잊어 버렸다.

그 뒤로 선비는 만사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고, 몸도 편안하지 못했다.

과거는 19번을 보았지만, 소과 하나도 급제하지 못하는 불운을 안았던 것이다.

이렇게 나이가 많아지니 가난에 쪼들리게 되었고,

사방으로 떠돌면서 아이들이나 가르치는 접장 노릇을 하며

겨우 먹고 사는 말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니 이것은 바로 원혼이 되게 한 불선(不善)을 쌓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이야기는 김씨 선비에게서 글을 배운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임인(壬寅 : 1722년)해에, 본 설화집인 파수록을 편찬한 

김연(金淵)에게 들려준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이씨의 나이는 70여 세였다는 말도 함께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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